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혈월산의 각성

지하실의 깊이는 측량 불가능했다. 서운이 내려간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손에 든 횃불의 불꽃조차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공기는 고요했고, 돌계단 아래로는 오직 어둠만 펼쳐져 있었다.

발이 마지막 계단에 닿았다. 지면이 고르지 않았다. 서운이 횃불을 높이 들었을 때, 비로소 그곳의 윤곽이 드러났다.

무덤이었다.

수십 개의 석관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각 관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글씨는 너무 오래되어 반쯤 벗겨져 있었다. 서운은 한 걸음씩 옮겨가며 읽으려 했으나, 글자는 고대 문형으로 자신이 해독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석관들의 가운데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검대가 놓여 있었다.

검은 거기 있었다.

길이는 보통의 검과 다르지 않았다. 손잡이도 평범했다. 그러나 칼날은 어떤 빛도 흡수하는 듯한 검은색이었고, 그 위에는 마치 핏줄처럼 붉은 문양이 흐르고 있었다. 횃불의 불빛이 닿아도 그 붉은 무늬는 더욱 진해 보였다.

서운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검을 집어 든 순간, 세상이 멈췄다.

통증이 아니었다. 쾌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마치 자신의 몸이 갑자기 다른 것으로 변모하는 느낌. 근육이 재구성되고, 뼈가 다시 깎아지며, 정신이 무한히 확장되는 경험.

서운의 눈이 열렸다. 그의 동공에는 붉은 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검을 휘르고 싶었다. 본능적으로, 격렬하게,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서운은 검을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순간, 그 움직임은 더 이상 검의 궤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공간 자체를 베어내는 듯한 궤적이었다.

지하실의 벽이 갈라졌다.

아니, 벽이 아니라 산 전체가 떨렸다. 위층의 폐허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석관들이 흔들렸고, 돌가루가 하늘처럼 쏟아졌다. 서운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검을 들고 있었고, 그 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때, 서운의 손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불이 아니었다. 빨아당기는 감각이었다. 마치 손가락 끝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서운이 검을 내려다봤을 때, 그의 손에서 붉은 실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실처럼 가는 것들이 손가락과 팔을 감싸고 있던 피부에서 조용히 분리되어, 검의 칼날 위로 모여들고 있었다.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이끌려가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 하나하나를 집어당기는 듯한 통증이 손목으로 퍼져 나갔다.

서운은 손을 내리려 했으나,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검이 무거워졌다. 아니, 무거운 것이 아니라 살이 빨려가는 감각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었다.

"그만해라."

목소리가 들렸다. 옛 검객이었다. 그는 언제 내려왔는지 알 수 없게, 지하실의 입구에 서 있었다.

"놓아라."

서운이 검을 놓자, 붉은 실들이 갑자기 끊어졌다. 그 실들은 공중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서운은 검을 떨어뜨렸고, 검은 바닥에 무음으로 떨어졌다.

서운의 손이 떨렸다. 손가락이 저렸다. 마치 신체 일부가 절단된 것처럼, 통증이 없지만 무언가가 영구적으로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손을 들어 들여다봤다. 손가락과 팔의 피부가 옅어져 보였다. 아니, 옅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얇아져 있었다. 마치 수십 년이 한 순간에 빠져나간 듯.

"저주다."

옛 검객이 내려왔다. 그는 서운의 손을 집어 들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다. "검을 한 번 휘를 때마다 하루가 깎인다. 그 검의 최강 기술을 한 번 펼치면 일주일이 사라진다."

"무슨 말이냐?"

"너의 수명이다."

옛 검객은 서운의 눈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오래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마치 같은 저주를 견뎌낸 자의 그것처럼.

"이제 넌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단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만 남았다."

서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마치 무언가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손이 떨렸다. 순간,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천재 검객 서운이 흘리는 눈물이었다.

무릎을 꿇었다. 검 때문이 아니었다. 죽음 때문이었다.

옛 검객은 서운의 어깨에 손을 놓았다. 그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다.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검맥의 창조자를 찾는 것. 천년 전의 혈연대사를. 그자의 진의를 이해할 때,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런 자가 살아 있을 리 없다."

"죽은 자도 아니고, 산 자도 아니다. 다만 강호 어딘가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도선종의 기록을 찾아라. 그들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옛 검객은 한 발 물러섰다. 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산을 내려가거라. 강호는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강호?"

"너의 존재가 알려지면, 모든 세력이 움직일 것이다. 검성파는 너를 제거하려 할 것이고, 비술단은 너를 이용하려 할 것이고, 도선종은..."

옛 검객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도선종은 너를 지켜내려 할 것이다."

서운이 산길을 내려갔다. 하늘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산 전체를 물들였다. 그것이 핏빛처럼 보였다. 적혈검의 이름이 왜 그런 이름인지, 비로소 이해가 갔다.

산기슭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완전히 들어 있었다. 서운은 여관을 찾았다. 옥주관이라는 이름의 작은 여관이었다. 주인은 나이 많은 여자였고, 그녀는 서운을 보고 한 번 더 쳐다봤다.

"어디서 왔는가?"

"산에서."

여관주인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서운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검을 침대 옆에 놓았다. 칼날의 붉은 무늬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밤새 서운은 잠을 자지 못했다. 손가락이 저린 감각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깨어났다.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검을 90번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90번 이상을 쓸 수 없다는 뜻이었다.

새벽이 밝아올 때, 여관의 문이 열렸다.

도사 출신으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섰다. 그녀의 옷은 도선종의 복장이었다. 눈은 서운을 관통하듯 바라봤고, 그 눈빛에는 무언가를 세는 듯한 냉정함이 담겨 있었다. 마치 오래된 기록을 확인하듯.

"나는 여해다. 도선종에서 왔다."

서운이 일어났다. "어떻게 나를..."

"나는 너를 지켜야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뭔가 거스를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 마치 천명 같은.

"저주를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것의 의미를 찾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여해가 한 걸음 다가왔다. 서운은 본능적으로 몸을 경직시켰다. 그 여자의 시선이 자신의 손가락으로 향했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듯.

"너는 살아 있는가?"

"뭐라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너를 돕겠다."

여해가 창밖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강호로 향하는 길이 펼쳐져 있었다.

"강호에는 너를 찾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 중에서 누가 진정한 적이고, 누가 진정한 동지인지 구분해야 한다."

"어떻게?"

"네 검을 사용해서."

그 순간, 여관 뒤의 숲에서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나타났다. 비술단의 첩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서운을 포위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말거라."

가장 앞의 남자가 말했다. "우린 단주의 명을 받았다. 너를 살아서 데려가거나, 죽여서 데려가거나. 선택은 너의 몫이다."

서운이 검을 들었다. 칼날이 붉게 빛났다.

"그럼 시작하자."

여해는 한 발 물러났다. 마치 이것이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다는 듯이.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떠 있었다.

검이 공기를 가르며 올라갔다. 손가락의 저림이 손목으로 퍼졌다. 서운은 그것을 검의 궤적에 담아냈다. 통증이 아니라 힘으로 변환되었다.

비술단의 첫 번째 검객이 칼을 빼어 들었다. 검은 옷의 남자였고, 그의 동작은 능숙했다. 10년은 수련했을 검술이었다. 하지만 적혈검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칼날이 만나는 순간, 비술단 검객의 손목이 꺾였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관의 벽이 일부 무너져 내렸다.

"이게 뭐야..."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운은 다시 검을 올렸다. 이번에는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들의 칼이 교차하며 서운을 감싸려 했다. 고전적인 포위 기술이었다. 강호의 중급 검객들이면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는 전술이었다.

하지만 적혈검은 중급 검술의 영역에 있지 않았다.

서운의 손목이 꺾였다. 아니, 검이 꺾였다. 칼날이 반경 3미터 안의 모든 것을 베어냈다. 두 검객의 몸이 공중으로 날았다. 그들은 여관의 지붕을 뚫고 날아갔다. 아래로 떨어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남은 네 명의 검객들이 물러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이건... 이건 인간의 검술이 아니야."

가장 뒤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서운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손가락은 계속 저렸다. 마치 누군가 실을 당기듯이.

"도망쳐. 단주에게 보고해. 적혈검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장 앞의 남자가 명령했다. 네 명의 검객들은 달아났다. 발을 굴러 재빨리 숲으로 사라졌다.

여관은 거의 반쯤 무너져 있었다. 옥주관의 주인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아마 처음부터 비술단과 연결되어 있던 것 같았다. 여관주인이 비술단의 정보원이었다는 것은 이제 명백했다. 그녀는 서운의 도착을 보고했을 것이고, 그것이 이 포위로 이어진 것이다.

서운이 검을 내렸다. 칼날의 붉은 무늬가 더욱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손가락의 저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팔 전체로 퍼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피를 빨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 사용치고는 과하지 않은가."

여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여관의 남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으나, 눈동자에는 무언가 깊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저들을 죽이지 않았다."

서운이 말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변명이었는지, 아니면 여해를 위한 것이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래. 너는 아직 죽이지 않기로 선택했다. 그것이 중요하다."

여해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녀의 눈이 서운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손가락은 여전히 저리고 있었다. 마치 얼음이 녹으면서 나타나는 통증처럼.

여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도록.

"나는 너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내 역할이다."

"당신이 뭐라는 건데..."

"너보다 먼저 그 검을 들었던 자들이 있었다. 다섯 명. 모두 다른 방식으로 죽었다."

여해가 손을 내밀었다. 서운은 그것을 보고 한 번 망설였다. 하지만 손가락의 저림이 견딜 수 없어지자, 그 손을 잡았다.

여해의 손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마치 불에 달군 돌처럼. 그 온기가 서운의 손가락으로 전해졌고, 저림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도선종의 사람이 왜 나를 도와주는 건가?"

"왜라고 묻는 건가?"

여해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무게가 있었다.

"나는 너를 지켜야 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충분하지 않다."

서운이 손을 뺐다. 여해의 손이 공중에 남겨졌다.

"당신이 나를 아는 이유가 뭐냐는 거다. 내가 적혈검을 체득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그리고 왜 이 시간에 이 장소에 있는가?"

여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창밖을 바라봤다.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혈월산의 능선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너보다 먼저 적혈검을 든 자를 알고 있었다. 그는 죽었다. 저주를 견디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저주의 의미를 찾으려다 사라졌다."

여해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그것은 오래된 기억에서 나오는 슬픔이었다.

"그를 지키지 못한 것이 내 죄다. 그래서 나는 너를 지켜야 한다."

서운은 여해를 바라봤다. 그제야 그녀의 눈이 보였다. 그 눈에는 수백 년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강호는 넓다. 그리고 그 안에는 많은 세력이 있다. 너는 이제 그 모든 세력의 관심사가 되었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 너는 모르는 것이 있다."

여해가 돌아섰다. 그녀의 눈이 서운을 관통했다. 그 눈빛에는 수백 년의 기록이 담겨 있는 듯했다.

"너보다 먼저 적혈검을 체득한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여해의 말이 끝나지 않았지만, 서운은 그 의미를 감지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도.

"그렇다. 그들은 모두 저주를 견디지 못했거나, 저주를 거부했거나, 아니면 저주의 의미를 찾다가 사라졌다."

서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숫자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계획된 무언가였다.

"산의 옛 검객은 누구인가?"

"그는 너를 택하지 않았다. 적혈검이 너를 택했다. 그것이 다르다. 그는 이전 체득자 중 한 명이었고, 저주를 견뎌낸 유일한 자다."

서운의 눈이 흔들렸다. 그렇다면 옛 검객은 자신이 겪을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너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저주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거부한다면?"

"검을 내려놓으면 된다. 그럼 저주는 풀린다."

여해가 멈추었다. 그녀는 서운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럼 넌 죽는다."

"뭐?"

"적혈검의 저주는 단순하다. 검을 쓰면 죽고, 검을 내려놓아도 죽는다. 그것이 검맥의 원칙이다. 유일한 차이는 죽음이 언제인가뿐이다."

서운이 검을 내려다봤다. 칼날의 붉은 무늬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것은 마치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나는 어차피 죽는 건가?"

여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강호로 향하는 길을 가리켰다.

"강호로 가자. 거기서 너는 저주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해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서운은 그 뒤를 따랐다. 여관은 점점 멀어졌다. 혈월산도 멀어졌다. 하지만 손가락의 저림은 계속되었다.

길을 떠난 지 하루가 지났다. 숙소로 택한 산 위의 작은 집은 한때 도사의 거처였던 것 같았다. 벽에는 부서진 부적이 붙어 있었고, 마루에는 경전의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서운은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이 산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누군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

여해가 말했다. 그녀는 불을 켜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비술단?"

"아니다. 다른 세력이다. 검성파의 기운이 섞여 있다."

서운이 일어났다. 검을 들었다. 칼날이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났다.

"내가 나가겠다."

"너?"

"당신이 막아줄 필요는 없다. 나는 이미 죽어 있으니까."

서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차분함 속에는 무언가 결연한 것이 담겨 있었다. 죽음을 받아들인 자의 결연함이었다.

여해는 서운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뭔가 복잡한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안타까움과 인정이 섞여 있었다.

"그렇다면 나가거라. 하지만 죽이지는 말거라. 아직은."

서운은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그 움직임은 어색했지만 결연했다. 검성파의 추격자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세 명이었다. 모두 검을 들고 있었다.

"적혈검의 소유자가 나타났다."

가장 앞의 남자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어둠에 묻혀 있었지만, 목소리만은 명확했다. 검성파의 기운이 묻어났다.

"검성파의 명을 받았다. 너를 제거하라."

서운이 검을 들었다. 손가락이 저렸다. 이제 그 저림은 친숙했다. 마치 자신의 일부가 된 것처럼.

첫 번째 검객이 달려들었다. 그의 검술은 능숙했다. 검성파의 정통 기술이었다. 그의 움직임에는 검성파 특유의 정통성이 담겨 있었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기법들이 그의 팔에 배어 있었다.

"너는 사파의 검이다. 정통 검맥을 더럽히는 자."

검객이 외쳤다. 그의 검이 서운을 향해 날카롭게 날아왔다. 검성파의 철학이 담긴 일격이었다. 정통성을 지키려는 자의 신념이 검에 실려 있었다.

서운은 그 검을 받아냈다. 칼날이 만나는 순간, 두 검의 철학이 충돌했다. 정통성과 저주의 충돌. 오래된 질서와 새로운 힘의 충돌.

"정통이 무엇인가?"

서운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정통은 죽음을 거부하는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인가?"

검객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검성파의 정통 기술들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아름답고도 정교한 검술이었다. 하지만 적혈검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서운의 손목이 한 번 꺾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검객의 몸이 뒤로 날렸다. 그는 나무에 부딪혀 떨어졌다. 숨이 끊어졌다.

나머지 두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들은 검성파의 정통 기술을 펼쳤다. 두 검이 서운을 감싸려 했다. 포위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비술단의 포위와는 달랐다. 검성파의 포위는 철학적 설득을 담고 있었다. 마치 정통성의 벽으로 서운을 감싸려는 듯했다.

서운은 그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극복해야 할 것이었다. 그의 검이 옆으로 휘었다. 그 궤적이 공기를 가르며 지나갔다. 두 검객의 몸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들은 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그것이 끝났다.

서운은 검을 내렸다. 손가락의 저림이 팔 전체로 퍼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그의 생명력을 빨아가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음을 받아들였으니까.

산 위의 작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여해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눈은 열려 있었다. 마치 서운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다 끝났는가?"

"네."

서운이 검을 놓았다. 칼날의 붉은 무늬가 더욱 진해져 있었다.

"검성파가 너를 제거하려 할 것이다. 이제 모든 세력이 움직이고 있다."

여해가 말했다. 그녀의 호흡은 고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은 여전히 차분했다.

"비술단은 너를 이용하려 할 것이고, 검성파는 너를 제거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도선종은..."

여해가 멈추었다. 그녀의 입가에 무언가 쓸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도선종은 너를 지켜내려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당신은 왜 나를 지키는가?"

서운이 물었다. 이 질문은 이미 여러 번 했던 것이었지만, 여전히 명확한 답이 없었다.

여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서운의 손을 다시 잡았다. 그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강호의 첫 번째 도시는 아침이면 도착할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혈연대사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것들도."

"다른 것들?"

"너보다 먼저 적혈검을 든 자들의 유물. 그들이 남긴 기록. 저주를 풀 수 있는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해가 창밖을 바라봤다. 밤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다. 그 별들이 마치 무언가를 세는 것처럼 보였다.

"너는 무언가의 끝이자 시작이다."

그 말의 의미를 서운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손가락의 저림이 그것을 증명했다.

강호의 첫 번째 도시는 새벽이 밝아올 때 나타났다. 성벽 위에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고, 성문 앞에는 상인들의 행렬이 이미 모여 있었다.

서운과 여해가 성문을 통과할 때, 도시의 골목에서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검성파의 정찰꾼들이었다. 그들은 서운의 도착을 이미 알고 있었다.

도시의 중심부에 도착했을 때, 서운은 이미 변해 있었다. 천재 검객의 자신감은 사라져 있었고, 대신 그 자리에는 무언가 더 차갑고 날카로운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손가락의 저림은 손목으로, 팔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의 눈빛도 변했다. 붉은 동공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마치 죽음 앞에서 각성하는 무언가.

그 순간, 도시의 한 건물에서 검은 깃발이 펄럭였다. 검성파의 기지였다. 그리고 그 건물의 지하에서는 누군가 서운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혈연대사의 유물을 지키는 자. 혹은 그것을 추구하는 자.

서운은 여해를 바라봤다. 여해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오래된 예감이 담겨 있었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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