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문이 다시 열렸다. 나갔던 한명진이 되돌아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가지 않은 것처럼. 그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방금 통화를 끝냈는지 액정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응, 이번 건도 예약 걸어둬. 완성 임박이야."
그가 폰을 접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거꾸로 도는 초침 앞에 못 박힌 도윤을 정면으로 봤다. 입꼬리가 부드럽게, 병문안 온 사람처럼 올라갔다.
"너도 곧 완성될 거다."
거울 속 도윤의 발이 거실 쪽으로 또 한 뼘 나아갔다. 실제 도윤은 움직이지 않았는데.
"열쇠고리 내놓으세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도윤은 상자를 안고 선 한명진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지안이가 뭘 밟았는지, 지금 말해요. 거울 안에서 보라는 소리 말고."
"급하네." 한명진이 혀를 찼다. "네 상이 벌써 저기까지 갔는데, 나한테 손 뻗을 시간이 있을 것 같아?"
손목이 잡혔다.
"됐어. 그만해."
소라였다. 언제 들어왔는지, 그녀가 도윤의 손목을 움켜쥐고 뒤로 당겼다. 힘이 셌다. 도윤의 발이 끌렸다.
"놔. 저 사람이 지안이—"
"저 인간 지금 잡아봐야 아무것도 안 나와. 너만 거울 앞에 더 오래 서 있게 돼." 소라가 컨테이너 문 쪽으로 그를 밀었다. "봐. 초침 도는 거. 넌 지금 저기서 저 인간 붙잡고 있으면 안 돼."
한명진은 잡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얼굴로 상자만 고쳐 안았다. "데려가, 소라야. 너도 시간 다 됐잖아."
소라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도윤은 그걸 봤다. 그녀가 그 말에 반응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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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새벽 한 시. 재개발 구역의 가로등은 절반이 죽어 있었고, 소라의 승합차만 공터에 웅크리고 있었다. 소라가 도윤을 조수석에 밀어넣고 운전석 문을 세게 닫았다. 시동은 걸지 않았다.
"거울 봤어? 안에서." 그녀가 물었다.
"봤어요. 상이 먼저 움직여요. 다섯 조항 다 밟았고, 여섯 번째만—" 도윤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코 밑이 아직 말라붙어 있었다. 아까 흘린 피. "소라 씨, 아까 한명진이 뭐랬어요? 시간 다 됐다고."
"딴 얘기야."
"딴 얘기 아니잖아요." 도윤이 몸을 틀어 그녀를 봤다. "4동에서요. 네 시 십사 분. 소라 씨 매번 그 시간에 사라졌어요. 거울 있는 방은 등지고 다니고. 창문 없는 방으로 들어가서 십 분씩 안 나오고. 처음엔 담배 피우러 가는 줄 알았는데, 소라 씨 담배 안 피우잖아요."
소라가 정면 유리만 봤다. 죽은 가로등 쪽을.
"그거 습관이 아니죠. 회피예요. 뭘 피하는 겁니까."
침묵이 길었다. 계기판의 시계가 01:11에서 01:12로 넘어갔다.
"강준이." 소라가 마침내 입을 뗐다. 이름 하나를 꺼내는 데 숨이 들어갔다. "3년 전에 나랑 같이 들어온 애야. 걔가 먼저 알았어. 규칙이 사람 죽인다는 거. 근데 걔가 밟은 조항 중에 하나가—특정 시각에 거울을 보면 완성되는 거였어. 오후 네 시 십사 분. 그 집 쪽지의 마지막 줄."
"그럼 강준 씨는—"
"거울 앞에서 사라졌어. 내가 보는 앞에서." 소라의 손이 핸들을 쥐었다 폈다. "나는 걔를 끌어내려고 했어. 손목 잡고. 근데 그때 내가 거울을 봤어. 걔 대신 조항을 마저 밟은 거야. 걔 조항이 나한테 옮겨붙었어. 그 뒤로 나는, 오후 네 시 십사 분에 거울을 보면 죽어."
도윤은 숨을 멈췄다.
"그래서 그 시간마다 창문 없는 방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거울 없는 데로."
"3년째. 하루도 안 빼먹고." 소라가 웃었는데 웃음이 아니었다. "정 때문에 손해 보는 거 싫어하는 성격이거든, 내가. 근데 강준이 손목은 못 놨어. 그 대가로 이 꼴이야. 매일 네 시 십사 분마다 내가 살아 있나 확인하면서."
계기판 시계가 01:14로 넘어갔다. 새벽의 십사 분. 소라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는 게 보였다. 밤이라 거울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손으로 백미러를 접었다.
"이젠 밤 십사 분에도 몸이 이래. 조건이 번지는 것 같아."
도윤은 그녀를 봤다. 3년을 이 무게로 걸었으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얼굴을. 자기 결함으로 태오를 놓치고 지안을 놓친 그가, 이번엔 등 뒤에서 무너지기 전에 봤다.
"검증할게요."
"뭐?"
"소라 씨 조건이 진짜인지, 위장인지." 도윤이 안전벨트를 풀었다. "한명진이 그랬잖아요. 믿는 놈도 의심하는 놈도 순서만 다를 뿐 다 삼킨다고. 그 말은, 소라 씨가 지금 지키는 회피 동선이 진짜 생존조항인지 아무도 검증 안 했다는 뜻이에요. 3년째 그냥 믿고만 있었던 거잖아요."
소라의 얼굴이 하얘졌다. "너 그거 하면—"
"강준 씨 죽은 집. 거울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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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이 사라진 집은 재개발 2동 반지하였다. 소라는 열쇠를 아직 갖고 있었다. 3년을 버리지 못한 열쇠였다.
문을 열자 곰팡이와 오래 갇힌 공기가 밀려나왔다. 도윤은 방독면을 쓰지 않았다. 냄새의 방향부터 읽었다. 습기는 왼쪽 벽에서, 먼지는 오른쪽 창틀에 두껍게. 방 한가운데, 화장대 거울이 천으로 덮여 있었다. 소라가 3년 전 자기 손으로 덮었을 천.
"저기 서지 마." 소라가 문턱에서 말했다. 들어오지 못했다. "그 거울, 강준이 마지막에 본 거야."
"그래서 읽는 거예요." 도윤이 천을 걷었다.
거울은 탁했다. 도윤은 자기 얼굴이 반박자 늦게 따라 도는 걸 봤다. 손을 들면 거울 속 손이 이미 들려 있었다. 시차가 아니라 역전. 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손을 거울에 댔다.
차가움이 손바닥을 타고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시야가 뒤집혔다. 그의 눈이 아니라 강준의 눈이 됐다.
—오후의 빛. 이 방. 벽시계는 4시 13분. 강준의 시야가 거울을 향해 있다. 뒤에서 여자 목소리, 소라의 젊은 목소리가 "강준아 보지 마, 뒤로 와"라고 외친다. 강준의 시선이 거울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4시 14분. 거울 속에서 무언가 검은 것이 강준의 어깨 너머로 몸을 일으킨다. 강준이 그것을 보려고 상체를 돌리려는 순간—
거울 속 검은 것이, 강준이 아니라 도윤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오빠.』
지안의 목소리였다. 도윤의 심장이 멎었다.
『오빠, 뒤돌지 마.』
강준의 시야가 아니었다. 강준은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건 지금, 도윤에게만 들리는 소리였다. 거울 속 그림자가 강준의 마지막 시야를 뚫고 나와 도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지안아—"
『뒤돌지 마. 아직.』
도윤은 그 다정한 부름 속에서 다른 것을 봤다. 지안의 목소리가 '뒤돌지 마'라고 말하는데, 강준의 시야 속 소라는 정확히 반대로 외치고 있었다—뒤로 오라고, 거울에서 몸을 떼라고. 두 목소리가 겹쳐 그의 뇌를 갈랐다.
그 순간 알았다.
강준을 죽인 건 거울을 본 것이 아니었다. 거울을 보고, 몸을 돌리려 한 것. 시야 밖으로 등을 내준 것. '뒤돌지 마'라는 유혹에 따라 거울에 붙어 있었다면—아니, 반대다. 소라가 외친 대로 등을 돌려 거울을 완전히 벗어났어야 했다. 강준은 어정쩡하게 상체만 틀었다. 거울도 안 벗어나고, 시선도 안 뗀 채로.
"소라 씨." 도윤이 거울에서 손을 뗐다. 코에서 뜨거운 게 흘렀다. 손등으로 닦으니 붉었다. "소라 씨 회피 동선, 틀렸어요."
"뭐?"
"창문 없는 방으로 도망가는 거. 그건 반쪽만 맞아요." 도윤은 숨을 몰아쉬었다. 방이 기우뚱했다. "강준 씨는 거울을 등지려다 죽은 게 아니에요. 등을 돌리는 그 동작 중에, 시야에서 거울이 사라지는 그 찰나에 뒤가 재배열됐어요. 조건은 '거울을 보면 죽는다'가 아니라 '거울을 등지는 순간 완성된다'예요. 302호 6번이랑 같은 구조야. 등지면 죽어."
소라의 입술이 떨렸다. "나는 3년을 등지고 살았어. 그런데 아직 안 죽었잖아."
"안 죽은 게 아니라, 소라 씨는 매번 완전히 시야에서 벗어나기 직전에 창문 없는 방 안쪽으로 몸을 접었죠. 벽을 마주 보고. 우연히." 도윤이 벽을 짚고 일어섰다. "그 방엔 거울이 없어서, 등질 거울 자체가 없었던 거예요. 등질 대상이 없으니 완성이 안 됐어요. 소라 씨는 3년간 틀린 이유로 맞는 행동을 해온 거고요."
"그럼—앞으로도 그러면—"
"아뇨. 조건이 번지고 있다면서요. 밤 십사 분에도 몸이 굳는다고. 곧 창문 없는 방으로도 안 통해요." 도윤은 소라의 눈을 봤다. "네 시 십사 분에, 거울 앞에 정면으로 서세요. 절대 등지지 말고. 십사 분이 지날 때까지 거울을 똑바로 봐요. 등을 안 돌리면 완성되는 순서가 발동을 못 해요. 강준 씨가 하려다 실패한 게 그거예요."
"거울을 보라고? 죽는다는 그 시간에?"
"보는 게 사는 거예요, 이 세계는." 도윤이 거울을 가리켰다. "안 보는 시간에 뒤에서 다 벌어져요. 소라 씨가 3년간 도망친 방향이 정반대였어요."
소라는 한참 도윤을 봤다. 이 남자가 우유부단하다고, 결정을 미룬다고 매일 비웃었던 그 남자가, 지금은 미루지 않았다. 물증을 손에 쥐고, 즉시 답을 내밀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소라가 목소리를 눌렀다. "누가 나한테 뭘 하라고 정확히 말해주네."
"검증했으니까요."
그 말끝에 도윤이 휘청였다. 무릎이 접혔다. 소라가 달려와 그를 붙들었다.
"야, 너 코피. 이거 그냥 코피 아니지."
도윤은 대답 대신 화장대 거울을 봤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거울 속 자기 얼굴이 그를 보고 있었다. 그가 소라에게 붙들려 왼쪽으로 기울어 있는데, 거울 속 도윤은 똑바로 서 있었다. 실체와 상의 어긋남이 이제 초 단위가 아니었다. 손을 들면 거울 속 손은 들지 않았고, 도윤이 가만있으면 거울 속 도윤이 눈을 깜박였다.
"시차가—" 도윤의 목소리가 쉬었다. "너무 좁아졌어요. 아까 강준 씨 시야 읽으면서. 거의 붙었어요."
"몇 초 남았는데."
"모르겠어요. 하나, 둘 정도." 도윤은 거울에서 눈을 못 뗐다. 떼면 등지는 거니까. "상이 나보다 앞에 있어요. 지금."
소라가 그를 문 쪽으로 끌었다. "나가. 이 집 나가면—"
"잠깐만요."
거울 속 도윤이, 멈췄다.
실제 도윤은 소라에게 끌려 문 쪽으로 반쯤 돌아선 상태였다. 그런데 거울 속 도윤은 방 한가운데에 그대로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긋남을 넘어선 정지. 상이 실체를 아예 무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거울 속 도윤이—실제 도윤이 숨도 쉬지 않고 멈춰 있는데—혼자서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
손끝이, 도윤의 등 뒤를 가리켰다.
거울 밖에서 소라가 그 손짓의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반지하 벽. 아무것도 없었다.
거울 안에서만, 도윤의 상이 가리킨 그 자리에—
젖은 획 하나가, 벽에 새로 그어지고 있었다.
"소라 씨." 도윤은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목이 말라 소리가 긁혔다. "지금 뭐 보여요? 벽에."
"아무것도. 그냥 벽이야." 소라의 손이 도윤의 팔뚝을 더 세게 쥐었다. "너 지금 뭘 보는데."
"거울 안에서만 보여요. 획이 그어지고 있어요. 젖은 채로." 도윤의 눈이 거울 속 벽을 좇았다. 상이 가리킨 그 자리, 강준의 방 벽에. 락카가 아니라 물기 같은 것으로 글자가 자라나고 있었다. 4동 창고방에서 봤던 그것과 같았다. 아직 마르지 않은 획. 완성 직전의 이름.
한 획. 두 획. 세로 그어지고, 가로로 꺾이고.
『오빠.』
지안의 목소리가 다시 왔다. 이번엔 거울이 아니라 그의 뒤통수 안쪽에서. 뼈를 타고 울렸다.
『그 벽 보지 마. 지금 보면 옮겨붙어.』
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아까 강준의 시야에서 배운 것이 있었다. 지안의 목소리가 '하지 마'라고 하면, 하는 게 맞을 때가 있었다. 그림자는 그를 살리려는 게 아니라 완성 쪽으로 미는 방향으로만 말했다. 뒤돌지 말라던 그 부름이 강준을 어정쩡하게 세워 죽였듯이.
하지만 이번엔 확신이 없었다. '보지 마'가 함정인지, 진짜 경고인지. 강준의 시야는 이미 끝났고, 이 목소리를 검증할 물증이 그의 손엔 없었다.
설명 가능한 원인을 찾으려는 습관이 목까지 올라왔다. 저건 지안의 흉내다, 저건 미끼다, 저건—
그는 그것을 눌렀다. 지금은 아니었다. 원인을 따지는 사이 벽의 획은 마지막 꺾임을 향해 자라고 있었다.
"소라 씨. 벽 사진 찍어요. 지금 당장. 폰으로."
"거기 아무것도 없다니까."
"자외선 램프. 소라 씨 가방에 있죠. 켜서 비춰요. 저 벽." 도윤이 턱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거울에서 눈은 떼지 않았다. "강준 씨 시야에 안 잡혔던 건 그때 거긴 낮이었으니까. 어두운 데서만 떠올라요. 지금 밤이잖아요."
소라가 어깨의 가방을 뒤졌다. 손이 떨려 지퍼가 걸렸다. 그녀가 자외선 램프를 꺼내 벽에 비추자—
푸른 빛 아래, 벽에 젖은 글자가 떠올랐다. 소라의 입에서 숨이 새어 나왔다. 그녀도 이제 봤다.
*서지안.*
강준의 이름이 아니었다. 도윤의 이름도 아니었다. 지안의 이름이, 강준이 죽은 이 반지하 벽에, 지금 막 마지막 획을 마치고 있었다.
"지안이가—" 소라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여기 왔었어? 강준이 죽은 집에?"
도윤의 머릿속에서 조각이 맞물렸다. 지안의 미완성 메모. *물건들이 어디로.* 지안은 물건의 행방을 쫓았다. 완성된 집에서 나온 물건을. 강준이 완성된 이 집도 지안이 조사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 벽에 자기 이름이 젖은 채 남았다면—
지안은 여기서 6번을 밟기 전에, 이미 다른 집에서 한 조항을 밟고 있었다. 여러 현장에서 동시에. 이름이 여러 벽에 걸린 채로.
"소라 씨." 도윤이 벽에서 시선을 억지로 거울로 되돌렸다. "지안이 이 집에서도 조항을 밟았어요. 여러 현장을 동시에 조사하면서, 매번 하나씩 밟은 거예요. 그래서 완성이 오래 걸렸다고 한명진이—"
말이 끊겼다.
거울 속 도윤이 손을 내렸다. 등을 가리키던 손을. 그리고 천천히, 실제 도윤을 정면으로 돌아봤다. 실체는 여전히 거울을 향해 서 있는데, 상은 방 안쪽을 향해 있던 몸을 완전히 틀어 거울 밖의 도윤과 눈을 맞췄다.
거울 유리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얼굴이 마주 봤다. 하나는 도윤. 하나는—도윤의 얼굴을 한, 눈만 검은 것.
『오빠.』 이번엔 거울 속 그 입술이 움직였다. 지안의 목소리로. 『뒤돌지 마. 이제 거의 다 됐어.』
거울 속 상이, 손을 유리 안쪽에 댔다. 도윤의 손이 밖에서 닿아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유리 두께만큼의 거리를 두고 손바닥이 겹쳤다. 차가움이 아니라, 이번엔 온기가 밀려왔다. 사람의 손 같은.
"놓쳐. 손 떼!" 소라가 도윤의 팔을 잡아챘지만 손은 유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붙어 있었다. 거울이 그를 놓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내가 나가고, 오빠가 들어와. 그럼 우리 같이 있을 수 있어. 여기서.』
시차가 0을 향해 마지막 한 칸을 좁혔다. 도윤은 자기 손바닥이 유리를 통과하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손끝이 서늘한 물속으로 들어가듯. 거울 속 지안의 손이 그를 안쪽으로 당겼다.
이건 지안이 아니었다. 아니어야 했다. 그런데 벽에 지안의 이름이 젖어 있었고, 목소리는 정확히 지안이었고, 이 손은 여섯 달 전 마지막으로 잡았던 동생의 손 온도였다.
설명 가능한 원인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검증할 거울이 없었다. 도윤은 처음으로, 확신 없이, 미루지 않고 결정해야 했다.
그는 뒤돌지 않았다. 거울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대신 반대로 했다.
거울 속으로 손을 더 밀어넣었다.
『오빠?』 지안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균열이 갔다.
"네가 지안이면," 도윤이 유리 속으로 팔꿈치까지 담그며 말했다. 어깨가 유리에 닿았다. "이 손, 놓지 마. 나 끌어당겨. 나도 들어갈게. 네 자리로."
거울 속 검은 눈이 흔들렸다.
당기는 힘이, 멈췄다.
지안이라면 도윤을 안으로 끌어들일 것이다—함께 갇히려고. 하지만 지안을 삼킨 무언가라면, 도윤이 제 발로 들어오는 걸 원할 리 없었다. 그건 자리를 바꾸려는 것이지, 둘을 함께 가두려는 게 아니니까. 도윤은 확신이 아니라 도박으로 그것을 시험하고 있었다.
거울 속 손이 그를 밀어냈다.
세게. 유리 밖으로. 도윤의 몸이 뒤로 튕겨 소라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손바닥이 유리에서 뽑히며 살점이 얼어붙은 것처럼 아팠다.
거울 속 도윤의 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시차가—벌어졌다. 아주 조금. 밀려난 만큼.
숨을 몰아쉬며 도윤은 알았다. 저건 지안을 함께 가두려 하지 않았다. 자리만 바꾸려 했다. 그렇다면—
"소라 씨." 도윤이 천장을 보며 웃었다. 웃음이 아니었다. "저거 지안이 아니에요. 아니거나… 지안인데, 나까지 들어오는 건 싫어하는 거예요. 둘 중 하나."
소라가 그를 일으켰다. "그게 무슨 위로가 돼."
"위로 아니에요. 단서예요." 도윤이 벽의 젖은 이름을 봤다. *서지안.* 자외선 아래 아직 마르지 않은 채. "저 이름이 여기 있으면, 지안이 완성된 현장이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한명진 상자에 물건이 두 개 있었잖아요. 그중 하나가—"
램프 배터리가 깜박였다. 벽의 글자가 어둠에 잠기려는 순간, 소라가 다시 비췄다.
지안의 이름 아래, 방금까지 없던 한 줄이 젖은 채 새로 그어지고 있었다. 볼펜으로 눌러쓴 게 아니라, 벽 안쪽에서 배어 나오듯.
*오빠도 여기 있어. 벌써.*
도윤의 등 뒤에서, 강준의 화장대 거울이—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천천히, 방문 쪽을 향해 각도를 틀었다.
거울 속에 비친 것은 도윤도, 소라도 아니었다. 방문 밖 계단이었다. 그리고 그 계단을 내려오는, 검은 상자를 안은 사람의 그림자.
새벽 한 시 사십 분. 이 집엔 아무도 오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