릴로

잡물고 문틈으로 새벽빛이 들었다. 유선은 밤새 굳은 혀 밑에서 침을 굴렸다. 소명하려던 말이 목젖에 걸려 나오지 않던 어제의 무력이 아직도 손끝을 타고 떨렸다.

문이 열렸다. 도청 감독관 두 명과 조 주부, 그리고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김치복의 그림자가 마당의 흙바닥 위로 길게 늘어졌다.

"끌어내라."

폭발한 공방 앞이었다. 밤새 물을 끼얹어 그을음이 재로 굳었고, 터진 압력 통이 배를 갈린 짐승처럼 뒤집혀 있었다. 무쇠 파편이 흙에 반쯤 박혔다. 유선의 눈이 그 위를 훑는 순간, 뒤통수가 뜨거워졌다.

역산이 시작됐다.

파편의 단면이 심상 속에서 거꾸로 접혀 올라갔다. 통을 두드리던 망치질의 결, 무쇠를 식힌 물의 온도, 이음새를 겹쳐 붙인 순서까지 도면이 뇌리에 펼쳐졌다. 그리고 한 지점에서 도면이 붉게 물들었다. 통의 아랫배, 이음새가 두 번 겹쳐진 자리. 거기서 무쇠 결이 층층이 벌어져 있었다.

'접쇠가 세 겹뿐이다. 여기는 다섯 겹이어야 압을 버틴다. 겉만 두껍고 속은 단조가 덜 됐어. 압이 오르니 겹 사이가 벌어지고, 삭은 가죽이 아니라 무쇠가 먼저 갔다.'

혀는 굳었으나 눈은 정확했다. 유선은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파편 옆에 통의 단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보아라. 저 미친 잡직이 또 무슨 요망한 짓을 하는지."

조 주부가 코웃음을 쳤다. 감독관 하나가 발끝으로 유선의 그림을 문지르려 했다.

유선이 그 손목을 잡았다. 힘을 준 게 아니라, 그저 붙들었다. 그러곤 파편을 가리키고, 자기가 그린 겹층을 가리키고, 손가락 세 개를 폈다가 다섯 개를 폈다.

"뭐라는 거야, 벙어리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유선은 이를 악물었다. 어제 장부와 자재를 연이어 역산한 대가가 아직 혀에 눌어붙어 있었다. 정답이 머릿속에 다 있는데, 그것을 밖으로 내보낼 통로가 막혔다. 손등의 물집이 흙에 쓸려 터졌다.

"실화에 무고, 이제 관원에 손찌검까지. 죄가 셋이다."

감독관이 손목을 뿌리쳤다. 김치복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 입꼬리만 올렸다.

"채 잡직. 내 그리 자재를 대주며 아꼈거늘. 재주가 아까워서 하는 말인데, 죄를 인정하고 매 몇 대로 끝내는 게 어떻겠나. 통이 저 혼자 터진 걸 두고 자꾸 남을 물면, 자네만 더 깊이 빠지네."

혀만 풀렸다면 유선은 소리쳤을 것이다. 접쇠가 세 겹이라고. 자재로 든 무쇠가 겉만 상등이고 속이 물렀다고. 그러나 그럴수록 목이 조여왔다. 옳음을 아는데 그 옳음을 말할 수 없는 자리, 그것이 이 나라에서 서얼 잡직의 자리였다.

그때, 대장간 쪽에서 발소리가 났다.

무거운 걸음이었다. 앞치마에 재를 뒤집어쓴 홍만춘이 파편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그는 유선의 그림을 힐끗 보더니, 파편을 맨손으로 집어 들었다. 뜨겁지도 않은 듯 손바닥 위에서 돌려 단면을 살폈다.

"…호."

짧게 뱉었다. 그러곤 파편을 조 주부 코앞에 들이밀었다.

"주부 나리. 이 무쇠, 벼린 지 얼마 안 된 겁니다요. 근데 접은 자리가 세 겹이올시다. 압 받는 통 밑둥을 세 겹으로 접는 대장장이는 조선에 없수. 저같이 상놈 삼십 년 두드린 놈은요, 눈감고 만져도 압니다. 이건 통이 터진 게 아니라, 애초에 터지라고 만든 무쇠올시다."

조 주부의 얼굴이 굳었다. 감독관이 헛기침을 했다.

"자네가 뭘 안다고—"

"무쇠는 제가 압지요. 나리께서 붓을 아시듯이." 홍만춘의 말투는 무뚝뚝했으나 물러섬이 없었다. "겉만 두껍고 속이 무른 무쇠. 이거 어디서 들어온 자잽니까. 장부에 적혔을 거 아니오. 감독관이 재가하고 도장 찍은 자재란 말이오."

김치복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뒷짐 진 손이 잠깐 움직였다.

유선은 홍만춘을 올려다봤다. 자기가 손가락으로 세다 만 것을 이 사내가 무쇠의 언어로 대신 말하고 있었다. 목이 뜨거워졌다.

"그, 그러니 이건…" 조 주부가 말을 더듬었다. "이건 무쇠 문제가 아니라, 저 잡직이 설계를 잘못한 것이다. 통을 저리 얇게 그렸으니 터진 게 아니냐."

홍만춘이 유선의 흙바닥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 이 통 밑둥, 다섯 겹으로 접으라 그려놨수. 그림엔 다섯 겹인데 들어온 무쇠가 세 겹이면, 그림 그린 놈 죄요, 무쇠 넣은 놈 죄요?"

마당에 침묵이 깔렸다. 감독관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파편의 단면은 홍만춘의 손바닥 위에서 세 겹의 층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있었고, 유선의 그림은 다섯 겹을 명백히 그려놓고 있었다. 정답과 현실의 간극이, 이번만은 유선의 편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김치복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웃음기가 사라진 낮은 소리였다.

"통 원인은 도청에서 다시 살피겠네. 채 잡직은 죄가 확정되기 전이니, 공방 출입은 금하되 잡물고는 풀어주지. 홍 장인은… 제 일이나 하시게."

말을 남기고 김치복은 몸을 돌렸다. 그러나 걸음이 급했다. 뒷짐을 풀지 못한 채였다.

감독관들이 흩어지고, 마당엔 재와 파편, 그리고 유선과 홍만춘만 남았다.

홍만춘이 파편을 툭 내려놓았다. 흙먼지가 일었다.

"댁, 말 못 하는 거요, 안 하는 거요."

유선이 목을 눌렀다. 겨우, 쉰 소리가 새어 나왔다.

"…돌아, 옵니다. 하, 하루면."

"거참." 홍만춘이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어제 그 통 터질 때, 나는 봤수. 댁이 불붙은 통을 안 피하고 되레 다가가더군. 뭘 보려고. 미친놈인가 했지."

"…어디서, 터졌는지. 봐야, 압니다."

"그걸 봐서 뭐 해."

유선은 굳은 혀를 밀어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목을 긁었다.

"틀린 자리를… 알면, 다음엔… 안 틀립니다. 정답을… 알면, 실패한… 이유도, 알아요."

홍만춘이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재에 그을린 서얼 잡직. 손등엔 물집이 터져 진물이 났고, 밤새 갇혀 눈은 벌겠다. 그런데 흙바닥에 그린 통의 도면만은, 대장장이 눈에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내가 서른 해 무쇠를 두드렸수." 홍만춘이 쭈그려 앉아 파편을 다시 집었다. "압 받는 이음새 접는 법, 내 아비한테 배운 게 있소. 무쇠를 다섯 겹, 일곱 겹 접어 두드리면 결이 갈라져도 옆 결이 붙들어주지. 서양 강철이 아니라도 압을 버틸 수 있다는 말이오. 나 아니면 조선에 이거 하는 놈, 몇 없수."

유선의 눈이 커졌다. 역산으로도 얻지 못한 조각이었다. 서양 도면은 강철을 전제로 그려졌고, 조선 무쇠로는 그 압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간극을, 이 사내의 손이 메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왜, 저를 도우십니까."

홍만춘이 파편을 흙에 던졌다. 처음으로 그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내가 두드린 거중기 부속이 몇 갠 줄 아시오? 화성 성벽 돌 하나 못 올라간 게 없소. 근데 상량문에 적히는 건 감동관 이름이지 홍만춘 석 자가 아니야. 내 손이 만든 걸 양반 나리 공이라 적는 세상. 삼십 년을 봤수. 지겹수."

그가 유선을 정면으로 봤다.

"근데 댁은 아까 손가락질로라도 무쇠 넣은 놈 죄라고 짚더군. 서얼 주제에. 벙어리 주제에. 도청 감독관 앞에서 말이야. 그거 보고 마음이 좀… 움직였수."

유선은 흙바닥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제 어미는… 관비였습니다. 손끝이 좋아, 이 집 저 집 팔려다니다… 이름도 못 남기고, 열병으로 죽었어요. 어미가 지은 물건은… 다, 주인 마님 솜씨가 되었지요."

말이 끊겼다. 유선은 침을 삼키고 이었다.

"저는… 재주가 신분에 묻히지 않는 나라를… 세우고 싶습니다. 손끝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세상을요. 상량문에… 홍만춘 석 자가 적히는 세상을."

홍만춘의 굳은 얼굴이 잠깐 흔들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유선의 도면을 다시 봤다. 그러곤 손가락으로 통 밑둥을 짚었다.

"다섯 겹으론 부족하겠수. 압이 이만큼 오르면." 그가 흙에 선을 그었다. "일곱 겹으로 접읍시다. 대신 무게가 늘 테니, 통을 좀 짧게. 댁이 계산 좀 해보슈. 나는 두드릴 테니."

"…같이, 하시는 겁니까."

"같이 하는 거요." 홍만춘이 일어섰다. 유선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대신 성공하면, 상량문에 내 이름 석 자. 약조하슈."

유선이 손을 내밀었다. 물집이 터진, 떨리는 손이었다. 홍만춘이 그 손을 무쇠 집게 같은 손으로 잡았다.

"홍만춘." 대장장이가 제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잊지 마슈."

그날 오후, 두 사람은 대장간 뒤편에 무쇠를 쌓았다. 홍만춘이 풀무를 밟고, 유선은 굳었다 풀린 혀로 겹층의 치수를 불러줬다. 일곱 겹으로 접은 이음새가 벌겋게 달아 망치 아래 접혀 들어갈 때, 유선은 처음으로 정답의 도면과 조선의 무쇠가 한 몸이 되는 것을 봤다. 서양 강철이 아니어도 되는 길이었다.

그러나 저녁 무렵, 흙바닥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화성 감영으로 파발이 들이닥쳤다.

한양에서 온 서찰이었다. 부제학의 겸인이 유득경을 통해 급히 전한 것이었다. 유득경의 필체는 평소와 달리 흐트러져 있었다.

—형장. 큰일이오. 심 대감 측에서 상소가 올라갔소. 압수된 형장의 도면을 증좌로, '오랑캐의 잔재주가 통을 터뜨려 부역꾼을 상하게 하고 강상을 어지럽혔다' 논핵하고 있소. 화성으로 무쇠를 나르라는 어명이 내릴 참이었는데, 그 어명 대신—

유선의 눈이 다음 줄에서 멎었다.

—형장을 한양 조당으로 소환해 친국(親鞫)에 세우라는 청이 빗발치오. 사흘 안에 올라오지 않으면 도주로 간주한다 하오. 형장, 조당에선 도면이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오. 누가 말하느냐가 문제요. 그리고 형장은… 역산을 하면 말을 잃지 않소.

서찰이 유선의 손에서 떨렸다. 겨우 풀린 혀가, 다시 얼어붙는 것 같았다.

홍만춘이 파발꾼 쪽을 노려봤다.

"뭐라 적혔수."

유선은 대답하지 못했다. 화성의 무쇠 앞에서 이제 막 길을 찾았는데, 그 길이 통째로 끊기고, 자신을 부르는 것은 화성이 아니라 한양의 조당이었다. 말로 다투는 자리. 정답이 아니라 신분이 재판받는 자리. 그리고 그가 입을 열어야 할 바로 그 순간, 그의 혀는 굳어 있을 것이었다.

서쪽 하늘이 대장간 불빛처럼 붉게 타들어갔다.

홍만춘이 다시 물었다.

"뭐라 적혔냐니까."

"…한양으로, 부른답니다." 유선은 서찰을 접었다. 접는 손끝이 마디마다 떨렸다. "친국에 세우겠다고. 사흘 안에."

"친국이 뭐요."

"임금 앞에서… 죄를 묻는 자리입니다."

홍만춘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방금 접은 이음새를 흙바닥에 놓인 물동이에 담갔다. 벌건 무쇠가 쉬익 소리를 내며 김을 뿜었다. 그 김이 두 사람 사이에 잠깐 서렸다가 흩어졌다.

"임금 앞이면 좋은 거 아니오. 댁 편이라며. 밀명을 내렸다며."

유선은 고개를 저었다. 서찰의 마지막 줄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임금은 노론과 부딪칠 때 편들지 않겠다 했다. 법도 안에서 스스로 살아남으라고. 조당의 친국이란 임금이 그를 지켜주는 자리가 아니라, 임금이 그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노론과 흥정하는 자리였다.

"임금은… 저를 구하러 부르는 게 아닙니다." 유선은 겨우 소리를 짜냈다.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 보려고 부르는 겁니다."

홍만춘이 물동이에서 이음새를 건져 들었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젖은 무쇠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결을 살피며, 무뚝뚝하게 물었다.

"거기 가면, 댁 그 벙어리 되는 병. 또 도지오?"

정곡이었다. 유선은 대답하지 못했다.

조당에서 다투려면 도면을 읽혀야 하고, 도면을 읽으려면 압수된 자기 도면을 심환지가 어떻게 왜곡했는지 되짚어야 한다. 되짚으려면 역산의 눈을 써야 하고—쓰는 순간 혀가 굳는다. 무쇠 파편 하나를 역산하는 데도 반나절 혀가 눌어붙었다. 임금 앞,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심환지의 겸인이 도면을 펴 든 그 순간에, 그는 벙어리가 될 것이었다.

말해야 할 자리에서 말을 잃는 병. 그것이 이 재주의 대가였다.

"…도집니다." 유선이 인정했다. "제가 가장 말해야 할 순간에, 저는 아무 말도 못 할 겁니다."

홍만춘이 이음새를 툭 내려놓았다.

"그럼 가지 마슈."

"안 가면 도주로 봅니다. 도주하면 죄가 확정되고… 화성 증기는, 오랑캐 잔재주가 사람 죽인 흉물로 못박힙니다." 유선은 붉게 타는 서쪽 하늘을 봤다. "제가 무너지면, 이 무쇠도 무너집니다. 상량문에… 홍 장인 이름 석 자를, 못 적습니다."

홍만춘의 굳은 얼굴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때 파발꾼이 헛기침을 했다. 아직 서서 대답을 기다리던 자였다.

"채 잡직. 한 통 더 있습니다. 부제학 겸인이 몰래 끼워 넣은 것이라, 도청 장부엔 안 오른 겁니다."

파발꾼이 소매에서 얇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유득경의 필체가 아니었다. 반듯하고 힘 있는 글씨. 유선은 그 글씨를 알았다. 사흘 전 잡물고에서 도면을 회수해 간, 그 밀사의 손이었다.

밀사의 서찰은 짧았다.

—규례를 뒤져라. 대동법 시행 규례, 둔전 자재 조달의 옛 법도. 공납의 절차. 그 법들은 원래 누구를 위해 세워졌는가. 노론이 세운 법이 노론을 치는 칼이 될 것이다. 조당에서는 옳은 도면을 펴지 마라. 옳은 규례를 펴라. 말을 잃어도 규례는 종이 위에서 스스로 말한다. — 사흘 뒤, 한양에서 다시 부르겠다.

유선의 손이 멎었다.

말을 잃어도 규례는 종이 위에서 스스로 말한다. 그 한 줄이 굳은 혀 밑에서 무언가를 풀어놓았다. 역산의 눈으로 도면을 읽어 소리쳐 이길 수는 없다. 그러나 도면이 아니라 규례라면—미리 뒤져 종이에 적어 두면, 혀가 굳어도 그 종이가 대신 말한다. 심환지가 예법과 규례로 그를 옭는다면, 그 예법과 규례 속에 심환지를 옭을 올가미가 이미 들어 있을지도 몰랐다.

"…홍 장인." 유선이 서찰을 접으며 물었다. "이 무쇠, 제가 없어도 이어 두드릴 수 있습니까."

"이음새 치수만 남기고 가슈. 내 손이면 되오." 홍만춘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간다는 거요, 결국."

"갑니다." 유선은 물집 터진 손으로 무쇠 이음새를 쥐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대신 조당에서는, 도면으로 싸우지 않겠습니다."

풀무의 불이 사위어갔다. 유선은 파발꾼에게서 밀사의 서찰을 받아 품에 넣었다. 규례를 뒤지려면 규장각 서고를 봐야 했고, 서고를 열 수 있는 자는 유득경이었다. 사흘. 한양까지 이틀 길. 규례를 찾아 종이에 옮길 시간은 채 하루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하루 안에, 그는 역산의 눈을 한 번도 써서는 안 됐다. 조당에서 혀를 지키려면.

그러나 압수된 자기 도면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모르고서, 어떻게 규례로 반박할 자리를 짚는단 말인가. 왜곡을 알려면 도면을 역산해 되짚어야 하고, 되짚으면 혀가 굳는다. 혀를 지키면 심환지의 함정을 모르고, 함정을 알면 조당에서 벙어리가 된다.

어느 쪽을 택하든 하나를 잃어야 했다.

서쪽 하늘의 마지막 붉은빛이 대장간 지붕 너머로 꺼졌다. 유선은 품속의 두 통 서찰을 눌렀다. 하나는 그를 죽이려는 상소를 알렸고, 하나는 그를 살릴 규례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혀와 자신의 눈 중 무엇을 조당의 문턱에 바쳐야 할지,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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