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천공진인의 방은 향이 지나치게 짙었다.

백단향인가, 아니면 그 아래 감춰진 무언가인가. 하연서는 숨을 얕게 쉬며 늙은 도인의 눈을 마주 보지 않았다. 마주 보면 잡아먹힌다. 그건 짐승을 상대할 때의 감각과 같았다.

"그 검 어디서 배웠나."

노인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손자를 어르는 조부의 음성.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다.

"산서의 떠돌이 검객에게서 배웠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노인이었고, 반년 남짓 얻어먹으며 초식을 훔쳤을 뿐입니다."

"훔쳤다……. 겸손한 말이로구나."

천공진인이 찻잔을 들었다. 김이 오르는 수면에 그의 흰 눈썹이 비쳤다.

"되돌림. 상대의 힘을 그대로 되받아 흘리는 검로지. 산서의 떠돌이가 그런 것을 가르쳤단 말이냐."

"소인은 검의 이름을 모릅니다. 그저 몸에 익은 대로 휘둘렀을 뿐입니다, 진인."

거짓말은 진실 위에 얇게 발라야 한다. 스승이 가르친 것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목숨을 지켜준 구결이었다. 하연서는 자신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소매 안으로 감췄다.

"물러가거라."

너무 쉬웠다. 그게 함정이었다.

문을 나서는 등 뒤로, 노인의 시선이 화살처럼 꽂혔다. 처소를 나와 회랑을 걷는 내내, 담장 그림자 속에서 발소리 하나가 그의 걸음을 정확히 따라붙었다. 두 걸음 뒤, 왼쪽. 숨을 죽였으나 옷깃이 스치는 결이 달랐다. 외당 잡역이 아니다. 훈련된 자의 은신.

'감시.'

거짓말은 통했으나 노인은 그를 놓아준 게 아니었다. 목줄을 채워 풀어놓은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무엇을 캐는지. 하연서는 걸음의 속도를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알아챈 티를 내는 순간 미끼가 미끼인 줄 들키니까.

숙소로 돌아와 그는 낡은 목검을 바라보았다. 진유하가 쥐여준 것이었다. "쓸 만한 검은 아니지만, 손에 익으면 정든다"며 웃던 얼굴. 하연서는 목검을 벽 구석에 세워두고 자리에 누웠다. 정든다는 말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

깊은 밤, 창밖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두 번 끊겼다 이어졌다.

암호였다. 설강.

하연서는 감시자를 따돌릴 방법을 이미 계산해두고 있었다. 뒷간으로 향하는 척 나가, 하수구로 이어진 낡은 배수로를 기어 담장 밖으로 빠졌다. 물때 낀 돌 위로 은신의 발소리는 따라오지 못했다. 감시자는 뒷간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폐가옥의 무너진 처마 아래, 설강이 술병을 든 채 쭈그려 앉아 있었다.

"올 줄 알았다."

혀가 꼬인 말투였으나 눈빛은 물처럼 맑았다. 취한 척. 이 사내도 평생을 가면 뒤에서 살아온 자였다.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시간이 없으니."

"급하기는. 죽은 놈들 무덤 파헤치듯 몰아치는구나."

설강이 술병을 내려놓았다. 병 바닥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는 그날 낙검곡에 있었다."

하연서의 어깨가 굳었다. 이미 짐작했으나 입 밖으로 나온 문장은 무게가 달랐다.

"패검문이 불타던 밤. 나는 무림맹 하급 무사였고, 진압대 후미에 섞여 있었다. 명령은 '한 명도 남기지 마라'였지. 나는……."

그의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마른 헛기침이 두 번, 그리고 침묵.

"나는 검을 뽑지 않았다. 여자와 아이 들이 목이 잘리는 걸 담벼락 뒤에서 지켜만 봤어. 손이 떨려서 검을 못 뽑았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했지만, 사실은 무서웠던 거다. 명령을 어기면 나도 저 시체 무더기에 얹힐까 봐."

"그래서."

하연서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평평했다.

"그래서 이제 와 무릎이라도 꿇겠단 겁니까. 죽은 자에게 사죄해봐야 무덤 흙은 대답이 없소."

설강이 고개를 들었다. 주름진 눈가에 물기가 번져 있었다.

"안다. 사죄로 씻길 죄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오 년을 술독에 처박혀 살았다. 네 얼굴을 처음 봤을 때…… 나는 하 소협의 얼굴을 봤다. 네 스승의 눈매를 그대로 물려받았더구나.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너를 어디서 본 것 같다.'

이 년 전이 아니라 며칠 전, 처음 만난 밤에 이 사내가 흘렸던 말. 그것은 취객의 헛소리가 아니라 죄인의 발작이었다. 하연서는 이제야 그 말의 결을 알았다.

"내가 이 목숨 붙여둔 이유는 하나다."

설강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술 냄새 너머로 오래 삭힌 절박함이 풍겼다.

"진실을 아는 자가 죽으면, 진실도 함께 죽는다. 나는 겁쟁이지만 아직 안 죽었어. 그러니 들어라. 그날 낙검곡을 친 것은 사파가 아니었다. 정파 안쪽의 손이었다."

바람이 무너진 처마를 훑고 지나갔다.

"세상은 패검문이 정사대전을 일으킨 원흉이라 알고 있지. 거짓이다. 대전을 일으킨 것도, 그 죄를 패검문에 뒤집어씌운 것도, 그리고 입막음으로 문파를 몰살한 것도—전부 정파 수뇌부의 각본이었다. 나는 진압대 안에서 정파 무인들의 검을 봤다. 사파 검법이 아니었어. 태산검문의 검이었다."

하연서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맞물려 돌아갔다.

멸문의 밤, 어린 그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 어둠 속에서 스승의 목을 벤 학살자의 왼손목. 소매가 흘러내리며 드러났던 문양. 검 두 자루가 교차한 낙인. 그때는 무엇인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태산검문 직계만이 새기는 검문(劍紋)이었다.

"손목에……."

하연서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뭐라 했느냐."

"학살자의 왼손목에 검이 교차한 문양이 있었소. 나는 다섯 살에서 열두 살로 넘어가는 동안 그날 밤을 만 번은 다시 봤소. 그 문양만은 지워지지 않았지."

설강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건…… 장로원 직계의 표식이다. 그날 진압대를 지휘한 자가……."

그가 이름을 삼켰다. 무서워서.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그 이름의 주인이 어디선가 자신을 벨 것처럼.

하연서는 그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 이 사내는 학살자의 이름을 알고 있다. 아직 말하지 않을 뿐. 겁이 목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쓸 만하다.'

머릿속에서 차가운 저울이 움직였다. 설강은 목격자이자 증인. 정파 내부의 죄를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살아있는 입. 이 사내를 손에 쥐면 서사의 판을 뒤집을 무기가 된다. 지금은 겁에 질려 이름을 못 대지만, 압박하고 회유하면 결국 토해낼 것이다. 도구로서의 가치는 충분했다.

계산이 끝난 하연서가 입을 열려는 순간, 설강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거칠고 두꺼운 손이었다. 검을 못 뽑았다던 그 손이 지금은 떨림 없이 그를 붙들었다.

"하 소협. 아니, 하연서."

본명이 불렸다.

"나는 네가 그 검에 잡아먹히는 걸 보고 싶지 않다. 네 눈, 아까 처소에서 나올 때 봤다. 죽은 자를 부를 때마다 은빛으로 물들지. 그건 산 자의 눈이 아니야. 나는 네 스승 무덤 앞에서 죗값을 치르고 싶은 게 아니라, 살아남은 네가 사람으로 살길 바라는 거다. 이건…… 계산이 아니다."

계산이 아니다.

하연서는 저울을 멈췄다. 이 사내의 눈에 어린 것은 죄책감이었다. 이용 가치로 저울질하던 그의 손끝이, 이유 없이 시렸다. 산 자의 진심을 마주할 때마다 그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적도 아니고 도구도 아닌 무언가. 분류표에 없는 감정이었다.

"……돌아가겠소."

그는 손목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뿌리치는 힘이 필요 이상으로 셌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하연서는 감시자를 역이용할 방법을 그렸다. 노인은 그가 누구를 만나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면 된다.

이튿날 아침, 하연서는 감시자가 보란 듯이 외당 서기실을 찾아 산서 지방의 검객 명부를 뒤졌다. "이름 없는 떠돌이 검객을 찾는다"며 서기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감시자는 처마 그늘에서 그 모든 것을 기록했을 것이다. 오후에는 일부러 산서 방면으로 가는 상단 마부에게 은자를 쥐여주며 편지 한 통을 부쳤다. 편지에는 '스승을 찾으니 회신 바란다'는 무해한 문장만 담겼다.

거짓 미끼였다.

천공진인은 그가 산서에서 검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확인하려 산서로 사람을 풀 것이다. 그 사이 진짜 추적—장무극의 손목 문양과 설강의 증언—은 감시망 바깥에서 진행된다. 사냥개를 엉뚱한 냄새 위로 달리게 하는 것. 하연서는 낚싯줄 끝에 가짜 미끼를 매달아 원수의 수족을 반대편으로 던져 넣었다.

사흘 뒤, 서기실 서기가 지나가며 흘린 말이 그 성공을 알렸다.

"자네 스승 찾는 일 말일세. 진인께서 산서 분타에 직접 조회를 넣으셨다더군. 외당 제자 하나를 그리 신경 쓰시다니, 자네 복이 터졌어."

하연서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속으로는 웃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상대는 삼십 년을 서사로 무림을 지배해온 자였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그날 밤, 하연서는 낙검곡 무덤에서 가져온 봉인된 혈서 상자를 다시 꺼냈다. 구결을 몰라 열지 못했던 상자. 설강의 증언이 진실이라면, 이 안의 혈서야말로 천하에 진실을 알릴 유일한 증거였다. 그는 검혼을 불러 상자의 봉인을 읽으려 했다. 봉인은 패검문의 것이니, 죽은 사형이라면 구결을 알지도 몰랐다.

망자검을 뽑았다.

"셋째 사형."

검신이 낮게 울었다. 냉기가 검자루를 타고 손목으로, 팔뚝으로, 심장으로 기어올랐다. 그의 눈동자에 은빛이 번졌다.

봉인의 결을 읽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검혼을 부른 시간이 길었다. 너무 길었다. 밤새 상자와 씨름하는 동안 그는 검혼을 두 번, 세 번 거듭 불렀고, 그때마다 죽은 자의 냉기가 산 자의 자리를 조금씩 밀어냈다.

새벽녘, 하연서의 의식이 흐려졌다.

머릿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자라났다. 셋째 사형의 목소리. 낙검곡에서 스물넷의 나이로 목이 잘린 사내. 격정적이고 성마르며, 원한을 삭이지 못한 채 죽은 검혼. 그 인격이 하연서의 손발을 장악했다.

'정파 놈들. 한 놈도 남기지 않는다.'

그것은 하연서의 생각이 아니었다.

문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연아, 너 밤새 안 잤지? 얼굴이 왜 이래—"

진유하였다. 아침 훈련 전에 만두를 나눠주려고 들른 것이었다. 손에 든 대나무 소쿠리에서 김이 올랐다.

은빛 눈동자가 그를 향해 돌아갔다.

셋째 사형의 인격에게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곧 정파의 무인이었다. 태산검문의 옷을 입은 적. 원한의 대상.

하연서의 몸이 움직였다. 망자검이 진유하의 목을 향해 그어졌다. 되돌림 검로가 아니었다. 살수(殺手)였다. 사형이 정파 무인을 죽이던 그 검이었다.

소쿠리가 떨어졌다. 만두가 바닥에 굴렀다. 진유하가 본능적으로 몸을 젖혔고, 검날이 그의 뺨을 스쳐 벽에 박혔다. 나무 파편이 튀었다.

"연아!"

그 외침이 하연서의 귓속을 뚫고 들어왔다.

연아. 진유하만이 부르는 이름. 계산 없이 그를 걱정하는 유일한 목소리. 벽에 박힌 검날의 냉기가 손목을 타고 역류하는 순간, 하연서의 은빛 눈동자 안쪽에서 무언가가 저항했다.

'이자는 적이 아니다.'

셋째 사형의 원한과, 하연서의 무언가가 검자루 위에서 부딪혔다. 그의 팔이 경련했다. 검을 벽에서 뽑으려던 손이 멈췄다. 은빛이 흔들리고, 균열이 갔다.

"으윽—"

하연서가 검을 놓쳤다. 망자검이 바닥에 떨어져 청명한 쇳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냉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은빛이 사라지고, 그의 눈에 검은자위가 돌아왔다.

무릎이 꺾였다. 숨이 톱니처럼 갈렸다.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시야가 초점을 되찾았을 때, 눈앞에 진유하가 있었다.

벽에 등을 붙이고, 오른뺨에 가느다란 핏줄기를 흘리며. 그의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늘 웃던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얬다. 바닥에 굴러떨어진 만두 하나가 하연서의 발치까지 굴러왔다.

"너……"

진유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러나 도망치지 않고 하연서를 응시했다.

"너, 방금…… 나를 죽이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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