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퇴고본

이명재 검사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채웠다.

"재심 신청서입니다."

파일을 밀어내며 그가 덧붙였다. 이준호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종이의 무게가 생각보다 가벼웠다.

"박준영. 15년 전 사건 피고인입니다. 혈액형 불일치가 발견됐습니다."

이준호의 손이 멈췄다.

"CCTV 타임스탐프도 위조 흔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프로파일을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침묵이 회의실을 채웠다. 이명재는 계속했다.

"법원이 원본 증거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이준호의 입가가 움직였다. 웃음이 아니었다. 경련이었다.

"99.8% 정확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만—"

"그 이상 설명할 것은 없습니다."

이준호가 말을 끊었다. 그의 눈빛이 차가웠다.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의 회의실은 정적으로 돌아섰다. 창밖으로 서울의 아침이 밝아가고 있었고, 그 빛은 이준호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명재는 물러서지 않았다.

"파일실에서 원본을 확인하겠습니다."

이준호가 일어섰다. 경찰청 지하 1층. 기록 관리실. 그곳은 조용한 무덤 같은 공간이었다. 선반과 선반 사이로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형광등이 천장에서 흐릿한 빛을 내려보냈다.

시스템 터미널에 접근한 이준호는 기록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15년 전 강도살인 사건. 박준영. 당시 체포 현장 증인 목록이 떠올랐다. 그는 증인 이름들을 스캔했다. 대부분이 이미 기록에서 회수되거나 폐기 처리된 상태였다.

한 이름이 눈에 걸렸다.

정혜경.

강도살인 사건 당시 현장 근처에 있던 증인. 신뢰도 낮음. 분류 번호: 3-D. 그 이후로 그녀의 기록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이준호는 검색을 반복했다. 정혜경. 정혜경. 정혜경. 마지막 결과는 항상 같았다. 기록 없음.

터미널의 수정 로그를 따라가보니 같은 기록이 여덟 번이나 수정되었다. 오늘 날짜로 시작해 15년 전까지 역순으로.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그녀의 정보를 덮어씌우고 있었다.

이준호는 터미널을 떠났다. 기록 관리실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가 있었다. 의자에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나이는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떨어져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어두운 곳에서만 살아온 사람처럼.

"정혜경입니까?"

그 여자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녀의 눈빛이 이준호를 마주쳤을 때 무언가가 흔들렸다. 서로를 알아본다는 인식.

"15년입니다."

정혜경이 말했다.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이 기록 관리실에만 있던 시간입니다."

그녀는 일어섰다. 몸이 불안정해 보였다.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선 사람처럼.

"당신은 날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을 압니다."

정혜경이 그의 손에 파일 한 묶음을 집어넣었다. 원본 파일이었다. 복사본이 아닌, 손으로 수정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원본.

"이것이 진짜입니다."

이준호는 파일을 펼쳤다. 손가락이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호흡이 얕아졌다. CCTV 타임스탐프. 14:23:47. 그런데 그 옆에 손으로 쓰인 숫자가 있었다. 14:23:48.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있었다.

이준호의 시야가 일순 왜곡되었다. 그 숫자들이 떠올랐던 그날의 기억과 겹쳤다. 자신이 얼마나 확신했는지. 얼마나 의심하지 않았는지. 그 손글씨 위에 자신의 신화가 지어졌다는 사실이 뇌를 관통했다.

"위조입니다."

정혜경이 말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15년 동안 저는 이것들을 봐왔습니다. 한 사람이 이 기록들을 조작하도록 지시했고, 저는 그것을 따랐습니다."

이준호는 파일을 내려놨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정혜경은 또 다른 파일을 집어들었다. 법의학 보고서였다. 혈액형 검사 결과. 원본에는 O형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그 위에 손글씨로 A형이라고 덮어씌워져 있었다. 수정액이 아닌 검은 펜으로. 의도적으로 남겨둔 흔적처럼.

"박준영의 혈액형은 O형입니다. 피해자의 혈흔은 A형입니다."

정혜경이 말했다.

"당신의 프로파일은 이 불일치를 무시했습니다."

이준호의 눈이 혈액형 기록 위에 고정되었다. 그 손글씨. 누구의 손글씨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조작이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증거를 위조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고도 무시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네."

그 한 글자가 회의실을 채웠다. 침묵이 아니라 그 침묵에 담긴 모든 것이. 공포, 무력감, 절망.

"왜 지금 말합니까?"

정혜경이 이준호의 눈을 직시했다.

"또 다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작년 강도살인. 당신의 프로파일로 구속된 피의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도 혈액형이 맞지 않았습니다."

정혜경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그 파일도 조작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제 침묵이 또 다른 박준영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이준호는 파일들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문서의 모서리를 누르고 있었고, 손톱이 희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간 그는 15년 전 자신이 작성한 프로파일 보고서를 꺼냈다. 마지막 페이지.

"범인의 심리 패턴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것이 나의 분석이 정확함을 증명한다."

자신이 쓴 글귀였다. 그때 자신은 뿌듯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문장을 다시 읽으며 이준호는 깨달았다. 너무 정확한 일치는 의심의 신호다. 범죄 심리학의 기초. 너무 깔끔한 프로필은 거짓이다. 인간의 심리는 항상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을 무시했다.

이준호의 손이 다시 떨렸다. 박준영. 그 이름을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감옥에 보낸 인간의 이름이었다. 15년. 그 기간 동안 박준영은 무엇을 했을까? 자신의 프로파일 때문에.

오전 9시 47분.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의 회의실에서 오재훈 과장이 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준영과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준호는 회의실 문을 열었다.

박준영이 앉아 있었다. 15년 만에. 그의 얼굴은 옥살이가 묻어있었다. 창백한 피부에 깊게 파인 주름들. 눈빛은 죽어 있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안녕하십시오. 이준호입니다."

이준호가 인사했다. 그것은 첫 번째 만남이 아니었다. 15년 전에도 만났었다. 그때 박준영은 아직 젊었다. 그리고 억울함으로 가득 찼다. 자신을 봤을 때 그의 눈에 희망이 있었다. 혹시 이 사람이 자신을 믿어줄 것 아닐까 하는 희망.

하지만 자신은 그를 믿지 않았다.

"15년입니다."

박준영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일정했다.

"당신의 프로파일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지금은 재검토 중입니다."

박준영의 입가에 미세한 움직임이 있었다. 웃음이 아니었다. 모욕이었다.

"당신의 완벽한 분석을 다시 검토한다는 말입니까?"

이준호는 말이 없었다. 그의 눈이 박준영의 얼굴을 훑었다. 15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 감옥이 만든 얼굴. 자신의 분석이 만든 얼굴.

"혈액형이 맞지 않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자백이었다.

박준영은 천천히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슬픈 웃음이었다.

"그걸 이제 알았습니까?"

"누가 조작했습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박준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빛이 준호의 등 뒤로 향했다. 준호가 돌아봤을 때, 오재훈 과장이 회의실 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조사가 끝났습니까?"

오재훈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이 부드러웠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있습니까?"

이준호는 오재훈을 바라봤다. 15년 동안 자신의 상관이었던 이 남자.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다. 아주 친절한 미소였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미소였다.

"당신이 했습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오재훈은 웃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준호.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의 손이 테이블 위의 파일을 집어 들었다. 정혜경이 건넨 원본 파일이었다.

"이 파일을 누가 가져왔습니까?"

오재훈이 물었다.

"정혜경입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기록 관리실의 정혜경입니까?"

오재훈이 다시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아래에는 뭔가 다른 것이 흐르고 있었다.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는 15년 동안 정신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망상 장애입니다. 당신도 알겠지만, 그녀의 증언은 법적 가치가 없습니다."

오재훈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 파일은?"

"위조된 것입니다. 그 여자가 만든."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그것은 가능했다. 정혜경이 기록 관리실에 있으면서 파일을 조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손글씨는? 혈액형 기록 위의 수정 흔적은? 정혜경이 혼자 모든 것을 위조했다고 믿기에는 너무 정교했다.

"당신이 시킨 겁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오재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었다. 경고였다.

"준호.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경력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15년 전부터."

오재훈의 말이 의도적으로 반복되었다. 그것은 협박이었다.

"혈액형을 조작했습니까?"

이준호가 다시 물었다.

"그리고 왜?"

침묵이 회의실을 채웠다. 그 침묵 속에서 이준호는 자신의 답을 들었다. 침묵이 모든 것을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질문을 낳았다. 왜? 박준영을 왜 함정에 빠뜨렸는가? 오재훈이 무엇을 얻기 위해?

이준호의 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15년 전 강도살인 사건. 박준영. 그리고 오재훈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사건 직후 오재훈은 경찰청 내에서 급속도로 승진했다. 특수범죄수사과 과장. 그 이후로 계속 권력을 확대해왔다.

"금융 네트워크입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오재훈의 미소가 사라졌다.

"박준영의 조직. 당신이 그것을 필요했습니까? 아니면 정치적 성과입니까? 15년 전 강도살인 사건을 해결한 경찰청의 능력 있는 과장?"

이준호의 목소리가 더 날카로워졌다.

"그렇다면 박준영은?"

이준호가 박준영을 바라봤다.

박준영은 여전히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감정이 없었다. 마치 이 모든 것을 이미 예측했다는 듯이.

"당신은 무죄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의 15년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박준영의 눈빛이 이준호를 마주쳤다. 그 안에는 억울함도, 분노도 없었다. 오직 차가운 인식만 있었다. 이 남자도 결국 같은 편이라는 인식.

"그리고 나는..."

말이 끝나지 않았다.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의 회의실 문이 열렸다. 감찰실의 수사관들이 들어섰다. 이준호는 그들의 얼굴을 훑었다. 낯선 얼굴들이었다. 오재훈의 사람들이 아닌 다른 세력의 사람들이었다.

"이준호 경감. 당신을 피의자로 소환합니다."

수사관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이준호의 신화의 끝이었다. 15년 전 박준영을 투옥시킨 그 문장이 이제는 자신을 투옥시키려 하고 있었다.

이준호는 수사관들을 따라 일어섰다. 오재훈의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 그것은 친절한 미소가 아니었다. 승리의 미소였다.

그 순간, 박준영이 무언가를 속삭였다. 이준호의 귀에만 들리도록. 매우 짧은 말이었다.

"오재훈은 피해자의 형입니다."

이준호는 박준영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이 말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시작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아직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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