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없는 환자를 실어 나르는 들것이 응급실 출입문을 밀고 들어왔다. 한준혁은 차트를 받아들으며 한눈에 상황을 파악했다. 폐암 말기. 종양이 대동맥을 압박하고 있고, 흉강 내 출혈이 진행 중이었다. 다른 의사들이라면 이미 호스피스 팀에 연락했을 케이스였다.
"수술실 준비하세요."
간호사 김은지가 그를 바라봤다. 눈빛에 의문이 있었지만, 그녀는 즉시 무선통신기를 집어 들었다.
"수술실 1번, 응급 수술 준비. 폐암 출혈 환자."
환자의 이름은 박영수. 51세. 몸 전체에 흙이 묻어 있었다. 최근까지 건설 현장에 나갔던 모양이었다. 한준혁은 환자의 옷을 걷어올렸다. 복부는 팽팽했고, 호흡은 얕았다. 맥박은 분당 110을 넘고 있었다. 혈압도 떨어지고 있었다.
한준혁은 박영수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피부에 닿는 순간, 세상이 멈췄다.
뇌 안에 숫자가 직접 각인되었다. 망막을 관통하듯 번개처럼.
**48시간.**
동시에 박영수의 흉강 내부가 3D로 펼쳐졌다. 그것은 떠올렸다는 표현이 맞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그가 수백 번 이 수술을 해본 것처럼 손에 기억되어 있었다. 종양의 정확한 위치. 대동맥과의 거리. 절개해야 할 각도. 필요한 시간. 모든 것이 직관적으로 명확했다.
48시간. 그 이후로는 이 환자가 살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한준혁의 손끝이 떨렸다.
"수술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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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의 조명이 환자를 밝혔다. 마취과 의사 최준호가 이미 준비 중이었다. 한준혁은 손을 씻으면서 자신의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종류의 진동이었다. 마치 그의 신체가 뭔가를 감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구 준비됐어?"
"네, 선생님."
수술복을 입고 장갑을 낀 한준혁은 수술대 위의 박영수를 바라봤다. 환자는 이미 마취 상태였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비프음이 일정하게 울렸다.
그의 칼이 환자의 가슴을 열었다.
첫 번째 절개. 손은 뭔가에 이끌려 가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것은 배운 해부학이 아니었다. 박영수의 몸 자체가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를 절개하라. 지금 당기라. 이 각도로 해야 한다.
피가 흘렀다. 흉강 내부가 노출되었다. 종양은 생각보다 컸다. 대동맥을 거의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다. 보통의 외과의사라면 이 시점에서 수술을 포기했을 것이다. 종양을 제거하려는 순간 대동맥이 터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준혁은 멈추지 않았다.
"흡입기."
손이 움직였다. 정확했다. 마치 이 환자의 몸을 수백 번 만져본 것처럼.
"혈압 떨어져요!"
모니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수혈 준비하고, 에피네프린 0.5밀리그램."
한준혁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손가락 끝은 다시 떨리고 있었다. 이번엔 긴장이 아니었다. 고통이었다.
그의 흉부에서 뭔가가 갈라지는 느낌이 났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가슴을 열고 있는 것처럼.
한준혁은 이빨을 깨물었다.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종양 적출 준비하세요."
손이 정교하게 움직였다. 종양과 대동맥 사이를 분리해내는 작업. 한 밀리미터의 실수도 환자의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손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 순간, 한준혁의 몸 전체가 경련했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심장이 멈춘다. 폐가 붕괴된다. 의식이 흩어진다. 검은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준혁은 박영수의 의식 속으로 침범했다. 마취 약물 아래에서도 느껴지는 임종의 공포. 신체가 붕괴되는 감각.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순수한 인식. 그 모든 것이 한준혁의 신경을 타고 흘러들었다.
"한 선생님!"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준혁은 눈을 떴다. 여전히 수술실에 있었다. 박영수는 여전히 수술대 위에 있었다. 종양은 반이 제거되었다. 한준혁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계속해."
목소리가 쉬었다. 장갑이 피로 젖어 있었다.
수술은 계속되었다. 2시간 47분.
그 시간 동안 한준혁은 반복적으로 죽음을 느꼈다. 박영수의 심장이 멈추는 것을. 몇 번이고. 마치 그 자신이 몇 번이고 죽는 것처럼. 환자의 의식 속에서 반복되는 공포. 끝나지 않는 임종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한준혁의 신체를 관통했다.
마지막 봉합이 끝났을 때, 한준혁은 거의 의식이 희미해져 있었다.
"완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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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로 돌아왔을 때, 박영수의 딸이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한준혁이 나타나자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아버지가..."
"수술 성공했습니다."
그 여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절망적인 울음이 아니었다. 희망의 울음이었다. 그녀는 한준혁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는 손을 피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한준혁은 응급실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닫고 그는 변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몸이 경련했다. 흉부가 갈라지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칼로 자르고 있는 것처럼. 심장이 비정상적인 리듬으로 뛰었다. 폐가 공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박영수가 수술 중에 느낀 죽음이었다. 마취 속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느낀 임종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준혁이 그것을 느꼈다.
왜?
그는 알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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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로 돌아왔을 때, 김은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사장님이 찾으셨어요. 박영수 환자 수술 성공했다고 좋아하셨어요. 다음주에 병원 공식 보도자료에 실릴 거라고 하셨어요."
한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선생님, 괜찮아요?"
"응."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박영수는 회복실에서 천천히 깨어날 것이었다. 딸은 기뻐할 것이었다. 이사장은 자랑스러워할 것이었다. 언론은 '기적의 수술'이라고 보도할 것이었다.
하지만 48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박영수는 죽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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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입구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렸다.
"선생님!"
김은지가 뛰어왔다.
"뭐야?"
"새 환자 들어왔어요. 12세 남자아이. 심부전 말기. 상급병원에서 치료 거부 판정받았대요."
한준혁이 진료 구역으로 향했다. 침대 위의 아이는 파란 입술을 하고 있었다. 호흡이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정하윤, 12세. 산소 포화도 65%."
한준혁은 아이의 손목을 잡았다. 창백한 손목. 거기서 맥박은 거의 만져지지 않았다.
손가락이 아이의 피부에 닿은 순간.
**5일.**
숫자가 뇌에 박혔다. 동시에 영상이 떠올랐다. 아이의 심장 구조. 변형된 심실. 폐색된 관상동맥. 절개 위치, 봉합 방법, 필요한 시간.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48시간 때와는 다른 강도의 공포가 뇌를 관통했다. 한준혁은 입을 다물었다. 아이의 신체적 고통이 아니었다. 아이의 순수한 두려움이었다. 죽음 앞에서 느끼는 12년 인생의 무게. 아직 살아야 할 시간들을 빼앗기는 공포. 어린 의식이 감지하는 절망.
한준혁은 손을 놨다.
"응급 심장 초음파. 지금."
초음파 기계가 움직였다. 모니터에 떠오르는 이미지. 심실중격 결손. 폐동맥 협착. 판막 역류.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엉켜 있었다.
"선생님, 수술 가능한가요?"
간호사가 물었다.
한준혁은 다시 아이의 손을 잡았다.
**5일. 정확히 5일.**
수술을 해도. 하지 않아도. 5일.
손을 놓으면서 한준혁은 아이의 눈을 마주쳤다. 정하윤의 눈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 이 의사가 자신을 살려낼 것이라는 순수한 신뢰.
한준혁은 그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당신의 아이는..."
정하윤의 엄마가 옆에 서 있었다. 한준혁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갔다.
"당신의 아이는 심부전 말기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이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술은... 수술은 안 되나요?"
한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정하윤의 손을 다시 잡았다. 아이는 한준혁의 손을 놓지 않으려 했다.
"아저씨... 나 죽어?"
12세 아이의 목소리는 맑았다. 공포 속에서도 순수했다.
"...잘 쉬어야 해. 약을 먹으면 편해질 거야."
한준혁은 거짓말을 했다. 또는 진실을 숨겼다. 그것이 이 순간에는 같은 것이었다.
정하윤의 엄마가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아이를... 제발..."
"일단 안정화시켜. 심장 내과 의사를 불러."
한준혁은 침대를 떠났다. 응급실의 뒷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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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실로 향했을 때, 박영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딸이 침대 옆에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딸의 목소리가 울렸다.
박영수의 눈이 천천히 초점을 맞췄다. 입이 움직였다.
"...고마워."
한준혁은 모니터를 확인했다. 심박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혈압은 안정적이었다. 산소 포화도는 95%였다.
"잘하고 있어요. 계속 쉬세요."
박영수의 딸이 한준혁을 바라봤다. 감사와 경외의 눈빛이었다. 그녀는 한준혁의 손을 다시 잡으려 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살려주셨어요."
한준혁은 손을 피했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당신의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거짓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녀의 감사는 너무 진실했고, 그 진실은 한준혁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48시간 뒤에 죽을 겁니다."
침묵이 흘렀다. 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라고요?"
"수술 중에 느꼈어요. 당신의 아버지는 48시간이 남았어요. 그 이상 살 수 없습니다."
"그... 그럼 왜 수술을..."
딸의 목소리가 떨렸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입니다."
한준혁은 침대를 떠났다. 응급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뒤에서 들리는 딸의 울음소리. 박영수의 혼란스러운 목소리. 간호사의 당황한 음성.
그 모든 것이 한준혁의 등 뒤에서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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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로 돌아왔을 때, 김은지가 차트를 들고 있었다.
"한 선생님..."
"뭐야?"
"박영수 환자 딸분이 의료진을 찾고 있어요. 뭔가 이상하다고..."
"내가 이미 말했어."
"어... 어떻게 알아요?"
"환자를 만지면 남은 시간이 보여. 정하윤이도 5일이야. 수술을 해도 안 돼. 그 아이는 5일이면 충분해."
"선생님, 이게 무슨..."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이건 사실이야."
김은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의심과 공포 사이를 오갔다.
한준혁은 응급실의 벽에 등을 기댔다. 손이 떨렸다. 이 능력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자신이 알게 된 시간들이 자신을 부수고 있다는 것.
그 순간 무선통신기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한 선생님을 응급실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사장님이 직접 찾으신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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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김준호의 전화가 울렸다. 한준혁은 받았다.
"한 선생님, 축하합니다. 박영수 환자. 기적 같은 수술이었다고 들었어요. 다음달에는 대학병원 세미나에서도 발표 기회가 있을 거예요."
한준혁은 침묵했다.
"요즘 치료 거부당한 말기 환자들이 많아요. 앞으로 더 많은 환자를 받을 준비 해 주시겠어요? 당신 같은 천재 의사가 필요해요."
이사장의 말이 계속되는 동안, 한준혁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얕아졌다. 그의 귀에는 박영수 딸의 울음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정하윤의 순수한 두려움도. 그 모든 것이 이사장의 목소리 위에 겹쳐 있었다.
"더 이상 말기 환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한준혁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뭐라고요?"
"박영수 환자는 48시간 뒤에 죽을 겁니다. 정하윤이라는 12세 환자도 5일 뒤에 죽을 겁니다. 제가 수술을 해도 그들은 죽습니다."
"한 선생님, 무슨 말씀을..."
"제가 환자를 만지면 그들의 남은 시간이 보여요. 정확하게. 그리고 저는 그 시간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저는 죽음을 볼 수 있을 뿐, 막을 수 없어요."
전화 너머에서 이사장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수술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손이 움직였어요. 마치 제 의지가 아닌 것처럼. 하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박영수는 살아날 것 같지만, 48시간 뒤에 죽을 겁니다. 그리고 그 딸은 저를 원망할 겁니다. 저도 저 자신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건 말도 안 되는..."
"더 이상 말기 환자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능력은 저를 죽이고 있어요."
한준혁은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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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로 돌아왔을 때, 정하윤의 엄마가 대기실에서 나왔다.
"우리 아이가..."
한준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눈빛에 희망과 절망이 섞여 있었다.
"당신의 아이는 5일이 남았습니다."
정하윤의 엄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라고요?"
"수술을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그 아이의 고통을 최소화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아이와 함께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정하윤의 엄마는 무릎을 꿇었다.
"제발... 제발 우리 아이를..."
한준혁은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자신도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응급실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렸다. 119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환자가 들려오고 있었다.
"선생님!"
김은지가 그를 바라봤다.
"또 다른 환자가 들어오고 있어요. 70대 남성. 뇌졸중 의심."
한준혁은 천천히 일어났다. 응급실의 조명 아래서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119 구급차에서 내려온 환자는 70대 남성이었다. 뇌졸중. 의료진이 그를 침대에 옮기고 있었다.
한준혁은 한 발 나아갔다. 그리고 멈췄다.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시간을 알고 싶지 않았다. 또 다른 죽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한준혁은 손을 들었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움직임이었다. 의사로서의 본능. 환자를 돕고자 하는 충동.
손가락이 환자의 팔에 닿았다.
**3주.**
숫자가 뇌에 박혔다. 동시에 뇌졸중으로 인한 신경 손상. 재활 가능성. 생존 확률.
한준혁은 손을 놨다. 그리고 도망쳤다.
응급실의 뒷문으로. 병원의 밤 공기 속으로.
뒤에서 들리는 김은지의 목소리. 의료진의 당황한 음성. 정하윤의 엄마의 울음소리.
그 모든 것이 한준혁을 따라왔다.
야간 응급실의 시계는 밤 11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