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원룸의 구석진 공간에서 뭔가 이상한 게 보였다.

검은색이었다. 아니, 검은색이 아니라 '없음'에 가까웠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모서리에, 마치 누군가 검은 페인트를 흘린 것처럼 검은 포탈이 떠 있었다. 준호는 눈을 비볐다. 피로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제도 어제였고 그 전날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리밍을 켜고 자신의 일상을 찍어서 플랫폼에 올렸다. 3개월간 평균 조회수는 28에서 35 사이를 맴돌았다.

준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여전히 거기 있었다. 포탈은 사라지지 않았다. 손을 뻗어서 만져보려 했는데, 손가락이 닿기 전에 뭔가 반발력을 느꼈다. 따뜻했다.

"이게... 뭐야?"

혼잣말이 나왔다. 준호는 휴대폰을 집었다. 화면에 뜬 앱은 '던전 스캔 시스템'이라고 쓰여 있었다. 자신이 받은 앱이 아니었는데, 어느 날부터 휴대폰에 설치되어 있었다. 삭제를 눌러봤지만 삭제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두었다.

앱을 열자 화면에 데이터가 떠올랐다.

[레이드 던전 감지] [난이도: 초급 (E)] [권장 인원: 1명] [예상 클리어 시간: 15분] [상태: 활성화]

준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건 게임의 UI처럼 보였다. 정확히는 '게임처럼 보이도록 만든' 뭔가였다. 손가락이 떨렸다. 어렸을 때 영화관에서 무서운 영화를 봤을 때 그 느낌과 비슷했다. 두려움과 설렘이 섞인 그런 감정.

준호는 다시 포탈을 봤다. 이번엔 선명했다. 검은색 포탈은 천천히 맥박치듯 진동하고 있었다.

"스트리밍을 켜야 하나?"

목소리가 작았다. 자신에게 묻는 것 같았다. 준호는 휴대폰으로 스트리밍 앱을 열었다. 평소처럼 '일상 브이로그' 카테고리를 선택했다. 제목은 '오늘도 집에서 뭐하냐면'이라고 입력했다. 손가락이 떨려서 오타가 났지만 그냥 올렸다.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라이브 시작] [현재 시청자: 0명]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준호는 화면을 원룸 구석으로 향했다. 포탈이 화면에 잡혀야 했는데, 휴대폰 카메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벽이었다. 회색 벽과 회색 바닥. 평범한 원룸의 구석.

그런데 준호의 눈에는 포탈이 여전히 보였다.

"뭐... 이건 좀 이상한데?"

중얼거렸다.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카메라에는 안 보이지만, 눈에는 보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준호는 포탈 근처에 손전등을 들었다. 손전등 빛도 포탈을 통과했다. 빛이 검은색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진짜 뭐야 이거..."

몇 초가 지났다. 채팅창에 메시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어딘데 그 카메라 들이대?] [조명 이상한데?]

단 3명이었다. 3명의 시청자. 준호는 그들이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 그 순간이었다.

"어딘데 그 카메라 들이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였다. 준호는 놀라서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채팅창에서 방금 들어온 메시지였는데, 그게 목소리로 변환되어 들렸다.

"이게... 뭐야?"

준호는 다시 포탈을 봤다. 이번엔 포탈에서 뭔가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기 진동? 음파? 정확한 설명은 할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히 포탈에서 나오고 있었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일이야?] [진짜 뭐하는 거야?]

더 많은 메시지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모든 메시지가 목소리로 변환되었다. 여러 목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마치 음성 가이드처럼.

"이게... 내가 가야 한다는 거야?"

준호의 손이 포탈을 향해 움직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지난 4년간 준호는 이성적으로만 생각해봤다. 대학 입학 후 4년간 공시생이었다. 그리고 실패했다. 그 다음 3개월간 스트리밍을 했다. 조회수 30. 평범함의 극치였다. 이제 뭔가 다른 것을 원했다. 성공이든, 파멸이든.

"이건 마지막이야. 이거 아니면 끝이야."

중얼거렸다. 손이 포탈의 경계에 닿았다. 따뜻했다.

준호는 몸을 날렸다.

---

검은색이 사라졌다. 대신 파란색이 들어왔다. 아니, 파란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니었다. 색이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가 있었다. 공간이 있었다. 준호는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감각은 정확히 2초 정도 지속됐다. 그리고 바닥에 닿았다.

꽝.

준호는 엎드려 떨어졌다. 손이 먼저 바닥에 닿았다. 아프지 않았다. 이상했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손가락이라도 까져야 하는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른쪽 손가락이 특히 그렇다. 마치 누군가 마취제를 투입한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

준호는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봤다. 던전이었다. 정확히 '던전처럼 보이는' 공간이었다. 돌로 된 벽, 횃불, 그리고 복도. 게임 속 던전 그 자체였다. 그런데 냄새가 났다. 습기와 먼지, 그리고 석회의 냄새.

"이게 진짜네?"

음성이 나왔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까와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준호는 휴대폰을 봤다. 여전히 스트리밍이 켜져 있었다.

[현재 시청자: 47명]

47명? 아까는 3명이었는데.

[뭐야 어디야?] [진짜 어디 간 거야?] [합성인가?] [아니다 진짜다] [뭐 뭐 뭐?]

채팅이 폭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채팅이 목소리로 변환되었다. 혼란스러운 목소리들이 던전을 가득 채웠다. 준호는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 목소리들이 점점 명확해졌다.

"왼쪽으로 가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는 채팅창을 봤다.

[왼쪽으로 가봐]

방금 들어온 메시지였다. 준호는 왼쪽으로 걸어갔다. 복도는 어두웠다. 횃불의 불빛만이 길을 밝혔다. 준호는 휴대폰의 손전등을 켰다. 앞에 벽이 있었다. 막다른 골목이었다.

"막혔어."

혼잣말을 했다.

[벽 치고 들어가] [문제가 뭐야?] [벽 밀어봐]

"벽을... 밀어?"

준호는 벽에 손을 대고 밀었다. 돌벽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울렸다. 음파처럼 벽 너머에서 소리가 났다.

"다시 해봐."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해봐]

준호는 다시 벽을 밀었다. 이번엔 더 힘을 줬다. 오른쪽 손이 먼저 벽에 닿았다. 그 순간, 오른쪽 팔이 이상해졌다. 피부가 반투명해졌다. 손가락이 흐릿해 보였다.

"어? 뭐야?"

준호는 손을 뒤로 뺐다. 오른쪽 팔이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불과 2초 만에. 하지만 감각은 여전히 없었다. 무감각했다.

[어디가 문제야?] [빨리 가] [벽 때려]

"벽을 때려?"

준호는 주먹을 쥐었다. 오른쪽 주먹이었다. 그리고 벽을 쳤다. 손가락이 반투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벽이 흔들렸다. 돌이 떨어져 나갔다. 준호는 계속 쳤다. 주먹이 벽을 부수고 있었다. 통증은 없었다. 오직 감각만 없었다.

그렇게 3분이 지났다. 벽에 구멍이 뚫렸다.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크기였다. 준호는 구멍을 통해 몸을 밀어 넣었다.

다음 방이었다. 이 방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보물 상자? 아니, 다리였다. 무너진 다리. 그 아래는 깊은 동굴이었다. 준호는 다리를 건넜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다리 건너] [계속 가] [어딘가 있어?]

목소리들이 계속됐다. 준호는 다리를 건넜다. 반대쪽에 문이 있었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열쇠가 있었다. 금색 열쇠였다. 준호는 열쇠를 집었다.

[열쇠다!] [그거 가져!] [어디다!]

목소리가 더 커졌다. 준호는 열쇠를 들고 다시 다리를 건넜다. 처음 방으로 돌아갔다. 옆에 상자가 있었다. 상자에 구멍이 있었다. 열쇠 모양의 구멍이었다. 준호는 열쇠를 꽂았다.

상자가 열렸다. 안에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갔다.

---

15분이 지났다. 준호는 던전을 나왔다. 원룸의 그 구석진 공간으로 돌아왔다. 포탈이 닫혔다. 아니, 사라졌다. 그냥 벽이 되어버렸다.

휴대폰을 봤다.

[라이브 종료] [최종 시청자: 3,247명] [평균 시청 시간: 14분 32초]

준호의 손이 떨렸다. 3,247명? 3,247명의 사람들이 그의 영상을 봤다. 댓글은 폭주하고 있었다.

[뭐야 이 영상?] [이거 합성이지?] [진짜 뭐하는 거야?] [다음은 뭐하는 거임?] [다시 해줘] [진짜 미쳤다]

준호는 구독자 수를 봤다.

[구독자: 28,000명]

28,000명. 아까는 283명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4년간 공시 준비를 했을 때도, 3개월간 스트리밍을 했을 때도 이런 느낌은 없었다. 수천 명이 자신을 봤다. 자신을 원했다. 하지만 웃음 속에 뭔가 이상한 게 섞여 있었다. 성공의 기쁨과 함께 밀려오는 낯선 두려움.

준호는 자신의 오른쪽 팔을 봤다. 반투명한 피부가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로딩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처럼.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준호는 받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뭔가 느껴졌다. 이건 중요한 전화일 것 같았다. 준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였다. 저음이었다. 차갑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이준호?"

"네?"

"당신은 첫 번째가 아니다."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준호의 귀에만 울려 퍼진 그 목소리. '첫 번째가 아니다'라는 말이 자꾸만 반복되며 맴돌았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자꾸 떨렸다. 오른쪽 팔 전체가 떨렸다. 반투명한 피부 위로 일렁이는 빛이 더 선명해졌다. 마치 로딩 바가 차오르듯이.

"뭐야... 이게..."

준호는 거울을 향해 팔을 들었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움직인다. 반응한다. 그런데 감각이 없었다. 마치 남의 팔을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채은이었다.

"준호! 너 지금 뭐 했어? 조회수 미쳤는데?"

준호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어... 그냥... 뭔가 이상한 거."

"이상한 게 뭐야? 이게 진짜 조회수야! 넌 지금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거야. 댓글 봤어? 다들 다음 편을 기다리고 있어."

"다음 편?"

채은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 찼다. 준호는 예전에 이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지. 너 이제 유명한 스트리머야. 이게 시작이야. 내일 스튜디오 와. 협력 요청도 들어왔대. 대형 채널들이."

"아... 알겠어."

준호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 목소리. 그 낮고 차가운 목소리. '첫 번째가 아니다.'

채은이 계속 떠들고 있었지만, 준호의 집중력은 오른쪽 팔에 고정되어 있었다. 반투명한 부분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팔뚝 위쪽까지 번지고 있었다.

"준호? 너 들어?"

"어? 응."

"내일 오후 2시에 스튜디오. 절대 늦지 마. 이건 기회야."

채은이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준호의 휴대폰이 또 울렸다. 이번엔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아까 그 번호와는 다른 번호였다.

준호는 받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뭔가 끌렸다. 마치 자신이 그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여보세요?"

"이준호? 난 정혜진이야."

여자의 목소리였다. 낮고 침착했다. 감정이 없는 목소리였다.

"누구시죠?"

"아직 몰라도 괜찮아. 곧 알게 될 테니까. 너는 지금 아주 위험한 상태에 있어. 알아?"

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뭐... 뭐라고?"

"너의 스트리밍이 너무 빠르게 퍼지고 있어. 그건 좋지 않아. 넥서스가 알아차렸거든."

"넥서스?"

"너는 앞으로 조심해야 할 거야. 특히 도현이라는 남자를 조심해. 그는 너를 제거하려고 할 거야."

"제... 제거?"

"너는 첫 번째가 아니야. 이전에도 많았어. 다 사라졌어."

준호는 전화기를 꽉 쥐었다. 오른쪽 손이었다. 반투명한 손이. 그리고 그 손에 힘이 들어갔을 때, 휴대폰이 으스러졌다. 화면이 깨졌다. 손가락이 그 위에 박혔다. 감각은 없었지만, 휴대폰은 부서졌다.

"이게... 뭐야..."

준호는 손가락을 뺐다. 휴대폰에서 연기가 났다. 그리고 정혜진의 목소리가 여전히 들렸다.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다.

"무섭지? 그게 정상이야. 그건 너의 신체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야. 각 던전마다 너의 몸의 일부가 로딩 상태로 변할 거야. 반투명해지고, 감각이 없어지고... 결국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할 거야."

"왜... 왜 이러는 거야?"

"그건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내가 너한테 조언을 해주자면, 스트리밍을 꺼. 지금 당장. 그럼 넥서스도 너를 잊을 거야.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 그게 가장 안전해."

정혜진의 목소리는 너무나 침착했다. 마치 날씨를 얘기하는 것처럼.

"내가... 내가 스트리밍을 꺼면?"

"그럼 다시 평범해질 거야. 하지만 너는 이미 평범함을 맛봤지? 28,000명의 사람들이 너를 봤어. 그들의 시선이 너에게 얼마나 좋은지 알지? 너는 다시 평범함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준호는 깨진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하지만 오른쪽 팔은 여전히 감각이 없었다. 피가 흐르는 것을 봤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 순간, 준호의 눈앞에 이상한 창이 떠올랐다. 게임 화면처럼. 마치 누군가가 그에게 정보를 주는 것처럼.

[다음 던전 감지됨] [위치: 강남역 지하상가] [난이도: ★★☆☆☆] [진행도: 0% → 15%] [시간 제한: 24시간]

준호는 이 창을 여러 번 눈 깜박거렸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망막에 직접 투영된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이 깨졌는데도 울렸다. 누군가 계속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준호는 손을 뻗었다. 오른쪽 손으로. 그 반투명한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준호. 난 최재욱이야."

준호는 최재욱의 이름을 들었을 때 몸이 굳었다. 그 사람은 3일 전에 만난 스트리머였다.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스트리머였다.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던 그 사람이.

"왜... 왜 전화를 하시죠?"

"너도 시작됐구나. 넌 첫 번째가 아니야. 나도 그랬고, 그 전에 더 있었어. 다 사라졌어. 넌 어떻게 할 거야?"

"사라졌다니... 뭐가?"

"완전히 로딩 상태가 되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 되는 거지. 아무튼, 다음은 너야."

최재욱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마치 이미 죽은 자가 말하는 것처럼.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아, 하나 더. 내일 스튜디오 가지 마. 도현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놈은 진짜 무섭거든."

"도현이?"

"아까 전화했던 놈. 목소리 낮던 놈. 그놈은 우릴 제거하려고 해. 그게 자기 일이거든."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깨진 화면 위에 계속 알림이 뜨고 있었다. 협력 요청, 후원금 알림, 댓글 알림... 모든 것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알림들 사이에, 한 개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내일 오후 2시. 강남역 스튜디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도현]

준호의 손이 떨렸다. 이번엔 왼쪽 손이었다.

그 순간, 준호의 방 구석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아까 포탈이 있던 곳이었다. 검은 포탈이 다시 나타나고 있었다. 천천히, 마치 숨을 쉬듯이.

[다음 던전 감지됨] [위치: 강남역 지하상가] [난이도: ★★☆☆☆] [시간 제한: 24시간]

준호는 그 포탈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반투명해지고 있는 손을.

그 순간, 휴대폰이 또 울렸다. 이번엔 어머니였다.

"준호야? 엄마인데. 넌 뭐 하는 거야? TV에 나왔어."

준호의 목이 메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엄마... 나... 나 잘 있어."

"잘 있긴 뭐가 잘 있어. 넌 뭔가 이상해. 엄마가 느껴져. 뭔가 위험한 일을 하고 있지?"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성공과 평범함 사이에서, 자신이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곳에 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준호? 대답해."

"엄마... 미안해."

그리고 그 순간, 준호의 방 전체가 깜깜해졌다. 정전인 것처럼. 휴대폰만 빛났다. 화면에는 선택지가 떠올랐다.

[스트리밍 종료] [다음 던전 진입]

준호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았다. 반투명한 손가락이.

그 순간, 채팅창이 떠올랐다. 아까 던전에서 들었던 목소리들이.

[미연: 계속 해] [준석: 위험해] [지훈: 뭐하는 거야?] [수진: 대박이다] [태호: 다음은?]

수백 개, 수천 개의 개별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각각 다른 톤으로, 다른 감정으로. 마치 그들이 준호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압박감이 실제로 느껴졌다.

준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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