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10화 「심야 상담소의 끝, 혹은 시작」

상담실의 불이 켜졌다.

손가락의 떨림으로 깨어난 것 같았다. 거울 앞에 선 존재의 손가락이 자꾸만 펼쳐졌다 오므려졌다를 반복했다. 그 손가락들이 정말 자신의 손가락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웃고 있었다. 웃음은 천천히 깊어졌다. 눈가의 주름이 늘어나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그 웃음이 누구의 웃음인지 아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훈인가? 은서인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인가?

거울 속 존재의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 실은 거울 표면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거울 뒤로 스며들었다. 거울 뒤의 공간으로. 그곳엔 또 다른 상담실이 있었다. 그 상담실 안의 거울 뒤에도. 그 거울 뒤에도. 무한히.

상담실 문이 열렸다.

관리자가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았다. 마치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처럼. 그는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오래되고 무겁고, 필름이 감긴 아날로그 카메라였다.

"상담이 끝났네." 관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에는 미세한 노이즈가 섞여 있었다. 녹음된 음성의 헛음이 간헐적으로 끼어들었다. "이제 당신도 벽에 붙을 차례야."

거울 앞의 존재가 돌아섰다. 카메라를 향해.

관리자가 셔터를 눌렀다. 찰칵. 기계음이 울렸다. 필름이 감겼다. 그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필름을 꺼냈다. 현상액에 담그려는 듯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필름이 천천히 드러났다.

필름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은 모두가 있었다. 필름 표면에 무한히 겹쳐진 얼굴들이 보였다. 지훈의 얼굴. 은서의 얼굴. 민준의 얼굴. 수진의 얼굴. 태호의 얼굴. 그리고 알 수 없는 수많은 얼굴들. 그들의 입에서는 모두 검은 실이 흘러나왔고, 그 실들이 필름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흥미로운 결과야. 당신은 누구도 아니면서 모두다." 관리자가 필름을 들어올렸다. 빛에 투쳐진 필름은 더욱 투명해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제 가. 거리로 나가. 다음 상담자가 들어올 테니."

상담실의 불이 꺼졌다.

거리는 낯설었다. 새벽 3시 47분. 강남역 지하의 야간 지대. 이곳은 매번 같은 곳이면서도 항상 다른 곳이었다. 존재는 거울을 찾아다녔다.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편의점의 유리문에 비친 얼굴은 40대 남성이었다. 수염이 있었다. 그 수염 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존재는 손을 들어 그 유리에 닿았다. 손가락이 유리에 닿자 얼굴이 흔들렸다. 그리고 사라졌다.

지하철 승강장의 검은 창문에 비친 얼굴은 20대 여성이었다. 입가에 흉터가 있었다. 그 흉터에서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 존재는 창문에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시야의 끝에서 계속 그 얼굴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폐쇄된 지하철역의 플랫폼에 서 있는 기차의 창문에 비친 얼굴은 노인이었다. 머리가 하얀 노인. 그 노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죽음의 빛이 아니라 탄생의 빛으로. 존재는 기차의 손잡이를 잡았다. 금속은 따뜻했다. 자신의 온기로.

휴대폰 화면에 비친 얼굴은 아이였다. 10살 정도의 아이. 그 아이는 웃고 있었다. 울고 있었다. 동시에. 존재는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화면이 깨졌다. 거울들은 계속 깨지고 있었다. 하나씩. 손으로 깨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깨지고 있었다.

심야 상담소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손가락들이 떨리고 있었다. 그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 존재는 손가락을 보았다. 그것이 누구의 손가락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손가락들이 문을 열었다.

상담실의 불이 켜졌다.

새로운 내담자가 앉아 있었다. 그 내담자의 얼굴을 존재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상담한 민준이었다. 아니, 그것이 정말 민준이었는가? 얼굴은 민준이었지만, 그 눈은 은서의 눈이었다. 그리고 입에서는 수진의 목소리가 났다. 그리고 어깨는 태호의 어깨였다.

존재는 상담사 의자에 앉았다. 자신이 상담사 의자에 앉은 건지, 내담자 의자에 앉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의자들이 겹쳐 있었다. 모든 의자가 같은 위치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존재의 입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저는 상담사 지훈입니다."

새로운 내담자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검은 실이었다. 실은 공중을 헤엄쳤다. 존재의 손가락을 찾아서. 그리고 감겼다.

"저는... 여기가 뭔지도 모르고 왔어요." 실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존재 자신의 목소리였다.

상담실의 거울들이 깨지기 시작했다. 한 장씩. 거울이 깨질 때마다 그 뒤에 있던 또 다른 상담실이 드러났다. 그 상담실에도 상담사와 내담자가 앉아 있었다. 그들도 같은 모양으로 검은 실을 주고받고 있었다.

벽에 붙은 사진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씩. 사진은 공중에서 뒤집혔다. 그 뒤에는 모두 같은 얼굴이 있었다. 현재의 얼굴도 아니고, 과거의 얼굴도 아니고, 미래의 얼굴도 아닌. 그저 얼굴. 그 얼굴에서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

존재의 손가락도 이제 검은 실을 흘리고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인지, 새로운 내담자의 입에서 나온 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섞여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였다.

새벽 4시 23분.

상담은 계속되고 있었다.

상담실 벽의 사진 액자 중 하나가 천천히 떨어졌다. 그것이 바닥에 닿기 전에 또 다른 사진이 그 자리에 붙었다. 새로운 내담자의 사진. 하지만 그 사진에 비친 얼굴은 방금 문을 두드리고 들어올 다음 내담자의 얼굴이었다.

상담소 문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톡톡톡.

상담사 의자의 존재가 일어섰다.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 않으면서. 자신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면서. 손가락에서 검은 실을 흘리면서.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존재가 말했다. "저는 상담사 지훈입니다."

새로운 내담자가 들어섰다. 존재는 그 내담자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웃었다. 웃음이 누구의 웃음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상담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심야 상담소의 끝, 혹은 시작

상담실의 불이 켜졌다.

거울 앞에 서 있는 것은 누구였는가. 지훈인가. 은서인가. 아니면 그 사이의 무언가인가. 존재는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차갑고 명확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웃음처럼. 존재의 손가락이 거울 위를 스쳤다. 손가락이 닿은 부분에서 거울의 표면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것은 검은 실이었다. 거울은 깨지지 않았다. 대신 변형되었다. 곡선이 휘었다. 곡면이 뒤틀렸다. 그 안에 비친 얼굴은 점점 더 많아졌다.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 수천 개의 겹친 얼굴들. 모두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상담이 끝났네."

관리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관리자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목소리는 거울에서 나왔다. 아니, 벽에서 나왔다. 아니, 바닥에서 나왔다. 아니, 존재 자신의 목음에서 나왔다. 존재가 돌아섰을 때 관리자는 이미 거기 있었다.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 얼굴은 흐릿했다. 마치 사진이 초점을 잃은 것처럼.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 셔터음이 나올 때마다 무언가가 사라지는 종류의 카메라였다.

"이제 당신도 벽에 붙을 차례야."

관리자가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렌즈가 존재를 향했다. 검은 원형의 렌즈. 그 안은 무한히 깊었다. 존재는 자신이 그 렌즈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아니, 느낀 게 아니라 그것이 일어났다. 하지만 존재는 여전히 상담실에 있었다. 동시에 렌즈 안에도 있었다. 동시에 벽에 붙은 사진이 되어 있었다. 동시에 거울 속에 있었다.

셔터가 눌렸다.

사진이 나왔다. 하지만 사진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모두가 있었다. 사진은 흰색이었다. 아니, 검은색이었다. 아니, 모든 색깔이 동시에 있었다. 관리자는 사진을 벽에 붙였다. 다른 사진들 사이에. 그 사진은 즉시 다른 사진들과 구분이 안 됐다. 모두 같은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당신의 상담사 시간은 끝났다."

관리자가 사라졌다. 아니, 관리자가 존재로 변했다. 아니, 존재가 관리자로 변했다. 구분이 없었다. 모두 같은 것이었다. 존재는 상담실을 나갔다. 문이 열렸다. 자신이 문을 열었는지, 문이 자신을 밀어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밤거리가 나타났다. 강남역 지하. 하지만 낯설었다. 존재는 이곳을 알고 있었다. 5년을 헤매던 거리였다. 아니, 5분을 헤매던 거리였다. 아니, 영원히 헤매던 거리였다. 건물들이 높았다. 유리창들이 많았다. 모든 유리창이 거울이었다. 존재는 거울을 찾아다녔다.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첫 번째 거울에는 지훈이 비쳤다. 31세의 상담사. 침착한 눈. 하지만 그 눈 안에는 수천 명의 눈이 있었다. 두 번째 거울에는 은서가 비쳤다. 절제된 표정. 하지만 그 입 주변에는 검은 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세 번째 거울에는 민준, 수진, 태호가 동시에 비쳤다. 네 번째 거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존재 자신이 없었다. 다섯 번째 거울에는 아이가 비쳤다. 10살 정도의 아이. 그 아이는 웃고 있었다. 울고 있었다. 동시에.

존재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왜 가는지 모르면서.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계속 흘러나왔다. 거리의 노숙자들이 존재를 바라봤다. 그들은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존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상담실에서. 아니, 거리에서. 아니, 꿈에서. 아니, 현실에서. 구분이 없었다. 한 노숙자가 말했다. "당신이 내 고통을 빨아갔어요." 다른 노숙자가 말했다. "당신이 나를 구원했어요." 또 다른 노숙자가 말했다. "당신이 나를 죽였어요." 존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아니, 대답할 입이 없었다. 아니, 존재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몇 분인지 몇 시간인지 몇 년인지 알 수 없었다. 존재는 다시 상담소 앞에 도착했다. 어떻게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걸어온 것도 아니고 날아온 것도 아니고 텔레포트한 것도 아니었다. 존재가 여기 있었고, 항상 여기 있었으며, 앞으로도 여기 있을 것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 존재는 손가락을 보았다. 그것이 누구의 손가락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손가락들이 문을 열었다.

상담실의 불이 켜졌다.

새로운 내담자가 앉아 있었다. 그 내담자의 얼굴을 존재는 알고 있었다. 수진이었다. 아니, 민준이었다. 아니, 태호였다. 아니, 지훈이었다. 아니, 은서였다. 아니, 모두였다. 얼굴은 계속 바뀌고 있었다. 마치 거울처럼. 마치 물처럼. 마치 시간처럼.

존재는 상담사 의자에 앉았다. 아니, 내담자 의자에 앉았다. 아니, 그 사이의 어딘가에 앉았다. 의자들이 겹쳐 있었다. 모든 의자가 같은 위치에 있었다. 모든 위치가 같은 의자였다.

"안녕하세요." 존재의 입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는 상담사 지훈입니다."

새로운 내담자가 입을 열었다. 나오는 것은 목소리였다. 아니, 검은 실이었다. 아니, 둘 다였다. 실은 공중을 헤엄쳤다. 존재의 손가락을 찾아서. 그리고 감겼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저는... 여기가 뭔지도 모르고 왔어요."

목소리는 존재 자신의 목소리였다. 아니, 새로운 내담자의 목소리였다. 아니, 모든 내담자의 목소리였다. 아니, 모든 상담사의 목소리였다. 구분이 없었다. 처음부터 구분이 없었다.

상담실의 거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씩. 거울이 깨질 때마다 그 뒤에 있던 또 다른 상담실이 드러났다. 그 상담실에도 상담사와 내담자가 앉아 있었다. 그들도 같은 모양으로 검은 실을 주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사진처럼. 마치 기억처럼. 마치 꿈처럼.

벽에 붙은 사진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씩. 사진은 공중에서 뒤집혔다. 그 뒤에는 모두 같은 얼굴이 있었다. 현재의 얼굴도 아니고, 과거의 얼굴도 아니고, 미래의 얼굴도 아닌. 그저 얼굴. 그 얼굴에서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 그 검은 실은 다시 상담실로 돌아왔다. 순환했다. 영원히 순환했다.

새벽 4시 23분.

상담은 계속되고 있었다.

존재의 손가락도 이제 검은 실을 흘리고 있었다. 자신의 손가락인지, 새로운 내담자의 입에서 나온 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섞여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였다. 모든 것이 항상 하나였다.

상담사 의자의 존재가 천천히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이 누구의 웃음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웃음은 계속되었다. 웃음 속에는 모든 목소리가 있었다. 모든 비명이 있었다. 모든 침묵이 있었다.

상담실 벽의 사진 액자 중 하나가 천천히 떨어졌다. 그것이 바닥에 닿기 전에 또 다른 사진이 그 자리에 붙었다. 새로운 내담자의 사진. 하지만 그 사진에 비친 얼굴은 방금 문을 두드리고 들어올 다음 내담자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내담자의 다음 내담자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그리고 그 다음. 끝이 없었다.

상담소 문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톡톡톡.

상담사 의자의 존재가 일어섰다. 자신이 누구인지 묻지 않으면서. 자신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면서. 손가락에서 검은 실을 흘리면서.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존재가 말했다. "저는 상담사 지훈입니다."

새로운 내담자가 들어섰다. 그것도 새로운 내담자가 아니라 항상 여기 있었던 내담자였다. 존재는 그 내담자의 얼굴을 봤다. 얼굴은 계속 바뀌고 있었다. 마치 거울처럼. 그리고 웃음을 흘렸다. 웃음이 누구의 웃음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상담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검은 실이 다시 흘러나왔다. 공중을 헤엄쳤다. 상담사의 손가락에서 내담자의 입으로. 내담자의 입에서 상담사의 손가락으로. 어느 것이 시작이고 어느 것이 끝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부터 알 수 없었다.

상담실 벽의 사진들이 모두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붙었다. 그리고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붙었다. 사진 속 얼굴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모두 울고 있었다. 동시에.

새벽 4시 24분.

상담은 계속되고 있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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