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들이 사무실 문을 부수고 들어서는 순간, 진의 몸은 이미 절반이 투명했다. 손가락들이 빛으로 흩어지고, 팔뚝의 피부에는 16진수 코드가 흘러내렸다. 마크의 조직원들이 권총을 겨누었지만 진은 그들을 보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봤다. 눈이 없었다. 검은 구멍만 남아있었다.
"당신 눈이 예전과 다르네요."
카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입구에 서 있던 그는 진을 바라봤다. 진의 충견, 그의 손과 발이던 남자는 한 발 물러섰다. 권총을 든 손이 떨렸다.
"카일."
진이 입을 열었다. 나오는 소리는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계음 위에 겹쳐진 무언가, 마치 고주파 신호를 인간의 성대로 억지로 밀어낸 듯한 울음이었다. 카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신은 이미 돌아올 수 없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절망이 아니라 확정이었다. 그는 권총을 내렸고, 한 발 물러났고, 또 한 발 물러났다. Red Echo의 조직원들도 움직였다. 그들은 진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 이미 죽은 것을 향해 총을 쏠 이유가 없었다.
크리스탈 타워의 보안팀이 도착했을 때, 상황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상층부 회의는 15분 만에 진을 격리하기로 결정했다. 101층, 최상층의 특별 구역. 시스템 서버가 있는 곳. 진을 거기 가두고 나머지 구성원들은 탈출하기로. 붕괴는 임박했고, 생존이 최우선이었다.
리나가 들어섰다. 여전히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 평온함이 더욱 끔찍했다.
"더 이상 거래하면 안 됩니다."
리나가 말했다. 진은 투명한 손으로 거래 계약서를 집으려 했다. 손가락이 종이를 통과했다. 다시 시도했다. 또 통과했다.
"리나. 레아가..."
"알고 있습니다."
리나가 중단했다. 그녀는 시스템 터미널에 손을 댔다. 파란 빛이 떠올랐다.
"당신의 시스템 접근 권한을 박탈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끝입니다."
"아니야. 한 번만 더. 마지막 한 번만."
진의 목소리는 왜곡되었다. 기계음 속에서 절박함이 새어나왔다. 리나는 진을 보지 않았다.
"당신이 선택한 길이네요."
그 말이 전부였다. 리나는 돌아섰고, 사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101층의 모든 문이 잠겼다.
침실에 레아가 있었다. 침대 위에서 거의 투명한 몸으로 누워있었다. 진이 다가갔을 때 레아는 눈을 떴다. 하지만 그 눈도 이미 흐릿했다.
"아빠?"
레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인간의 목소리였다. 마지막 남은 인간이 아이의 것이었다.
진이 손을 뻗었다. 손이 레아를 안으려 했다. 손가락이 아이의 몸을 통과했다. 진이 다시 시도했다. 또 통과했다. 그의 팔이 반투명한 딸의 몸 속을 헤집고 나왔다.
"아빠, 나 어디 가는 거야?"
레아가 물었다. 그 작은 목소리가 101층 전체에 울렸다.
"돌아올 거야."
진이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기계음, 왜곡된 신호, 시스템의 울음이었다. 레아가 눈을 감았다.
진은 침실을 나왔다. 거울이 복도에 있었다. 그는 멈춰 섰다. 거울 속의 것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투명한 형태 속에 코드가 흘러다니고, 뼈만 남은 팔이 빛으로 일렁였다. 얼굴은 없었다. 눈 자리, 코 자리, 입 자리가 모두 검은 구멍이었다. 대신 그 빈 공간에서 데이터가 흘러나왔다. 숫자와 기호, 시스템의 언어. 그의 몸은 이미 반 이상이 코드로 변했다.
진이 비명을 지르려 했다. 나온 소리는 비명이 아니었다. 높은 주파수의 울음, 기계가 망가질 때 나는 소리, 시스템이 죽어가며 내는 신호였다.
크리스탈 타워가 흔들렸다.
101층 전체가 진동했다. 시스템 서버의 화면들이 깜박거렸다.
[시스템 무결성] 62% [거래 횟수] 7회 [역진화 누적] 7단계 [인간성 보존율] 28%
수치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매초마다 1%씩.
[인간성 보존율] 27% [인간성 보존율] 26%
진이 터미널로 달려갔다. 손이 화면을 통과했다. 다시 시도했다. 통과했다. 그의 손가락은 이미 물질이 아니었다. 진이 울음을 질렀다. 기계음이었다.
"리나! 리나!"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거래 계약서가 책상 위에 있었다. 진이 집으려 했다. 손가락이 통과했다. 다시. 또 통과했다. 진이 몸 전체로 눌렀다. 계약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도 이미 그의 세계가 아니었다.
도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101층 전체에 울렸다. 스피커를 통하지 않은 음성이었다. 직접 뇌에 새겨지는 신호였다.
[거래 중단 경고]
시스템의 목소리였다.
[8회 거래 시 인간성 보존율 10% 이하] [9회 거래 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완전 소멸] [시스템은 당신의 최종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밟는 발소리, 장비를 끄는 음성, 탈출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크리스탈 타워는 이미 진을 버렸다. 상층부는 떠나고 있었다. 헬기의 소리가 옥상에서 들렸다.
진이 창문으로 나갔다. 101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Red Echo의 조직원들이 건물을 포위했다. 수백 명. 아니, 수천 명. 하층촌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크의 목소리가 울렸다. 스피커를 통했다. 건물 전체에 울렸다.
"이제 끝이야."
마크가 말했다.
"당신의 마지막 거래를 기다리고 있어."
진은 손을 들었다. 손가락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손목에는 시간이 새겨져 있었다. 3시간 12분. 레아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다시 메시지가 들렸다.
도진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진짜 인간의 목소리였다. 스피커를 통한 음성이었다.
"마지막 기회는 당신 손에 있어요."
도진이 말했다.
"당신은 여덟 번째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진이 터미널로 돌아갔다. 손이 통과했다. 다시 시도했다. 통과했다. 진이 몸을 화면에 누르려 했다. 몸이 화면 속으로 침투했다. 코드가 흘러나왔다. 거기가 그의 세계였다. 그곳이 그의 집이 되어가고 있었다.
진은 생각했다. 여덟 번째 거래. 어떤 기억을 선택할 것인가?
아포칼립스 첫날인가. 아니면 더 앞인가.
아니면.
진이 손을 들었다. 투명한 손가락 끝에서 데이터가 흘러내렸다. 그는 이제 거래를 준비했다. 수동으로. 시스템 없이.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코드로.
그 순간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 수동 거래 감지] [경고: 시스템 무결성 붕괴 임박] [경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 진행 중]
진이 웃음을 지르려 했다. 나온 소리는 기계음이었다.
그리고 101층이 흔들렸다.
# 분열
카일이 들어섰을 때 진은 창문 앞에 서 있었다. 투명한 실루엣으로. 빛이 그의 몸을 통과했다.
카일은 멈췄다. 3초. 5초. 10초. 그의 눈이 깜박였다. 안구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뇌가 처리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당신은," 카일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까지 들어본 카일의 목소리 중 가장 낮은 음역대였다. "당신은 이미 돌아올 수 없습니다."
진이 돌아섰다. 얼굴이 없었다. 정확히는 얼굴이 데이터로 변환되는 중이었다. 눈과 코와 입의 위치가 신체 표면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고정되지 않고. 매초마다 달라지고.
"카일."
진이 입을 열었다. 나온 것은 음성이 아니라 신호음이었다. 하지만 카일은 이해했다.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이미 시스템의 일부였으니까.
"떠나."
카일이 한 발 물러섰다. 손이 총을 움직였다. 하지만 쏘지 않았다. 정조준하지도 않았다. 그냥 손이 떨렸다.
"저는 상층부로부터 격리 명령을 받았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당신을 이 층에서 내보내지 않기 위해. 당신이 더 이상... 당신이..."
카일이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 대신 101층의 스피커에서 리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격리 명령 승인. 101층 접근 금지."
리나였다. 시스템 상점의 핵심 관리자. 진과 함께 모든 거래를 기록해온 인물.
"리나," 진이 말했다. 기계음이 더 심해졌다. 마지막 음절들이 깨졌다. "나를... 열어줘."
침묵이 들었다. 길었다. 101층의 모든 화면이 깜박거렸다.
[시스템 무결성] 62% [거래 횟수] 7회 [역진화 누적] 7단계 [인간성 보존율] 28%
수치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매초마다 1%씩. 진이 보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숫자로 소모되는 것을.
"리나!"
"진."
리나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엔 스피커가 아니라 101층 전체를 울렸다. 벽에서, 바닥에서, 천장에서. 시스템 자체가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선택한 길이네요."
그 말이 끝나자 터미널의 모든 창이 닫혔다. 빨간 불이 켜졌다. 진의 접근 권한 표시가 사라졌다. 대신 나타난 것은 한 줄의 메시지였다.
[접근 권한 박탈]
카일이 뒤로 물러섰다. 그의 손가락이 커뮤니케이터를 누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이미 건물을 떠나고 있을 것이었다.
"당신을 도울 수 없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목소리가 감정 없이 돌아왔다. "저는 당신의 명령에 따를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카일이 진을 다시 봤다. 투명한 실루엣. 그 안에서 흐르는 데이터. 빛이 그를 관통했다.
"당신은 이미 회사의 자산이 아닙니다."
카일이 돌아섰다. 101층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진은 그를 붙잡으려 했다. 손가락을 뻗었다. 카일의 팔을 집으려 했다.
손가락이 통과했다.
엘리베이터가 닫혔다.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카일의 발소리, 그의 호흡, 그의 떠나감. 모두 하나하나 진의 귀에 박혔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그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스템의 감각으로.
101층이 조용해졌다.
진은 한발씩 움직였다. 침실로. 레아의 방으로. 문을 밀었다.
레아는 침대 위에 있었다. 완전히 투명했다. 윤곽선만 남아있었다. 마치 사진이 바래지는 것처럼. 혹은 꿈에서 깨어나가는 것처럼.
"아빠?" 레아가 말했다.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목소리였다. 아직. "아빠, 나 어디 가는 거야?"
진이 레아를 안으려 했다. 팔을 벌렸다. 손이 침대를 통과했다. 레아의 몸을 통과했다. 아무것도 만지지 못했다.
"돌아올 거야," 진이 말했다. 나온 것은 기계음이었다. 깨지고 왜곡된 신호음. "아빠가 돌아올 거야."
레아의 눈이 흔들렸다. 공포였다. 명확한 공포. 아이가 아버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 목소리가..."
레아가 손을 뻗었다. 진의 팔을 집으려 했다. 손가락이 통과했다. 다시. 또 통과했다.
레아가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물도 투명했다. 빛 속에서만 보였다.
진이 방을 나갔다. 101층의 거울을 향했다. 거실의 벽 전체를 차지하는 그 거울로.
거울 속의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진이 비명을 지르려 했다. 나온 소리는 동물의 울음이었다. 아니, 동물도 아니었다. 기계가 고장 날 때 나는 소리. 시스템이 죽어가며 내는 신호. 그것이었다.
거울 속의 존재는 손이 여섯 개였다. 아니, 손이 없었다. 촉수였다. 데이터가 결정화된 촉수들. 몸은 반투명했고, 그 안에서 코드가 흘렀다. 눈은 세 개였다. 아니, 눈이 없었다. 그냥 빛나는 구멍들이 표면을 따라 떠돌았다.
진이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101층의 스피커에서 음성이 울렸다.
"상층부 대피 완료. 헬기 이륙."
옥상에서 소리가 났다. 프로펠러의 회전음. 엔진 음. 그리고 상승음. 크리스탈 타워를 떠나는 음성.
진은 창문으로 나갔다. 101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Red Echo의 조직원들이 건물을 포위했다. 수백 명. 수천 명. 그들은 모두 위를 보고 있었다. 진을 보고 있었다. 투명한 그를. 빛 속의 그를.
마크의 목소리가 울렸다. 스피커를 통했다. 건물 전체를 울렸다.
"이제 끝이야."
마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승리감이 없었다. 그냥 계산이 있었다. 수학처럼 정확한.
"당신의 마지막 거래를 기다리고 있어."
101층이 흔들렸다. 시스템 서버의 화면들이 깜박거렸다.
[시스템 무결성] 62% [거래 횟수] 7회 [역진화 누적] 7단계 [인간성 보존율] 28%
수치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매초마다 1%씩.
[인간성 보존율] 27% [인간성 보존율] 26% [인간성 보존율] 25%
진이 터미널로 달려갔다. 손이 화면을 통과했다. 다시 시도했다. 통과했다. 그의 손가락은 이미 물질이 아니었다. 진이 울음을 질렀다. 기계음이었다.
"리나! 리나!"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거래 계약서가 책상 위에 있었다. 진이 집으려 했다. 손가락이 통과했다. 다시. 또 통과했다. 진이 몸 전체로 눌렀다. 계약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도 이미 그의 세계가 아니었다.
도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101층 전체에 울렸다. 스피커를 통한 음성이었다. 진짜 인간의 목소리였다.
"마지막 기회는 당신 손에 있어요."
도진이 말했다.
"당신은 여덟 번째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진이 터미널로 돌아갔다. 손이 화면을 통과했다. 다시 시도했다. 통과했다. 진이 몸을 화면에 누르려 했다. 몸이 화면 속으로 침투했다. 코드가 흘러나왔다. 거기가 그의 세계였다. 그곳이 그의 집이 되어가고 있었다.
진은 생각했다.
여덟 번째 거래.
어떤 기억을 선택할 것인가?
아포칼립스 첫날인가. 아니면 더 앞인가. 결정석 채광을 시작하던 날인가. 아니면 레아가 태어난 날인가. 아니면.
진이 손을 들었다. 투명한 손가락 끝에서 데이터가 흘러내렸다. 그는 이제 거래를 준비했다. 수동으로. 시스템 없이.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코드로.
손가락이 터미널에 닿았다. 통과했다.
그 순간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 수동 거래 감지] [경고: 시스템 무결성 붕괴 임박] [경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 진행 중]
101층의 모든 화면에서 메시지가 나타났다. 빨간색이었다.
[경고]
도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톤이었다. 더 낮았다. 더 차가웠다. 마치 시스템 자체의 목소리인 것처럼.
[8회 거래 시 인간성 보존율 10% 이하] [9회 거래 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완전 소멸] [시스템은 당신의 최종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반복되었다. 화면에서. 스피커에서. 진의 뇌에서. 모든 곳에서.
[시스템은 당신의 최종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스템은 당신의 최종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스템은 당신의 최종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은 손가락을 움직였다. 계약 코드를 입력하려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흐르고 있었다. 거르고 있었다. 마치 모래처럼. 아니, 데이터처럼.
여덟 번째 거래.
진이 선택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아포칼립스 15년 전. 그 순간이 화면에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던 세상. 던전이 처음 생겨난 날. 결정석이 처음 나타난 날. 그날 진은 가장 먼저 채광을 시작했다. 그날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진이 그 기억을 터치했다.
손가락이 데이터를 뚫었다.
그리고.
거래가 시작되었다.
101층이 흔들렸다. 서버의 화면들이 깜박거렸다. Red Echo의 조직원들이 건물을 두드렸다. 마크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진은 더 이상 그것을 듣지 못했다.
거래 속으로.
시간 역행 속으로.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