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의 낡은 천장이 처음으로 보였다.
곰팡이가 핀 회색 벽지, 천장의 곰팡이 자국, 습기로 불어난 목재 문틀. 이준호는 두 눈을 떴다가 감았다. 다시 떴다. 천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삼십 년 대법관 이준호는 자신의 침실에서 일어나야 했다. 한강뷰가 보이는 아파트, 서가 가득한 사무실, 서명할 판결문들. 그런데 여기는 어디인가.
몸을 일으켰다. 움직임이 어색했다. 손가락들이 떨렸다. 어깨가 경직되어 있었다. 오른쪽 등이 쑤셨다. 삼십 년간 느껴본 적 없는 통증이었다.
고시원이었다. 2.5평 남짓한 방. 창문 하나, 침대 하나, 책상 하나, 냉장고 없음. 바닥에는 낡은 이불이 말려 있었고, 책상 위에는 휴대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 뜬 시간은 오전 6시 47분. 배경화면은 낯선 얼굴이었다. 젊은 얼굴. 자신의 얼굴인데 자신이 아닌 얼굴.
메시지들이 순서대로 나타났다.
『CU편의점 강남점입니다. 오늘 오전 8시 출근 부탁드립니다. —정현우』
『CU편의점 강남점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정현우』
『알바비 정산했습니다. 계좌 확인 부탁드립니다. —정현우』
이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호흡이 가빠졌다.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꿈은 이렇게 일관성 있게 작동하지 않는다. 냄새도 들려온다. 고시원의 습한 냄새, 아래층 라면 끓이는 냄새, 복도의 담배 연기. 오감이 모두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이준호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거울이 있을 것 같았다. 벽에 붙은 작은 거울을 찾아 들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직접 봤다.
서른 살쯤 되어 보였다. 피곤해 보였다. 턱에는 이틀치 수염이 나 있었고, 눈 밑에는 검은 자국이 있었다. 얼굴이 학생처럼 보였다. 대학 때 자신의 모습이 이 정도였나. 아니다. 그때도 이렇지 않았다.
이준호는 거울을 내려놨다.
통장을 확인해야 했다. 휴대폰으로 앱을 열었다. 잔액: 103,000원. 한 달 전 입금된 기록: 편의점 급여 1,500,000원. 공제액: —1,397,000원.
1,397,000원이 공제되었다.
이준호는 계산을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삼십 년 동안 판례를 읽으며 단련된 뇌가 자동으로 작동했다.
최저임금 10,580원(당시 기준으로 가정). 한 달 근무 시간 200시간. 최저임금 기준 월급: 2,116,000원. 실제 수령액: 103,000원. 차이: 2,013,000원.
아니다. 다시 계산했다. 월급이 1,500,000원이었다면, 공제 전 기본급은 그것보다 높았을 것이다. 공제액 1,397,000원 안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가.
휴대폰에서 메모장을 열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지만, 타이핑은 정확했다.
공제 항목: - 유니폼비: 15,000원 - 손상 물품 배상: 157,000원 - 매장 교육비: 50,000원 - 신입 수수료: 100,000원 - 관리비: 200,000원 - 시스템 이용료: 120,000원 - 기타 손상: 755,000원
합계: 1,397,000원.
이준호는 메모장을 내려놨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것은 명백한 위법이었다.
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는 항목은 법정 공제(세금, 보험료)와 근로자의 명시적 동의를 받은 항목뿐이다. 그것도 공제액이 임금의 일정 비율을 초과할 수 없다. 유니폼비, 교육비, 손상 물품비는 사용자가 부담해야 하는 사업 비용이다. 신입 수수료, 시스템 이용료, 기타 손상비는 아예 법적 근거가 없다.
더불어 1,397,000원의 공제는 명백히 과도했다. 월급의 93%를 공제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임금 착취다.
삼십 년간 판결문에서만 보던 것이 여기에 있었다. 대법원이 판시한 판례들, 고등법원에서 인용했던 선례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공제할 수 없다"는 198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공제액이 과도하면 무효"라는 2005년 판례. "신입 수수료는 사업 비용"이라는 2012년 대법관 의견.
모두 정확하게 기억났다. 삼십 년의 기억이 생생했다.
이준호는 천천히 침대에 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 내렸다.
나는 누구인가.
대법관 이준호인가, 아니면 CU편의점 강남점 알바생 이준호인가. 기억은 대법관의 기억인데, 몸은 알바생의 몸이었다. 법리는 여전히 명확한데, 현실은 명확하지 않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오전 7시 45분. 알람이었다. "편의점 출근 15분 전".
이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
편의점은 강남역 근처였다. 이른 아침 출근 시간, 직원 2명이 이미 일하고 있었다. 한 명은 마스크를 쓰고 계산대를 정리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냉장고를 채우고 있었다.
점장 정현우는 사무실에서 나왔다. 아이폰을 들고 있었고, 명품 시계를 차고 있었다. 서른다섯 정도로 보였다.
"이준호?"
이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 출근이지? 이건 유니폼이고."
정현우가 폴리백에 든 유니폼을 건넸다.
"유니폼비는 급여에서 공제할 거고. 교육은 30분 정도 하고, 교육비도 공제할 거야. 손상 물품은 원가 기준으로 배상받는 거 알고 있지?"
이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손상이 나면 사진 찍고 보고해. 그리고 신입이라고 해서 특별한 거 없어. 시급은 최저임금인데, 경험이 없으면 실제로는 그보다 더 받을 가치가 없지. 알겠어?"
이준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급은 최저임금입니까?"
"그렇지."
"그럼 공제 항목은 무엇입니까?"
정현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뭐하는 사람이야? 계약서 보면 다 나와 있지. 우리 편의점 다 이렇게 한다. 너도 이대로 따르면 돼."
이준호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유니폼을 받아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유니폼을 입고 나왔을 때, 정현우는 이미 사무실로 들어가 있었다. 선배 직원이 이준호에게 다가왔다.
"첫 근무? 힘들어. 이 점장은 별로야."
"?"
"공제 많이 한다고. 다들 그렇게 말해."
이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다른 편의점도 이렇습니까?"
선배 직원이 웃음을 흘렸다.
"어디나 비슷해. 본사에서 시키는 거 같아. 근데 여기가 좀 심한 편."
이준호의 머릿속에 뭔가가 켜졌다.
개별 사건이 아니었다.
오전 내내 이준호는 계산대에서 일했다. 손님을 응대하고, 물품을 진열하고, 가격 스티커를 붙였다. 몸은 서툰 신입의 움직임이었지만, 눈은 이미 패턴을 읽고 있었다.
계산대에 붙은 지시문들. 환불 규정, 반품 규정, 고객 응대 매뉴얼. 모두 회사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고객이 반품을 요청하면 "한 번 구입하신 상품은 반품 불가"라고 해야 한다는 지시. 환불은 "카드사에 문의"라고 돌려야 한다는 지시.
그리고 직원 관련 규정들. "손상 물품은 원가의 150%로 배상", "지각은 30분 공제", "외출은 사전 승인", "물품 재고 오류는 직원 배상".
이준호는 모두 기억했다.
오후 6시, 정현우가 이준호를 불렀다.
"시간 기록했지? 8시간 근무. 시급 10,580원 × 8시간 = 84,640원. 여기서 유니폼비 15,000원, 교육비 50,000원, 손상비 5,000원 공제하면... 14,640원."
이준호가 바라봤다.
"14,640원입니까?"
"그래. 내일도 나와."
"공제 항목이 과도합니다."
정현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뭐? 뭐라고?"
"근로기준법 제43조.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는 항목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유니폼비, 교육비, 손상비는 사용자가 부담해야 하는 사업 비용입니다."
정현우의 웃음이 멈췄다.
"넌 뭐냐? 법 공부하는 사람인가?"
"근로기준법을 알고 있습니다."
정현우가 천천히 다가왔다. 얼굴에 미소가 남아 있었지만, 눈빛이 변했다.
"이거 봐. 넌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우리 편의점 문제 있다고? 우리 편의점 다 이렇게 한다. 알겠어?"
이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내일부터 안 나와도 돼. 그리고 이 얘기 밖에서 하지 마. 알겠어?"
이준호는 유니폼을 벗었다.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 이준호의 머릿속은 온통 계산이었다. 8시간 근무에 14,640원. 한 달이면 400시간. 최저임금 기준 4,232,000원. 하지만 공제액이 이 정도라면 실제 수령액은 200만 원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편의점 다 이렇게 한다"는 말.
다섯 개 편의점 체인, 수백 개 가맹점, 수천 명의 알바생.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이것은 개별 사건이 아니었다.
이것은 구조였다.
고시원에 도착한 이준호는 휴대폰을 들었다. 메모장에 다시 기록했다.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 1. 불법 공제 (제43조 위반) 2. 최저임금 미만 지급 (제6조 위반) 3. 명시적 동의 없는 공제 (제43조 위반)
대법원 선례: - 198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용자는 법정 공제 외에 임금을 공제할 수 없다" - 2005년 대법원: "공제액이 과도하면 무효이며 전액 지급 의무" - 2012년 대법관 의견: "신입 수수료는 근로계약 조건이 아닌 사업 비용"
이준호는 메모를 저장했다.
법을 알아도, 비용이 없으면 쓸 수 없다.
법을 알아도, 신뢰가 없으면 들어주지 않는다.
법을 알아도, 시간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내일은 다른 편의점을 찾아야 했다. 14,640원으로는 살 수 없었다. 한 달에 400,000원 정도는 벌어야 했다. 계산해보니 30일 동안 하루에 13,000원. 대략 10시간 정도를 일해야 한다.
그 와중에 증거를 수집하고, 노동청에 진정하고, 소송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정현우는 이미 경고했다. "이 얘기 밖에서 하지 마."
이준호는 천천히 침대에 누웠다.
삼십 년 동안 법정에서 판결을 내리던 대법관이 이제 고시원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기억은 여전히 명확했지만, 현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고시원의 벽시계가 오전 9시를 가리킬 때, 이준호는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눈으로 화면을 켰다. 채용 문자가 또 들어와 있었다.
"편의점 알바 모집 — 시급 11,260원, 주 5일, 신청 시 즉시 입사 가능"
이준호는 주소를 확인했다. 고시원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의 다른 편의점이었다. 그는 일어나 앉았다. 어제의 패배감은 여전했지만, 그것보다 강한 것이 있었다.
호기심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검증 욕구였다.
"우리 편의점 다 이렇게 한다"는 정현우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같은 프랜차이즈였나? 아니면 완전히 다른 업체였나?
이준호는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낮추고 차분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채용 문자로 연락드렸습니다. 오늘 바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상대방은 즉각 대답했다.
"그럼요. 지금 와도 돼요. 아, 신분증 꼭 챙겨 오세요."
전화를 끊고 이준호는 옷을 갈아입었다. 거울을 마주할 때마다 여전히 낯선 얼굴이 튀어나왔지만, 이제는 그 낯설음에 더 이상 머물 시간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20분을 달려 도착한 편의점은 어제 일한 곳과 거의 똑같았다. 간판도 비슷했고, 진열대 배치도 비슷했고, 냄새도 비슷했다. 하지만 점장은 달랐다.
"오세요. 나 박민지예요. 여기 점장이에요."
점장은 2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제 정현우에게서 느낀 거만함이 없었다.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피로였나?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은 것. 무기력함이었다.
"근로계약서를 먼저 쓸게요."
박민지가 테이블에 서류를 펼쳤다. 이준호는 한 줄 한 줄을 읽으며 계산했다.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데 보통 문제가 생기면 야간까지 일하게 돼요. 야간은 시급이 따로 안 나와요."
"그건 위법입니다. 야간근로는 50% 이상 가산이 필수입니다."
박민지가 웃음을 흘렸다.
"법을 아세요?"
"기본적인 것은."
"여기선 다 그렇게 하는데요. 처음 일하세요?"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계약서를 다시 들었다.
"공제 항목이 여기도 있네요."
"네. 유니폼비, 손상비, 교육비, 카드기계 수수료, 가맹점주 관리비... 보통 한 달에 30만 원 정도 공제돼요."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30만 원?"
"네. 그런데 시급이 11,260원이니까 실제로 받으면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예요. 대학 등록금이 필요해서 여기서 일하는데..."
박민지는 말을 멈추고 이준호를 바라봤다.
"혹시 이 공제들이 문제 있는 거예요?"
이준호는 천천히 계약서를 내려놨다.
"근로기준법 제43조를 보면, 임금에서 공제할 수 있는 항목은 법정 공제에 한정됩니다. 유니폼비, 교육비, 손상비는 사용자의 사업 비용입니다. 법적으로 근로자에게 전가할 수 없습니다."
"그걸 어디서 아세요?"
"법관으로 일했습니다."
이준호는 그 말을 꺼내자마자 후회했다.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편의점 알바생일 뿐이었다. 그러나 박민지의 반응은 다르게 나왔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법관이세요?"
"일했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다른 일을 찾고 있어요."
"그럼... 당신 말이 맞다면 우리 편의점 다 불법인 거네요?"
"네."
박민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준호는 그 침묵을 읽을 수 있었다. 희망과 공포가 섞여 있는 침묵.
"저희 편의점만 그런 거 아니에요. 다른 편의점에서도 다 같아요. 친구들도 다 같은 공제를 받고 있대요."
이준호의 눈이 반짝였다.
"몇 개 편의점?"
"글쎄요. 한 프랜차이즈 전체? 아니면 더?"
그 순간 이준호의 뇌가 작동했다. 법관으로서 30년을 일하며 쌓아온 판례의 기억들이 불빛처럼 켜져났다.
1999년 대법원 판결: 프랜차이즈 본사가 직접 임금을 공제하지 않아도, 가맹점 시스템을 통해 공제를 강제하면 본사도 공동 책임.
2008년 노동부 지침: 광범위한 가맹점에서 동일한 위반 패턴이 발견되면 카르텔 혐의.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집단소송 인정, 피해자 전원에게 손해배상 청구권.
이준호는 박민지를 바라봤다.
"당신은 계약서에 서명하고 싶으신가요?"
"네. 돈이 필요하거든요."
"그렇다면 서명하세요. 하지만 계약서 사본을 보관하고, 월급 계산서를 모두 보관하세요. 공제 항목이 적힌 모든 기록을 남겨두세요."
"왜요? 뭘 하려고?"
"증거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준호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근로계약서의 이름 란에 적힌 '이준호'를 보며, 그것이 30년 전 대법관 임명장의 이름과 같다는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의 이름이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은 편의점 알바생 이준호였다.
첫 주가 지나갔다.
이준호는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했다. 손가락은 상처로 덮였고, 허리는 아팠지만, 그의 눈은 계속 작동했다.
공제 항목들.
유니폼비는 한 번 구매할 때 15,000원.
손상비는 매달 정해진 금액 20,000원.
교육비는 신입 교육 한 번에 50,000원. 하지만 그 교육은 점장이 30분짜리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카드기계 수수료는 매달 10,000원. 본부에서 제공하는 카드기계 유지비였다.
가맹점주 관리비는 매달 25,000원. 정확한 용도는 명시되지 않았다.
합계: 매달 최소 120,000원이 공제되고 있었다.
이준호는 박민지에게 물었다.
"다른 편의점 알바들과 연락이 되세요?"
"네. 학교 친구들 중에도 있고, SNS로도 알아요."
"같은 공제를 받고 있는지 확인해줄 수 있을까요?"
박민지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이해했다는 신호였다.
3일 뒤, 이준호는 박민지가 모아온 정보를 받았다.
같은 프랜차이즈 체인의 다섯 개 점포에서 일하는 알바생들이 제출한 계약서 사본과 월급 계산서.
모두 동일한 공제 항목.
모두 동일한 공제액.
모두 동일한 패턴.
이준호는 고시원의 침대에 누워 이 서류들을 정렬했다. 손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다섯 개 점포, 각 점포마다 평균 5명의 알바생, 월 공제액 120,000원.
월 3,000,000원의 불법 공제.
연 36,000,000원.
그리고 이것은 한 프랜차이즈일 뿐이었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들었다. 검색 결과는 명확했다.
대형 편의점 프랜차이즈: 5개 체인, 약 10,000개 점포.
각 점포마다 평균 5명.
총 50,000명의 알바생.
이준호는 계산을 멈추고 천장을 바라봤다.
곰팡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준호의 시선은 곰팡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은 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2주가 지났을 때, 이준호는 박민지와 함께 노동청으로 향했다. 그는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안에는 다섯 개 편의점의 계약서 사본과 월급 계산서, 그리고 공제 항목을 분석한 메모가 들어 있었다.
서울 남부 노동청의 창구. 담당자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명패에는 '김소연'이라고 적혀 있었다.
"뭔가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이준호는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편의점에서 근무 중 불법 공제를 당했습니다. 다섯 개 점포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김소연이 서류를 펼쳤다. 그녀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게... 모두 같은 패턴이네요?"
"네. 근로기준법 제43조를 위반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진정서를 작성하시겠어요? 그리고 증거 자료도 남겨주시고요."
이준호는 진정서를 작성했다. 손에 익은 법률 용어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대법원 판결문이 아니라 노동청 진정서였다.
"이게 처리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음... 보통 2주에서 1개월. 그런데..."
김소연이 말을 끝맺지 못했다.
"뭔가요?"
"우리 부서도 이상해요."
이준호의 눈이 집중되었다. 김소연은 주변을 둘러본 후 낮은 목소리로 계속했다.
"같은 위반으로 진정이 들어와도, 어떤 건 빨리 처리되고 어떤 건 묻혀요."
"구체적으로?"
"큰 프랜차이즈는 처리가 느려요. 소규모는 빨리. 마치... 누군가 선별하는 것처럼요."
이준호는 그 말을 기억했다. 그것은 단순한 비효율이 아니라 의도된 지연이었다. 법관으로서 30년을 일하며 본 패턴이었다.
나가며 이준호는 다시 한 번 김소연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혹시 변호사세요?"
"아니에요. 근로기준법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말이에요. 진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과태료 정도만 나오거든요. 본격적으로 싸우려면..."
"소송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법정 조력인 자격이 있으신가요?"
이준호의 심장이 철렁했다.
"왜 그런 걸..."
"아, 죄송해요. 이렇게 준비된 진정서를 작성하는 사람을 보니까요. 혹시 법조인이신가 싶어서."
이준호는 웃음을 지었다.
"단순히 법에 관심 있는 사람입니다."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 이준호의 머릿속은 다시 한 번 가동했다.
법정 조력인.
그것은 변호사가 아니면서도 민사소송에서 의뢰인을 대리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대법관으로 일할 때 이준호는 수백 건의 조력인 사건을 봤다. 대부분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조력인을 통해 법정에 섰다.
그때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조력인으로서 법정에 서려면, 먼저 의뢰인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그리고 이준호는 무일푼 편의점 알바생이었다.
변호사도 아니고, 돈도 없고, 이름도 없는.
단지 법을 알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이준호는 박민지를 불렀다.
"그 공제들이 정말 불법인가요?"
"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노동청에 진정을 했습니다. 그 다음은 회사의 대응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소송입니다."
박민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소송?"
"네."
"변호사가 필요한 거 아닌가요?"
"법정 조력인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변호사는 아니지만, 법정에서 당신을 대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계세요?"
이준호는 박민지의 눈을 바라봤다.
"일단 노동청의 답변을 기다립시다. 그 다음에 결정해도 됩니다."
박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희망과 불안이 함께 떠 있었다.
2주가 지났을 때 노동청에서 회신이 왔다. 이준호는 박민지와 함께 노동청을 방문했다.
김소연의 얼굴이 밝지 않았다.
"진정은 접수되었고, 현장 조사도 했습니다만..."
"뭔가요?"
"회사 측에서 '공제는 근로자의 동의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준호의 눈이 좁혀졌다.
"계약서에 서명한 것을 동의로 본다는 건가요?"
"네.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건 위법입니다. 사전 동의가 있어도 법정 공제 외의 공제는 무효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소연이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봤다.
"진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과태료 수준의 처벌만 가능해요. 본격적으로 싸우려면 소송을 해야 합니다."
이준호는 그 말을 기다렸다.
"소송을 준비하고 싶으신가요?"
박민지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공포와 희망이 섞여 있었다.
"법정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이준호는 대법원 판례들을 떠올렸다.
1999년, 2005년, 2012년, 2018년.
모든 판례가 근로자의 손을 들었다.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비가..."
"필요 없습니다."
이준호가 박민지를 바라봤다.
"저는 법정 조력인으로 당신을 대리할 수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변호사는 아니지만, 법정에서 당신의 대리인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비용은 없습니다."
박민지의 눈이 반짝였다.
"정말요?"
"네."
"그럼... 시작해도 될까요?"
이준호는 한 번 더 박민지의 얼굴을 봤다. 20대 중반의 여성,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편의점에서 일하고, 불법 공제에 분노하지만 현실 앞에서 무기력한 그 여성.
30년 동안 이준호가 법정에서 본 수천 명의 '을'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준호는 그들의 판사가 아니었다.
그들의 편이었다.
"시작합시다."
고시원으로 돌아가며, 이준호는 휴대폰을 들었다. 메모장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했다.
박민지 사건 진행 사항: 1. 노동청 진정 완료 2. 법정 조력인 신청 준비 3. 소장 작성 단계
그리고 바로 아래에:
알아야 할 것: - 편의점 프랜차이즈 구조 - 가맹점주와 알바생의 관계 - 본사의 지시 체계
이준호는 메모를 저장했다.
그날 밤, 이준호는 고시원의 책상에 앉아 소장 작성을 시작했다. 손에는 펜, 눈에는 30년의 판례, 마음에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책임감이 있었다.
법관으로서 내린 판결은 남의 인생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소장은 박민지의 인생이었다.
이준호는 첫 줄을 적었다.
"청구인: 박민지"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가 이준호의 고시원 방문을 두드렸다.
이준호가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는 정현우가 서 있었다.
어제 일한 첫 편의점의 점장이었다.
"어? 당신..."
정현우의 입가에 미소가 떠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 찾고 있었어. 당신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