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냉월, 목소리를 담다

협곡의 바람이 한설의 검을 흔들었다.

사파 무술을 연습하던 손이 멈췄다. 밤의 한중간, 천음협곡 입구의 바위 위에서 한설은 검을 내렸다. 정파 무림의 기준으로는 사파의 검은 비뚤어진 것이었다. 굽은 칼처럼 흐르고, 부드럽게 흔들리고, 대지의 힘을 빌렸다. 한설은 그 모든 것을 증오했다. 비뚤어졌다는 이유로, 사파 출신이라는 이유로 천대받던 모든 것들을.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목소리는 자기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한설의 머리 뒤에서 속삭이는 것 같았다. 한설은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협곡의 입구에는 정파의 금지 표지만 서 있었고, 달빛만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분명했다.

'안 들렸나? 더 깊이 들어가.'

한설은 검을 들었다. 사파 검법 '유수검'의 마지막 형태를 취했다. 손목을 흔들어 검의 궤적을 물처럼 그렸다. 정파는 이것을 '비뚤어진 검'이라 불렀다. 하지만 한설에게는 생존의 기술이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상대할 때 필요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바위 위의 검 연습을 멈추고 한설은 협곡 안으로 들어섰다.

협곡은 깊었다. 천 년 전 대전쟁의 격전지라고 불린 곳. 정파는 이곳을 금지했다. 고대 유물이 산재해 있고, 그 중 일부는 현대 무림의 규칙을 벗어난다고 했다. 사파 출신의 한설에게 이 금지는 하나의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정파가 금지한 곳이라면, 거기에 자신이 필요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자갈이 부서졌다. 협곡의 벽은 검은색이었다. 고대의 화염이 태웠던 흔적인지, 아니면 오로지 어둠 때문인지 한설은 알 수 없었다. 달빛이 협곡 위에서만 희미하게 들어왔다.

'깊이 들어가. 더 깊이.'

그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명확해졌다. 한설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고, 그것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파의 세상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는 없었다. 어머니도 죽었고, 사파의 스승들도 그를 '불운한 자식'이라 여겼다. 정파의 눈에는 그저 사파의 이단아일 뿐이었다.

협곡의 깊숙한 곳에 폐허가 나타났다.

무너진 건물의 골격이 남아있었다. 기둥들이 하늘을 향해 부러진 손가락처럼 솟아있었다. 그 사이로 유골들이 흩어져 있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검객들의 유골. 그들의 검들도 함께 있었다. 하나 둘 셋. 적어도 여섯 개 이상의 검이 협곡의 먼지 속에 묻혀있었다.

그 중 하나가 달빛을 받고 있었다.

검은 푸른 빛을 흡수했다. 마치 달빛 자체를 담아내려는 듯이. 한설은 그 검 앞에 멈췄다. 검의 이름을 몰랐다. 하지만 몸이 반응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것이다. 이것이 너를 위한 검이다.'

한설은 손을 뻗었다.

검을 집어드는 순간, 세상이 멈췄다.

뇌를 관통하는 울음이 있었다. 음악이 아니었다. 검의 울음이었다. 천 년 동안 누군가를 기다리던 울음이 한설의 머리뼈를 진동시켰다.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전율. 팔뼈를 흐르는 번개 같은 감각. 한설의 몸은 펴졌다. 마치 갇혀있던 새가 날개를 펴는 것처럼.

"너는 나의 후계자다."

목소리가 검 안에서 나왔다. 더 이상 협곡의 바람이 아니었다. 한설의 뇌 속에서 직접 울려 퍼졌다. 남성의 목소리. 낮고 묵직하고 천 년의 세월을 품은 목소리.

"천 년을 기다렸다. 완성을 위해."

한설의 손이 떨렸다. 정파가 부정했던 모든 것에 대한 인정이 이 순간 내려왔다. 사파 출신의 자신을 선택한 존재가 있다는 것. 자신의 검술에 가치가 있다는 것. 정파의 낙인 따위는 상관없다는 목소리가 천 년의 세월 속에서 울려나왔다.

"너는 약하지 않다. 너는 인정받은 자다."

한설의 눈가가 따끔거렸다. 눈물이 맺혔지만 흘리지 않았다. 검을 들었을 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신체 전체가 현처럼 울리고 있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부풀어 올랐다.

"이제 보여줘라. 진정한 검객이 무엇인지."

한설은 검을 들어올렸다. 냉월이라는 이름을 아직 모르던 그 검을 들어올렸다. 협곡의 폐허 앞에서, 다른 검객들의 유골 위에서.

그리고 휘둘렀다.

검이 협곡의 돌을 베었다. 정파의 검이라면 불가능한 각도에서, 불가능한 속도로. 돌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먼지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한설의 손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푸른 빛이었다. 검에서 나온 빛이 한설의 손을 통과했다.

손가락이 창백해졌다. 손가락 끝에서 손목으로 향해 1cm씩 창백함이 번져나갔다.

피가 흘러내렸다. 검에서 나온 빛이 손을 태웠다. 아니, 손 자체를 소비했다. 한설의 내공이 함께 빨려 나갔다. 통증이 아니었다. 존재 자체가 깎여나가는 감각이었다.

"대가의 시작이다."

영혼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마치 처음부터 예정된 일을 말하는 듯이.

"매 검격마다 너는 죽어간다. 이것이 완성의 대가다."

한설은 손을 들었다. 창백한 손가락. 그 위에는 아직도 검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고통이 아니었다. 정당성이었다. 이 고통만이 자신이 정파와 다르다는 증거였다. 이 죽음만이 자신의 검술이 천 년의 검술과 닿아있다는 확인이었다.

"두렵지 않은가?"

한설은 웃음을 흘렸다. 사파 출신으로 살아온 날들이 모두 죽음 아닌가. 정파의 천대 속에서, 낙인 속에서, 모욕 속에서 매일 죽어왔다. 이제는 검으로 죽는 것이다. 더 나은 죽음이었다.

"무림맹주가 되겠다."

한설이 말했다. 협곡의 어둠 속에서, 다른 검객들의 유골 위에서.

"이 검으로."

영혼이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한설은 무언가를 느꼈다. 검 안의 영혼도 자신과 같은 누군가라는 것. 같은 길을 걸어온 누군가라는 것. 그 순간, 한설의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이 피어올랐다. 이 영혼이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느껴졌다.

한설은 그 침묵을 받아들였다. 검을 다시 들어올렸다. 다시 휘둘렀다.

또 다른 돌이 갈라졌다. 또 다른 빛이 흘러나왔다. 또 다른 생명이 소비됐다. 팔뚝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손가락의 창백함이 손등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한설은 멈추지 않았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몸은 죽어갔다. 그리고 그 죽음 속에서, 천 년의 검술이 한설의 근육과 뼈에 새겨졌다. 손목의 움직임이 더 정교해졌다. 발의 디딤이 더 정밀해졌다. 호흡이 검과 하나가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한설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영혼이 자신을 원하는 것이 단순한 도구로서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 자신의 죽음을 통해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한설은 느꼈다. 검 안의 영혼도 변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과 함께 변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해라."

영혼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전의 차가움이 옅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오랫동안 닫아둔 문을 천천히 여는 것처럼.

"너의 죽음이 곧 나의 영원이 될 것이다."

한설은 웃음을 흘렸다.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이 의미를 가졌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누군가의 외로움을 함께 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협곡의 밤은 깊어만 갔다.

---

사파 도장의 대청에 한설이 들어섰다. 서운이 먼저 그를 봤다. 노인의 눈이 순간 찌푸려졌다.

"어디 다녀온 것인가?"

서운이 물었다.

"천음협곡."

한설이 대답했다.

서운이 일어섰다.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곳은 정파의 금지 구역이다. 무엇을 했는가?"

한설이 냉월을 천천히 꺼냈다. 검의 표면이 미묘한 빛을 발했다. 서운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이것이..."

"냉월이다."

한설이 말했다.

"천 년 전 마검이다."

서운이 한설에게 다가왔다. 손을 뻗어 냉월을 만지려 했다. 하지만 멈췄다. 검 주변의 공기 자체가 차가웠다. 서운은 한설의 손을 봤다. 창백해진 손가락. 그리고 그것이 손등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공포가 그의 눈을 가득 채웠다.

"대가가 있을 것이다."

서운이 말했다.

"이런 것들은 항상 대가가 있다."

"알고 있다."

한설이 말했다.

"사용할 때마다 생명력이 소비된다. 손가락 끝에서 손목으로 향해 매일 1cm씩 창백해지고 있다."

"그럼 왜 들었는가?"

서운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손이 한설의 팔을 잡았다. 그 손에는 분명한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죽음은 이미 정했으니까."

한설이 대답했다.

"이제는 그 죽음을 의미 있게 만들 차례다."

서운이 뒤로 물러섰다. 그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안타까움, 분노, 그리고 무언가 다른 감정. 그는 한설을 바라봤다. 이 청년이 정말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냉월은 축복이 아니다."

서운이 말했다.

"그것은 저주다. 정파의 검객들이 그것을 들었을 때도 모두 죽었다. 그들은 그 검으로 강해졌지만, 동시에 소진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저주면 어떤가?"

한설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나는 이미 저주받고 있지 않은가? 매일. 사파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서운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는 한설의 눈을 봤다. 그 눈 속에 있는 절망과 결연함을 봤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눈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이 청년의 결심은 이미 검 속에 새겨져 있었다.

"무림맹주 선거전에 나갈 것인가?"

서운이 물었다.

"예."

한설이 대답했다.

"냉월로."

"그럼 정파는 너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서운이 말했다.

"강산을 비롯한 원로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협곡의 유물이 깨어났다는 것을."

"알게 두는 게 낫다."

한설이 말했다.

"두려움이 없으면 경계도 없다."

서운이 한설을 바라봤다. 그 청년은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속도는 빨랐다. 냉월을 들었을 때부터 시작된 변화. 서운은 그것이 단순한 힘의 증가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너를 도와주겠다."

서운이 말했다.

"사파는 너의 편이다."

"감사하다."

한설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 싸움은 내가 혼자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

서운이 말했다.

"사파 전체가 함께한다. 너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이고, 너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다."

한설이 검을 다시 집어들었다. 손가락이 다시 창백해졌다. 하지만 한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은 정당성이었다. 이 고통만이 자신이 정파와 다르다는 증거였다.

---

협곡을 나온 지 사흘 뒤, 한설은 공식적으로 무림맹주 선거전 출마를 선언했다.

사파 출신이 정파의 무림맹주 자리에 도전한다는 소식은 무림 전체를 뒤흔들었다. 정파의 기득권은 즉시 움직였다.

정파 무림맹의 원로 회의실에서 강산이 창문을 통해 밤의 무림을 내려다봤다. 임호와 백현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한설이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임호가 보고했다.

강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냉월을 들었다는 것은, 그가 이제 우리를 도발한다는 뜻이다. 무림맹주 선거전에 나설 명분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를 지금 당장 제거해야 합니다."

임호의 목소리에 성급함이 묻어났다.

강산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니다. 모든 것이 명분이 필요하다. 사파 출신이 정파의 유물을 도용했다는 증거가 필요하고, 그 증거를 들고 원로단에 가서 정중하게 제거를 요청해야 한다."

백현이 입을 열었다.

"냉월은 천 년 전 대전쟁의 유물입니다. 그것이 깨어났다는 것은..."

"협곡에는 냉월만 있지 않다."

강산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곳은 천 년 전 검객들의 무덤이자, 우리가 봉인한 장소다."

침묵이 흘렀다.

"한설이 냉월을 휘두를수록, 그의 흔적이 명확해질수록, 우리의 제거 명분도 강해진다."

강산이 계속했다.

"냉월은 축복이 아니다. 그것은 저주다. 사용할수록 사용자는 소진된다. 이것이 우리가 그것을 봉인한 이유다."

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한설은 자신이 무엇을 집어들었는지 모를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기회다."

---

삼일 뒤, 한설의 몸은 변하고 있었다.

손가락의 창백함은 손등 중간까지 올라와 있었다. 매일 1cm씩 죽음이 진행되고 있었다. 팔뚝이 차가워졌다. 심장의 박동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뛰었지만, 그 박동은 불규칙했다.

밤마다 한설은 협곡으로 돌아갔다.

냉월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돌을 베고, 또 베었다. 매 검격마다 몸이 죽어갔고, 그 죽음 속에서 천 년의 검술이 새겨졌다. 영혼의 목소리는 매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계속해라. 완성을 위해."

그리고 한설은 계속했다.

협곡의 어둠 속에서, 한설은 자신의 죽음이 무림의 변화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냉월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협곡에 묻혀있던 다른 검들이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영혼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진실이 있다는 것을.

천 년 전, 냉월의 검객이 왜 죽어야 했는지.

왜 검 속에 갇혀야 했는지.

한설이 협곡 깊숙한 곳으로 발을 내딛을 때마다, 폐허의 다른 검들이 미세하게 울렸다. 마치 깨어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냉월의 울음이 그들을 깨우고 있었다.

한설은 그 울음을 듣지 못했다.

오직 냉월의 목소리만 들었다.

천월의 영혼만 믿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