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의 가장자리에서 묵연이 손을 펼쳤다.
붉은 빛이 소용돌이를 이루며 혈월산 정상을 감싼다. 서운의 몸에서 실처럼 가늘게 빠져나가던 그것이 이제는 굵은 줄기가 되어 공중을 헤맨다. 묵연의 손가락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생명력. 마치 거머리처럼.
"느껴지는가, 서운."
묵연의 목소리는 광기로 떨렸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동자가 충혈된다. 빨려 들어오는 붉은 빛이 그의 피부를 밝혀내자, 검은 선들이 부풀어올랐다. 저주받은 자의 육체가 이제 서운의 생명력을 삼키기 시작했다.
"천년을 살아온 저주의 정수. 이것이 내 것이 된다면..."
묵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정신이 나간 자의 웃음. 산 위에서 울려 퍼진 그 소리는 죽음의 축가처럼 들렸다.
서운은 한 발을 내디뎠다.
그것이 전부였다. 한 발의 움직임으로 묵연의 시선이 흔들렸고, 붉은 빛의 흐름이 끊겼다. 서운의 손가락이 검의 자루를 감싼다. 칼집을 떠나는 순간, 공기가 찢어졌다.
적혈십삼식의 첫 번째 검. 오직 죽음만을 노래하는 기술.
검은 수직으로 떨어진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저주처럼. 묵연은 비술을 연발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공간이 왜곡된다. 그의 독 기술과 환상 술법이 한데 엉켜 검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적혈검의 날은 그 모든 것을 가르며 내려온다.
묵연이 몸을 굴렸다.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했지만, 왼쪽 어깨에 상처가 났다. 붉은 피가 흐르지 않는다. 대신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친다.
"너는 날 이길 수 없다!"
묵연이 외친다. 그의 몸이 부풀어오른다. 비술단의 모든 능력을 한 점으로 모아 육체를 강화하는 기술. 서운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한백검에게서 들었던 것이다. 비술단의 주인이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
하지만 서운은 여전했다.
여해가 그의 곁에 서 있었다. 도선종의 도사복을 입은 여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존재만으로 서운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영혼을 붙잡아주고 있는 것처럼.
서운이 두 번째 검을 펼친다.
이번에는 횡으로. 마치 지평선을 그으려는 듯이. 묵연의 강화된 몸에 닿은 검은 불꽃을 일으킨다. 그 충격으로 묵연이 몇 걸음 뒤로 물러난다. 산의 능선 쪽으로. 벼랑 쪽으로.
"또 다시?"
묵연의 목소리가 비명에 가까워진다. 그는 더 이상 거래꾼이 아니었다. 단순한 광인이 되어 있었다. 서운의 저주를 손에 넣으려던 욕망이 그를 완전히 삼켜버렸다.
세 번째 검. 네 번째 검. 다섯 번째.
서운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붉은 빛이 점점 희미해진다. 각 검마다 그의 생명력이 깎인다. 하지만 그의 손은 떨리지 않는다. 검은 여전히 예리하고, 눈은 여전히 맑다.
"제발... 제발..."
묵연이 무릎을 꿇는다. 더 이상 싸울 수 없다는 항복의 몸짓. 하지만 서운은 멈추지 않는다. 여섯 번째 검이 공중에서 호를 그린다. 묵연의 팔을 가르는 검. 일곱 번째 검이 그의 다리를 스친다.
묵연의 피부에 새겨진 검은 선들이 부풀어오르고, 눈에서는 피가 흐른다. 천년 동안 그를 짓눌러온 저주의 굴레가 이제 그 자신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만이다."
여해의 목소리가 들린다.
서운의 검이 멈춘다. 여해의 말에. 그녀가 그의 옆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묵연이 천천히 일어난다. 그의 몸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비술단의 모든 능력을 한 점으로 모았던 대가는 크다. 피부는 검게 변해가고, 눈에서는 피가 흐른다.
"너도... 나처럼 저주에 미쳐갈 것이다."
묵연이 웃는다. 저주받은 자의 동료애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죽음으로."
그 말과 함께 묵연은 뒤로 넘어진다. 벼랑 아래로. 하얀 구름 속으로. 그의 몸이 사라지는 순간, 피부에 새겨진 검은 선들이 한 줄기 붉은 빛으로 변해 공중에서 흩어진다. 천년 동안 그를 짓눌러온 저주의 굴레가 마침내 풀리는 것이었다. 묵연의 마지막 비명은 산 아래로 사라져 간다.
서운은 무릎을 꿇는다.
그것은 항복이 아니었다. 수용이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서운이 얼굴을 들어 여해를 본다.
여해는 한참을 말 없이 그를 바라본다. 그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마치 천년이 그 한 순간에 압축된 것처럼.
"나는..."
여해가 무릎을 꿇어 서운과 같은 높이에 선다.
"나는 너와 같은 저주를 받은 이전 검객의 영혼이다. 아홉 번째 체득자. 오백 년을 이 저주와 함께 살았다."
서운의 호흡이 멈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여해가 한 발 물러난다.
"저주는 죽음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통을 보장할 뿐이다. 나는 오백 년 동안 그 고통 속에서 다음 검객을 기다렸다. 청산을 만났을 때, 나는 그의 고독을 보았다. 그리고 너를 만났을 때, 나는 같은 고독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다."
여해가 손을 내민다.
"그래서 나는 옆에 있기로 했다. 다음 검객이 나처럼 혼자가 아니기를 바라며."
서운은 그 손을 잡는다. 따뜻했다. 죽음 앞의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산의 능선 너머로 원정 고승이 나타난다. 그의 얼굴은 담담했지만, 눈은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서운이여."
원정이 말한다. 목소리는 천년의 기록을 담은 것처럼 무거웠다.
"혈연대사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서운이 일어난다. 여해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그것은?"
원정이 한 발 앞으로 나선다.
"네 죽음을 의미한다."
그 말이 산 위에 울려 퍼진다.
"네가 죽음으로써 모든 저주받은 검객들이 해방될 것이다. 천년 동안 이 산에 묶여 있던 영혼들이. 그들의 고통이 너에게서 끝날 것이다."
서운의 몸이 경직된다. 저주로 인한 떨림이 아니었다. 무언가 더 깊은 것이 그를 흔들었다. 그는 여해를 본다.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 그리고 그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그리고..."
여해가 말한다. 목소리가 떨린다.
"나도 비로소 영혼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운이 여해를 본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오백 년을 기다렸다. 다음 검객을 위해. 다음 검객이 나처럼 고독하지 않기를 바라며."
여해가 서운의 손을 더 강하게 잡는다.
"그리고 이제..."
여해의 목소리가 가늘어진다.
"이제 우리는 함께 갈 수 있다."
서운은 여해의 눈을 본다. 오백 년의 고독이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고독을 끝내기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여해도, 자신도 안다. 하지만 그 순간, 서운의 입에서 말이 나온다.
"아니오."
여해의 손이 경직된다.
"아니오?"
원정의 목소리도 흔들린다.
서운이 고개를 든다. 그의 눈은 맑았다.
"제 죽음으로 저주가 풀린다면, 그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거래입니다. 누군가의 죽음과 바꾼 해방. 저는 그런 해방을 원하지 않습니다."
"서운..."
여해가 중얼거린다.
"당신은 삼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고통받을 것이다. 왜 거부하는가?"
서운이 여해의 손을 더욱 강하게 잡는다.
"고통받는 것이 저주가 아닙니다. 혼자서 고통받는 것이 저주입니다."
서운이 원정을 본다.
"제 남은 수명은?"
원정이 대답한다.
"삼 개월이다."
"그 시간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해가 서운의 손을 다시 한 번 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손을 놓으려던 손이 아니라, 붙잡으려는 손이었다.
"너는 진정한 검객이 되는 것이다. 천하제일이 아닌, 진정한 검객으로."
서운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은?"
서운이 여해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 삼 개월 동안 나와 함께 있을 것입니까? 아니면 나의 죽음을 기다릴 것입니까?"
여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나는 너와 함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함께 내려가겠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면서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서운이 천천히 일어난다. 여해를 이끌어 일으킨다. 원정은 한 발 물러서 있다.
"당신은 이를 후회할 것이다."
원정이 말한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후회도 살아가는 것의 일부입니다."
서운이 여해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산길로 내려간다. 원정 고승이 그들 앞서 간다. 혈월산 정상에서 강호를 내려다본다.
저 아래에는 수많은 검객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천하제일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서운은 이제 안다.
천하제일은 하나의 위치가 아니라, 하나의 깨달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을 위해 자신에게는 삼 개월이 남아 있다는 것을.
산길을 내려가며 서운은 처음으로 자신의 발이 땅을 밟는 감각을 느꼈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저주의 고통이 아니었다. 단순한 피로였다. 살아 있는 자의 피로.
"아래 마을까지는 반나절 길이다."
원정 고승이 말한다.
산의 북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 나타난다. 일반적인 산길이 아니었다. 누군가 오랫동안 밟아온 흔적이 깊게 파여 있었다.
"이 길은 무엇입니까?"
여해가 묻는다.
"청산이 걸어간 길이다."
원정의 대답이 떨어지자, 길 양옆의 나무들 사이에서 무언가가 반짝인다. 서운은 눈을 좁혀 본다. 검의 자국이었다. 오래된 검의 흔적이 바위 표면에 패여 있고, 일부는 이끼로 덮여 있었다. 하지만 가장 아래쪽의 흔적들은 신선했다.
"그가 내려가던 중에..."
서운이 중얼거린다.
"검을 휘렀군요."
"그렇다."
원정이 멈춘다. 그들 앞에 작은 사당이 나타난다. 기와가 무너지고, 벽에 균이 피어 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향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해가 서운의 손을 놓는다.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가세요."
여해가 말한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왜 들어가 달라고 하는가?"
여해가 웃는다. 마치 자신의 학생이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한 것을 보는 스승의 웃음처럼.
"왜냐하면 그 안에는 청산의 마지막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봐야 한다. 혼자서."
서운은 사당 안으로 들어간다.
어둠이 먼저 다가왔다. 창문이 거의 없는 건물 안은 칠흑이었다. 하지만 곧 서운의 눈이 적응한다. 적혈검의 저주로 인해 변화된 신체는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구분할 수 있었다.
사당의 중앙에는 제단이 있었다. 그 위에는 뼈가 놓여 있었다. 인간의 뼈. 그리고 그 옆에는 검이 있었다.
서운은 천천히 다가간다. 검은 아주 오래되었다. 녹이 슬었고, 날이 부러져 있었다. 하지만 손잡이는 여전히 따뜻했다.
"청산."
서운이 중얼거린다.
뼈 옆에는 일기장이 있었다. 페이지가 많이 빠져 있었고, 남아 있는 페이지들도 습기로 인해 글씨가 흐릿했다. 서운은 그것을 집어든다.
마지막 페이지.
그곳에는 두 글자만 남아 있었다.
"다음."
그 아래에는 그림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그려진 것처럼 보이는, 아주 단순한 그림. 하나의 손이 다른 손을 잡고 있는 모양.
서운은 그 글귀를 읽으며 깨닫는다. 청산이 남긴 이것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음 검객을 향한 간절한 바람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한다는 뜻.
하지만 동시에 서운은 깨닫는다. 청산은 그 손을 잡지 못했다. 청산은 혼자였다. 그리고 그 고독이 이 사당에 남겨진 뼈로 끝났다.
서운의 손이 떨린다. 저주로 인한 떨림이 아니었다. 감정으로 인한 떨림이었다. 오백 년 전 청산이 느꼈을 고독. 그리고 자신이 지금 느끼는 다행함이 교차한다.
하지만 그 다행함은 죄책감으로 변한다. 자신은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청산은 그럴 수 없었다.
서운은 무릎을 꿇는다. 청산의 뼈 앞에서. 그리고 검을 들어 올린다. 부러진 검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고, 자신의 적혈검과 나란히 놓는다.
"당신은 혼자였군요."
서운이 말한다. 죽은 자를 향해.
"혼자서 이 산을 내려갔고, 혼자서 죽음을 맞이했다."
서운의 목소리가 떨린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서운이 일어난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가지 못한 것을 가질 것입니다."
서운이 사당 밖으로 나온다.
여해와 원정이 서운을 본다. 그들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이 순간을 예측한 것처럼.
"이제 우리는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원정이 말한다.
서운은 다시 한 번 뒤를 본다. 사당의 어둠 속에서 청산의 뼈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의 검이.
"당신의 길이 끝났다면, 저의 길은 이제 시작입니다."
서운이 중얼거린다.
산길을 내려가며 서운의 귀에 무언가가 들린다. 바람의 소리인가, 아니면 천년 동안 이 산에 갇혀 있던 영혼들의 목소리인가. 그것들이 하나둘 흩어져 가는 소리.
마을이 보인다. 아래쪽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상적인 강호의 모습이었다. 검객들도 있을 것이고, 상인들도 있을 것이고, 평범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저주받은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누구도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삼 개월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서운은 이제 안다. 천하제일 검객이라는 위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검객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여해가 서운의 손을 다시 잡는다.
"당신은 두려운가?"
여해가 묻는다.
서운이 대답한다.
"아니오. 저는 더 이상 저주받은 자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검객일 뿐입니다. 남은 시간이 무엇이든 간에."
원정 고승이 한 발 앞서 마을로 향한다. 여해는 여전히 서운의 손을 잡고 있다. 서운은 그것을 느낀다. 따뜻함을. 그리고 그 따뜻함이 자신을 어디로든 이끌어 갈 것임을.
마을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낡은 옷을 입은 노도사, 그 곁의 여인, 그리고 한 젊은 검객.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저 검객은 누군가?"
그리고 다른 목소리가 응한다.
"모르지. 하지만 그 여인의 손을 놓지 않는다. 저것이 뭔가?"
서운은 그 목소리들을 들으며 깨닫는다. 자신이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강호의 세력들이 자신을 추적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것을. 천하제일 검객의 정체를 놓고 벌어질 수많은 싸움들을.
하지만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서운은 여해의 손을 잡고 마을로 들어간다. 삼 개월. 그것이 자신에게 남은 모든 시간이라면, 그 시간으로 충분했다.
왜냐하면 이제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