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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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지하 1층 유치장의 좁은 창을 타고 들어왔다. 벽에 박힌 시계는 오전 6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눈을 뜬 그는 천장을 바라봤다. 회색 콘크리트. 그 위로 형광등이 하나 깜빡였다.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열 개가 모두 움직였다. 다리도. 얼굴도.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뭔가 빠져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철제 침대가 끼익 소리를 냈다.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피부. 코. 입. 눈. 모두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자신의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거울이 필요했다.

유치장의 벽면은 반사되지 않았다. 창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손톱 위의 반사면에 얼굴을 기울였다. 검은 점 같은 윤곽만 보였다.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었다.

——오늘은 뭘 해야 하지?

그 생각이 떠올랐을 때, 머릿속에 명확한 문장이 흘러내렸다.

——검사를 찾아 죽인다.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 누구의 검사? 왜 죽여야 하지? 그는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려 했다. 이름. 이름이 필요했다.

오지훈.

그 이름이 나타났다. 마치 누군가 속삭인 것처럼. 혀 끝에 올라왔다가 입술을 통해 흘러나왔다.

"오지훈."

목소리가 낯설었다.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낯설었다. 음역대는 낮았고, 음성도 차갑고 건조했다. 그런데 그 안에 뭔가 다른 음성이 겹쳐 있는 것 같았다. 더 젊은 음성. 더 따뜻한 음성. 그 음성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이준호.

손가락이 경련했다. 호흡이 끊어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무언가 커다란 구멍이 가슴팍에 뚫려 있는 것 같았다. 두 이름이 뇌 안에서 충돌했다. 시냅스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들린 것 같았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머리가 핑 돌았다. 세상이 한 바퀴 회전했다가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손으로 벽을 짚었다. 콘크리트의 차가운 온기가 손가락을 타고 팔로 전해졌다.

이준호. 오지훈.

두 이름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느 것이 맞는 건가? 아니면 둘 다인가? 아니면 둘 다 아닌가?

그는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 떨고 있었다. 손가락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가빴다. 눈앞이 흐릿해졌다가 또렷해졌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시각이 중첩되고 있었다. 한 순간은 왼쪽 눈으로, 다음 순간은 오른쪽 눈으로. 두 시점이 겹쳐 돌아갔다.

유치장의 철문이 삐걱 열렸다. 경찰관이 들어섰다. 식판을 들고 있었다. 밥과 된장국, 그리고 작은 반찬 하나.

"기상했네."

경찰관은 아무것도 아닌 듯 말했다.

그는 경찰관을 바라봤다. 그 순간 기억의 편린이 떠올랐다. 심문실. 책상. 그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얼굴. 박민준이라는 이름. 그 남자가 자신을 보며 말했다.

——넌 이미 죽었어. 그것도 오래전에.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이 뭐지?"

경찰관이 식판을 침대 옆 작은 테이블에 내려놨다.

"이름?"

"내 이름이 뭐야?"

경찰관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눈빛에 의심이 떠올랐다.

"용의자 조사 기록에 오지훈이라고 되어 있다."

오지훈. 그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그 이름 안에 또 다른 이름이 숨어 있었다.

"그 전에는?"

"전에?"

"그 전에 뭐라고 불렸어?"

경찰관의 의심이 더 짙어졌다. 그는 무전기를 꺼냈다. 말하기 전에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괜찮아. 그냥 밥 먹고 싶은 거야."

경찰관은 머뭇거리다 무전기를 다시 허리에 끼웠다.

"먹어."

경찰관이 나가고 철문이 다시 닫혔다. 그는 식판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맛이 없었다. 아니, 맛이 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할 수 없었다. 모든 감각이 한 곳으로 수렴되어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려는 절박함으로.

시계가 다시 움직였다. 오전 7시 12분.

——검사를 찾아 죽인다.

그 명령이 다시 들렸다. 하지만 이번엔 그 목소리가 자신의 목소리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

특수수사팀 사무실. 최영재는 파일을 들었다가 내려놨다. 다시 들었다가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박민준이 들어섰다.

"CCTV 확인했나?"

최영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팀장, 이 파일을 봤어요?"

박민준이 최영재 옆에 섰다. 최영재는 파일을 펼쳤다. 그 안에는 3년 전 오지훈 사건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체포 기록. 심문 기록. 판결 기록. 그리고 사망 기록.

자살. 구치소 내에서의 자살.

"뭘 본 거야?"

"이 사람이 정말 범인이었을까요?"

박민준의 얼굴이 굳었다.

"뭘 자꾸 물어?"

"시간 데이터를 다시 봤어요."

최영재가 컴퓨터 모니터를 켰다. CCTV 화면이 떠올랐다. 타임스탬프가 화면 우측 하단에 표시되어 있었다. 최영재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움직였다.

"3년 전 범죄 현장의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요."

화면 속 타임스탬프가 점프했다. 오전 11시 23분에서 갑자기 오전 11시 18분으로. 역행했다.

"타임스탬프가 역행합니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아니면 실수로..."

박민준이 화면을 내려다봤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사건은 해결된 사건이야. 범인도 있고, 판결도 났고, 사건도 마감됐어. 왜 자꾸 파헤쳐?"

최영재는 박민준을 바라봤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CCTV 타임스탐프의 역행. 그것은 단순한 오류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의 역행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의미했다.

3년 전 오지훈 사건. 그때 오지훈은 자살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유치장에 있는 사람은?

저주는 시간을 역행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정체성을 역행시키는 것이었다.

이준호가 범인을 쫓을수록 그의 기억이 역순으로 사라졌다. 기억이 사라질수록 그의 정체성도 함께 역행했다. 그리고 기억의 끝에 도달했을 때, 새로운 정체성이 그 자리를 채웠다. 오지훈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그것도 끝이 아니었다. 정체성은 계속 역행했다. 오지훈의 기억도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 아래에는 또 다른 정체성이 숨어 있었다. 3년 전 오지훈 사건의 용의자. 아니, 피해자. 이준호의 아버지.

"이준호 검사는?"

박민준이 고개를 들었다.

"뭐?"

"이준호 검사는 어디 있어요?"

박민준의 눈이 흔들렸다. 그 순간 최영재는 알았다. 박민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그것도 오래전부터.

"그가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박민준이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면 그 전부터? 3년 전부터?"

박민준의 입이 열렸다 다물어졌다.

"당신이 타임스탬프를 조작했어요. 그걸 감춰야 했으니까. 그가 죽었다는 걸."

"최영재."

박민준의 목소리가 낮았다.

"이준호는 죽지 않았어. 변했어. 그것도 오래전에."

최영재의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 유치장에 있는 사람이?"

"오지훈이다."

박민준이 천천히 말했다. 마치 이미 결정된 것을 확인하듯이.

"하지만 그 안에 이준호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

*

유치장 앞. 서연희가 들어섰다. 그녀는 파일을 들고 있었다. 경찰관이 나타났다.

"용의자 면접 신청이 들어왔네요."

"네. 심리 상담 기록을 확인하고 싶어요."

경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장의 철문이 열렸다.

유치장 내부는 조용했다.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검은색 유치장 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반쯤 그림자에 묻혀 있었다.

서연희가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서연희의 호흡이 멈췄다. 그 얼굴은 이준호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준호가 아니었다.

눈빛이 달랐다. 이준호의 눈은 항상 뭔가를 분석하고 있었다. 의심하고, 추적하고,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남자의 눈은 공허했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검은 수심 같았다. 그리고 그 공허함 안에 무언가 다른 것이 반사되고 있었다. 광기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

서연희는 그 공허함을 읽었다. 심리 상담사로서의 오래된 직관이 발동했다. 그 공허함의 근원은 강박증이었다. 뭔가를 반복해야만 하는 강박. 뭔가를 찾아야만 하는 강박. 그리고 그 강박의 뿌리는 더 깊은 곳에 있었다. 상실감. 누군가를 잃은 슬픔. 그것이 뼈 깊이 박혀 있었다.

"당신은 누구예요?"

서연희가 물었다. 그 질문 안에는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당신은 이준호인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인가? 당신은 내가 아는 그 사람인가?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요."

목소리도 달랐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정확하고 논리적이었다. 감정 없이 사실만 전달하는 목소리. 하지만 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떨림이 목을 타고 입에서 흘러나왔다.

"제 기억은 이준호인데... 제 이름은 오지훈이라고 해요. 제 얼굴은..."

그가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누구의 얼굴이에요?"

서연희가 한 발 다가갔다. 그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멈췄다. 그의 눈이 변하고 있었다.

먼저 눈빛이 변했다. 공허함이 무언가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 다음 음성 톤이 변했다. 떨리던 목소리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말투가 변했다. 문장의 구조가 달라졌다.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준호인가?"

그가 중얼거렸다.

"아니면 오지훈인가?"

그의 손가락이 경련했다. 오그라들었다 펼쳐졌다 다시 오그라들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면..."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아닌가?"

서연희는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빛의 색이 변하고 있었다. 검은색에서 갈색으로. 갈색에서 회색으로. 마치 누군가 그 눈 뒤의 정체성을 지우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가 입을 벌렸다. 목소리가 나오려다 멈췄다. 목에서 두 개의 음성이 겹쳐 나오려고 했다. 젊은 음성과 늙은 음성이. 따뜻한 음성과 차가운 음성이. 그들이 동시에 같은 단어를 말하려 했다.

"나는..."

그리고 멈췄다. 입이 다물어졌다. 눈이 감겼다. 손가락이 침대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쓰려는 것처럼. 손톱이 침대 천을 할퀴었다. 한 글자. 또 한 글자. 이름을 새기려는 듯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멈췄다. 글자가 완성되지 않았다.

서연희의 입에서 거부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시계의 바늘이 정지했다. 오전 9시 34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

경찰청 심문실. 박민준과 최영재가 마주 앉았다.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최영재가 말했다.

"뭘?"

"이 정체성 역행을."

최영재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지금 유치장에 있는 사람은 이준호가 아니라 오지훈이에요. 하지만 오지훈의 기억 속에는 이준호가 있어요. 그리고 이준호의 기억 속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어요. 3년 전 오지훈 사건의 용의자. 아니, 피해자. 이준호의 아버지."

박민준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는 이준호를 찾아야 해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이준호는 죽었어."

박민준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아니야. 그는 변했어. 죽지 않고 변했어. 변신했어. 다른 정체성으로. 그리고 그 정체성이 또 다른 정체성으로 변하려고 하고 있어. 이것을 멈춰야 해."

"어떻게?"

최영재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대답을 모르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정체성의 역행을 멈출 수 있을까? 어떻게 기억의 소멸을 되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이미 사라진 자를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

박민준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깊은 피로가 묻어 있었다.

"멈출 수 없어. 이미 시작된 거야. 3년 전에."

*

밤 11시. 유치장.

오지훈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뜨거웠다. 뇌 안의 신경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방향이 아니었다. 역방향으로. 시침과 분침이 뒤로 돌아갔다.

오지훈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니야... 아니야..."

그의 기억이 역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오지훈의 기억이 아니었다. 오지훈이 된 이준호의 기억이었다. 그것도 아니었다. 그 이전의 누군가의 기억이었다.

어두운 옥방. 한 남자가 누워 있다. 목에 밧줄이 감겨 있다. 그의 눈은 떠 있고 입은 벌어져 있다. 그의 이름은 오지훈이다. 아니, 그것도 틀렸다. 그의 이름은... 이준호의 아버지다.

오지훈의 몸이 경련했다. 손가락이 침대를 할퀴었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느끼지 못했다. 그의 의식은 이미 다른 시간에 있었다. 3년 전으로. 5년 전으로. 10년 전으로.

거울이 나타났다. 유치장의 벽면에서 갑자기 거울이 떠올랐다. 그 거울 속에는 누군가의 얼굴이 비쳤다. 오지훈인지 이준호인지 알 수 없는 얼굴. 그 얼굴이 점점 변했다. 더 젊어졌다가 더 나이 들었다가 다시 젊어졌다.

오지훈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누군가의 웃음소리. 그것이 자신의 웃음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의 웃음인지 알 수 없는 웃음.

"이준호... 오지훈... 누군가... 아무도..."

그가 중얼거렸다.

시계의 바늘이 계속 역행했다. 밤 11시에서 밤 10시로. 밤 9시로. 밤 8시로.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희미해졌다. 마치 누군가 그 얼굴을 지우고 있는 것처럼.

거울 속에 손이 나타났다. 누군가의 손. 그 손이 거울 표면에 닿았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마치 글자를 쓰려는 것처럼. 펜이 아닌 손가락으로. 손톱으로.

글씨가 나타났다. 첫 번째 획. 두 번째 획. 세 번째 획. 그리고 멈췄다.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다시 글자가 시작되었다. 다시 멈췄다.

"나는..."

그 손이 쓰고 있었다.

글자가 떨렸다. 손가락이 떨리는 것처럼.

"나는 ______"

글자가 지워졌다. 완전히. 거울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화면이 검게 변했다.

어둠 속에서 시계 바늘만 역행했다. 계속해서. 영원히. 멈추지 않고.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눈이 떠졌다.

그 눈은 이준호였다. 아니, 오지훈이었다. 아니, 아무도 아니었다.

이전화목차마지막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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