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내려놓음

수술실의 조명은 변하지 않았다. 같은 백색 LED, 같은 냉각음, 같은 금속음. 하지만 이준호의 손은 달랐다.

메스를 들었을 때 떨리지 않았다. 3개월 전, 밤 10시 32분 복도의 벤치에서 손가락을 반복해 펼쳤다 폈다 하던 그 떨림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대신 다른 것이 들어왔다. 의심.

"흡인."

간단한 지시였다. 레지던트 박준영이 즉시 반응했다. 이준호는 노트했다—그 즉각성이 더 이상 공포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것을. 예전의 박준영은 이준호의 눈빛 하나로 움직였다. 신의 종처럼. 지금 박준영은 의료진으로서 움직였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센터장이 아닌 일반 외과의가 된 이준호를 보며, 의료진들도 천천히 변하고 있었다.

환자는 51세 여성. 심부전 3단계, 대기 시간 2년 4개월. 의료기록은 명확했다. 혈액형 적합도 AB형 양성, 해부학적 적합도 90.2%. 통계적 긴급성도 높았다. 그리고 의료적 기준은 그것뿐이었다.

이준호는 수술 전 환자의 가족 정보를 확인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흉골을 절개했을 때,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심장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반복되는 움직임. 마치 자문하듯. *이 결정이 맞는가?* 손가락이 묻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준호는 자신을 믿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증자 심장의 좌심실 벽 두께가 예상보다 1.2밀리미터 얇다. 재검토가 필요하다."

수술실이 멈췄다. 마취과 의사 김민준이 모니터를 재확인했다. 간호사들이 서로 눈을 맞췄다. 이런 일은 없었다. 이준호 센터장은—아니, 이제 일반 외과의 이준호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재검토한 결과도 같습니다. 심실벽 두께 10.8밀리미터."

"그렇다면 이식 후 거부반응 위험이 표준 편차 3배 이상이다. 기증자 교체를 국가 배분 센터에 요청한다."

침묵이 흘렀다. 수술실의 침묵은 무게가 있었다. 20년의 경력 속에서 처음으로 '이 결정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낸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 수술실을 지배했다.

"센터장님이 다시 한번 확인하시겠습니까?"

박준영의 물음. 예전이라면 무례였을 것이다. 센터장의 판단을 의심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것은 의료진의 책임감 있는 질문이었다.

"아니다. 내 판단이 정확할 수도, 틀릴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 본다. 그것이 의료다."

수술은 중단되었다. 환자는 마취 상태로 4시간을 더 견뎠고, 국가 배분 센터는 2시간 후 새로운 기증자 심장을 배치했다. 그 심장으로 이식 수술은 성공했다. 그리고 이준호는 수술 후 회의실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불확실성을 기록했다.

*"초기 판단에서 기증자 심실벽 재측정으로 인한 지연 발생. 환자 예후는 양호. 의료적 판단의 재검토 필요성 입증. 의료진 간 상호 감시 체계의 중요성 재확인."*

병원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그 기록은 동료 의료진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준호가 자신의 판단을 의심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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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6시 47분, 강신혜 의료윤리위원장의 사무실 앞.

이준호는 문을 두드렸다. 노크하는 손도 떨렸다. 하지만 이전의 떨림이 아니었다. 불안정함이 아니라, 겸손함의 떨림이었다.

"들어오세요."

강신혜는 책상 위에 파일을 펼쳐놓고 있었다. 초록색 폴더에는 이준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폴더는 5년 동안 쌓인 기록이었다. 제외된 환자들의 얼굴, 그들의 소득 기록, 그들의 사망 시간.

"이준호 의사님, 앉으세요."

강신혜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은 온정이 아니라, 원칙을 지킨 사람의 냉정함이었다.

"3개월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환자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제가 본 것이 정말로 환자인지, 아니면 수술 성공률의 변수인지."

이준호는 앉지 않았다. 선 채로 말했다.

"그 구분이 어려웠습니다. 20년을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강신혜는 그의 얼굴을 오래 봤다. 센터장으로서의 이준호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이준호를 보는 듯했다.

"오늘 새로운 장기 배분 시스템이 공식 발표됩니다. 5인 위원회의 권력이 균등하게 분산되고, 의료적 기준만을 적용합니다. 센터장님의 직관적 판단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강신혜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순간, 이준호의 눈에서 무언가 흘렀다. 눈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자신의 오만함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는 신호였다. 마치 수술 후 봉합선이 아무는 것처럼.

"박민철 환자의 추도식이 내일 오전입니다. 아시고 계신가요?"

이준호의 눈물이 멈췄다.

"예."

"가실 건가요?"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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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10시 23분, 강남 장지공원.

박민철의 묘 앞에는 20여 명이 서 있었다. 아내 박영희, 아들 박준우, 그리고 박민철이 다녔던 공장의 동료들. 그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3개월이 지났지만, 죽음은 여전히 신선했다.

이준호가 걸어왔다.

박준우의 얼굴이 굳었다. 여전히 미움은 식지 않았다. 그것은 합리적인 미움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미움.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준호는 박영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오만함이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을 어떤 말로 표현할 것인가. 그런 말은 없었다.

이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박영희의 손이 떨렸다. 박준우가 어머니를 붙잡았다. 그리고 이준호는 깊게 절을 했다. 90도 이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의사의 목소리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의 목소리였다.

이준호가 절을 푼 후 일어섰다. 박준우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박영희의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았다. 수용도, 거부도 아닌, 단순한 현실의 무게만 있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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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후, 의료윤리위원회 본회의.

새로운 장기 배분 시스템이 공식 발표되었다. 강신혜가 새로운 의장이 되었고, 위원 5명의 권력은 완전히 균등했다. 의료 기준 3가지(긴급성, 대기 시간, 적합도), 그리고 그것뿐이었다.

회의실의 한쪽 벽에는 통계 자료가 붙어 있었다. 제외된 환자 23명. 그들의 평균 소득. 그들의 사망률. 반대편에는 선택된 환자 31명의 자료가 있었다. 평균 소득 5,100만원 이상. 생존율 92%.

"이것이 의료입니까?"

강신혜의 질문이 회의실을 채웠다. 하지만 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이었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미세한 움직임.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반복되는 진동. 그의 호흡이 깊어졌다. 코로 천천히 들이마신 공기. 입으로 내보내는 숨. 그리고 눈빛이 변했다. 그것은 더 이상 확신의 빛이 아니었다. 자신의 오만함을 직면하는 인간의 눈빛이었다.

"이것은 신이 되려는 인간의 기록입니다."

강신혜가 계속했다.

"지난 5년 동안 센터장이 제외시킨 환자 중 78%가 3개월 이내에 사망했습니다. 특히 박민철 환자의 경우, 초기 의료 평가에서는 '수술 적응 가능'이었음에도 센터장의 재평가 이후 '부적응'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 변경은 의료 기준이 아닌 환자의 사회적 배경 변화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의 떨림만 계속되었다.

"센터장, 혹시 반박할 사항이 있으신가요?"

강신혜가 물었다. 그 질문도 형식이었다. 이미 판단은 끝났다.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다. 목이 메었다. 세 번째 시도에서야 말이 흘러나왔다.

"없습니다."

그 두 글자가 회의실을 채웠다. 테이블 위의 손가락 떨림이 멈췄다.

"당신은 의료 판단을 했다고 생각했습니까?"

"아니요. 제가 하던 것은 신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누가 살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그것은 더 이상 항변하지 않는 목소리였다.

강신혜의 표정이 움직였다. 비난에서 확인으로 바뀌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결정을 발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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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은 명확했다.

이준호는 센터장 직책에서 해임되었다. 의료사고 신고가 검찰에 제출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병원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5명의 위원회. 완전한 권력 분산. 의료 기준만을 사용한 배분 시스템.

강신혜가 새로운 의장이 되었다.

"센터장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복도에서 강신혜가 이준호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제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의료는 기술이 아닙니다. 의료는 책임입니다. 당신은 기술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책임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책임은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이준호는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패배의 눈물이 아니었다. 자신의 오만함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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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후, 새로운 시스템의 첫 수술.

이준호는 일반 외과의가 되었다. 센터장이 아닌 외과의. 그것은 16년 만의 하강이었다.

수술실에 환자가 들어왔다. 58세 남성, 말기 폐섬유화증. 의료 기준상 긴급성 4단계. 대기 시간 2년 8개월.

이준호는 환자의 가족 정보를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의료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메스를 들었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16년간 갈고닦은 기술은 여전했다.

"흡인."

수술이 시작되었다. 환자의 폐를 제거했다. 기증자의 폐를 이식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했다.

하지만 수술 도중, 이준호는 자신에게 계속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 결정이 맞는가?'

수술이 끝났다. 환자는 살았다. 의료적으로는 성공이었다.

그런데 이준호는 회의실로 가서 기록했다.

*"수술 성공. 예후 양호. 그러나 모든 의료 판단은 재검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함. 의료진의 판단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명시."*

그 기록을 쓰면서 이준호는 처음으로 말했다.

"내가 이 결정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약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료인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최태호가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이준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처음이었다. 16년 동안 최태호가 이준호에게 동의한 적은 없었다. 항상 따르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동의했다.

"맞습니다, 선생님. 그것이 의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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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 새로운 시스템의 평가.

의료윤리위원회는 공식 보고서를 발표했다.

*"새로운 장기 배분 시스템 도입 후 1년, 환자 선택의 객관성이 98% 향상되었으며, 의료 기준 외 사회적 편견은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특히 저소득층 환자의 이식 접근성이 43% 증가했으며, 사망률은 전년 대비 31% 감소했습니다."*

강신혜가 이준호를 찾았다. 병원 카페에서 만났다.

"보셨나요? 지표들이 모두 개선됐습니다."

강신혜가 보고서를 펼쳤다.

이준호는 숫자들을 읽었다. 43%. 31%. 그 수치들이 박민철 환자와 겹쳐 보였다. 그 환자가 살아있었다면, 그리고 그 환자와 같은 처지의 다른 환자들이 살아있었다면. 그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생명의 무게였다.

"이것이 당신의 기술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스템입니다. 당신은 이제 이해했을 겁니다. 기술만으로는 의료가 아니라는 것을."

이준호는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저는 박민철 환자를 생각합니다. 그 환자가 이 시스템 속에서 살 수 있었다면, 지금 이 43%에 포함되었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당신은 여기 있고 싶으신가요?"

강신혜의 질문이었다.

"네."

이준호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계속 여기 있으세요. 하지만 더 이상 신이 아닌, 한 명의 의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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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새로운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왔다.

이준호가 그를 바라봤다. 통계적으로는 수술 성공률 71%, 예후는 양호, 의료적 기준상 적응 가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사회적 지위도, 경제력도, 가족 구성도 없었다. 단지 의료 기준만 있었다.

메스를 들었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떨렸다.

그리고 그 떨림이 이준호를 의사로 만들었다.

수술실의 조명이 환자의 가슴 위에서 흔들렸다. 이준호의 손이 정확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이 그 손을 움직였다.

오만함이 아니라, 책임감이.

신의 환상이 아니라, 의사의 현실이.

수술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수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명의 천재 외과의가 인간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완벽한 기술 뒤에 겸손함이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회의실로 돌아온 이준호는 기록했다.

*"수술 성공. 예후 양호. 그러나 의료 판단은 항상 재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함. 의료인은 신이 아닌, 책임 있는 인간일 뿐."*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 환자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이 지켜낸 공정성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복도를 걸어가며 이준호는 박민철의 추도식 날을 다시 생각했다. 박영희의 손이 천천히 내려오던 모습. 박준우의 침묵. 그것들이 더 이상 이준호를 짓누르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그를 깨웠다. 깨어난 의사로.

새로운 환자가 또 다시 수술실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72세 여성, 심부전 말기. 의료 기준상 긴급성 5단계. 대기 시간 3년 1개월.

이준호가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오만함이 없었다.

오직 책임감만 있었다.

그리고 그 책임감 속에, 생명의 무게를 감당하려는 한 명의 인간의 노력이 선명하게 보였다.

메스를 들었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계속 떨렸다.

그리고 그 떨림이 이준호를 의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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