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밤 11시, 문이 잠긴다

오후 6시 정각. 유진의 손이 멈췄다.

반납 도서 스캐너에서 기계음이 울렸다. 한 권, 두 권, 셋. 손가락이 정확하게 움직였다. 3년을 같은 자리에서 반복한 손가락의 기억이었다.

그런데 손에 뭔가가 들려있었다.

낡은 책이었다. 언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손에는 이미 책이 들려있었다. 표지는 누렇게 변했고, 모서리는 해져있었다. 그리고 그 위의 필체는—자신의 필체였다.

'그날의 도서관.'

유진은 책을 놓으려고 했다.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책이 자신의 손의 일부가 된 것처럼.

"뭐지?"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유진이 힘을 주어도, 손가락을 펼쳐도 책은 붙어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

김준호 도서관장이 열람실 카운터에 나타났다. 회색 정장, 늘 같은 각도의 안경. 그는 유진의 어깨 높이에서 뭔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11시 이후로는 절대 남아있으면 안 돼. 알겠지?"

"네,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번엔 진짜 중요해. 11시 정각이 되면 문이 자동으로 닫혀. 그 전에 반드시 나가야 돼."

유진은 손에 들린 책을 내려놨다. 도서관장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보통과 다른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왜요?"

"그냥... 규칙이야."

그 말이 전부였다. 김준호는 돌아섰고, 유진의 시선을 피했다. 그 순간 이은희 사서가 서고에서 나왔다. 유진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그 표정은 미안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것처럼 보였다.

"그때 당신이 한 선택은..."

이은희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마치 누군가가 목을 졸라매는 것처럼.

"...나현이가 말했어. 책의 위치를..."

말이 끝나지 않았다. 이은희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치 자신이 말한 것도 믿지 않는 듯이. 그녀는 고개를 돌렸고, 그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인위적이었다.

*그녀가 뭔가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유진의 가슴이 철렁내렸다. 손에 든 책이 무거워졌다.

오후 6시 30분. 청소 담당자 박철수가 밀대를 끌고 나타났다. 그는 노인이었고, 도서관의 구석구석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손은 항상 어딘가 떨렸다.

"유진 씨, 저기 지하 서고로는 절대 내려가지 마세요."

"지하 서고요?"

"네. 그 문을 절대 열지 마세요. 아무리 궁금해도, 아무리 필요해도."

박철수의 목소리는 간청에 가까웠다. 유진은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는 항상 부드러웠는데, 지금 그의 눈은 진지함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무언가 더 있었다. 죄책감.

"알겠습니다."

"정말로요. 약속해주세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철수는 그제야 안심한 듯 밀대를 밀며 떠났다. 하지만 유진의 등뒤에서 그가 뭔가를 중얼거렸다. 구분되지 않는 말들이었지만, 그 중 "11시"라는 단어는 명확했다.

*지하 서고. 그곳에 뭔가 있다.*

유진은 손에 들린 책을 다시 들어올렸다. 페이지를 펼쳤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3년 전 그날 밤,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웃었다. 그 웃음이 모든 것을 시작했다."*

글을 읽는 순간, 뭔가가 유진의 머리 속에 울렸다. 비명 소리였다. 여성의 비명.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유진, 왜 그랬어?"

유진은 책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그 목소리는 누구인가. 자신이 아는 누군가.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오후 10시 50분. 도서관은 비어있었다. 대출자들은 모두 나갔고, 직원들도 하나둘 떠났다. 이은희는 이미 떠났고, 김준호는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박철수는 1층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유진은 반납 도서함을 비우고 있었다. 마지막 확인. 이것이 일상이었다. 또는 반복이었다.

손에는 여전히 책이 들려있었다. 그 책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밤 10시 55분, 조명이 한 번 깜박였다.

유진의 손이 멈췄다. 정전? 아니었다. 1초 후 조명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깜박임은 뭔가를 알렸다. 마치 도서관 전체가 숨을 쉬는 것처럼.

"어?"

유진이 카운터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사무실 불이 꺼졌다. 그리고 2층 서고의 불이 꺼졌다. 1층 열람실의 조명들이 한 줄씩 꺼져갔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스위치를 내리고 있는 것처럼. 하나, 둘, 셋. 마치 자신이 책을 세던 것처럼.

밤 11시 정각.

모든 조명이 한 번에 깜박였다. 그리고 켜졌다. 하지만 그 밝기는 다르게 느껴졌다. 더 차갑고, 더 희미했다. 마치 다른 세계로 진입한 것처럼.

"뭐 하는 거야?"

유진이 현관으로 걸어갔다. 문이 있었다. 도서관 입구의 대형 유리문. 그녀는 손잡이를 잡고 밀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밀었다. 더 힘을 주었다. 여전히 닫혀있었다.

"도서관장? 박철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유진은 문 위의 카드키 인식기를 봤다. 빨간 불이 켜져있었다. 닫힘 상태.

그녀는 열람실로 돌아왔다. 창문들을 봤다. 모두 창틀이 내려가 있었다. 자동으로. 현재 날씨는 맑았고, 창 밖으로는 도시의 야경이 보였다. 하지만 그 야경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림처럼.

유진은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발소리가 울렸다. 도서관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나? 에어컨 음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호흡도 크게 들렸다.

2층은 서고였다. 책장들이 미로처럼 배열되어 있었다. 유진은 비상계단을 찾기 시작했다. 어딘가 있어야 했다. 모든 건물에는 비상계단이 있다.

책장 사이를 헤맸다. 모서리, 모서리, 또 모서리. 계단은 없었다. 대신 책장들이 자꾸만 길을 막았다. 유진이 움직일 때마다 책장의 위치가 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제도 이 길을 돌았다. 같은 모서리를 몇 번이나 지나갔다. 그건 말이 안 됐다. 책장은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막혔다.

그 순간, 책장 사이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책들이 제 위치에서 흔들렸다. 아주 미세하게.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책장을 밀고 있는 것처럼.

"누가... 있어?"

책장이 더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낮고 침착한 웃음. 여성의 웃음이었다.

"나현이?"

유진은 그 이름을 입에서 꺼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이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것이 이상했다. 하지만 동시에 당연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던 것처럼.

책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앞으로. 그 위의 책들이 모두 쏟아져 내렸다.

연쇄 반응이 시작되었다. 옆의 책장이 흔들렸다. 그 다음 책장도. 마치 도미노처럼. 책들이 쏟아져 내렸고, 유진은 뛰기 시작했다.

계단이 보였다. 내려가는 계단이 아니라, 그 옆의 계단. 어제는 이 계단이 여기 있지 않았다. 지금 보인다. 그 계단을 내려가면—

발이 헛디뎠다.

아주 작은 헛디딤이었다. 하지만 충분했다. 신발이 계단 모서리에 걸렸고, 유진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손이 난간을 잡으려 했지만 닿지 않았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 등이, 옆구리가, 팔이 계단에 부딪혔다. 각 충격이 신체의 다른 부분을 깨웠다. 통증이 뒤따랐지만, 낙하 중에는 통증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마지막 계단에서 목이 부딪혔다.

그 순간 시야가 흰색으로 변했다. 뜨거운 불빛이 눈을 태웠다. 그 다음은 검은색이었다. 깊고 차가운 검은색. 마치 물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의식이 흐릿했다.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유진은 자신의 손이 뭔가를 잡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딱딱한 것. 책이었다.

책이 자신의 손 위에 놓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내려놓는 것처럼.

책의 표지에 제목이 있었다. 유진은 그것을 읽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눈이 열리지 않았다.

"그날의 도서관."

누군가의 목소리였나? 아니면 자신의 목소리였나?

그리고 어둠. 깊고 무거운 어둠. 그 속에서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낮고 침착한 웃음.

"유진, 지하로 내려가."

---

오후 6시.

유진은 도서관 카운터 뒤에 서 있었다. 손에는 책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눈을 깜박였다. 한 번, 두 번, 셋. 현실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뭐지?"

손에 들린 책은 낡았다. 표지는 누렇게 변했고, 모서리는 해져있었다. 그리고 그 위의 필체는 자신의 필체였다.

유진은 책을 펼쳤다. 첫 장의 글씨는 또렷했다.

*"3년 전 그날 밤,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웃었다. 그 웃음이 모든 것을 시작했다."*

글을 읽는 순간, 뭔가가 유진의 머리 속에 울렸다. 비명 소리였다. 여성의 비명.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그리고 그 비명 속에는 자신의 이름이 포함되어있었다.

"유진, 왜 그랬어?"

유진은 책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책장을 다시 봤다. 같은 제목, 같은 필체의 책이 여러 권 있었다. 어디서 이런 책들이—

아, 맞다. 오후 6시였다. 다시. 또다시.

밤 11시가 올 것이었다. 그리고 또 무언가 일어날 것이었다.

유진은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날 어머니는 도서관에 오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갔다."*

비명 소리가 더 커졌다. 이번엔 여러 목소리였다. 하나, 둘, 셋.

그 중에 자신의 목소리도 있었다.

유진은 깨달았다. 이것이 반복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다는 것을. 책을 읽을 때마다 더욱 명확해지는 죄책감.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자신이 해친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밤 11시가 다시 올 것이었다. 그리고 죽음이 다시 올 것이었다. 더 끔찍한 방식으로.

카운터 벽에는 낡은 자국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벽에 몸을 내팽개쳤을 때의 자국처럼. 유진은 그 자국을 처음 본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혈흔이었다. 이제 명확했다.

손에 든 책의 페이지가 자동으로 넘어갔다. 유진은 저항하지 않았다. 읽어야 했다. 반복에서 벗어나려면.

하지만 읽을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선택했다. 기억을 지우기로."*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유진은 자신의 이름을 잊을 뻔했다.

2시간 53분 후, 밤 11시가 올 것이었다.

오후 6시 17분.

유진은 책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책장의 가장자리를 잡고 몸을 지탱했다. 세상이 조금씩 기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서 있는 바닥이 단단하지 않은 것처럼.

"뭐가 이래."

혼잣말이 나왔다. 목이 갈라있었다. 아까 계단에서 넘어질 때 목을 다쳤을 리 없다.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 오후 6시로 돌아왔으니까.

그런데 목이 정말 아팠다.

유진은 거울을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카운터 옆 벽면에 붙어있는 작은 거울이 보였다. 다가가 자신의 목을 살펴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깨끗한 피부, 흠집 하나 없었다.

하지만 통증은 남아있었다.

"이게... 뭐지?"

유진은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자신의 목을 더듬었다. 차갑고 부드러운 목. 그런데 어딘가 낯설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목을 만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피부의 결도, 목의 굵기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거울을 더 가까이 들었다.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눈, 코, 입. 모두 제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뭔가 낯설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쓰고 있는 것처럼.

"이상해."

유진은 손을 펼쳤다. 손가락들을 봤다. 손등의 주름, 손톱의 모양. 낯설었다. 이 손이 정말 자신의 손인가?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펼쳤다 오므렸다. 움직임은 자신을 따랐지만, 감각은 멀리 있었다.

책이 손에서 떨어졌다. 유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책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카운터 위에 놓여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것처럼.

"누가... 놨어?"

도서관은 조용했다. 오후 6시. 폐관까지 5시간이 남아있었다.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이은희 사서는 이미 퇴근했고, 김준호 도서관장은 사무실에 있을 것이다. 박철수는 어디에 있을까? 청소 시간인 것 같은데.

유진은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페이지를 펼쳤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3년 전 그날 밤,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웃었다. 그 웃음이 모든 것을 시작했다."*

글을 읽는 순간, 이미지가 떠올랐다. 흐릿한 이미지였지만 분명했다. 도서관의 조명. 누군가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의 주인이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이상했다.

비명 소리가 들렸다. 머리 속에서가 아니라 귀에서. 여성의 비명. 먼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희미했지만, 점점 커지고 있었다.

"유진, 왜 그랬어?"

목소리가 명확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화나 있었다. 아니, 화난 것을 넘어서 있었다. 절망했다. 포기했다.

유진은 책을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책장이 계속 넘어갔다.

*"그날 어머니는 도서관에 오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갔다."*

어머니.

단어가 유진의 뇌를 강타했다. 어머니. 3년 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단어. 아니,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파편적이었지만. 어두운 복도. 책 냄새.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 어머니의 목소리였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였나?

"안 돼."

유진은 책을 집어 던지려고 했다.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책이 자신의 손의 일부가 된 것처럼.

다시 읽혔다. 유진은 자신의 눈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페이지를 따라가고 있었다. 저절로.

*"그날 밤, 나는 선택했다. 기억을 지우기로."*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뭔가가 유진의 머리 속에서 흔들렸다. 마치 책장이 무너지는 것처럼. 기억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또는 모여들고 있었다. 구분이 안 갔다.

혼란이 밀려왔다. 분노도 있었다. 그리고 깊은 호기심.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이게 뭐야. 이게 뭐하는 거야."

유진은 책을 바닥에 팠다. 이번엔 책이 손에서 떨어졌다. 책은 바닥에서 튕겨 나갔다. 그리고 카운터 뒤 책장 사이로 사라졌다.

유진은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철렁내렸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 잃어버린 게 아니라 놓쳐버렸다. 시험 문제를 푸는 중에 연필을 떨어뜨렸을 때의 그런 느낌.

"박철수?"

유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박철수 아저씨, 계신가요?"

대답이 없었다. 도서관은 여전히 조용했다.

유진은 책장 사이로 몸을 밀어넣었다. 책이 보였다. '그날의 도서관'. 표지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유진은 몸을 굽혔다. 손을 뻗었다.

책을 집어 들려는 순간, 무언가가 유진의 팔을 잡았다.

"아!"

유진은 비명을 질렀다. 돌아섰다. 누군가가 있었다.

이은희였다. 사서 이은희. 하지만 평소의 이은희가 아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유령을 본 것처럼.

"그 책을... 읽으면 안 돼."

이은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도 떨리고 있었다. 유진의 팔을 잡은 손이.

"어... 뭐예요?"

"그 책을 읽을수록... 넌 사라진다. 너는 점점 다른 누군가가 되어간다."

이은희의 눈이 흔들렸다. 눈물이 맺혀있었다. 하지만 흘리지 않았다. 마치 울 자격이 없다는 듯이. 그녀가 막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눈물을 흘릴 여유가 없었던 것처럼.

"당신이 한 선택은... 그날 밤 나현이가 책을 숨겼어. 그 책들을 찾으려고 했던 거야. 그런데..."

이은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사라졌다. 입이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목이 타버린 것처럼.

유진은 혼란에 빠졌다. 분노가 솟아올랐다. 이은희가 뭔가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명확했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이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뭐라고요? 뭐가..."

"11시야. 조심해. 이번엔..."

이은희가 팔을 놓았다. 유진에게 등을 돌렸다. 빠르게 걸어갔다. 사무실 방향으로.

유진은 그 모습을 바라봤다. 이은희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울고 있었나? 아니면 두려워하고 있었나? 둘 다였을 것이다.

책이 여전히 손에 들려있었다.

유진은 책을 들어올렸다. 표지를 봤다. '그날의 도서관'. 필체는 자신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글씨가 흔들려있었다. 마치 쓸 때 손이 떨렸던 것처럼.

시계를 봤다. 오후 6시 23분.

4시간 37분.

밤 11시가 올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 일어날 것이었다. 더 끔찍한 방식으로.

유진은 책을 펼쳤다. 페이지를 넘겼다. 이번엔 자신의 의지였다. 알고 싶었다. 뭐가 일어났는지. 왜 자신이 기억을 지웠는지. 왜 이은희가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3년 전, 내 이름은 유진이 아니었다."*

유진의 손이 얼어붙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리 속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러 목소리가 겹쳐진 비명. 그 속에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도 있었고, 자신이 부르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목소리. 낮고 침착한 목소리가 말했다.

"유진, 지하로 내려가."

유진은 책을 닫았다. 하지만 문장들이 계속 떠올랐다. 마치 눈을 감아도 보이는 후광처럼.

그리고 깨달았다.

이것은 반복이다. 그리고 자신은 이것을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벗어날수록,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간다.

카운터 벽의 낡은 자국을 다시 봤다. 혈흔이었다. 이제 명확했다. 누군가가 벽에 몸을 내팽개쳤을 때의 자국. 그 자국이 이제 보였다. 또렷하게.

밤 11시까지 4시간 37분.

유진은 책장을 노려봤다. 그 사이에는 또 다른 책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자신의 필체로 쓰인 책들. 각각 자신의 기억의 조각을 담고 있을. 나현이가 숨긴 책들.

모두 읽어야 했다. 반복을 끝내려면. 그렇지 않으면 또 죽을 것이었다. 그리고 또 오후 6시로 돌아올 것이었다.

하지만 매번 읽을 때마다, 자신이 조금씩 사라질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 것이었다.

유진은 천천히 걸어갔다. 도서관의 2층으로. 서고로.

그리고 그 너머로. 지하로.

어둠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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