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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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올 때, 먼지는 춤을 춘다. 은혜는 그 광선 속에서 손님이 건넨 스웨터를 펼쳤다. 크림색 울 소재, 소매 부분이 해어진 것 외엔 깨끗했다. 손님은 중년 여성이었다.

"엄마가 딸을 위해 지었던 거래요. 이제 손녀가 입을 나이가 됐는데…"

손님의 목소리가 흐릿해졌다. 은혜는 고개를 끄덕했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옷이 말해줄 테니까.

손가락 끝이 울 표면에 닿는 순간, 세상이 색으로 바뀌었다.

따뜻한 황금색. 아니, 그보다 더 부드럽다. 마치 누군가의 품에 안긴 느낌. 손가락이 가볍게 떨렸다. 은혜는 눈을 감고 그 감정을 맞이했다. 바느질 한 땀 한 땀. 누군가 이 스웨터를 지으며 생각했던 것들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춥지 말아야지. 예쁘게 자라야지. 엄마가 지켜줄게.

사랑이었다. 순수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랑.

은혜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눈을 뜨니 손님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혹시 울었나 싶어 눈가를 훔쳤지만 건조했다. 다만 가슴 한복판이 따뜻했다.

"고쳐드리겠습니다."

목소리가 작았지만, 손님은 안심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은혜는 손님이 떠난 후 한참을 그 스웨터를 들고만 있었다. 울실을 고르는 대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따라갔다. 먼지가 춤을 춘다. 그 안에서 누군가의 손이 보인다. 바늘을 들었다 놨다, 다시 들었다 놨다.

할머니 손이었을 리가 없다. 할머니는 바느질을 못했다. 대신 할머니는 다른 것들을 주워 왔다. 폐지, 캔, 버려진 옷들. "누군가는 이것을 다시 필요로 할 거야"라며 손수레를 끌고 다녔다.

"은혜, 너도 그래야 해. 이 세상에는 버려진 게 없어. 다만 아직 필요한 사람을 못 만난 것뿐이야."

할머니는 작년 겨울에 갔다. 폐렴이라고 했지만, 은혜는 그저 할머니가 너무 많이 주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그리고 세상에.

은혜는 스웨터를 옷걸이에 걸었다. 수선실의 벽에는 이런 옷들이 가득했다. 손님들이 맡기고 간 것들. 각각의 옷 속에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은혜는 그 이야기를 받아준다. 받아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오후 3시경,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검은 니트를 들고.

"소매가 늘어났어요."

손님은 중년 남성이었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은혜는 니트를 받아 들었다. 검은색. 물려 온 감정은 대개 무겁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손가락이 천에 닿자마자 파도가 밀려왔다.

불안. 절망. 그리고 그 아래 깔린 무언가 더 검은 것. 은혜의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신체가 거부했다. 이 감정은 너무 많다. 너무 깊다. 마치 바다 밑바닥으로 끌려 내려가는 것 같다. 숨이 가빠졌다.

"아, 잠깐…"

은혜는 손을 놓았다. 니트가 카운터 위에 떨어졌다.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문제 있으세요?"

손님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은혜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조금 어지러워서… 잠시만요."

손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은혜가 받아주면 되는 것. 이곳 손님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맡기러 온 것이니까.

은혜는 니트를 다시 들었다. 이번엔 조심스럽게. 감정을 받되, 자신을 지키려고 했다. 몸을 물러나게 했다. 마치 냉수에 발을 담그듯이. 파도는 여전했지만, 이번엔 견딜 만했다.

"삼일 정도면 돼요."

"알겠습니다."

손님이 떠나고 난 후, 은혜는 한참을 카운터에 기대 앉아 있었다. 손이 떨렸다. 왜 이 옷은? 다른 옷들은 그렇지 않은데. 이 검은 니트는 마치 누군가의 절망 전체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 6시. 배송 알림이 울렸다.

은혜는 수선실 문을 닫고 현관으로 나갔다. 배송기사가 작은 상자를 건넸다. 반송인을 확인했을 때 손이 멈췄다.

김말순.

할머니 이름이었다.

은혜는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떨리는 손으로 테이프를 뜯었다. 안에는 낡은 청바지 한 벌과 편지 한 장이 있었다. 편지는 할머니 글씨였다. 굵고 투박한 자형.

'내 딸이 입던 거야. 고쳐줄 수 있니?'

엄마.

은혜는 청바지를 꺼냈다. 짙은 파란색, 무릎 부분이 해어지고 주머니가 헐겁다. 누군가 자주 입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리고 어디선가 줄을 그었거나 얼룩이 져 있는 부분들. 살아온 흔적.

은혜는 청바지를 들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옷걸이에 걸기보다는, 일단 천천히 살펴보고 싶었다. 바느질로 시작하기 전에, 이 옷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손가락을 청바지 위에 올렸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마치 위험한 것을 다루듯이.

그 순간, 미안함과 사랑이 섞인 파도가 밀려왔다. 하지만 검은 니트의 절망과는 달랐다. 이건 더 복잡했다. 따뜻함과 차가움이 함께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 안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은혜의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어머니를 거의 알지 못했다. 어릴 때 어머니는 자주 집에 없었고, 있어도 침묵이 많았다. 할머니가 밥을 차렸고, 할머니가 숙제를 봐줬고, 할머니가 안아줬다. 어머니는 그 옆에 있었지만, 마치 유리벽 너머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옷에서 전해지는 건.

사랑. 깊은 사랑.

그리고 자신이 받아주지 못했던 그 사랑에 대한, 미안함.

은혜는 손을 떨어뜨렸다. 숨이 차올랐다. 가슴이 철렁했다. 너무 많은 감정이 한 번에 밀려온 것 같았다. 마치 파도에 휩쓸려 내려가는 것처럼.

재봉틀 옆 의자에 앉았다. 청바지는 여전히 카운터 위에 놓여 있었다. 은혜는 그것을 바라만 봤다.

어머니가 자신을 안아주던 그날. 은혜는 할머니 손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의 팔을 밀어냈다. 어머니는 그 팔을 천천히 내렸다. 그 뒤로 어머니는 자주 집을 비웠다.

또 다른 날. 어머니가 은혜의 손을 잡으려 했을 때, 은혜는 손을 감췄다. 어머니는 한 번 더 시도하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가슴도 떨렸다. 이건 평소의 감정 수용과 달랐다. 이건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밤 9시. 은혜는 이제야 청바지를 집어 들었다.

첫 번째 작업은 실 색을 고르는 것이었다. 청바지의 파란색에 맞는 실을 찾아야 한다. 오래된 빛깔이니까, 정확히 맞춰야 한다. 은혜는 바느질 도구 선반에서 청실을 골라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청바지를 재봉틀 위에 올렸다. 무릎의 해어진 부분부터. 한 땀 한 땀, 바늘을 내려 찍었다. 재봉틀의 딱딱거리는 소리가 수선실을 채웠다. 은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저 손가락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밤 11시. 청바지의 기본 수선은 끝났다. 은혜는 그것을 들었다. 이제 주머니 부분과 세부를 손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하지만 손가락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창밖은 깜깜했다. 가로등만이 골목을 비추고 있다. 은혜는 청바지를 가슴에 안았다. 따뜻했다. 어머니의 따뜻함일까. 아니면 자신의 손이 만든 온기일까.

밤 11시 47분. 은혜는 청바지의 주머니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마지막 몇 땀만 남았다. 손가락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대신 뭔가 단단해졌다. 결연함. 혹은 포기.

문득 현관에서 소리가 들렸다. 가는 발걸음. 은혜는 고개를 들었다.

수선실 문 너머로 누군가가 서 있다. 실루엣만 보인다. 여성이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있다. 불이 켜진 수선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은혜를 보고 있다.

그리고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은혜는 본능적으로 청바지를 재봉틀 옆 탁자에 내려놨다. 그 순간, 여성이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찍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 움직인다. 사진. 아니면 영상.

여성은 몇 초간 더 문 앞에 서 있다가 천천히 돌아섰다. 골목을 빠져나간다. 은혜는 창문에 붙어 그 모습을 따라갔다. 여성은 가로등 아래를 지나가며 얼굴을 드러냈다.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은혜는 다시 청바지를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어머니의 감정이 아니었다. 이건 다른 감정이었다. 위협.

누가 저 여성인가.

그리고 왜 자신의 수선실을 촬영하고 있었는가.

밤 11시 반. 은혜는 청바지를 내려놨다.

손이 떨려서가 아니었다. 그 여성 때문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본다는 느낌. 그것이 은혜의 피부에 가시처럼 박혔다. 은혜는 창문의 알록달록한 실타래들을 다시 정렬했다. 가시성을 낮추기 위해. 그 다음 가게 불을 한 번 더 확인했다. 후드등, 스탠드, 모두 켜져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재봉틀 앞 의자에 앉았다. 청바지는 여전히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어머니의 감정도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공포가 더 컸다. 누군가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 사진을 찍고 있었던 그 손가락들.

은혜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SNS를 켰다. 수선실을 검색했다. 자신의 계정은 없었다. 하지만 손님들이 올린 사진들이 있었다. 낡은 빌라, 알록달록한 실타래, 손으로 그린 간판. 태그는 #버려진옷 #수선실 #감성 #골목 #힐링. 수십 개의 좋아요와 댓글들.

'여기 진짜 마법 같아요' '옷이 새 생명을 얻어요' '은혜님 손길이 닿으면 모든 게 달라져요'

은혜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이건 좋은 일이었다. 손님들이 자신의 일을 소개해주는 것. 그런데 왜 불안했을까.

창밖을 다시 봤다. 골목은 비어 있었다. 가로등 아래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감각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기 있었고, 이제 떠났지만, 또 올 것 같았다.

은혜는 청바지를 다시 들었다.

이번엔 손을 떼지 않았다. 어머니의 감정이 밀려온다. 사랑과 미안함. 따뜻함과 차가움. 은혜는 눈을 감았다. 그 감정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깊은 물속으로 잠수하듯.

그 속에서 본 것은.

어린 은혜의 모습이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있는 자신. 어머니는 그 뒤에 서 있다. 멀리. 항상 멀리.

'미안해. 내가 줄 수 없었던 것들이 너무 많아.'

누구의 목소리일까. 어머니인가, 아니면 자신의 상상인가.

은혜는 눈을 떴다. 밤 11시 47분. 청바지는 거의 완성되었다. 주머니 부분만 남았다. 손가락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대신 뭔가 단단해졌다. 결연함. 혹은 포기.

은혜는 청바지의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에 뭔가 있었다. 종이다. 오래된 메모지. 글씨가 희미했다.

'우리 은혜에게'

은혜의 손이 멈췄다. 메모지를 꺼냈다. 글씨는 어머니의 글씨였다. 어릴 때 받은 편지들과 같은. 떨리는 획, 서툰 자형.

'미안해. 엄마가 너한테 줄 수 없었던 것들이 너무 많아. 그런데 할머니는 날 원망하지 않으셨어. 할머니는 말했어. 모든 것을 다 줄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채워줄 거라고. 그래서 난 안심했어. 널 할머니께 맡기기로 했어. 그리고 미안했어. 미안하고 또 미안했어. 하지만 이제 난 없어. 그래서 이 청바지에 내 모든 사랑을 담기로 했어. 너가 이걸 입을 때, 날 느껴줄 수 있으면 좋겠어. 엄마가 너를 정말 사랑했다는 걸.'

은혜는 메모지를 천천히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엔 감정 이입 때문이 아니었다. 순수한 눈물이었다. 뜨거웠다.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몇 년 만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은혜는 메모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여러 번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자신 안에 있었다.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받아주지 않았을 뿐.

'엄마가 너를 정말 사랑했다는 걸.'

은혜는 메모지를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청바지를 들었다. 바늘을 들었다. 마지막 한 땀.

딱.

청바지가 완성되었다. 밤 11시 59분.

은혜는 그것을 접었다. 한 겹, 또 한 겹. 정성스럽게. 마치 누군가를 감싸듯. 그리고 그 손길 속에서 결심했다. 어머니를 받아들이겠다는 결심. 미안함과 사랑을 함께 품겠다는 다짐.

상자에 넣었다. 그런데 손이 멈췄다. 상자를 닫지 않았다. 누가 이것을 받으러 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이미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은혜는 상자를 다시 꺼냈다. 청바지와 메모지를 함께 들었다. 수선실 뒤 창고로 들어갔다. 선반 깊숙이 넣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지키기 위해. 이것이 누군가의 상품이 되기 전에.

수선실의 불을 껐다. 창문의 실타래들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은혜는 가게 문을 잠갔다. 골목은 여전히 조용했다. 누군가의 발자국도, 휴대폰의 불빛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은혜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수선실은 어둠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봤다. 사진으로 찍었다. 이제 그것이 어디로 퍼져나갈지 알 수 없었다.

은혜는 결국 멈췄다. 골목 어귀에서. 휴대폰을 다시 켰다. 자신의 수선실을 검색했다.

새로운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밤 11시 47분에 찍은 것이다. 수선실의 불이 켜진 모습. 창문 너머로 은혜의 뒷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청바지를 가슴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게시자의 닉네임은 '더나은미래'였다.

프로필을 확인했다. 계정은 최근에 만들어졌다. 게시물은 이 사진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댓글 하나가 달려 있었다.

'이 가게 정말 특별한 것 같은데, 혹시 협력 가능할까요? 문의 가능할까요?'

같은 계정이 단 댓글이었다.

은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건 단순한 관심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수선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은혜는 프로필 사진을 확대했다. 흐릿했지만 얼굴이 보였다. 아까 문 앞에 서 있던 여성. 그 여성이 누구인지 은혜는 이제 알고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검색창에 입력했다. 그 여성의 얼굴을 역이미지 검색했다. 잠시 후 결과가 나왔다.

'콘텐츠 마케팅 에이전시 대표 박지은'

프로필 사진과 함께 뜬 기사 제목들.

'감성 카페, 핸드메이드 숍 '상업화' 성공 사례' 'SNS 감성 콘텐츠로 수익 창출하는 법' '소상공인을 위한 브랜딩 전략'

은혜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왜 그 여성이 자신의 수선실을 촬영했는지. 왜 그렇게 관찰했는지.

자신의 수선실은 이미 누군가의 상품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도, 할머니의 철학도, 그리고 자신이 받아주는 모든 감정들도. 모든 것이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었다.

은혜는 천천히 수선실로 돌아갔다. 어둠 속에서 가게 문을 다시 열었다. 불을 켰다. 알록달록한 실타래들이 다시 나타났다.

창고에서 청바지를 꺼냈다. 주머니 속 메모지를 다시 확인했다. 어머니의 글씨. 떨리는 획.

'엄마가 너를 정말 사랑했다는 걸.'

은혜는 청바지를 들었다. 어머니의 감정이 다시 밀려온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두려움이 아니라 결의였다. 이것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 이것이 누군가의 상품이 되지 않도록.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누군가에게 연락해야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 은혜는 연락처를 생각했다. 할머니의 친구들. 이웃들.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

수선실의 불을 모두 껐다. 가게 문을 잠갔다. 골목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은혜는 청바지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어머니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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