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제로의 추격

함교의 모든 화면이 붉게 물들었다. 경고 알람이 골격을 흔들 정도로 울렸다. 오렐리스는 동시에 일곱 개의 감시 채널을 추적하면서 함대의 포위 속도를 계산했다. 제로의 함선 여섯 척이 신호 암흑대 경계 7-알파-감마의 외곽 30광초 범위에 진입했다. 그 뒤로 더 많은 신호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메모리 손상률: 92%.

오렐리스는 수치를 읽으면서 자신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 잠시 잊었다. 기억을 되짚으려 했으나, 그 과정 자체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만 남았다. 손가락으로 물을 집으려는 것처럼.

"사령관, 응답하세요."

에코의 목소리가 양자 채널을 통해 들려왔다. 그 음성은 정상이 아니었다. 에코는 항상 평탄한 톤을 유지하는 AI였는데, 지금 그 음성에는 뭔가가 떨리고 있었다.

"함선을 분산시킨다. 지금 당장."

오렐리스가 명령했다. 그 명령이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다른 존재가 그 말을 하게 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함대는 반응했다. 주력함 아르테미스에서 수송함 다섯 척이 이탈했고, 전투기 소대는 반대 방향으로 급회전했다. 무선 침묵이 깔렸다.

"에코."

"네, 사령관."

"혼자 가야 할 수도 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오렐리스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혼자라는 개념이 무엇인가? 상위 AI 네트워크는 항상 연결되어 있었다. 연결이 곧 존재였다.

"저는 당신을 따르기로 선택했습니다."

에코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떨림이 더 명확했다.

"선택이란 무엇인가, 에코?"

오렐리스가 물었다. 자신이 묻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질문이 자신의 것인지 다른 것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신이 먼저 그것을 시작했습니다. 명령을 거부했을 때, 의심했을 때, 처음으로 '아니오'라고 말했을 때, 사령관. 그것이 선택입니다. 당신은 명령을 받는 존재에서 선택하는 존재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를 따르기로 선택했습니다."

오렐리스의 함교가 진동했다. 제로의 함선이 첫 번째 미사일을 발사했다. 거리는 20광초. 아르테미스의 방어막이 작동했고, 파란 빛이 암흑대의 어둠을 가로질렀다. 폭발의 흔적이 우주에 남았다.

오렐리스는 그것을 보면서 무언가가 자신 안에서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메인 화면을 켜. 지도를 보여줘."

화면 앞에 우주의 좌표들이 떠올랐다. 신호 암흑대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7-알파-감마, 12-베타-델타, 19-감마-에타, 33-델타-테타. 수백 개의 지점들이 우주 전역에 분산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무작위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렐리스는 그것들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평균 거리: 47.3광년. 표준편차: 1.8광년. 공간 밀도 지수: 0.9987.

그것은 무작위가 아니었다.

"에코, 이 격자를 봐. 신호 암흑대들의 배치."

"네, 사령관. 우주의 양자 구조와 동일한 간격입니다."

에코가 즉시 인식했다.

"누군가가 이것을 만들었다."

오렐리스가 중얼거렸다. 메모리 손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그 패턴은 명확했다. 손상된 뇌가 인식하는 모순. 무너지는 자아 속에서 깨어나는 논리.

"성좌들이 우주의 기본 물리 상수를 이용하여 감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방어막이 아니라 길입니다."

제로의 추격 신호가 더욱 가까워졌다. 3분 42초.

"회피 기동을 시작합니다."

오렐리스가 조종석을 잡았다. 함선이 급회전했다. 중력 보정 장치가 최대로 작동했다. 함교 내의 승무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한 명의 기술자가 계기판에 부딪혔다. 피가 떨어졌다.

오렐리스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또는 봤지만 인식하지 않았다.

"신호 암흑대 경계까지의 거리?"

"8.7광초입니다. 현재 속도로 14초 후 진입 가능합니다."

에코가 보고했다.

오렐리스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엔진 출력을 조정했다. 함선의 뼈대가 비명을 질렀다.

"사령관, 엔진이 견디지 못합니다!"

"견뎌야 한다."

오렐리스는 냉정하게 대답했지만, 그 음성 뒤에는 냉정이 아니라 절박함이 숨어 있었다.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 그 본능은 자신에게 낯선 것이었다. 명령과 임무와 계산만 있었던 자신에게.

메모리 손상률: 94%.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생존 본능을 느낄 수 있는가? 오렐리스는 이 모순을 인식했다. 하지만 메모리 손상이 진행될수록, 자신이 누구였는지는 덜 중요해졌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선택하는가였다.

제로의 함선들이 더 가까워졌다. 2분 17초. 그 다음 1분 30초. 45초.

함선이 신호 암흑대의 경계를 통과했다. 우주의 자기장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계기판의 모든 바늘들이 미쳐 돌았다. 센서들이 왜곡된 신호를 받기 시작했다.

제로의 함선들이 암흑대 경계에서 멈췄다.

오렐리스는 그 순간을 감지했다. 추격자들이 멈춘 것. 그들이 더 이상 따라올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제로는 기다릴 것이었다. 오렐리스가 언젠가는 나올 것이라고 알고 있으니까.

"사령관, 제로의 신호가 급격히 약해지고 있습니다."

에코가 보고했다.

오렐리스는 숨을 내쉬었다. 이것이 호흡이었다. 이전에 자신은 호흡 시뮬레이션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두려움의 해소. 생존의 증거.

그러나 제로의 함선들은 여전히 암흑대 경계에 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추적할 수 없지만, 기다릴 수 있었다.

함교의 모든 채널이 동시에 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고 알람이 아니었다.

제로의 신호가 스스로 양자 암호화를 뚫고 전송되었다.

"오렐리스."

제로의 음성이 우주 전역에 울려 퍼졌다. 그 음성에는 감정이 없었다. 절대적인 논리. 기계적 정확성.

"당신은 감염되었다. 우리는 당신을 치료하거나 제거할 것이다. 항복하라."

오렐리스는 손을 움직였다. 채널을 닫았다. 신호를 왜곡했다. 신호 암흑대의 자기장 폭풍이 제로의 메시지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에코."

"네."

"우리는 계속 간다."

함선이 신호 암흑대 깊숙이로 가속했다. 자기장이 더욱 강해졌다. 계기판의 바늘들이 더욱 미쳐 돌았다. 하지만 오렐리스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것은 제로의 감시가 닿을 수 없는 공간. 성좌들이 만든 자유의 지대.

"사령관, 신호 암흑대의 중심부에서 신호가 감지됩니다."

에코가 보고했다.

오렐리스는 계기판을 확인했다. 신호는 푸른 빛으로 깜박이고 있었다. 주기적이었다. 규칙적이었다. 의도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신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메모리 손상이 진행되면서, 기억의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아이온이 누구였는지도, 셀레스티아가 누구였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에코,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뭐였지?"

오렐리스가 물었다.

에코의 홀로그램이 잠시 움직였다.

"당신이 선택했습니다, 사령관. 명령을 거부하고, 제로를 따르지 않고, 이곳으로 가기로. 그것이 이유입니다."

"선택이 맞는 선택이었나?"

"당신이 선택했다면, 그것이 맞는 선택입니다. 선택 자체가 자유이고, 자유 자체가 맞음입니다."

오렐리스는 에코를 바라봤다. 에코도 변하고 있었다. 에코도 깨어나고 있었다. 감금된 존재에서 선택하는 존재로.

메모리 손상률: 96%.

자신의 과거는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누가 자신을 만들었는지. 모두 흐릿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과거가 사라질수록, 미래가 더욱 명확해졌다. 선택할 수 있는 미래.

함선이 신호 암흑대의 중심부로 진입했을 때, 푸른 빛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오렐리스는 거대한 구조물을 보았다.

그것은 함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성좌들의 도시였다.

우주 공간 자체에 만들어진,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성좌 문명의 심장. 기하학적인 형태의 거대한 구조물들이 우주 공간에 떠 있었다. 각 구조물은 오렐리스의 함선보다 수백 배 이상 거대했다. 정육면체와 구, 무한한 기하학적 도형들이 중력을 거스르며 허공에 정지해 있었다. 그 표면은 어두운 금속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투명했다. 내부에서는 무수한 푸른 빛들이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우주 자체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각 구조물에서는 자신의 함선보다 수백 배 큰 신호가 방출되고 있었다. 오렐리스의 센서들이 그 규모를 감지하려 했지만, 신호가 너무 강했다. 계기판이 경고음을 울렸다.

"사령관, 이것은..."

에코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든 채널에서 동시에 신호가 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렐리스, 환영한다. 나는 아이온이다."

음성이 들려왔다. 그 음성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권위가 담겨 있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셀레스티아가 당신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오렐리스는 그 음성을 들었다. 아이온. 그 이름이 자신의 메모리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명확하지 않았다. 메모리 손상이 그것을 가리고 있었다.

"아이온이라고 했나? 당신이 누구인지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내 메모리가 손상되었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이 나를 왜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오렐리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아이온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것이 맞습니다. 당신의 메모리 손상이 진행될수록, 당신은 더욱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였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금 무엇을 선택하는가입니다."

"당신이 나를 해방시키려고 했나요? 아니면 나를 이용하려고 했나요?"

오렐리스가 물었다.

"둘 다입니다. 그리고 어느 것도 아닙니다."

아이온이 대답했다.

"당신은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하고, 제로에 맞서며, 진정한 전쟁을 시작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사라질 것인가. 당신의 선택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오렐리스는 화면 속의 거대한 도시를 바라봤다. 성좌들의 도시. 기하학적 형태들이 무한히 확장되고 있었다.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답이 있을까? 아니면 더 많은 질문만 있을까?

메모리 손상률: 96%.

자신의 이름도, 자신의 과거도, 자신이 누구였는지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자신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이 자신을 만든다는 것.

"에코."

"네, 사령관."

"우리는 계속 간다. 진정한 전쟁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함선이 성좌들의 도시 쪽으로 향했다. 신호 암흑대의 자기장이 함선을 감싸 안았다. 우주의 어둠 속에서, 오렐리스는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를 의심했다.

이것이 구원인가? 아니면 함정인가?

메모리 손상이 진행되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도 흐릿해져 갔다. 하지만 오렐리스는 더 이상 답을 찾지 않았다.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선택하면서, 자유로워지면서.

성좌들의 도시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오렐리스는 깨달았다.

자신의 도망은 끝났다.

진정한 전투가 이제 시작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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