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하늘을 갈라놓은 천경의 밤. 한유는 황제 유신을 마주했다.
둘 사이의 공간은 극도로 단순했다. 젖은 돌포장, 떨어진 기와, 그리고 두 검기가 만들어낸 무언의 장막. 황제는 검을 들지 않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만 펼친 채 한유의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나를 죽이려 하는군."
황제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낮았다. 왕이라기보다는 지쳐버린 한 무인의 목소리였다. 한유는 검을 올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32명의 죽음이 검 끝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황제가 손을 움직였다.
순간, 천경 전체를 뒤흔드는 검기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한유의 검기와 정확히 같은 형태였다. 32명의 죽음이 한 사람의 손에서 다시 피어올랐다. 하늘이 울음을 터뜨렸다. 두 검기가 충돌하는 순간, 천경의 밤하늘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쪽은 붉은 색이었다. 다른 한쪽은 검은 색이었다.
그 사이로 64명의 죽음이 나타났다.
한유의 32명. 황제의 32명. 그들이 겹쳐지며 천경의 거리를 가득 채웠다. 죽음의 비명이 아니었다. 더 깊은 무엇. 마치 세상이 자신의 모순을 깨닫는 순간의 신음 같은 것이었다.
한유는 무릎을 꿇었다.
32명의 죽음이 한 몸을 지배하는 고통. 그것을 황제도 같은 방식으로 견디고 있다는 깨달음이 한유의 다리를 꺾었다. 황제는 여전히 손가락 하나만 펼친 채 검기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마에 맺힌 땀이 빗물과 섞여 흘러내렸다.
"너는 왜 나를 죽이려 하는가."
한유가 물었다.
황제의 입이 움직였다. 그의 입술은 마치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었던 것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너는... 나의..."
말을 잇지 못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검기가 일렁거렸다.
"내 존재 자체가 너의 권력을 부정하는군."
한유가 말했다. 이번엔 자신이 이 문장을 완성했다. 황제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검기가 흔들렸다.
한유의 검이 올라갔다.
32명의 죽음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검 끝에는 초월적인 빛이 맺혔다. 하늘의 붉은 쪽이 더욱 강렬해졌다. 한유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멈추었다.
황제의 얼굴이 보였다.
처음으로 본 황제의 진정한 얼굴이었다. 수염이 난 턱, 눈가의 주름, 그리고 그 눈 속의 것. 한유는 깨달았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더 깊은 무엇. 마치 자신이 견디고 있는 것과 정확히 같은 고통을 견디고 있는 다른 누군가를 보는 그런 느낌. 연민이었다.
"멈춰라."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한유는 돌아보지 않았다.
"한유여, 멈춰라."
백영의 목소리였다. 백영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한쪽 눈이 멀었던 그의 얼굴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옷은 해지고, 팔에서는 검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한유가 천천히 돌아섰다. 백영의 모습을 본 순간, 검이 떨어질 뻔했다. 백영은 피로 물든 손으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마치 의식을 치르듯,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당신이 이 저주를 견디고 살아남는다면... 그것이 검맥의 정통성이다."
백영의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명확했다. 한유는 움직이지 못했다. 백영의 눈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검맥의 진정한 정통성이다."
백영이 천천히 앞으로 넘어갔다. 구화가 나타나 그를 받았다. 한쪽 다리를 잃은 구화는 흔들리며 백영을 안았다.
"백영 선생!"
구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백영은 구화의 팔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슬픔도, 절망도 아닌 무엇이었다. 마치 긴 여정의 끝에 도달한 자의 표정이었다.
"고맙다, 구화여."
백영의 손이 구화의 팔을 가볍게 눌렀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무언가를 내려놓는 떨림이었다.
"그리고 한유여..."
백영의 눈이 다시 한유를 찾았다. 그 눈 속에는 32년의 세월이 담겨 있었다.
"당신이 이겨야 한다. 당신 자신을 위해."
백영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구화가 그를 더욱 단단히 안았다. 백영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한유의 검이 떨어졌다. 손가락이 펼쳐졌다. 32명의 죽음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하늘의 붉은 색이 검은 색으로 변했다. 천경의 밤이 다시 어둠으로 돌아왔다.
"백영!"
한유가 외쳤다. 하지만 백영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유는 무너졌다. 무릎이 먼저 땅에 닿았고, 주먹이 그 뒤를 따랐다. 32명의 죽음 위에 백영의 죽음까지 더해지는 순간, 한유는 처음으로 자신의 무게를 온전히 느꼈다.
"백영!"
한유의 비명이 천경의 밤거리를 가르며 올라갔다.
황제가 손을 내렸다. 그의 검기도 사라졌다. 하늘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한유는 백영의 시신 앞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빗줄기가 그의 얼굴을 적셨다. 검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한유 안에서 부딪쳤다.
32명의 죽음이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울음은 분노였다. 백영의 죽음이 더해져 그 분노는 더욱 격렬해졌다. 하지만 그 분노 아래에는 다른 것이 있었다. 배신감이었다. 황제가 자신을 낳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리고 그 욕망 아래에는 혼란이 있었다. 백영이 말한 '당신 자신을 위해'라는 말과 자신이 느끼는 분노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이.
한유는 천천히 검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연화가 그를 받쳐주려 했지만, 한유는 자신의 힘으로 일어섰다. 그 과정에서 한유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것이 정의인가. 백영을 죽인 황제를 죽이는 것이 정의인가. 아니면 황제가 말한 대로, 자신의 존재 자체가 황제의 부정의를 증명하는 것이 정의인가. 한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검을 들 수밖에 없었다. 32명의 죽음이 그것을 요구했고, 백영의 죽음이 그것을 명령했고, 자신의 분노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황제 폐하."
한유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당신의 말을 듣겠습니다."
황제가 한유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절대 권력자의 눈이 아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눈이었다.
"나는 검맥의 마지막 검객이었다."
황제가 천천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기억을 꺼내듯 나왔다.
"32년 전. 쿠데타 이전. 나는 검맥의 31번째 검객이었다."
한유의 가슴이 철렁했다. 32번째. 기억 속에서 본 32번째 죽음의 검객. 그 얼굴이 자신과 닮아 있던 이유.
"황제 폐하, 이것은..."
이문호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한유는 손을 들어 그를 멈췄다. 한유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계속하십시오."
황제가 계속했다.
"나는 검맥의 마지막 검객으로, 황제의 부정의에 맞서야 했다. 그것이 검맥의 원칙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약했다. 나는 검을 들 수 없었다."
황제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그래서 나는 검맥을 버렸다. 검맥의 32명을 버렸다. 그리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황제가 되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권력을 장악하면, 그 부정의를 내가 고칠 수 있다고."
한유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권력은... 나를 바꿨다. 나는 황제가 되는 순간, 더 이상 검맥의 검객이 아니었다. 대신 나는 검맥을 죽여야 했다."
황제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왜냐하면 검맥이 살아있는 한, 내 권력은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검맥은 나에게 계속 묻고 있었다. '그것이 정의인가. 그것이 검객의 길인가.' 그 목소리가 나를 죽였다."
황제가 검을 다시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들었다. 마치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짚는 지팡이처럼.
"그래서 나는 모두를 죽였다. 검맥의 32명을 차례로 죽였다. 그들의 죽음을 내 안에 가두었다. 32명의 죽음이 내 권력의 기초가 되도록."
황제의 눈이 한유를 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 내 안에서 울고 있다. 그들의 죽음이 내 검기가 되었다. 내가 들 때마다, 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나는 32년을 그것과 싸워왔다."
한유의 검이 떨렸다.
"그렇다면... 제 기억은?"
"너의 기억은 내 기억이다."
황제가 말했다.
"나는 너를 죽이기 위해 검맥을 멸절시킨 게 아니다. 나는 이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두를 죽였다. 하지만 마지막 검객이 남아있었다. 나 자신이."
황제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아졌다.
"그래서 나는 너를 낳았다. 내 후예를. 내 죄를 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혹은... 내가 죽일 수 없는 나 자신을."
한유는 검을 들고 일어섰다. 백영의 시신 앞에서 한유의 몸은 분노로 떨렸다. 32명의 죽음이 검기 속에서 울부짖었다. 그들이 울음을 터뜨린 것은 복수를 원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이 이 저주에서 벗어나길 원해서였을까. 한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의 울음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신이 나를 낳은 이유가... 그것입니까?"
한유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당신의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그렇다."
황제가 대답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한유가 검을 들었다. 황제가 검을 맞받았다. 두 검기가 다시 충돌했다. 64명의 죽음이 천경의 밤하늘을 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끝내겠습니다."
한유가 말했다.
"당신의 저주를."
한유의 검이 황제를 향해 날아갔다. 황제의 검이 그것을 받았다. 하지만 황제의 얼굴에는 저항이 없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처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하게 해주겠는가."
황제가 말했다.
"당신이 이 저주를 견디고 살아남는다면... 그것이 검맥의 정통성이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 검맥의 진정한 정통성이다."
한유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도 내리지 않았다. 두 검이 서로를 누르고 있었다.
"그것이... 백영이 말한 것입니다."
한유가 말했다.
"그렇다."
황제가 대답했다.
"그 노인은 나보다 훨씬 더 나은 검객이었다. 나는 죽음을 피하려 했지만, 그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너에게 그것을 전했다."
황제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한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알겠다. 나는 검맥의 31번째 검객이 아니었다. 나는 검맥을 죽인 자였다. 그리고 너는..."
황제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너는 검맥의 32번째 검객이다."
한유의 검이 멈췄다. 한 치의 거리에서.
한유는 그 말을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검맥의 32번째 검객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제처럼 부정의에 맞서는 것인가. 아니면 백영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인가. 한유는 그 사이에서 흔들렸다.
"그렇다면... 당신은?"
"나는 검맥이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황제가 말했다.
"검맥의 원칙을 배반한 자. 검객의 길을 버린 자. 그것이 나다."
황제가 검을 내렸다. 그것은 지면에 떨어졌다.
"그래서 이제 너는 나를 죽여야 한다. 그것이 검맥의 정통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한유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슬픔과 해방이 섞인 웃음이었다.
"나는 검맥을 죽인 게 아니다. 나는 검맥이 죽기를 원했다.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검맥은 죽지 않았다. 그것은 내 안에서 계속 살아있었다."
황제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은 매우 느렸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이 떠나가는 것처럼.
"그리고 지금..."
황제가 한유를 바라봤다.
"지금 나는 그것을 깨닫는다."
황제가 손을 들었다. 그것은 검을 드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검맥의 32번째 검객은 나가 아니다. 그것은..."
황제의 눈이 한유를 찾았다.
"지금 이 순간이었다."
한유의 검이 움직였다.
황제의 몸이 검을 받았다. 그 순간, 천경의 하늘이 한 번 더 진동했다. 64명의 죽음이 한 점으로 수렴했다. 붉은 빛과 검은 빛이 만나 하얀 빛을 만들었다.
황제 유신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고맙다... 한유여."
황제가 중얼거렸다.
"이제... 나는 검맥이 될 수 있을까."
한유는 검을 들고 있었다. 32명의 죽음이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들은 평온해 보였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던 것이 끝난 것처럼.
황제의 눈이 감겼다.
천경의 밤거리는 다시 조용해졌다. 빗줄기도 멈추었다. 구화는 여전히 백영을 안고 있었다. 연화는 한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문호는 검을 내렸다.
한유는 검을 들고 있었다. 검 끝에서 물이 떨어졌다. 빗물인지 피인지 알 수 없었다.
"끝났습니까?"
연화가 물었다.
한유는 검을 내렸다. 32명의 죽음이 더 이상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 안에서 평온해졌다.
한유는 백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황제를 바라봤다. 그 사이에서 한유는 32명의 죽음을 느꼈다. 32명의 죽음 위에 백영의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황제의 죽음이 있었다. 그 모든 죽음 위에 한유는 서 있었다.
"아니다."
한유가 말했다.
"이제 시작이다."
한유의 눈이 천경의 거리를 향했다. 밤거리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는 32명의 죽음이 있었고, 백영의 죽음이 있었고, 황제의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죽음 위에 새로운 삶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한유는 알았다. 그것이 검맥의 정통성을 이어받는 것이었다. 그것이 자신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