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낡은 회색이었다.

강남역 지하 주차장. 콘크리트 기둥 앞에 선 자신. 손에 들린 수면제 병. 더 이상 음악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그 밤의 모든 감각이 생생했다.

그리고 지금, 서른여덟 살의 기억이 스물여덟 살의 몸을 점령했다.

일어났다. 낡은 자취방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홍대의 오래된 건물들. 천장의 물때, 벽의 곰팡이 자국, 바닥의 흠집들이 모두 그대로였다. 하지만 이건 불가능했다. 이곳은 2024년 현재 재개발로 사라진 지역이었다.

2014년 1월 15일 수요일. 오전 6시 47분.

스마트폰의 날짜가 그렇게 말했다.

회귀. 10년의 기억이 모두 남아 있었다. 데뷔 직후의 거절들. 김태성 프로듀서의 낙인. "재능이 부족합니다." 박준호라는 천재가 나타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가던 일들. 매달 한 곡씩 만들어도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던 10년. 그리고 어제 밤, 강남역 지하 주차장에서의 그 순간까지.

모든 것이 되돌려졌다.

침대에서 내려앉았다. 냄새도, 온도도, 모든 감각이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기회가 있다는 뜻이었다.

순간 뭔가 목 위쪽에서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음. 머릿속에 직접 새겨지는 문장들.

—1년. 정확히 1년 내에 진정한 히트곡을 완성하지 못하면 시간이 영구 동결된다.

—단순한 차트 1위가 아닌 음악계 전체가 인정하는 명곡이어야 한다.

—저주가 발동되면 의식만 깨어있는 채 영원히 그 순간에 갇힐 것이다.

규칙이 멈췄다. 침묵이 왔다.

거울 속 눈빛은 서른여덟 살의 절망을 담고 있었다. 10년의 기억을 가진 스물여덟 살의 얼굴. 그 불일치가 자신의 현재를 모두 설명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김태성 프로듀서'.

첫 기획사 면접이었다. 10년 전과 똑같은 시간에.

손가락이 떨렸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숨을 고르려 했다. 이 목소리를 10년 동안 피했다. 이 프로듀서의 한 마디가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었다.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한지호 군. 오늘 오후 3시에 우리 스튜디오에 오겠나? 데뷔작 프로듀싱 건에 대해 얘기하고 싶네."

손에 힘이 들어갔다. 10년 전 이 전화를 받았을 때 얼마나 설렜는가. 그리고 그 스튜디오에서 돌아올 때 얼마나 부서져 있었는가.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침대 위에는 여전히 2014년의 옷들이 놓여 있었다. 낡은 청바지, 누런 흰색 티셔츠, 한 번도 입지 않은 검은 셔츠. 면접용이었을 것이다. 검은 셔츠를 집어 들었다.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스물여덟 살의 외모에 서른여덟 살의 눈빛. 이 불일치는 절대 들통나면 안 되는 비밀이었다.

가방을 챙겼다. 낡은 노트북, 녹음기, 수년간 적어둔 음악 이론서들. 이것들이 자신의 무기였다.

강북의 자취방을 나섰다. 거리는 여전했다. 2014년의 서울. 강북 홍대의 허름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노래방, 편의점, 24시간 카페. 이 지역은 음악계에서 '하위 기획사 벨트'로 불렸다. 천재들의 무덤. 실패자들의 온상.

지하철을 탔다. 강남 방향. 창밖으로 스쳐가는 서울의 풍경이 낯설지 않으면서도 낯설었다. 10년 전과 똑같은데 10년이 다르게 느껴졌다.

강남역에서 내렸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고층 빌딩들의 숲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그리고 김태성이 대표인 'Sensation Music'의 본사. 테헤란로 287번지. 32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층수가 증가할수록 공기가 달라졌다. 냉방이 강해지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달라졌다. 강남의 고층 빌딩 32층에서는 서울의 일반적인 공기가 통하지 않았다.

'Sensation Music' 오피스의 문을 열었다. 벽에는 수십 장의 골드 디스크가 붙어 있었다. 1위곡 28개, 2위곡 15개, 3위곡 12개. 김태성의 '감'의 증거였다.

비서가 나타났다. 차가운 인상의 여성.

"한지호 씨죠? 프로듀서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 순간 시간이 멈췄다. 10년 전의 이 장면. 정확히 이 각도에서 김태성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앉아."

명령이었다.

테이블 너머로 김태성이 보였다. 50대 후반의 남성. 회색 머리, 무표정한 얼굴. 그 눈빛은 무엇을 측정하고 있는가?

"자기 음악 한 번 들어보자."

노트북을 꺼냈다. 손이 떨렸다. 10년 전에도 이렇게 떨렸다. 1시간 뒤 자신은 "재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엔 다르다. 이번엔 자신도 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미래의 차트에서 2주간 1위를 유지한 곡. 트렌드를 정확히 따라 설계된 곡.

음악이 나오는 동안 김태성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계속 무언가를 측정하고 있었다. 측정하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음... 괜찮네. 하지만 뭔가 부족해. 알지? 음악에는 '감'이 있어야 해. 그 감이 너한테는 없어 보여."

가슴이 철렁했다. 정확히 10년 전과 같은 말이었다.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재능이라는 건 타고나는 거야. 그런데 자네는..."

지호의 목소리가 나왔다. 떨렸다.

"그렇다면 당신의 '감'은 어떻게 타고나신 건가요?"

침묵이 흘렀다. 김태성의 눈이 흔들렸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감정이 드러났다. 놀라움. 그리고 그것을 감추려는 노력.

"자네가..."

"제 음악이 부족하다면, 그건 당신의 기준이 제 음악과 맞지 않는다는 뜻 아닌가요? 재능 부족이 아니라."

김태성이 의자에 기대앉았다. 처음으로 자신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흥미로운데. 다시 한 번 들어보자."

음악이 다시 흘러나왔다. 이번엔 다른 귀로 듣고 있었다.

노트북을 정리했다.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문을 나갔다. 복도에서 멈췄다. 뒤에서 김태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서야, 다음 신인 보내."

이미 다음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신은 그저 번호 하나일 뿐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층수가 줄어들수록 공기가 변했다.

1층에서 나왔을 때 강남역 지하 주차장이 떠올랐다. 10년 뒤의 자신. 같은 절망. 같은 실패. 같은 거절.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핸드폰을 꺼냈다. 메모장을 열었다.

"김태성의 '감'은 직관이 아니라 자신감일 뿐이다."

지하철을 다시 탔다. 강북으로 향했다. 홍대 방향.

강북의 낡은 스튜디오에 들어갔을 때 이수현이 앉아 있었다.

"오. 면접 어땠어?"

"거절당했어."

지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주먹은 불끈 쥐어졌다.

"아, 그래. 이놈의 업계."

이수현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낡은 건반 앞. 이곳에서 10년을 보냈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안녕하세요, 박준호입니다."

지호의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우리 만나 봤던 적 있나요?"

"처음입니다."

"아, 그럼 안타깝네요. 저는 당신의 음악을 들었거든요. 꽤 흥미로운데, 아직 뭔가 부족해 보여요. 재능이요."

박준호가 웃었다. 그 웃음에는 악의가 없었다. 단지 사실을 말하는 웃음이었다.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같은 말. 또 같은 말. 재능 부족.

"제 생각엔 당신도 음악을 만들어볼 가치는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자주 뵐 것 같네요."

통화가 끝났다.

핸드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박준호. 이 사람도 자신을 '재능 부족'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그 웃음. 우월감이었다.

이수현이 고개를 들었다.

"누가 전화했어?"

"박준호라는 프로듀서야. 내 음악을 들었대. 그리고 재능이 부족하다고 했어."

"박준호? 그 신예 천재? 그런데 넌 그 사람 음악 들어봤어?"

"아직."

"들어봐. 그 사람 진짜 미쳤어. 근데 이상한 게..."

이수현이 턱을 괴었다.

"뭐?"

"그 사람 음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맞다. 너 옛날에 만든 곡이랑 비슷해."

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10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박준호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쳐가던 일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엔 동시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엔 확실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베껴가고 있었다.

"이수현아. 박준호가 내 곡을 베껴 갔어?"

"뭐? 그럼 넌 왜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했어?"

"증명할 수 없었어. 시간이 없었어."

지호는 노트북을 켰다. 박준호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자신의 곡. 자신이 만든 화성 진행. 자신이 설계한 드럼 패턴. 모든 것이 박준호의 곡에 담겨 있었다.

분노가 몸을 타고 흘렀다. 10년을 기다렸다. 10년을 당했다.

"이수현아. 우리 이거 분석해 봐. 음악 이론으로."

"뭘?"

"박준호 음악이랑 내 음악의 유사점을 정확히 파악해 봐. 화성, 멜로디, 구조. 모든 걸."

이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호의 의도를 이해했다.

지호는 다시 건반 앞에 앉았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음이 나왔다. 낮고 무거운 음. 그리고 그 음은 점점 높아졌다.

손가락이 빨라졌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음악이었다. 10년의 절망이 음파로 변환되었다. 반음계를 따라 상승하는 멜로디. 16비트로 분할된 드럼 루프. 신스 음색이 레이어를 이루며 쌓여 올라갔다.

1년. 정확히 1년 안에 모든 것을 음악으로 증명할 것이었다.

건반 위의 손가락들이 그려내는 악보. 음악은 단순한 음의 배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증명이었다.

강북의 낡은 스튜디오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무언가 불타는 것이 있었다.

이수현이 노트북 화면을 들었다.

"지호야. 봐. 박준호의 신곡과 너 곡의 화성 진행이 완전히 같아."

"얼마나?"

"99%. 아니, 100%에 가까워. 이건... 우연이 아니야."

지호의 눈이 빛났다. 드디어. 10년 만에 증거를 손에 쥐었다.

"이수현아. 이 분석을 계속해 줄 수 있어?"

"당연하지. 이건 도용이야. 명백한."

지호는 핸드폰을 집었다. 박준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박준호 씨,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데요."

"네?"

"당신의 신곡 '별의 궤적'. 그 곡의 화성 진행은 어디서 영감을 받으셨어요?"

침묵이 흘렀다.

"왜 그런 걸 묻죠?"

"그냥 궁금해서요. 혹시 제 곡을 들으신 적 있으세요?"

다시 침묵.

"아니요. 처음 들었어요. 오늘 아침에."

거짓이었다. 지호는 알았다. 그 목소리의 떨림이 모든 것을 말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통화를 끊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1년 안에 모든 것을 증명해야 했다. 박준호의 도용을 세상에 알리고,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보여줄 명곡을 만들어야 했다.

건반 위의 손가락들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다른 음악이 나왔다. 더 강렬하고, 더 명확하고, 더 증명적인 음악.

강북의 낡은 스튜디오에서 10년의 시간이 응축된 음악이 울려 퍼졌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