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빗속의 추락
비는 배달 상자를 무겁게 만들었다.
루아는 우산을 한 손에 쥐고 골목길을 내려갔다. 제과점 주인이 정해준 시간이 있었고, 늦지 않으려면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빗소리가 우산을 두드리는 리듬은 규칙적이었다. 루아는 그 규칙 속에서 마음이 편했다. 변수가 없으니까.
발이 헛디디는 순간, 세상이 기울었다.
배달 상자가 손에서 떨어졌다. 무릎이 먼저 포장도로에 닿았고, 몸이 관성대로 굴렀다. 통증이 뒤따랐지만 루아는 그것을 느낄 틈이 없었다. 골목길의 끝이 없었다. 계단처럼 깎아진 좁은 길이 계속되고, 루아의 몸은 그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어—"
소리가 목에서 끊겼다.
은색 안개가 루아의 눈을 덮었다. 차갑고 축축한 것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루아는 손으로 안개를 헤쳐내려 했지만 손가락 사이로 연기처럼 빠져나갔다. 몸이 무언가 부드러운 것에 닿았다. 흙이었다. 이상하게 따뜻한 흙.
루아는 눈을 떴다.
하늘이 회색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회색이 아니라, 은빛이 도는 밝은 회색. 마치 새벽녘 구름 같기도 하고, 달빛을 머금은 안개 같기도 했다. 루아는 천천히 일어났다. 옷이 흙에 젖어있었다. 손을 털어냈을 때 먼지 대신 부드러운 이슬이 떨어져내렸다.
"여기가... 어디야?"
루아의 목소리는 작았다.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도록,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내뱉은 말. 오래된 습관이었다.
주변을 살펴봤다. 나무들이 있었다. 가늘고 긴 나뭇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었고, 그 사이로 부드러운 빛이 새어나왔다. 형광등 같은 인공적인 빛이 아니라, 나무 자체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은빛. 달빛 같은 은빛이 나뭇잎 끝에 맺혀있었다.
루아는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는 떨리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흙이 묻어있었지만 루아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배달 상자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제과점, 배달, 시간. 그 모든 것이 저 회색 하늘 너머에 있었다. 루아는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또 한 발.
숲이 루아를 감싸고 있었다. 흙내음이 코를 자극했다. 빗냄새와는 다른 냄새. 흙이 마르면서 나는 냄새. 루아는 그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자신도 모르게.
나무 줄기들이 길을 만들어놨다. 루아는 그 길을 따라갔다. 시간이 흐르는지 흐르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회색 하늘은 변하지 않았고, 은빛은 계속 나뭇잎에서 흘러나왔다. 루아의 발걸음은 규칙적이었다. 한 발, 한 발, 한 발.
길가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물이 은빛이었다. 루아는 멈췄다.
물 위에 무언가가 비쳤다. 얼굴이었다. 루아는 천천히 몸을 구부렸다. 물가에 무릎을 꿇고 그 얼굴을 바라봤다.
낯선 얼굴이었다. 아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자신의 얼굴이었다. 수십 년간 거울에서 본 얼굴.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연못 같은 개울 물에 비친 루아의 얼굴에는 뭔가가 있었다.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입 모서리가 경직되어 있었다. 이마에는 주름이 패여있었다. 그 모든 것이 함께 말하고 있었다. 뭔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루아는 손을 들었다. 얼굴을 만져봤다. 진짜 얼굴이었다. 뜨거웠다. 자신의 얼굴이 뜨겁다는 걸 깨달은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루아는 빠르게 손등으로 닦아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계속 흘러내렸다. 루아의 목이 경직되었다. 숨을 가다듬으려 애썼지만 호흡은 자꾸 흐트러졌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가 나올까봐. 누군가 들을까봐. 하지만 이 숲에는 아무도 없었다. 회색 하늘 아래 루아 혼자였다.
루아는 개울가에 앉았다. 등을 나무에 기대고, 무릎을 가슴에 모아 앉았다. 작은 몸. 자신을 최대한 작게 만들려는 몸.
몇 분이 지났을 때, 루아의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눈가의 물기도 마르기 시작했다. 루아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옷을 털어냈다. 얼굴을 한 번 더 개울 물에 비춰봤다.
무표정이 돌아와 있었다. 작은 주름들도 사라졌다. 떨림도 없었다. 다시 아무것도 아닌 얼굴.
루아는 일어서서 걸었다. 숲이 더 깊어졌는지 얕아졌는지 알 수 없었다. 나무들이 더 많아졌고, 은빛도 짙어졌다. 루아는 계속 걸었다.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본능이 있었다. 이 숲의 한가운데서 계속 서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때 따뜻한 빛이 보였다.
주황빛이었다. 은빛과는 다른 따뜻한 주황빛. 나무들 사이로 반짝거렸다. 루아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자신도 모르게.
집이었다. 돌과 나무로 지어진 작은 집. 창문에서 나오는 불빛이 은빛 숲을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루아는 멈췄다. 집 앞에서.
'누군가 산다.'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루아의 마음은 철렁했다.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말을 걸어야 한다는 뜻.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는 뜻.
루아가 한 발을 내디딜 때, 문이 열렸다.
큰 그림자가 문 틀을 채웠다. 늑대 같은 귀, 회색 털, 그리고 루아보다 두 배 이상 큰 몸. 남자였다. 수인 남자였다. 늑대 수인의 눈이 루아를 향했다.
루아의 숨이 멎었다.
그 눈빛에는 뭔가 있었다. 의심, 경고, 그리고 무언가 더 깊은 것. 그 깊은 무언가가 루아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늑대 수인의 목소리는 낮았다. 차갑게 울려 나왔다.
루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이 떨렸다. 이번엔 자신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미안합니다."
작은 목소리. 거의 숨결에 가까운 목소리. 루아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늑대 수인의 눈이 좁혀졌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어두운 형체. 루아는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레이, 누구야?"
여자 목소리였다. 밝고 호기심 어린 목소리. 그 형체가 늑대 수인의 옆으로 나왔다.
여우 수인이었다. 붉은 털, 선명한 눈동자. 루아와 비슷한 체형이지만 더 우아했다. 여우는 루아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오, 이건... 인간이네?"
"들어와."
늑대 수인—그레이라고 불린 남자의 명령은 간결했다.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루아는 한 발을 내디뎠다. 신발이 낡은 나무 바닥에 닿았다. 따뜻했다. 집 안은 따뜻했다.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불이 공간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천장은 높고, 벽은 울퉁불퉁한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부엌이 있었다. 오래된 냄비들, 쌓인 나무 그릇들, 그리고 커다란 오븐.
루아의 눈이 오븐에 머물렀다.
"여긴 뭐야? 제과점?"
여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밝은 웃음. 루아의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표정도 이상한데. 인간치고 너무 멈춰있네."
"렉스."
그레이의 한 마디에 여우—렉스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이름이 뭐야?"
그레이가 물었다. 루아를 향한 눈빛은 여전히 차갑지만, 의외로 성급하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있는 것처럼. 마치 루아가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루아입니다."
"루아."
그레이가 중얼거렸다. 마치 맛을 보는 것처럼.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루미! 나와."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계단 위에서. 루미라고 불린 누군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루아는 그 발소리만으로도 무언가를 감지했다. 두려움. 조심스러움. 마치 자신과 닮은 무언가.
토끼 수인이 계단을 내려왔다. 작은 체형, 흰 털, 그리고 떨리는 눈빛. 루아와 눈이 마주쳤을 때, 토끼는 깜짝 놀라 한 발을 물렸다.
"저... 저건 뭐예요?"
"인간이래. 루아라고."
렉스가 대답했다. 마치 재미있는 일을 발견한 아이처럼.
"인... 인간?"
루미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그 작은 목소리에서 루아는 자신을 봤다. 자신의 과거를 봤다. 세상을 두려워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봤다.
"여기 오래 있을 거야?"
갑자기 누군가 물었다. 루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레이였다.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어떻게 여기 온 건지 모르겠고요. 어디가 여기인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루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지만, 이번엔 떨리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무표정한 얼굴처럼 담담한 사실 진술.
그레이의 눈빛이 변했다. 의심에서 뭔가 다른 것으로. 루아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옷 봐. 너덜너덜해."
렉스가 루아의 팔을 집어들었다. 루아는 저항하지 않았다. 자신의 옷을 봤다. 정말로 헤어져 있었다. 배달 중 떨어질 때 손상된 것 같았다. 한쪽 소매는 반쯤 뜯어져 있었고, 바지는 곳곳이 찢어져 있었다.
"여기 있을 거니까 옷부터 갈아입어. 루미 어머니 옷 있나?"
"있어요. 2층 상자에."
루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루아를 향한 눈빛은 여전히 경계하고 있었지만,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자, 위로."
렉스가 루아의 팔을 잡아당겼다. 루아는 끌려갔다. 계단을 올랐다. 2층은 어두웠다. 창문이 몇 개 있었지만, 밖은 여전히 은빛 숲이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같은 밝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야."
렉스가 상자를 가리켰다. 루아는 열었다. 깔끔하게 접힌 옷들이 있었다. 손수 만든 것 같은 느낌의 옷들. 누군가가 정성껏 보관한 것들.
"이건... 누구의 옷이에요?"
루아가 물었다.
렉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눈동자가 한 점으로 축소되었다가 다시 펼쳐졌다. 마치 뭔가 깊은 곳에서 떠올라 다시 가라앉는 것처럼. 렉스는 옷을 들었다 놨다. 손가락이 천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냥... 있는 옷이야."
렉스가 돌아섰다. 루아는 옷을 갈아입었다. 낡은 옷을 벗을 때, 자신의 팔뚝이 얼마나 희고 약한지 깨달았다. 햇빛을 보지 못한 팔. 누군가를 안아본 적 없는 팔. 그런 팔이었다.
새 옷을 입으니 몸이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옷이 부드러웠다. 손수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1층으로 내려갔을 때, 그레이는 벽난로 앞에 앉아 있었다. 렉스와 루미도 그의 주변에 있었다. 마치 가족이 모인 것처럼.
"밥 먹어?"
그레이가 물었다.
루아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었다. 언제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루미, 뭐 있어?"
"아, 어제 만든 스튜랑... 빵이 있어요."
루미가 일어났다. 작은 몸이 부엌으로 향했다. 루아는 그 뒷모습을 봤다. 자신보다 더 작은 누군가. 하지만 여기서는 그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다.
루미가 가져온 것은 깊은 냄비와 검은 빵 몇 조각이었다. 스튜는 따뜻했다. 김이 피어올랐다. 루아는 한 숟가락 떴다. 맛을 봤다.
그 순간, 무언가가 루아의 가슴을 스쳤다.
스튜 한 숟가락이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따뜻함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루아의 눈가가 떨렸다. 손가락이 숟가락 손잡이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목이 경직되었다가 풀렸다. 마치 누군가의 손이 직접 만든 것처럼.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생각하며 끓인 것처럼.
루아는 한 번에 숟가락을 내려놨다. 눈빛이 흔들렸다. 그 떨림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루미가 이미 보고 있었다.
"좋아?"
루미가 물었다. 목소리는 작지만 확실했다.
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으로 충분했다. 루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피어났다.
밥을 먹는 동안, 그레이는 루아를 관찰했다. 마치 뭔가를 계산하는 것처럼. 마치 루아를 판단하는 것처럼.
"여기 있을 동안, 규칙이 있어."
그레이가 말했다.
"규칙?"
루아가 반복했다.
"진심으로 행동해. 거짓은 이곳에서 먹히지 않아."
루아는 그 말을 곱씹었다. 진심. 그것이 무엇인지 루아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은 지난 몇십 년을 거짓으로 살아왔다. 거짓 미소, 거짓 말, 거짓 감정. 그것이 생존의 방식이었다.
"감정을 숨기지 말고."
렉스가 거기 덧붙였다. 루아는 렉스를 봤다. 여우의 눈빛에는 뭔가 있었다.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그건... 불가능합니다."
루아가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아니야."
그레이가 대답했다. 그의 눈빛이 창밖의 은빛 숲을 향했다. 깊은 숲. 보이지 않는 어딘가.
"여기는 진심이 통하는 곳이야. 그리고..."
그레이가 다시 루아를 봤다. 그의 시선이 차갑지만 무언가 더 있었다. 마치 루아를 아는 것처럼.
"넌 이미 여기에 있으니까."
루아는 말을 잃었다. 그레이의 말에서 뭔가를 느꼈다. 경고일까. 아니면 초대일까. 둘 다일까.
그때 숲에서 소리가 들렸다.
낮고 길게 내쉬는 숨. 마치 짐승의 숨처럼. 루미의 귀가 쭉 펴졌다.
"아빠... 저기..."
루미의 손가락이 창문을 가리켰다. 루아는 고개를 들었다. 창문 너머, 숲 깊숙한 곳.
은빛 안개 사이로 뭔가가 움직였다. 검은 형체. 루아는 그것을 정확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느꼈다. 그것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의 숨소리가 더 명확해졌다. 낮고 길게 내쉬는 숨. 마치 짐승의 숨처럼. 숲을 가르는 그 숨소리가 창문을 통해 스며들었다. 루아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검은 형체가 더 가까워졌다. 은빛 안개가 흔들렸다. 그 속에서 무언가 크고 단단한 것의 윤곽이 드러났다. 어깨. 다리. 그리고 눈.
눈이 보였다. 깊고 오래된 눈. 루아를 향한 그것의 시선은 기다림으로 가득했다. 아니, 기다림이 아니라 갈증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무언가를 마주한 짐승의 갈증.
"카이."
그레이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 명령이었다. 경고였다.
검은 형체—카이는 움직였다.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창문을 향해 있었다. 루아를 향해 있었다. 그것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여기 있는 거예요?"
루아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이번엔 자신도 막을 수 없었다.
그레이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있지."
"뭐예요?"
"나중에."
그레이가 창문 커튼을 그었다. 은빛 숲이 가려졌다. 하지만 그것이 가려진다고 해서 그것의 존재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루아는 여전히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숲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 그것의 숨소리. 그것의 갈증.
루아는 알았다.
이곳에 자신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자신보다 오래된 무언가가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걸.
밤이 되었을 때 루미가 루아를 침실로 안내했다. 2층의 작은 방. 창문 하나, 침대 하나, 그리고 촛불.
"편하게 쉬세요."
루미가 속삭였다.
"여기 머물면서, 혹시... 이상한 일이 생기면?"
루아가 물었다.
"아빠나 오빠를 불러요. 그럼 괜찮아요."
루미의 목소리는 작지만 확실했다. 마치 자신을 믿으라는 듯.
루미가 나간 후, 루아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나무로 된 천장. 손으로 만들어진 천장. 이 집 모든 것이 누군가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루아는 손을 들었다. 자신의 손을 봤다. 제과 기술로 단련된 손. 무언가를 만드는 손.
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뭘 만들어야 하는지는 아직 몰랐다.
루아는 눈을 감았다.
꿈을 꿨다.
비 오는 도시. 자신이 배달하던 그 도시. 하지만 그곳은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꿈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루아. 루아!"
누군가의 목소리. 하지만 루아는 돌아서지 않았다.
이미 돌아갈 이유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침이 되었을 때, 루아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창밖은 여전히 같은 밝기였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1층으로 내려갔을 때, 그레이는 이미 나가 있었고, 렉스와 루미는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아, 일어났어!"
렉스가 반겼다.
"아빠가 말했어. 넌 여기 있을 거래. 한동안."
루아는 그 말을 들었다. 한동안.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는 시간.
"그 동안... 뭘 해야 해요?"
루아가 물었다.
렉스와 루미가 눈을 마주쳤다. 마치 뭔가를 기다리던 것처럼.
"아빠가 말했어. 넌 제과사래."
렉스가 천천히 말했다.
"그럼..."
"빵을 구워. 여기서."
렉스의 눈이 부엌의 오븐을 가리켰다.
루아는 일어섰다. 부엌으로 걸어갔다. 오븐 앞에 서자, 그 열기가 얼굴을 스쳤다. 익숙한 온기. 손가락 끝에 맺히는 미세한 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반죽을 치대던 손의 감각. 밀가루 냄새가 옷에 스미는 느낌.
루아는 오븐의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창문이 흔들렸다.
검은 형체가 집 벽에 부딪혔다. 무거운 충격. 돌과 나무로 된 벽이 울렸다. 루미가 비명을 질렀다. 렉스가 루미를 끌어당겼다.
카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낮고 길게 내뱉는 그르렁거림. 그 소리가 집 전체를 진동시켰다.
루아의 손이 오븐 손잡이에서 떨어졌다. 몸이 경직되었다. 카이의 눈이 창문을 통해 다시 보였다. 더 가까워졌다. 더 가득 찼다. 그 눈 속에는 기다림이 아니라 욕망이 있었다.
"루아!"
렉스가 외쳤다.
"어서!"
그 순간, 루아는 깨달았다.
카이가 자신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도 뭔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 욕망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것이 이 오븐 안에 있다는 것을.
루아의 손이 다시 오븐 손잡이로 향했다.
손가락이 따뜻한 금속을 만지는 순간, 몸 깊숙한 곳에서 뭔가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무언가. 루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이번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카이의 울음이 더 커졌다.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