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악역 영애의 탄생

루미나 아카데미의 입학식 무렴, 레이나 베르그란트는 대강당 계단 위에서 세상이 끝나는 경험을 했다.

"어, 어?"

발을 헛디딘 후배 학생이 계단을 구르기 시작했다. 레이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 아이를 받아야 한다는 본능이 전부였다.

그 순간, 검은 빛이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어둠의 마력이 공기를 헤집고 나갔다. 반투명한 검은 기운이 후배 학생을 감싸는 순간, 대강당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주다!"

"어둠의 마력이—"

"누군가 도와줘!"

후배는 레이나의 팔에 안겨 있었다. 다친 곳은 없었다. 검은 기운이 충격을 완벽하게 흡수했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은 공포로 뒤틀려 있었다. 레이나를 보는 눈이 마치 악마를 마주한 것처럼.

"나는... 너를 도와주려고..."

말을 채 끝내기 전에 후배는 레이나의 팔에서 벗어나 뛰어내렸다.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간다. 뒤도 안 보고.

"저주받았어. 저 여자한테 저주받았어!"

레이나의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검은 손가락이 천천히 내려갔다. 마력이 말없이 흩어졌다. 대강당 안의 수백 명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다크엘프 혼혈인 베르그란트 가문의 영애를 보고 있었다.

입학식은 계속되었다. 교장이 연설했다. 학생 대표가 선서했다. 하지만 레이나 주변의 공기는 굳어있었다. 두 칸 떨어진 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몸을 구부렸다. 마치 검은 마력이 튈까봐.

'또.'

레이나는 손을 모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떨림이 보이지 않도록 손을 깊게 모았다.

'또 다시인가.'

열 살 때도 이랬다. 어머니를 도와 정원의 시든 꽃에 마력을 불어넣으려 했다가 '검은 꽃을 피운다'고 불렸다. 열두 살 때도. 어린 하녀가 화상을 입었을 때 응급처치를 해줬다가 '저주를 건다'고 말해지고 다녔다.

어릴 때는 울었다. 할머니 몰래 방에 들어가 울었다. 엄마는 '마음 쓰지 말거라'고 했지만 마음 쓰지 않는 법은 없었다.

그래서 성장했다.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대신 웃지도 않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또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입학식 후 기숙사 방에 들어간 레이나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흰 천정.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판단도, 어떤 감정도, 어떤 말도 없었다.

그저 침묵이 있을 뿐이었다.

레이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 속에는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하얀 피부에 은색 머리. 다크엘프의 검은 눈. 그 눈이 자신을 바라봤다.

'내가 정말 악인이면?'

생각이 나왔다. 순간적이고 날카로운 생각이.

'내가 정말 악인이면, 이 모든 게 맞아떨어지지 않을까?'

내가 도움을 주려 했는데 저주가 되는 것. 내가 선함을 가졌는데 악으로 읽히는 것. 그 모든 모순이.

만약 자신이 진짜 악이라면?

만약 자신이 진심으로 악하려 한다면?

그럼 모두가 자신을 이해할 것이다. 자신의 검은 마력이 악이라고 믿는 이 세상이. 자신의 어둠이 위험하다고 확신하는 이 아카데미가.

더 이상 모순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착함이 악으로 왜곡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악인 척하면, 모두가 납득할 텐데.'

그 생각이 들었을 때 쾌감이 흘렀다. 그리고 동시에 두려움이 흘렀다.

정말로 악해지는 게 아닐까? 연기하다 보면? 연기가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격이 되면?

하지만 더 이상 상관없었다. 이미 모두가 자신을 악이라고 봤다. 이미 자신은 악역이었다.

차라리 자신이 그 역할을 선택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레이나는 거울을 내려다봤다. 자신의 눈을 봤다. 그 순간, 검은 눈이 더 어둡게 변했다. 마력이 반응했다. 무의식적으로. 깊게 숨 쉬는 것처럼.

눈이 반짝였다. 검은 거울처럼.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루미나 아카데미의 식당은 소음으로 가득 찼다.

"그 여자 봤어? 입학식 때 후배한테 저주 건 여자?"

"어, 베르그란트 가문의 영애라더라. 다크엘프 혼혈이래."

"어둠의 마력이 위험한 거 다 아잖아. 빛의 교단에서도 경고했잖아."

레이나는 식판을 들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주변에서 자동으로 한 줄의 공간이 생겼다. 마치 격자 무늬처럼. 그녀를 중심으로 둘레에 공간이.

그녀는 밥을 떠 먹기 시작했다.

"어제 저주받은 그 학생 봤어? 아직도 떨린대."

"정신 차려. 저 여자 이름도 입에 담지 마. 혹시 또..."

"어둠의 마력은 제거되어야 할 위험이다. 빛의 교단 헬리아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잖아."

레이나의 손이 멈췄다. 숟가락이 밥 위에서 멈췄다.

제거되어야 할 위험.

그 말이 식당 전체에 깔려 있었다. 벽에 붙은 포스터에도 있었다. '어둠의 마력은 악의 근원입니다. 신고하세요.' 루미나 제국의 국교인 빛의 교단의 포스터였다.

레이나는 밥을 떠 먹었다. 아무 표정도 짓지 않으면서.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내가 악인이라고 믿어라. 그럼 안전하다.

내가 위험하다고 생각해라. 그럼 날 피한다.

내가 저주를 건다고 확신해라. 그럼 날 건드리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편하다. 착한 척할 필요도 없다. 도와주려고 할 필요도 없다. 모든 오해가 진실이 되면, 더 이상 오해가 아니다.

레이나는 밥을 다 먹었다. 일어섰다. 식당을 나갔다.

뒤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흐릿해졌다.

복도를 걸으며 레이나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에서는 검은 마력이 나가지 않았다. 평온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왠지 그 평온함이 더 위험해 보였다.

도서관 방향으로 가는 길, 앞서 가던 학생들이 재빨리 옆으로 비켜났다. 레이나가 지나가갈 때 말이다.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움직였다.

레이나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그저 앞을 봤다.

도서관에 들어가며 생각했다.

'이게 쉬울까, 어려울까?'

악인 척하는 것이. 진짜 악이 되지 않으면서 악인 척하는 것이.

그 질문의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도서관의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왔다. 그 빛 속에서 레이나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검게. 깊게.

그림자는 빛이 강할수록 더 어두워진다.

---

오후, 무술 훈련장.

루미나 아카데미의 무술 훈련장은 넓었다. 목재로 된 바닥, 높은 천장, 그리고 칼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한 공간. 레이나는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혼자 기초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칼을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자신의 어둠의 마력은 검술과는 관계없었다. 하지만 체술은 필요했다. 신분이 높은 영애라도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했다. 특히 지금처럼 모두가 자신을 피할 때는 더욱.

"어? 베르그란트?"

목소리가 들렸다. 레이나는 칼을 내렸다.

훈련장 입구에 서 있던 학생이 보였다. 금색 머리에 파란 눈. 왕실 기사 훈련을 받는 학생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이름은 세인 로드벨트. 황태자의 호위 기사 후보생이었다.

레이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를 봤다.

"혼자 훈련하고 있었나?"

"그렇다."

짧은 대답이었다. 레이나는 다시 칼을 들었다. 동작을 계속하려 했다.

세인이 한 걸음 더 안으로 들어왔다.

"입학식 때 그 일... 그건 사고였지?"

레이나의 동작이 멈췄다. 천천히 돌아섰다.

"사고?"

"그 후배 학생 말이야. 계단에서 떨어질 때 넌 그걸 막으려다가..."

"그렇다면 내가 저주를 걸었다는 게 맞지 않나?"

세인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레이나는 다시 칼을 들었다.

"기사 후보생이 왜 여기에?"

"아, 이 시간에 이 훈련장을 써야 해서. 혼자만 써도 될까?"

"상관없다."

레이나는 다시 동작을 시작했다. 칼을 휘둘렀다. 정확하고 빠르게. 검은 머리가 움직였다. 은색 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세인은 한동안 그녀를 봤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칼을 들었다. 반대쪽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주 레이나 쪽을 바라봤다.

마치 뭔가를 이해하려고 하듯.

훈련장에는 두 개의 칼소리가 울렸다. 리듬은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 있었다.

레이나는 생각했다. 저 기사 후보생의 눈 속에는 호기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자신을 '악인'으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직도 날 의심하고 있네.'

착함을 의심하는 눈. 그런 눈은 없애버려야 했다.

레이나는 칼을 내렸다. 다시 세인을 봤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

물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차가운 목소리로.

"도움?"

"네. 당신의 기사 사명을 포기하는 데 도움을."

말을 끝내며 레이나의 눈이 검게 빛났다. 어둠의 마력이 흘러나왔다. 손끝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세인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의 무의식이 반응했다. 기사의 본능이 위험을 감지했다. 동시에 그의 욕망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자신을 따르고 싶은 욕망. 자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싶은 욕망.

세인의 손가락이 칼 손잡이에서 떨렸다. 그의 몸은 저항하려 했지만, 마력의 영향 아래에서 움직임이 둔해졌다. 한 발 물러섰다.

"나는... 내 사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목소리가 떨렸다. 기사의 신념과 마력의 유혹이 그의 몸 안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항은 점점 약해졌다.

"그렇구나. 그럼 내가 당신의 사명을 방해해야겠네."

레이나가 한 발 다가갔다. 그의 눈을 직시했다. 검은 눈이 파란 눈을 압도했다. 마력의 파동이 더욱 강해졌다. 세인의 무릎이 흔들렸다.

"당신 같은 사람이 가장 싫어."

레이나가 웃음을 지었다. 악역의 웃음이었다. 그 웃음 속에는 어둠의 마력이 물결처럼 흘렀다.

"왜?"

세인이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자기가 옳다고 믿으면서 남을 구하려고 드니까. 그런 착각이 가장 폭력적이야."

레이나의 웃음이 훈련장 전체에 울렸다. 더 크게, 더 악랄하게. 그 웃음 속에는 어둠의 마력이 물결처럼 흘렀다.

세인의 몸이 뒤로 물러났다. 한 발, 두 발. 칼이 손에서 떨어졌다. 무릎이 바닥에 닿을 듯했다.

그 순간, 세인의 눈이 깨어났다. 기사의 신념이 마력의 유혹을 밀어냈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미쳤어. 넌 정말..."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훈련장을 나갔다. 뒷모습이 흔들렸다.

훈련장에는 레이나만 남았다.

칼을 들었다. 다시 한 번, 두 번, 세 번.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제 그 동작은 기초 동작이 아니었다. 공격이었다. 무언가를 베려는 의도가 담긴 동작.

바닥에 떨어진 물이 보였다. 훈련장의 수로에서 흘러나온 물. 그 물에 레이나의 얼굴이 비쳤다.

거울처럼 비친 자신의 눈이 검게 변해 있었다.

'맞다. 이렇게 하면 된다.'

레이나는 생각했다. 자신의 어둠의 마력을 드러내고, 그것을 악이라고 선전하고, 스스로 그 역할을 해내면 된다. 그러면 모두가 납득할 것이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착한 척하면서 오해받는 것보다 악으로 완전히 받아들여지는 게 훨씬 자유로울 것이다.

처음엔 혼혈의 특징이었다. 다크엘프의 피. 하지만 지금 그 검은색은 다른 의미였다. 결심의 색. 선택의 색. 더는 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다짐의 색.

레이나는 물 위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내일부터 시작하자.'

중얼거렸다.

'정말로 악한 영애가 되자.'

---

밤이 깊었다.

루미나 아카데미의 숙소 복도는 조용했다. 학생들은 모두 자고 있었고, 오직 야간 순찰 마법사의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 레이나의 숙소는 다른 학생들과 떨어진 곳에 있었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모두가 다른 이유를 들었지만, 결국은 같은 뜻이었다.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

레이나는 창문을 열었다. 밤하늘이 보였다. 루미나 제국의 밤하늘은 별이 많았다. 하지만 그 별빛도 이 아카데미의 어둠을 밝히지 못했다.

방에 들어온 찬 바람이 레이나의 검은 머리를 흔들었다. 은색 머리도 함께.

'한 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을 거야.'

레이나가 생각했다.

자신의 어둠의 마력은 착각을 만드는 능력이었다. 상대의 무의식적 욕망을 증폭시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것. 하지만 그 능력을 쓸 때마다 자신의 진심이 한 겹씩 묻혀갔다. 가문의 어른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능력을 쓰지 말라고 했다. 착함을 증명하기 위해 마력을 억제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오해받았다.

'그럼 이제 정반대로 해보자.'

능력을 마음껏 쓰자. 악한 척 행동하자. 누구도 의심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악역을 연기하자. 그러면 자신의 진심이 묻혀가는 건 상관없다. 어차피 자신의 진심은 누구도 믿지 않았으니까.

레이나는 거울로 갔다. 방의 벽에 붙어 있는 작은 거울이었다. 그 속에 비친 자신의 눈은 이미 완전히 검었다.

눈썹은 가늘고 날카로워 보였고, 눈빛은 차갑고 예리했다. 마치 처음부터 악인이었던 것처럼.

'이제부터가 진짜다.'

레이나가 중얼거렸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

'내일부터 모두를 무너뜨리자.'

거울이 흔들렸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 때문이었다. 아니면 자신의 어둠의 마력이 반응한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레이나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창밖을 봤다. 아카데미의 정원이 보였다. 분수가 보였다. 돌로 만들어진 조각상이 보였다. 루미나 제국의 초대 황제를 상징하는 조각상. 그 조각상의 얼굴에는 '정의'가 새겨져 있었다.

그 조각상 옆에 무언가가 움직였다.

레이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원 어딘가에 사람이 있었다. 밤 중에. 이 시간에. 누가.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강해졌다.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드러났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움직임으로 봐서는 학생이 아닌 것 같았다. 어른의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는 목표가 있었다.

정원을 빠져나가는 움직임이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움직임. 마치 감시를 피하려는 듯.

'빛의 교단?'

레이나가 중얼거렸다. 그 인물이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레이나는 창문을 닫았다. 하지만 여전히 밖을 바라봤다. 정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분수만 물을 흘리고 있었다. 조각상만 서 있었다.

'이미 감시받고 있는 건가?'

레이나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그 철렁함이 순간적인 두려움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 두려움도 금방 사라졌다. 대신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결연함. 더 깊은 악의. 더 완벽한 연기.

'좋아. 그럼 더 악해져야겠네.'

레이나가 웃음을 지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 얼굴은 이미 낯설었다. 어제의 레이나가 아니었다. 어제의 착함도, 오늘의 피로함도 없었다. 오직 검은 눈과 차가운 웃음만 있었다.

'내일부터 시작하자.'

중얼거렸다. 다시 한 번.

'모두를 무너뜨리는 악역이 되자.'

거울 속의 검은 눈이 더욱 깊어졌다.

---

아침이 왔다.

루미나 아카데미의 식당에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는 시간. 그 식당의 한구석에는 어제 계단에서 다친 후배가 앉아 있었다. 다리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어제 '저주'를 받은 학생이었다.

그 옆에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위문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어제 일을 캐묻는 중이었다.

"정말 베르그란트가 저주를 걸었어?"

"응, 검은 마력이 나왔어. 진짜로."

"우리 엄마가 말했는데, 그런 애들은 어릴 때부터 위험하대."

"빛의 교단에서 감시한다고 하더니, 정말인가 봐."

말들이 식당을 가득 채웠다. 소문은 벌써 학생 전체에 퍼져 있었다. 베르그란트 가문의 영애는 악인이라는 소문.

그 순간 식당 입구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레이나가 들어왔다. 검은 제복을 입고, 은색 머리를 뒤로 묶고, 검은 눈으로 식당 전체를 훑으며 들어왔다.

말이 끊겼다. 학생들이 몸을 움츠렸다.

레이나는 천천히 식당의 한쪽으로 걸어갔다. 다친 후배가 앉은 쪽으로.

"어제는 고마워."

후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인사인 척하면서 실은 공포를 드러내고 있었다.

레이나는 그 앞에 멈췄다. 후배를 봤다. 그리고 웃음을 지었다.

"뭐가 고맙다고?"

"어... 아까는 저를 도와줘서..."

"도와준 거?"

레이나가 웃음을 더했다. 검은 눈이 더욱 깊어졌다.

"내가 널 도와준 게 아니야. 내가 널 저주했어. 어제는 가볍게 한 거고."

후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부터 조심해. 다음엔 더 심할 거야."

레이나가 말했다. 차갑고 명확한 목소리로. 그리고 돌아섰다.

식당 전체가 침묵했다.

레이나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곳에서처럼.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는 곳에서처럼.

하지만 모두가 보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완벽하다.'

레이나가 생각했다. 음식을 입에 넣으며.

'이제 누구도 내게 착함을 기대하지 않을 거야. 누구도 내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거야. 모두가 나를 악인이라고 받아들일 거야.'

자유로움이 올라왔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로움인지, 아니면 또 다른 감옥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유로움이었다.

그 순간 식당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엔 다른 인물이었다. 은발에 파란 눈. 귀족 학생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차갑고 표정은 없었다. 하지만 눈은 이상하게 밝았다.

카일 마젠토.

마법사 계열의 우등생이었다. 어둠의 마력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그가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모두의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 모두가 그의 다음 행동을 기대했다. 혹은 두려워했다.

카일은 식당의 모든 학생을 훑어봤다. 그리고 그의 눈은 레이나에게서 멈췄다.

검은 눈이 파란 눈과 만났다.

레이나는 계속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카일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로 가지도 않고, 음식을 집지도 않고, 단지 서 있었다. 레이나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호기심이 있었다. 어둠의 마력 전공자로서 다른 어둠의 마력을 감지한 학문적 흥미.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개인적 집착.

'뭐하는 거야?'

레이나가 생각했다. 여전히 음식을 먹으며.

카일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레이나의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레이나를 봤다.

"뭐야? 뭐 하는 거야?"

레이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와 같은 차가운 목소리로.

"어제 계단 사건을 보지 못했어."

카일이 말했다. 담담한 목소리로.

"그래?"

"그런데 넌 진짜 저주를 걸었어?"

"그럼?"

"진짜 정보를 원해."

카일이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파란 눈이 더욱 밝아졌다.

"네 어둠의 마력이 정확히 뭐야?"

식당 전체가 조용해졌다. 모두가 이 대화를 듣고 있었다.

레이나는 음식을 씹고 있었다. 천천히, 조용히. 그리고 카일을 봤다.

"알고 싶어?"

"응."

"그럼 내가 너한테 보여줄까?"

레이나가 웃음을 지었다. 이제 그 웃음은 능숙했다. 그 웃음 속에는 어둠의 마력이 물결처럼 흘렀다. 카일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파동이 테이블 위를 스쳤다.

카일의 눈이 더욱 밝아졌다. 그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마력의 영향 아래에서 그의 욕망이 증폭되고 있었다. 자신을 따르고 싶은 욕망. 자신의 어둠의 마력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 자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싶은 욕망.

그의 손가락에서 파란 마력이 미세하게 피어올랐다. 어둠의 마력이 아닌 다른 종류의 마력. 자신의 욕망에 반응하는 마력.

카일의 입이 움직였다.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말을 끝내지 못했다.

레이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음 속에는 확신이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

'이제 시작이다.'

레이나가 생각했다. 차갑고 명확한 목소리로.

자신의 악역 연기가. 자신의 선택이. 모두를 끌어당기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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