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침묵의 목소리

강준호의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은 지 사흘이다.

절대음감은 여전히 작동했다. 하지만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아침 6시, 크레센도 엔터 녹음실. 입을 벌렸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손가락만 떨렸다. 음역대의 절반이 이미 사라졌다. 음정 감지 능력도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완전한 침묵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었다.

박준서가 음정을 수정했다. 그 다음은 이지은. 그 다음은 최민준. 그 다음은 한나영. 강준호는 말없이 그들을 지도했고, 그들은 침묵의 손가락을 읽었다.

침묵. 강준호는 자신의 침묵을 처음 느껴봤다. 이것이 그의 목소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부재일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제 빌보드 차트가 업데이트됐을 때, 강준호는 이태균의 어깨를 잡았다.

23위. 10주 연속 상승. 노바의 글로벌 버전 'Resurrection'이 빌보드 핫 100의 상위 30에 진입했다.

강준호는 그 숫자를 보는 순간, 가슴의 한 부분이 무너졌다. 성공이 왔다. 그런데 자신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있었다.

"다음 주 라스베이거스 쇼, 그 다음 주 도쿄, 그 다음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 이태균이 일정표를 펼쳤다. 손가락으로 각 도시를 가리켰다. "글로벌 투어. 정식 투어야. 세계 주요 도시 13개."

강준호가 노트를 들었다. 손이 떨렸다. 펜을 잡았다가 놨다.

이태균이 펜을 집어 들었다. "뭐라고 쓸 거야?"

강준호는 손으로 원을 그렸다. 이태균이 이해했다. 혼란스럽다는 뜻이다.

"혼란스러울 필요가 없어. 이게 성공이야. 정말 성공이라고."

성공. 강준호는 그 단어를 씹었다. 입술만 움직였고, 소리는 없었다. 10년 전 라이즈를 빌보드 상위권으로 올린 것도 성공이었다. 그 성공이 무엇을 남겼는가? 박살난 신뢰, 해체된 그룹, 자신의 나락.

그런데 이번에는 다를 것인가.

"강준호."

이태균이 강준호의 얼굴을 들었다.

"넌 이미 충분히 증명했어. 라이즈는 네 기술 때문에 망한 게 아니야. 너의 욕심이 그들을 짓눌렀던 거지. 그런데 이번엔 달라. 노바는 너를 믿고 있어. 그리고 넌 그들을 조종하지 않고 있어. 너는 그들을 살리고 있어."

강준호가 손가락을 들었다. 의문 기호를 그렸다.

"뭐냐고?"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심장 부위를 가리켰다. 그 다음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펼쳤다. 그 다음 다시 심장으로 돌아왔다.

이태균이 말했다. "확실하지 않다는 거네. 내 마음이 확실하지 않다는 뜻."

강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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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공연장 뒤 모니터링 룸.

강준호는 화면 5개 앞에 앉아 있었다. 각 멤버의 성대 진동을 음파 분석기로 실시간 추적했다. 박준서의 따뜻한 미디엄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이지은의 샤프한 고음이 정확한 음정으로 떨렸다. 최민준의 래핑이 리듬과 감정을 동시에 포착했다.

한나영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절대음감은 그 떨림의 의미를 말했다. 두려움. 무대 공포증이 아니었다. 무언가 더 깊은 것.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이 성대의 미세한 주파수에 새겨져 있었다.

강준호가 무대 쪽으로 손가락을 들었다. 한나영을 가리키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음정을 올리라는 신호가 아니었다. 감정을 풀어라는 신호였다.

한나영의 음성이 변했다.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신뢰가 들어찼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신뢰.

강준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석의 울음소리가 마이크에 포착되었다. 박수가 아니었다. 울음. 수십만 명의 인간이 동시에 눈물을 흘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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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방. 밤 11시.

박준서가 문을 열었다. 강준호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들어와."

손가락이 움직였다.

박준서가 침대에 앉았다.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우리의 목소리를 살렸어요."

강준호가 손을 들었다. 부정하는 신호.

"아니에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목소리를 깨워줬어요. 제 목소리가 뭐였는지, 왜 나는 항상 팀을 위해서만 울었는지. 당신은 제 음성에서 그걸 읽으셨어요. 그리고 저한테 말씀해주셨어요. 당신의 침묵으로."

박준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미안했어요. 항상. 사람들 앞에서 웃고, 뒤에서 울고. 그게 제 일인 줄 알았어요. 근데 당신이 저한테 보여줬어요. 제 목소리도 소중하다는 것. 제 감정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

박준서가 강준호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침묵했지만, 우리는 들었어요."

강준호는 노트를 집어 들었다. 펜으로 글씨를 썼다. 손이 이전처럼 떨리지 않았다.

"넌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박준서가 그 글씨를 읽었다.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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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리허설. 무대 뒤.

최민준이 강준호를 밀어붙였다. 농담이 아니었다. 진짜로.

"처음엔 당신을 믿지 않았어요. 침묵한다고 해서 뭐가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당신은 내 래핑의 방어심을 들었어. 내 음성 뒤에 숨겨진 상처를 들었어. 그리고 그걸 제거하라고 하지 않았어. 그것도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줬어."

최민준이 강준호의 어깨를 잡았다.

"나는 여러 번 실패했어. 그룹들이 망할 때마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어. 근데 당신은 달랐어. 당신은 내 상처를 약점으로 보지 않고 음악으로 봤어. 그게 변화를 만들었어."

강준호는 노트를 들었다. 펜을 움직였다. 이번엔 손이 확실했다.

"넌 이미 변했어. 넌 그걸 몰랐을 뿐이야."

최민준이 그 글씨를 읽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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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 2시간 전.

강준호는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손이 떨렸다.

이것이 마지막 글로벌 투어 쇼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준호는 그렇게 느꼈다. 자신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의 마지막 기회. 절대음감도 이제 희미했다. 음역대의 감지가 불안정해졌고, 때때로 음정이 왜곡되어 들렸다.

자신의 침묵이 영구적인 것인지 일시적인 것인지, 강준호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손이 떨렸다. 노트를 들었다. 펜으로 글씨를 쓰려고 했다. 손가락이 굳었다. 글씨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얼굴이 뜨거워졌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문이 열렸다. 이지은이 들어왔다. 다른 멤버들은 무대 준비 중이었다.

"당신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요."

이지은이 말했다.

"당신이 우리를 구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대가로 자신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강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근데 그게 아니에요. 당신은 자신을 잃지 않았어요. 당신은 우리를 얻었어요.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음악, 우리의 성공. 그게 모두 당신의 침묵 속에서 나온 거예요."

이지은이 강준호의 손을 잡았다.

"당신의 침묵이 우리의 목소리가 되었어요."

강준호는 노트를 들었다. 이번엔 손이 떨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난 뭐가 되는 거야?"

이지은이 그 글씨를 읽었다. 강준호의 눈을 마주쳤다.

"당신은 우리가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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웸블리 스타디움. 무대 뒤. 공연 시작 5분 전.

강준호는 음향 감지기 앞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노바의 다섯 멤버가 무대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박준서. 이지은. 최민준. 한나영. 그리고 이준재.

절대음감이 마지막으로 울렸다.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강준호의 의식은 그들의 성대로 옮겨갔다. 박준서의 따뜻한 미디엄이 관객석을 감싸고 있었다. 이지은의 샤프한 고음이 밤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최민준의 래핑이 리듬의 심장을 두드렸다. 한나영의 음성이 세상을 향해 울음을 질렀다. 이준재의 고역이 모든 것을 하늘로 끌어올렸다.

완벽했다. 음정, 음역대, 음색. 모든 것이 강준호가 설계한 대로였다.

하지만 강준호는 그 순간, 깨달았다.

그들의 목소리에 담긴 것은 강준호의 설계가 아니었다.

박준서의 따뜻함 속에는 자신의 감정을 마침내 인정한 배려가 있었다. 이지은의 고음 속에는 완벽함에서 해방된 기쁨이 있었다. 최민준의 래핑 속에는 상처를 음악으로 변환한 용기가 있었다. 한나영의 음성 속에는 세상 앞에서 자신을 드러낸 순수함이 있었다. 이준재의 고역 속에는 다섯 멤버를 하나로 묶는 신뢰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목소리였다.

강준호의 절대음감이 감지한 마지막 음악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발견한 것이었다.

그 순간, 절대음감이 끊겼다.

음악이 사라졌다. 음정이 들리지 않았다. 음역대가 감지되지 않았다. 강준호의 귀는 더 이상 절대음감의 세계에 머물지 않았다.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그 다음은 이상한 평온함이었다.

공연이 끝났을 때, 웸블리 스타디움 75,000명의 관객이 일어섰다. 박수가 아니었다. 울음. 비명. 감동의 울음.

그것은 노바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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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노바의 다섯 멤버가 무릎을 꿇었다. 박준서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침묵의 프로듀서를 만났어요."

이지은이 계속했다.

"그 침묵은 우리에게 귀를 열어주었어요."

최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들었어요."

한나영이 울먹였다.

"당신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 없었어요."

이준재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모니터링 룸으로 와주세요."

강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박준서가 다시 말했다.

"강준호님. 무대로 와주세요."

강준호가 일어섰다. 손과 발이 떨렸다. 이태균이 그의 팔을 잡았다.

"가. 넌 가야 해."

강준호가 무대 쪽으로 걸었다. 계단을 올랐다. 무대에 섰다.

75,000명의 관객이 일어났다. 박수. 울음. 비명.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쏟아졌다. 강준호의 신체는 그 음파에 흔들렸다.

노바의 다섯 멤버가 강준호를 둘러쌌다.

박준서가 강준호의 손을 잡았다. 이지은이 강준호의 등을 안았다. 최민준이 강준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한나영이 강준호의 팔을 움켜잡았다. 이준재가 강준호의 얼굴을 들었다.

강준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관객석의 75,000명이 그 눈물을 봤다.

그리고 모두가 울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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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호텔 방.

강준호는 혼자 있었다. 노트를 들었다. 펜을 잡았다.

이번엔 손이 떨리지 않았다.

글씨가 나왔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나는 침묵이다. 침묵은 나의 목소리다. 침묵은 타인의 목소리가 되었다."

강준호가 그 문장을 읽었다. 입을 벌렸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강준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목소리 없는 웃음. 신체만 흔들리는 웃음. 그것이 가장 큰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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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 주경기장. 글로벌 투어의 마지막 공연.

강준호는 무대 뒤에 서 있었다. 손가락이 공중에서 움직였다. 마지막 신호를 보냈다.

"함께함."

노바의 다섯 멤버가 무대에 올랐다. 음악이 시작되었다.

절대음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강준호의 음성 감지 능력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대신, 강준호는 눈으로 봤다.

박준서의 따뜻한 미소. 이지은의 자유로운 눈빛. 최민준의 확신한 표정. 한나영의 순수한 감정. 이준재의 신뢰의 손짓.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강준호는 그것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공연이 끝났을 때, 수십만 명의 관객이 일어섰다. 박수. 울음. 그리고 함성.

"노바! 노바! 노바!"

강준호는 그 함성을 들었다. 절대음감 없이. 오직 인간의 귀로.

그리고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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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크레센도 엔터 사무실.

강준호는 창문을 통해 밤의 서울을 봤다. 불빛이 깜빡였다. 각각의 빛이 사람의 꿈을 담고 있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음악을 그렸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지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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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빌보드 차트 업데이트.

'Resurrection' (Global Version): 8위.

강준호는 그 숫자를 본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목소리 없는 웃음.

이태균이 말했다.

"알지? 다음 목표는 1위야."

강준호가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이번엔 혼란이 아니었다.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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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강준호의 휴대폰에 미등록 번호에서 메시지가 들어왔다.

"넌 침묵으로 말했다. 타인의 목소리를 살렸고, 자신의 침묵 속에서 새로운 목소리를 찾았다. 넌 왜 나를 선택했는가?"

강준호가 읽었다. 한 글자씩.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이 목소리. 어디서 본 것 같은데.

10년 전, 라이즈가 해체되던 날. 자신을 구했던 그 음성. 미등록 번호로 걸려온 전화. "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던 그 목소리.

강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절대음감이 주어진 이유는 자신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타인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강준호는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찾았다.

그것은 침묵 속에서 나는 음악이 아니라, 침묵 그 자체였다.

강준호의 손가락이 공중에서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고마워. 그리고 안녕."

침묵 속의 목소리. 하지만 가장 큰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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