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도윤은 뒤돌아 손잡이를 잡았다. 잠겨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끝이 얼어붙었다. 젖은 이름 세 글자가 등 뒤에서 아직 빛나고 있었다.
"서도윤."
목소리는 문 밖이 아니라 옆에서 났다. 소라였다. 언제 돌아온 건지, 창고 구석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자외선 램프 불빛이 그녀의 턱 아래에서 아른거렸다.
도윤은 램프를 들어 벽을 다시 비췄다. 손이 떨렸다.
"이거." 목이 말라 소리가 갈라졌다. "이거 당신이 썼어요?"
"아니."
"그럼 누가."
"집이." 소라가 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집이 썼어."
도윤은 그녀 쪽으로 두 걸음 다가섰다. 램프 불빛이 흔들리며 벽의 이름들이 물결처럼 겹쳤다. 강준. 소라야 미안. 완성되면 안 돼. 그리고 그 아래, 마르지 않은 획.
"설명하세요." 그는 예전 같으면 우연이라고, 락카 냄새가 났으니 최근에 칠한 거라고, 습기 때문에 번진 거라고 정리부터 했을 것이다. 그 습관을 눌렀다. "지금."
소라가 램프를 뺏듯 잡아 벽 아래쪽을 비췄다. 이름들이 한 방향으로, 아래로 갈수록 새것이었다. 위쪽은 색이 죽고 긁힌 자국만 남았다.
"봐. 오래된 게 위에 있고, 새로운 게 아래에 붙지. 순서대로야." 그녀의 손끝이 강준이라는 이름을 짚었다. "이 사람이 여기 온 게 2년 전. 그 밑에가 태오, 그 밑에가—" 손끝이 도윤의 이름에서 멈췄다. "너."
"이게 무슨."
"이 집은 아직 안 끝났어." 소라가 처음으로 도윤을 정면으로 봤다. "사망자는 나왔는데 쪽지 조건이 완성이 안 된 집. 이런 집은 그냥 비어 있는 게 아니야. 다음 사람을 기다려. 미끼로."
"미끼."
"거울이 유독 많고, 조명이 규칙적으로 깜박이고, 도면이랑 방 구조가 안 맞는 집." 그녀는 램프로 천장을 훑었다. 형광등이 세 번 깜박이고 다시 안정됐다. "여기 오늘 몇 번째 깜박였는지 세어 봤어? 나는 셌어. 아까부터 정확히 마흔 초마다 한 번. 그게 이 집이 숨 쉬는 소리야."
도윤은 천장을 봤다. 형광등이 다시 깜박였다. 마흔 초.
"벽에 이름을 쓰는 건 집이 아니라 여기 삼켜진 사람들이야. 마지막에, 벽에 자기 이름 하나 긁을 시간만 남았을 때." 소라가 손톱으로 강준의 획을 따라갔다. 락카가 아니라 손톱으로 눌러쓴 자국이었다. "그리고 이름이 채 안 마른 채로 벽에 나타난다는 건—"
"내가 여기서 삼켜진다는 뜻."
"아직 안 삼켜졌으니까 안 마른 거야." 소라가 램프를 내렸다. "완성 전이라는 뜻이지. 이름만 있고 문장이 안 됐잖아. 완성되면 문장이 돼."
도윤은 자기 이름 아래 번진 획을 다시 봤다. *서도윤*, 그 밑으로 시작되려다 만 선 하나. 무언가의 첫 획. 아직 글자가 되지 못한.
"완성시키는 게 뭔데요."
"나가자. 여기서 말고." 소라가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4화에서 화장실이 아닌 문으로, 거울을 등지고 옆걸음 치던 그 손이었다. "이 방은 거울이 없어서 그나마 안전해. 밖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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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승합차 안으로 물러났다. 소라가 서류철을 꺼냈다. 3년간 회사가 수주한 사망 현장, 서른일곱 건. 그녀는 그중 여덟 건을 골라 앞유리에 테이프로 붙였다.
"이게 아직 완성 안 된 집들. 다 팔리지도, 철거되지도 않았어. 계속 청소만 반복 수주돼."
"공통점이 뭐예요."
"내가 3년 봐서 정리했어. 들어." 소라가 손가락을 폈다. "하나. 거울이 방 하나에 두 개 이상. 둘. 조명이 일정 간격으로 깜박임—여긴 마흔 초. 셋. 도면상 방 개수랑 실제 방 개수가 달라. 오늘 이 집 도면엔 방 두 개인데, 우리 창고방까지 세 개였지."
도윤은 수첩을 꺼냈다. 현장을 들어서면 냄새와 먼지 방향과 물건 위치를 초 단위로 기록하는 그 손이, 이번엔 소라의 말을 받아 적었다.
"넷은요."
"넷." 소라가 잠깐 멈췄다. "밤이 되면 없던 문이 생겨. 302호에서 봤다며. 벽에서 손잡이가 나오는 거."
허리에 닿던 차가운 손잡이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도윤은 수첩에 *4. 밤—없던 문*이라고 눌러 썼다.
"이걸 왜 나한테 알려줘요." 그가 물었다. "당신은 손해 보는 거 싫어하잖아요."
"싫어." 소라가 창밖 집을 노려봤다. "근데 이번 건 안 도우면 네가 오늘 밤 안에 저 벽 문장이 돼. 그럼 나 혼자 다음 미끼 되는 거고." 그녀는 서류철을 덮었다. "정 때문에 돕는 거 아니야. 계산이야."
거짓말이었다. 강준. 소라야 미안. 도윤은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수첩을 뒤집었다.
"징후를 알면, 반대로 쓸 수 있어요."
"뭘."
"완성은 순서라고 했잖아요. 4화에서 확인했죠. 여섯 조항 순서가 카운트다운이고, 마지막이 발동돼야 완성된다고." 도윤은 도면과 소라의 목록을 나란히 놓았다. "그럼 순서를 못 채우게 하면 돼요. 마지막 조항이 발동될 자리를—미리 막아버리면."
소라가 그를 봤다. 처음으로, 말리지 않았다.
"어떻게 막는데."
"거울을 읽어야 해요. 여기서 죽은 사람이 어느 순서로 밟았는지. 그럼 반대로 짤 수 있어요."
"안 돼." 소라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네 상 시차. 그거 지금 어디까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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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어스름이었다. 형광등이 마흔 초마다 깜박였다.
거실 벽에 큰 거울이 걸려 있었다. 도윤은 그 앞에 섰다. 소라가 뒤에서 그의 팔을 잡았다.
"한 번만. 30초만 볼게요." 도윤이 손을 들었다.
거울 속 자기 손이—먼저 올라갔다.
찰나였다. 실체의 손이 어깨 높이에 있을 때 거울 속 손은 이미 얼굴 옆이었다. 앞서 있었다. 반박자가 아니라, 거의 나란히. 아주 조금, 거울 쪽이 빨랐다.
"멈춰." 소라가 그의 팔을 세게 당겼다. "봤어? 방금? 네 상이 너보다 먼저 움직였어."
"알아요."
"몰라 넌." 소라의 손이 떨렸다. "강준이 딱 이랬어. 마지막에. 상이 먼저 움직이더니, 어느 날 상이 거울 밖으로 나오고 강준이 안으로 들어갔어. 자리가 바뀐 거야."
*네 자리야.* 302호 거울 속 지안의 검은 눈이 떠올랐다.
도윤은 손을 거울에 댔다.
"안 돼—!"
늦었다. 손바닥이 유리에 닿는 순간, 세계가 뒤집혔다.
이 집에서 죽은 자의 마지막 30초. 시야가 도윤의 것이 아니었다. 낮은 눈높이, 여자의 손, 손톱에 락카가 벗겨진. 그 손이 냉장고 쪽지를 만지고 있었다. 1번을 지웠다. 2번을 지웠다. 순서대로 조항을 지워나가는 손. 다섯 번째 조항까지 지웠을 때—방이 흔들렸다. 벽이 안쪽으로 밀려들었다. 없던 문이 열리고, 문 안쪽에서 검은 것이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여자가 마지막 여섯 번째를 지우자, 그녀의 몸이 사라지고—그 자리, 방바닥에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작고 단단한 것. 반지 같기도, 열쇠고리 같기도 한. 아직 온기가 남은 것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물건.*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물건이 생겨났다. 완성의 순간, 사람과 물건이 맞바뀌는 그 찰나를 도윤은 두 눈으로 봤다.
시야가 끊겼다.
도윤은 뒤로 넘어졌다. 소라가 받쳤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봤어요." 그가 헐떡였다. "완성되면 사람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물건이 나와요. 조항을 순서대로 지우는 게 카운트다운이에요. 여섯 개를 다 지우면—"
"네 시차는." 소라가 그의 얼굴을 거울로 돌렸다. "봐."
도윤은 거울을 봤다. 그의 상이, 그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이미 그를 보고 있었다.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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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도윤은 물건을 어디에 두는지 알아야 했다.
승합차 뒤편, 한명진이 혼자 있었다. 도윤은 컨테이너 사무실 벽 뒤에 몸을 붙였다. 창틈으로 안이 보였다.
책상 위에 검은 상자가 있었다. 한명진이 장갑 낀 손으로 그 안에 무언가를 넣고 있었다. 오늘 낮 현장에서—아니, 그가 챙긴 것. 반지 같기도, 열쇠고리 같기도 한.
휴대폰이 어깨에 끼워져 있었다.
"네, 오늘 것도 넣었습니다." 한명진의 목소리는 신입을 안심시킬 때처럼 부드러웠다. "미완성이라 반쯤 걸려 있던 거 마저 뽑았고요. …이번 4동 건은 곧 완성됩니다. 아뇨, 순서가 거의 다 밟혔어요. 마지막 하나 남았습니다."
도윤의 손가락이 창틀을 쥐었다.
"제물이 스스로 밟고 있어서, 손 안 대도 됩니다. 알아서 다섯 번째까지 지웠더군요." 한명진이 상자 뚜껑을 닫았다. 잠금장치가 딸깍, 걸렸다. "완성되면 물건 두 개 나옵니다. 하나는 예약자한테. …네. 값은 알아서."
*다섯 번째까지 지웠다.* 오늘 도윤이 거울에서 본 그 손이 다섯 번째 조항을 지우던 장면과—아니. 그건 죽은 여자였다. 지금 밟고 있는 건 다른 누구다. 스스로 밟고 있는 제물.
도윤의 머릿속에서 소라의 목록이 튀어나왔다. 조항을 순서대로 지우는 게 카운트다운. 다섯 번째까지 밟힌 상태. 마지막 하나.
*누가.*
그때 도윤은 자기 손을 봤다. 낮에 거울에 댔던 손. 그리고 벽에 젖은 채 빛나던 이름. *서도윤*, 아래 시작되려다 만 획.
여섯 번째.
한명진이 통화를 끊었다. 상자를 안았다. 그리고, 손전등도 없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뒤를 돌았다.
창틈이 아니었다. 그는 컨테이너 벽을 향한 게 아니라—정확히 도윤이 숨은 그 지점을 향해 몸을 틀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윤의 눈과 한명진의 눈이 같은 높이에서 마주쳤다.
한명진이 웃었다. 부드럽게.
"거기 있었네, 도윤 씨."
도윤은 움직이지 못했다. 소라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 *상이 먼저 움직였어.*
"오늘 다섯 번째 조항까지 지웠지." 한명진이 검은 상자를 고쳐 안았다. "거울에 손 댔고, 상이 널 앞질렀고. 알아서 잘 밟고 있어."
"내가 뭘 지웠다는—"
"너도 곧 완성될 거다."
한명진의 눈이 어둠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벽 너머, 컨테이너 안 형광등이 마흔 초 만에, 깜박였다.
깜박임과 동시에, 도윤은 숨은 자리에서 뛰쳐나왔다. 컨테이너 문을 돌아 안으로 들어섰다.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태오를 잃은 뒤로, 등을 돌리고 물러서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몇 번째까지 지웠는지 안다면." 도윤은 상자를 안은 한명진을 정면으로 봤다. "순서를 안다는 거잖아요. 여섯 개 조항. 어느 게 완성 조항인지."
한명진의 웃음이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알고 싶어?"
"당신은 손 안 댄다고 했죠. 제물이 알아서 밟는다고. 그 말은—" 도윤은 낮에 본 여자의 손을 떠올렸다. 냉장고 쪽지의 조항을 순서대로 지우던. "지운다는 게 실제로 조항을 종이에서 지우는 게 아니라, 그 행동을 하는 거예요. 거울에 손대기. 두꺼비집 내리기. 노크에 문 열기. 하나씩 실행할 때마다 한 줄씩 죽는 거고."
"똑똑하네. 네 동생만큼."
지안. 도윤의 턱이 굳었다.
"오늘 낮에 넌 뭘 했지?" 한명진이 상자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쪽지 사진 찍어서 나한테 보냈고—첫 번째. 순서 신경 쓰며 방 정리했고—어느 걸 먼저 치우느냐가 두 번째. 창고방 벽을 읽었고—세 번째. 승합차에서 서류 봤고—네 번째. 그리고 거울에 손을 댔지. 다섯 번째."
도윤의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하나하나가, 오늘 그가 실제로 한 행동이었다. 소라와 함께 세운 생존 계획, 징후를 역으로 이용하려던 그 모든 움직임이—
"함정을 피하려고 한 게 아니라." 목소리가 갈라졌다. "피하려는 행동 자체가 순서였다는 거예요."
"의심하는 것도, 조사하는 것도, 다 밟는 거야." 한명진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규칙을 믿은 태오가 죽었지. 그래서 넌 의심했고. 그런데 의심하는 순서도 여섯 줄 안에 이미 적혀 있었어. 이 집은 믿는 놈도 의심하는 놈도 다 삼켜. 다만 순서가 다를 뿐이야."
거짓말일 수도 있었다. 도윤을 흔들려는. 그러나 다섯 개의 행동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우연이라고 밀어내려는 습관이 목까지 올라왔다. 그는 그것을 눌렀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뭡니까."
한명진이 검은 상자를 다시 안았다. 잠금장치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자정 넘겨서, 거울 앞으로 돌아가는 거. 네 상이 널 완전히 앞지르는 순간—여섯 번째가 발동돼." 그가 컨테이너 문 쪽으로, 도윤을 지나쳐 걸었다. 손전등도 없이. 어깨가 도윤의 어깨를 스쳤다. 얼음처럼 차가웠다. "안 가면 되잖아? 그런데 못 갈걸. 네 상이 이미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거든. 강준이 그랬던 것처럼."
문이 열리고, 밤바람이 들이쳤다. 한명진이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네 동생 열쇠고리, 궁금하지. 그것도 이렇게 나온 거야. 지안이가 마지막에 뭘 밟았는지 알아? 널 이 일에서 떼어내려고—" 그가 멈췄다. 잠깐. "아니. 그건 완성될 때 직접 봐. 거울 안에서."
문이 닫혔다. 한명진은 사라졌다.
도윤은 컨테이너 안에 혼자 남았다. 책상 위, 한명진이 두고 간 것—아니, 두고 간 게 아니었다. 검은 상자는 그가 안고 나갔다. 대신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 없던.
새 쪽지였다. 생활 규칙 여섯 조항. 이 컨테이너의.
그리고 다섯 번째 조항까지, 누군가 붉은 선으로 그어 지워놓았다. 여섯 번째만 남아 있었다.
*6. 자정 이후 거울을 보지 말 것.*
도윤의 손이 주머니로 갔다. 지안의 미완성 메모. 가슴 주머니에서 꺼내 펼쳤다. 끊긴 문장—*이 일 그만둬… 물건들이 어디로.*
그 아래, 여백에.
락카가 아니라 볼펜으로 눌러쓴, 지안의 필체. 오늘 처음 보였다. 아까까지 없던. 컨테이너의 형광등 아래에서만 드러나는.
*오빠, 6번은 밟지 마. 나는 밟았어. 그래서 여기 있어.*
형광등이 마흔 초 만에 깜박였다.
그리고 컨테이너 벽에 걸린 작은 거울에서, 자정을 알리는 초침 소리가—없던 벽시계에서—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거울 속 도윤이, 아직 제자리에 선 도윤을 두고, 천천히 거실 쪽으로 한 발을 뗐다.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