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야 상담소
거울 앞에 선 지훈의 얼굴은 명확했다. 31세, 검은 눈동자, 왼쪽 광대뼈 위의 작은 점. 매일 밤 확인하는 것들이었다.
손을 들어 광대뼈를 눌렀다. 단단했다. 살아있는 신체의 감각.
그런데 손가락이 아팠다.
왼손 검지와 중지 끝이 화끈거렸다. 마치 누군가 손톱으로 파고드는 듯한 통증이었다. 지훈은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를 반복했다. 어제는 이런 통증이 없었는데.
거울을 다시 봤다.
어제는 분명 다른 얼굴이었다. 지금 거울에 비친 얼굴은 더 깊게 패여 있었다. 눈 아래 검은 자국이 선명했다. 광대뼈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마치 며칠을 자지 않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손가락의 통증이 더 심해졌다.
지훈은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거울 속 자신의 눈이 자신의 눈이 맞나? 그 눈빛이 어딘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손이 떨렸다.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상담실의 벽시계는 11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심야 상담소는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만 문을 열었다. 지하 3층의 콘크리트 벽, 검은 페인트로 칠해진 천장, 형광등 대신 설치된 간접 조명. 밖의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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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는 더 어두웠다. 회색 소파 하나, 낡은 잡지 몇 권, 그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여자.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검은 옷, 움직이지 않는 두 손. 눈빛이 현재의 시간에 있지 않았다.
"수진입니다."
여자가 말했다. 목소리는 작았다.
"네, 반갑습니다. 저는 지훈입니다. 편하게 상담실로 들어오시죠."
상담실 안으로 들어온 수진은 소파에 앉았다. 지훈은 그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약 1.5미터였다.
"뭘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수진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편한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지훈은 손을 펼쳤다. 자연스러운 자세였다. 손가락의 통증이 다시 올라왔다. 그는 손가락을 굽혔다 펼쳤다를 반복하며 통증을 무시하려 했다.
수진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 침묵 속에서 지훈은 단지 들었다. 말이 없을 때도 그는 들었다.
"어제밤... 약을 많이 먹으려고 했어요."
수진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손이 떨렸어요. 약병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그냥 여기 왔어요."
상담실의 조명이 한 단계 더 어두워진 듯했다. 아니, 그럴 리 없었다. 조명은 고정되어 있었다. 다만 지훈의 집중이 깊어지면서 주변이 흐릿해 보이는 것뿐이었다.
"계속 말씀해주세요."
지훈이 말했다.
수진은 말했다. 학교에서의 따돌림, 부모의 무관심,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 밤마다 천장을 보며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그 순간이었다.
지훈의 손가락에서 뭔가 흘러나왔다. 검은색이었다. 실 같기도 했고, 연기 같기도 했다. 그것은 수진 쪽으로 향했다. 천천히, 마치 자력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검은 실은 수진의 몸을 감쌌다. 가슴부터, 그 다음 목, 마지막으로 얼굴.
수진의 입이 열렸다 다시 닫혔다.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수진의 눈빛이 변했다. 어딘가로 가 있던 눈이 현재로 돌아왔다. 어두웠던 눈이 조금씩 밝아졌다.
지훈은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검은 실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가슴에서 무거움이 올라왔다. 물리적인 무게는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의 슬픔을 몸 전체로 짊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손가락의 통증이 사라졌다. 대신 가슴이 무거워졌다.
상담실은 다시 밝아졌다.
수진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물의 질감이 달랐다.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 무거운 것을 내려놓은 후의 눈물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수진이 말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 말이 없었다.
상담은 끝났다. 수진은 일어섰다. 그 움직임이 달랐다. 눈빛은 명확했다.
"다음 주에도 와도 되나요?"
"네, 언제든 오세요."
수진이 나갔다. 복도의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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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다시 거울 앞으로 갔다.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얼굴이 더 달라져 있었다. 피로가 깊었다. 눈 아래에 검은 그림자가 더 진해졌다. 광대뼈도 조금 더 두드러져 보였다.
손가락을 펼쳤다.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 끝이 따뜻했다. 마치 누군가의 체온이 남아 있는 것처럼.
'뭔가 이상한데.'
상담 중에 흘려보낸 에너지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었다. 지훈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상담실 문이 열렸다. 관리자가 들어섰다.
관리자는 얼굴이 없었다. 아니, 얼굴이 있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지훈은 관리자를 매일 봤지만, 관리자의 얼굴을 명확히 기억한 적이 없었다. 마치 안개 속의 형상처럼, 뭔가 중요한 부분이 항상 흐릿했다.
"수진이 좋아 보였습니다."
관리자가 말했다.
"네, 상담이 잘 진행되었습니다."
지훈이 답했다.
관리자는 상담실을 둘러봤다. 벽에 붙은 사진들을 봤다. 상담을 받은 내담자들의 사진이었다. 얼굴은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다. 관리자가 그 사진들을 보는 시간이 길었다.
"당신의 손가락으로."
관리자가 갑자기 말했다.
지훈의 몸이 경직됐다.
"죄송한데, 무슨 말씀인가요?"
지훈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관리자는 벽의 사진들을 하나씩 가리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진, 두 번째 사진, 세 번째 사진. 모두 흐릿한 얼굴이었지만, 그 표정만은 명확했다. 절망에서 벗어난 표정들이었다.
"이 사람, 이 사람, 이 사람... 모두 당신의 손가락을 거쳤습니다."
관리자가 천천히 말했다.
"거쳤다는 게... 상담을 받았다는 뜻 아닌가요?"
지훈이 반박했다. 하지만 그 말은 확신이 없었다. 자신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검은 실, 그것이 수진의 절망을 빨아들였던 감각. 그것은 상담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것이었다.
관리자는 지훈을 직시했다.
"당신은 그들의 고통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훈의 손이 떨렸다.
"그렇다면... 제가 뭘 해야 하나요?"
"계속하세요."
관리자가 말했다.
"당신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관리자는 나갔다. 상담실의 문이 닫혔다.
지훈은 남겨졌다. 상담실의 조명이 다시 한 단계 어두워진 듯했다.
거울을 다시 봤다.
얼굴이 또 달랐다. 이번엔 눈빛이었다. 어딘가로 가 있었다. 마치 수진의 눈빛처럼.
지훈은 눈을 비비고 또 봤다.
같은 눈빛이었다.
손가락을 펼쳤다. 검은 실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손가락의 끝이 따뜻했다.
상담실의 시계는 새벽 01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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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려 다시 돌아봤다. 하지만 거울은 더 이상 하나의 상이 아니었다. 여러 개의 얼굴이 겹쳐 있었다. 피로한 표정, 절망한 눈빛, 알 수 없는 미소.
지훈의 손이 떨렸다.
그 얼굴들이 모두 자신인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들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단지 모두가 지훈을 보고 있다는 것만 확실했다.
"지훈이신가요?"
복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자신의 손을 봤다. 그것이 정말 자신의 손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움직였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
복도에 선 여성은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어두운 눈빛, 움츠린 어깨, 손톱을 깨물어 헤친 손가락들.
"민준이라고 합니다."
여성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지훈은 그녀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의자를 권했고, 민준은 앉았다.
"무엇이 힘드신가요?"
지훈이 물었다.
"저는... 계속 죽고 싶습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지훈의 손가락이 반응했다. 검은 실이 흘러나왔다. 가늘고 가느다란 실 같은 에너지가 지훈의 손가락 끝에서 피어올랐다.
민준은 말을 계속했다. 자신의 삶이 왜 견디기 힘든지,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죽음이 유일한 해방처럼 느껴진다는 것. 그녀가 말할 때마다 검은 실은 더 진해졌다.
지훈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에너지는 천천히 민준을 감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목 주변이었다. 그 다음은 목. 마지막으로는 가슴을 감쌌다. 마치 무언가 거대한 것이 민준을 포옹하는 것처럼.
그 과정에서 민준의 표정이 변했다. 얼굴의 긴장이 풀렸다.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지훈은 그것을 느꼈다. 검은 실이 자신의 손가락을 통해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민준의 절망,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집착, 그 모든 것들이 가느다란 검은 실을 타고 지훈의 손가락으로 흘러들어왔다.
무겁다.
정말 무겁다.
지훈은 그 무게를 느꼈다. 마치 누군가의 영혼 전체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맞다고 느껴졌다. 이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이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계속하세요."
지훈이 말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민준은 계속 말했다. 더 깊은 이야기를 했다. 어린 시절의 학대, 사춘기의 따돌림, 성인이 되어서도 누구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확신.
그 모든 것이 검은 실을 통해 지훈에게 흘러들어왔다.
상담이 진행될수록, 민준의 얼굴은 점점 가벼워졌다. 눈빛이 명확해졌다. 숨이 편해진 것처럼 보였다.
지훈은 반대였다. 그가 느끼는 무게는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민준의 절망이 자신의 가슴 안에 쌓여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인생 전체가 자신의 신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이것이 맞다고 믿었다. 이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상담은 1시간을 넘었다. 어느 순간 검은 실이 사라졌다. 마지막 실마저도 지훈의 손가락에 흡수되었다. 그 순간, 민준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민준이 말했다. 눈빛이 정말로 달라져 있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죽음에 가까웠던 그 절망은 사라져 있었다.
"괜찮으세요.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오세요."
지훈이 말했다.
민준은 나갔다. 상담실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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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여전히 따뜻했다. 하지만 동시에 무거웠다. 팔 전체가 무거웠다. 가슴도, 머리도.
거울로 갔다. 자신의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얼굴이 더 변해 있었다. 이제 눈 아래의 검은 그림자가 더 진했다. 광대뼈는 더 두드러져 있었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것은 눈빛이었다. 지훈의 눈에는 이제 민준의 절망이 묻어 있었다. 마치 그 감정이 자신의 눈에 물들어버린 것처럼.
지훈은 그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두려워했다.
'이게... 뭐지?'
손가락을 펼쳤다. 검은 실은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 끝의 따뜻함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 따뜻함 속에는 민준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울을 다시 봤다. 자신의 이름을 쓰려고 거울 위에 손가락을 댔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였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지훈은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여전히 따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따뜻함이 자신의 것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들어오세요."
지훈이 말했다.
복도의 문이 열렸다. 세 번째 내담자였다. 역시 같은 눈빛이었다. 역시 같은 절망의 징후들이었다.
상담실로 안내했다.
"이름이 뭐죠?"
"태호라고 합니다."
지훈이 의자를 권했다. 태호가 앉았다.
"무엇이 힘드신가요?"
태호가 입을 열었다. 절망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지훈의 손가락에서 검은 실이 피어올랐다.
상담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무게가 더 무거웠다. 마치 이미 누군가의 절망을 담고 있는 그릇에 또 다른 절망이 쌓여가는 것처럼.
지훈은 그것을 느꼈지만, 계속했다. 태호의 말을 들었다. 검은 실로 그의 고통을 감쌌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상담이 끝났을 때, 지훈은 거의 의식 상태였다. 피로가 깊었다. 마치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자신의 등에 얹혀있는 것 같은 피로였다.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자신이 정말 상담사인지 묻는 질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태호가 나갔다. 복도의 문이 닫혔다.
지훈은 거울로 갔다.
얼굴이 이제 정말로 낯선 얼굴이었다. 눈 아래는 검은 자국으로 가득했다. 볼은 쑥 들어가 있었다. 입술은 창백했다. 마치 며칠을 죽음 직전까지 헤매다가 돌아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가장 섬뜩한 것은 눈빛이었다.
거울에 비친 눈빛은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였다. 지훈의 눈에는 수진의 절망, 민준의 죽음의 욕구, 태호의... 뭔가 더 이상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지훈은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같은 얼굴이었다. 같은 눈빛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에는 그것이 피로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다른 것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깨달음 때문인 것처럼.
거울에 손을 댔다. 자신의 이름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혹은 움직였지만 그것이 글자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형상을 그렸다. 지훈은 그것을 읽을 수 없었다.
상담실 벽의 사진들이 보였다. 흐릿하게 처리된 얼굴들. 상담을 받은 내담자들의 사진이라고 지훈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거울을 통해 보는 자신의 얼굴을 다시 봤을 때, 뭔가 이상했다.
거울의 얼굴이 사진들 중 하나와 겹쳐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사진들이 거울의 얼굴로 보였다.
지훈은 눈을 비비고 또 봤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거울의 얼굴, 벽의 사진들, 모두가 같은 것처럼 보였다.
초인종이 또 울렸다.
지훈은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여전히 따뜻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따뜻함이 자신의 것인지,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들어오세요."
지훈이 말했다.
복도의 문이 열렸다. 네 번째 내담자였다. 역시 같은 눈빛이었다. 역시 같은 절망의 징후들이었다.
상담실로 안내했다.
"이름이 뭐죠?"
"수민이라고 합니다."
지훈이 의자를 권했다. 수민이 앉았다.
"무엇이 힘드신가요?"
절망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검은 실이 피어올랐다. 지훈의 손가락에서, 수민을 향해, 천천히.
상담이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지훈이 느끼는 변화가 더 명확했다. 수민의 절망이 들어올 때마다 자신의 기억이 흐려졌다. 자신의 이름이 뭐였더라? 자신이 왜 여기 있었더라? 자신이 정말 상담사였나?
손가락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수민의 절망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상담이 끝났을 때, 지훈은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수민이 나갔다. 복도의 문이 닫혔다.
지훈은 거울로 갔다.
얼굴을 봤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얼굴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거울에는 여러 개의 얼굴이 겹쳐 있었다. 수진, 민준, 태호, 수민. 그리고 자신. 아니,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거울이 흔들렸다. 아니, 거울이 아니라 지훈의 손이 떨렸다.
상담실의 시계는 새벽 03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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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문을 열었다. 복도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여자였다.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어두운 눈빛. 하지만 그 눈빛이 다른 내담자들과는 달랐다. 그 눈빛 속에는 뭔가 깊은 것이 있었다. 마치 지훈의 것처럼.
"안녕하세요."
여자가 말했다.
"저는 은서입니다."
지훈의 손이 떨렸다.
그 이름을 들은 순간, 거울 속의 얼굴들이 모두 지훈을 바라봤다. 그리고 웃었다.
"지훈이 정말 상담사인가요?"
은서가 물었다.
"아니면... 내담자인가요?"
지훈은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