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그 검을, 버렸어야 했다."

무영천의 말이 새벽 공기 위에 얹혔다. 무진은 검자루를 놓지 못했다. 명치 안쪽, 삼 년간 무천현을 부르던 실이 텅 비어 있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재만 만져졌다. 그리고 그 아래, 갈비뼈 어딘가에 발톱 자국처럼 남은 혈검조의 흔적이 미열처럼 뛰었다. 다음번엔 네가 스스로 나를 부를 것이다. 목소리는 물러났으나, 그 말은 아직 몸속에 못처럼 박혀 있었다.

"움직이지 마." 서린이 무진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검날에 베인 피가 흘러 무진의 소맷자락을 적셨다. 서린은 검을 거둔 무영천을 노려보았다. "손에 검이 없다고 방심 안 해. 낙엽진 깐 게 당신이잖아."

무영천은 서린을 보지 않았다. 무진의 머리, 관자놀이를 온통 덮은 흰 서리, 목덜미 아래로 번진 검은 흔적만 오래 바라보았다. 슬픔이라기엔 너무 마른, 체념에 가까운 눈이었다.

"앉아라, 무진." 그가 봉분 하나에 등을 기댔다. 늙은 사람이 오래 걸은 뒤에 하는 동작이었다. "검으로 나를 벨 힘이 남았으면 지금 베어라. 없으면—앉아서 들어라. 왜 내가 검가를 팔았는지. 그 이유부터."

"이유." 무진의 입술이 갈라졌다. "이유를 대면 수백 명이 살아 돌아오나."

"안 돌아온다." 무영천은 즉답했다. 흔들림이 없었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도 나는 팔았다. 그러니 이유를 대는 거다. 변명하려는 게 아니라, 네가 알아야 다음에 같은 실수를 안 하니까."

무진의 무릎이 흔들렸다. 서린이 부축하려 했으나 무진은 그 손을 밀지 않은 채 스스로 봉분 앞 마른 흙에 주저앉았다. 검은 뽑지 않았다. 자루만 쥐고 있었다.

"들어보지." 무진이 말했다. "네가 사람을 죽인 이유를."

무영천이 눈을 감았다 떴다.

"검혼강림. 넌 이미 알겠지. 조상의 넋을 불러 검을 빌리고, 대가로 네 수명을 태우는 것." 그가 자기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그 손등에도, 무진의 것처럼, 마른 살갗이 갈라진 흉터가 있었다. 무진은 그것을 처음 보았다. "이게 개인의 저주가 아니라는 걸, 네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몰랐다. 이건 가문 전체를 삼백 년 동안 좀먹어온 병이다."

"삼백 년." 무진이 되뇌었다.

"세어보아라." 무영천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무천검가 후계자 중에 예순을 넘긴 자가 몇이나 되느냐. 네 증조부는 마흔둘에 백발로 죽었다. 그 형은 서른아홉에 검혼에게 자아를 빼앗겨 제 아우를 베고 미쳐 죽었다. 강한 검조를 탐한 자일수록 빨리 죽었어. 왜냐? 강림할수록 수명이 타고, 몸이 흔들리는 틈으로 봉인 깊은 곳의 그것이 파고들거든."

무진의 손이 명치를 눌렀다. 무영천이 그 동작을 보았다.

"이미 만났구나." 무영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혈검조 무한. 파문당한 원한의 넋. 그자가 벌써 네 갈비뼈에 자국을 남겼어. 삼백 년간 봉인 안에서 후계자들의 절망을 먹으며 기다린 것이. 그러니 내 말이 맞지 않느냐. 이 가문은—검을 쥔 채로는 반드시 멸망한다. 후계자마다 태어나 검을 배우고, 수명을 태우고, 자아를 잃고 죽는다. 삼백 년을 그렇게. 나는 그 끝을 봤다."

"그래서." 무진의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사람을 죽였나."

"살리려고 죽였다." 무영천이 말했다.

그 말이 골짜기에 떨어졌다. 서린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라." 무영천은 물러서지 않았다. "가문이 존속하는 한 후계는 계속 태어나고, 태어난 후계는 검혼에 삼켜져 죽는다. 이 고리를 끊는 유일한 길은 검가라는 것 자체를 끝내는 거였다. 사람을 흩고, 이름을 지우고, 검을 쥘 자를 없애는 것. 그날 밤 문을 연 것은 그래서다. 화탄 스무 발, 옥추 삼 조. 봉인고를 부수고 사람을 쓸어 검가를 지도에서 지웠다."

"그런데." 무진이 고개를 들었다. 눈에 붉은 실핏줄이 다시 번지려는 걸 그는 이를 악물어 눌렀다. "위패당은 왜 살렸지."

무영천의 얼굴에 처음으로 균열이 갔다.

거기다. 무진은 알았다. 삼 년을 괴롭힌 물음의 답이 그곳에 있었다. 폐허에서 오직 위패당만이 결계 덕에 온전히 남아 있던 이유. 누군가 사람은 죽게 하고 결계는 남긴 이유.

"검혼과 혈통은, 저주와 별개니까." 무영천이 천천히 말했다. "위패검에 갇힌 넋들은 산 자의 피가 없으면 한 치도 못 움직인다. 부를 자가 없으면, 그냥 검일 뿐이야. 죽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지. 그리고 혈통—" 그가 무진을 바라보았다. "혈통은 죄가 없다. 나는 검가를 끝내고 싶었지, 우리 핏줄을 멸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래서 위패당에는 화탄이 닿지 않게 진을 걸었다. 그리고 너를—열두 살 너를 그날 밤 성 밖 심부름으로 내보냈다."

무진의 입안에서 쇠 맛이 났다.

"검혼은 남기되 부를 사람은 없게. 혈통은 남기되 검은 못 쥐게." 무진이 그 논리를 소리 내어 짚었다. 손끝이 떨렸다. "그렇게 설계했다는 거군. 나를 살려두고, 검은 버리게 하려고."

"그렇다." 무영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살아야 했다. 하지만 검가의 후계로 살면 안 됐다. 나는 네가 잿더미 위패당에 눌러앉을 줄 몰랐다. 검혼을 깨울 줄은 더더욱. 그날, 네가 처음 강림을 각성하던 밤—"

무진의 심장이 멎었다.

"내가 곁에 있었다." 무영천이 말했다. "폐허 어귀에, 그늘 속에. 네가 제단 앞에서 피를 흘리고 검혼을 부르는 걸 봤다. 그리고 네 귀에 대고 속삭였지. 멀리서, 진기로."

너를 살리려 판 것이다.

각성의 밤, 무진이 들었던 정체불명의 목소리. 무천현의 것도, 그 낯선 새 목소리의 것도 아니었던 그 한 문장. 삼 년을 귓속에 남아 그를 갉아먹던 그 말의 주인이, 지금 봉분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당신이었어." 무진이 신음처럼 뱉었다. "그 목소리가."

"막고 싶었다. 네가 검을 쥐는 걸." 무영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한마디면 네가 검을 놓을 줄 알았어. 진실을 알면 복수도 재건도 무의미해질 테니까. 네 조상을 죽인 게 조상을 살리려던 나라면—넌 어디에 검을 겨눠야 하느냐."

골짜기에 바람이 지나갔다. 마른 잎이 봉분 사이를 굴렀다.

무진은 오래 침묵했다. 서린이 무언가 말하려다, 무진의 옆모습을 보고 삼켰다.

그리고 무진이 일어섰다.

"논리는 알았어." 무진의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가라앉았다. 떨림이 멎어 있었다. "빈틈없더군. 삼백 년 후계자들의 요절, 강림의 저주, 혈검조. 하나도 틀린 게 없어. 나도 그 저주를 몸으로 겪고 있으니까." 그가 자기 흰머리를, 검게 갈라진 목덜미를 손등으로 스쳤다. "그런데 숙부. 딱 하나 물어보지."

"물어라."

"당신 방식으로, 누가 살았지?"

무영천의 눈이 흔들렸다.

"수백을 죽여서 고리를 끊었다며. 나를 살렸다며. 그런데 봐라." 무진이 자기 몸을 가리켰다. "나는 검을 쥐었고, 수명을 태웠고, 혈검조에 갈비뼈를 뜯겼어. 당신이 살렸다는 그 하나가, 지금 삼백 년 저주를 고스란히 다시 밟고 있어. 왜? 혼자 남았으니까. 붙잡아 줄 가문이 없으니까. 계율을 지켜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건 네가 검을 쥐었기 때문이지, 내—"

"검을 버렸으면 살았을까?" 무진이 말을 잘랐다. "그날 밤 죽은 수백이, 검을 놓았으면 산 채로 흩어졌을까? 아니. 당신은 사람이 살 방법을 검을 뺏는 걸로만 계산했어. 그래서 계산에 사람이 없어. 검을 버리면 사람은 남는 게 아니라, 그냥 뿔뿔이 숨어서 이름을 지우고 죽어가는 거야. 서린이 삼 년간 유민 열아홉을 먹여 살린 게 검을 버려서였나? 아니. 계율을 붙들어서였어."

서린이 무진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손이 품속으로 갔다. 낡은 계율첩 사본이 거기 있었다.

"검은 명예를 위해 뽑되, 목숨은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무진이 그 구절을 외웠다. "그리고 후계는 홀로 짊어지지 않는다. 가문과 함께 검을 나눈다. 이게 저주를 견디는 방식이었어. 강림의 대가가 수명인 걸 선조들이 몰랐던 게 아니야. 알았으니까 극한에만 부르라고, 홀로 태우지 말라고, 나눠 지라고 계율로 남긴 거야. 당신은 그 계율을 안 읽었어. 저주만 봤지, 저주를 견뎌온 방법은 안 봤어."

"방법?" 무영천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높아졌다. "그 계율이 삼백 년간 몇을 살렸느냐! 다 죽었다! 네 아비도, 네 조부도—"

"함께 있을 땐 예순까지도 살았어." 무진이 되받았다. "혼자 남은 후계가 미쳐 죽은 거고. 당신은 함께를 없앴어. 나눌 사람을 죽였어. 그리고 나 하나 남겨서 '살렸다'고 부르는 거야. 그게 살린 거면—" 무진이 검을 뽑았다. 새벽빛에 낡은 검신이 희게 빛났다. "나는 그 계산을 인정할 수 없어."

챙, 소리가 골짜기에 길게 울렸다.

"나는 혼자 죽는 걸로 갚지 않아." 무진의 눈에 물기와 붉은 기가 함께 어렸으나, 그 안에 다른 것이 있었다.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무너지지 않는 무언가가. "함께 사는 걸로 갚을 거야. 유민을 다시 모으고, 검을 나누고, 수명을 태우지 않고도 검혼과 함께 서는 길을 찾아서. 그게 가능하다는 걸 당신 앞에서 증명할 거야. 그게 내가 당신을 이기는 방법이야. 당신 목을 베는 게 아니라."

무영천은 오래 무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스친 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무진의 아버지를 반쯤 닮은 그 얼굴에, 무언가 젖은 것이 지나갔다. 자랑스러움과 절망이 뒤섞인, 이름 붙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네 아비도 꼭 그렇게 말했다." 무영천이 나직이 말했다. "함께 살면 된다고. 그리고 그날 밤 함께 죽었다."

"이번엔 안 죽어." 무진이 검을 겨눴다.

무영천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거둬두었던 검을 다시 뽑았다. 씁쓸함이 그 동작에 배어 있었다.

"좋다. 증명해 봐라." 그가 검을 세웠다. 낮게, 흔들림 없이. "그런데 무진. 네가 한 가지 계산을 안 했구나. 나처럼."

무진의 검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를 이기려면 넌 검조를 불러야 한다." 무영천의 목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 "네 지금 실력으론 나를 못 벤다. 알지? 그러니 강림을 해야 해. 그런데 강림을 하면—몸이 흔들리는 그 틈으로 무한이 파고든다. 무천현은 이미 재가 됐다. 널 밀어낼 조상도 없어. 검조를 부르는 순간, 혈검조가 깨어난다."

무진의 숨이 멎었다.

"그리고 강림을 안 하면, 넌 나를 못 이긴다." 무영천이 검을 조금 더 세웠다. 그 눈에 슬픔이 짙었다. "이해하겠느냐. 너는 이길 수 없게 설계돼 있다. 검을 부르면 삼켜지고, 안 부르면 진다. 이게—내가 검가를 팔면서 마지막까지 두려워한 것이다. 저주는, 이기려는 자를 정확히 그 이기려는 지점에서 죽인다."

바람이 멎었다. 무진의 검을 쥔 손등 위로, 검은 흔적이 손목을 향해 아주 천천히 번지기 시작했다.

갈비뼈 안쪽에서, 발톱 자국이 뜨겁게 웃었다.

*부르지 그러느냐.*

무진의 검끝이, 처음으로 아래를 향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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