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서, 도윤의 상이 손을 들었다.
도윤 본인은 손을 들지 않았다. 바닥에 무릎을 짚고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데 유리 속의 자신은—천천히, 관절이 뻑뻑한 인형처럼—팔을 들어 방문 쪽을 가리켰다. 손끝이 계단을 안고 내려오는 검은 상자의 그림자를 지나, 그 너머 어딘가를 짚었다.
"소라 씨."
목소리가 갈라졌다. 소라가 램프를 든 채 굳었다.
"내 상이… 나 안 움직이는데, 혼자 움직여요."
"돌지 마." 소라의 손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절대 돌지—"
도윤은 돌았다.
미룰 시간이 없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았다. 상이 가리킨 건 경고였다. 등지지 말라는 그 규칙, 시야에서 벗어나면 뒤가 재배열된다는 그 규칙—상은 지금 그걸 역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여기, 이쪽이 바뀌고 있어'라고.
돌아본 방은 이미 달랐다.
들어올 때 화장대는 왼쪽 벽에 붙어 있었다. 지금은 정면. 방문은 오른쪽에 있었는데, 사라졌다. 그 자리에 벽지가 매끈하게 이어져 있고, 대신 없던 문이 반대편에 열려 있었다. 반쯤. 그 안은 계단이 아니라 또 다른 방이었다. 거울로 사면이 두른 방.
"세 걸음." 소라가 뒤에서 속삭였다. "네가 지금 돌면서 한 걸음, 저 문으로 향하면 두 걸음—세 걸음째에 문지방을 넘으면 완성이야. 강준이 그랬어. 없던 문이 열리면 그게 마지막 조항이야."
도윤은 걸음을 멈췄다. 한 발이 앞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몸이 이미 새 문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발바닥을 바닥에 못 박듯 눌렀다. 태오의 슬리퍼가 주머니에서 삐져나와 흔들렸다.
"안 넘어요." 그가 뒤로 발을 뺐다. "안 넘어."
없던 문이 천천히 닫혔다. 딸깍, 하는 소리조차 없이 벽지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방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화장대는 왼쪽, 방문은 오른쪽. 계단을 내려오던 그림자는—없었다.
도윤은 그제야 등을 벽에 붙이고 미끄러져 앉았다. 심장이 목젖까지 올라와 있었다.
"거울이 살려줬어요." 그가 헐떡이며 말했다. "내 상이. 뒤가 바뀌는 걸 나보다 먼저 봤어요. 그래서 가리킨 거예요."
소라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램프를 그의 얼굴에 대지 않으려 조심하며, 목소리만 낮게 깔았다.
"도윤아. 그게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하지 마."
"조기경보예요. 상이 나보다 앞서 움직이니까, 위험을 먼저—"
"그러니까 나쁜 거야." 소라가 그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말을 길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딱딱 끊어서, 못을 박듯이. "상이 너보다 먼저 움직인다는 건, 시차가 뒤집혔다는 뜻이야. 원래 네가 손 들면 거울이 반박자 늦게 따라오는 거였잖아. 지금은 거꾸로야. 거울이 먼저, 네가 나중."
도윤의 손끝이 저릿했다.
1화 첫 밤, 302호. 손을 들면 거울 속 손이 몇 초 뒤에 들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능력을 쓸 때마다 상이 늦어졌고—그러다 6화, 강준의 시야를 읽은 뒤로는 시차가 거의 0에 붙었다. 그리고 방금. 0을 넘어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강준은," 소라가 침을 삼켰다. "마지막에 이랬어. 손도 안 들었는데 거울 속 강준이 손을 들었어. 거울 속 강준이 먼저 웃었고, 먼저 돌아섰고—그다음에 진짜 강준이 그걸 따라 했어. 사흘 만에. 사람이 자기 그림자한테 끌려다니는 거야. 시차가 0이 아니라, 앞뒤가 바뀌는 순간."
"바뀌면요."
"거울 속 게 앞이 돼." 소라가 그의 눈을 똑바로 봤다. "네 상이 앞장서면, 너는 상을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가 돼. 그리고 상이 거울 밖으로 나오면… 네가 안으로 들어가. 자리가 바뀌는 거야. 그림자가 네 자리를 대신하고, 너는 유리 안에 갇혀."
방 안이 조용했다. 사면 거울에 도윤과 소라가 겹겹이 비쳤다. 도윤은 자기 상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어떤 건 그와 같이 있었다. 어떤 건—미세하게, 반쯤 감긴 눈으로 그를 앞서 보고 있었다.
"저거 지안한테 유혹당하는 게 아니었네요." 도윤이 쉰 소리로 말했다. "능력을 쓸수록 내가 나를 완성시키고 있었던 거네. 창고방 벽에 내 이름 젖어 있던 거. 그게 예고였고."
"그래서 쓰지 말라고 한 거야." 소라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처음부터. 강준 하나로 충분했어."
도윤은 손바닥을 폈다. 방금 거울에 밀어넣었던 손. 살점이 얼어붙은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 손으로 몇 번을 더 짚으면, 상이 완전히 그를 앞지를까. 두 번? 한 번?
한 번.
"소라 씨."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 이제 거울 안 봐요. 능력 안 써요."
소라가 눈을 깜박였다. "…진심이야?"
"진심이에요. 오늘부터. 태오 때도, 강준 때도, 나는 볼 게 있으면 봤어요. 물증이 필요하다고. 근데 이제 한 번 더 쓰면 내가 유리 안으로 들어가요. 그럼 지안 못 데려와요." 그가 슬리퍼를 다시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그러니까 안 써요. 딱 한 번만 남기고."
"한 번?"
"지안 있는 곳. 거기서 한 번. 그때 쓰려고 지금 아끼는 거예요." 도윤은 자기 말이 낯설었다. 언제나 그는 지금 당장 확인하려고 손을 뻗던 사람이었다. 등 뒤에서 방이 바뀌는 동안에도 쪽지를 노려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으로, 나중을 위해 지금을 참고 있었다. "판단을 미루는 게 아니라, 미루는 게 판단인 순간도 있는 거였어요. 이건 미루는 게 맞아요. 한 발을 위해 아끼는 거니까."
소라가 오래 그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건 비웃음이 아니었다. 그녀가 도윤을 처음 만났을 때 짓던, 우유부단함을 비웃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이제야 좀 사람 같네." 그녀가 일어섰다. "가자.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돼."
두 사람은 강준의 반지하를 나왔다. 계단을 오를 때 도윤은 거울을 등졌다. 등지면 완성된다는 규칙을 알면서도, 이번엔 소라가 앞을 봐줬다. 서로의 시야를 나눠 가지면, 등진 사람도 산다. 그게 둘이 함께 다녀야 하는 이유였다.
승합차 안에서, 도윤은 그동안 모은 걸 전부 바닥에 펼쳤다.
태오가 죽은 반지하의 쪽지 사진. 강준의 화장대 뒤에서 뜯어온 쪽지. 창고방 벽 낙서를 찍은 자외선 사진 열 몇 장. 소라가 3년간 모은 서류철. 그리고 가슴 주머니에서, 지안의 미완성 메모.
지안의 글씨는 급했다. 볼펜을 눌러써서 종이가 파였다. *물건들이 어디로.* *6번은 밟지 마.* *이 일을 그만—* 마지막 줄은 끝맺지 못하고 획이 끊겨 있었다. 6개월 전, 실종 직전에 도윤 앞으로 남긴 것. 그때 도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잔소리인 줄 알았다. 이제 알았다. 지안은 이 일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걸 알고, 오빠를 떼어놓으려 했던 거다.
"소라 씨. 이거 봐요." 도윤이 사진들을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낙서 필체."
창고방 벽에는 열두 명의 이름이 겹쳐 있었다. 자외선 아래서만 보이던 그것들. 태오. 강준. 그리고 처음 보는 이름들. 그런데 도윤이 사진을 확대하자, 이름들 사이사이에 같은 손이 쓴 화살표가 있었다. 눌러쓴 볼펜 자국. 종이가 파이도록.
지안의 필체였다.
"지안이 여기 다녀갔어요. 이 현장, 저 현장, 다." 도윤의 손가락이 떨렸다. "강준 집에도 지안 이름 있었죠. 반지하에도. 여러 현장에 동시에. 소라 씨가 준 서류철, 서른일곱 건 중 스물아홉 건이 심정지 계열이라 했죠. 그 스물아홉 건 주소를 지도에 찍으면—"
그가 서류철 뒷장에 볼펜으로 점을 찍었다. 스물아홉 개. 재개발 구역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무질서하게 보였다. 하지만 지안의 화살표를 따라 선을 이으면.
선은 한 점을 향했다.
재개발 3동 501호.
"지안이 사라진 집." 도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모든 현장 규칙이 여기로 연결돼요. 다른 집들은… 예행연습이었어요. 아니, 부품이었어요. 조항 하나씩을 다른 집에 흩어놓고, 사람이 그걸 하나씩 밟으면서 이동하게 만든 거예요. 여섯 조항을 여섯 집에 걸쳐서. 마지막 여섯 번째가 완성되는 곳이—3동 501호."
소라가 서류철을 낚아채 봤다. "지안이 이걸 다 알아냈다는 거야?"
"알아내고, 막으려고 스스로 조항을 하나씩 밟으면서 다녔어요. 자기가 밟으면 다른 사람이 안 밟으니까. 그러다 마지막 하나까지 밟아서… 완성된 거예요. 501호에서." 도윤이 눈을 감았다. "그래서 지안 이름이 여러 벽에 젖어 있었던 거예요. 조항 하나 밟을 때마다 이름이 하나씩 배어 나온 거예요."
침묵. 차 밖에서 새벽바람이 승합차를 흔들었다.
그때 도윤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명진이었다.
받을지 말지 재던 손을, 도윤은 이번엔 재지 않고 눌렀다.
"서도윤 씨." 한명진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웠다. 다림질한 셔츠 같은 목소리. "밤늦게 미안해요. 배정 하나 잡혔어요. 웃돈 붙은 현장이라, 서도윤 씨가 딱 맞을 것 같아서."
"위치요."
"성실하시네." 한명진이 웃었다. "재개발 3동 501호. 아침 여덟 시. 쪽지가 있는 집이니까, 늘 하던 대로 사진 먼저 저한테 보내주시고요. 고인의 뜻이니까요."
도윤의 손안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졌다. 소라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도 들었다. 3동 501호. 지안이 사라진 집. 한명진은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도윤이 왜 이 회사에 들어왔는지. 이제 그 자리로 도윤을 직접 밀어넣으려는 거다.
"별 열쇠고리." 도윤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거 지안 거죠. 대표님 안주머니에 있는 거."
전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했다.
"…거기서 만나요, 서도윤 씨." 한명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동생분도 오래 기다렸을 거예요. 완성되면, 좋은 데로 가거든요."
전화가 끊겼다.
도윤은 휴대폰을 쥔 채 앞유리를 노려봤다. 손이 하얗게 질렸다. 미루지 않는다. 이번엔 미루지 않는다. 여덟 시에 그 집에 간다. 거울 능력은 한 번 남았다. 지안을 위해 아껴둔 한 번.
그때, 손안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메시지 한 통.
발신인 이름을 본 순간, 도윤의 숨이 멎었다.
*서지안.*
6개월 전에 끊긴 번호. 실종된 뒤로 한 번도 켜진 적 없던 번호. 그 번호에서, 지금,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열었다.
거울이었다. 낡은 화장대 거울. 그 유리 속에, 지안이 있었다. 손바닥을 유리 안쪽에 붙이고, 밖을 향해. 입은 무언가를 외치는 모양으로 벌어져 있었다. 검은 눈이 아니었다. 지안의 눈이었다. 겁에 질린, 지안의 눈.
사진 아래, 지안의 번호에서 글자가 떴다.
*오빠, 뒤돌지 마.*
소라가 화면을 보고 도윤의 손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도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유혹이었다. '하지 마'는 완성 쪽으로 미는 방향이었다. 6화에서 배웠다.
그런데—사진 속 지안의 입 모양은, '뒤돌지 마'가 아니었다.
도윤은 화면을 확대했다. 지안의 벌어진 입술을. 그 모양은 분명히, 다른 말을 외치고 있었다.
*와.*
*빨리.*
승합차 뒷유리에,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