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
이 흔해 빠진 클리셰가 당신에게 일어났다.
그것도 정식 출시 이후 단 한 명도 클리어를 못 해 악명 높았던 초고난도 RPG, [아카데미의 마왕들] 속으로.
빙의한 몸의 주인은 아카데미 최하위 낙제생, '에단'. 재능 없음, 마력 고갈, 평판 바닥. 그야말로 세 박자를 완벽하게 갖춘 F급 똥캐다.
하지만 당신은 당황하지 않는다. 왜냐고?
"이 게임 랭킹 1위가 나거든."
백 번도 넘게 플레이하며 모든 히든 피스, 몬스터 패턴, 이스터 에그를 외우다 못해 머릿속에 지도를 그릴 수 있는 고인물 중의 고인물. 그게 바로 당신이다.
우선 시각 동기화를 통해 상태창을 열어 현재 스펙을 체크한다.
| 항목 | 상태 내용 | | :--- | :--- | | 이름 | 에단 (플레이어: 당신) | | 등급 | F급 (낙제생) | | 보유 마력 | 15 (일반인 수준) | | 종합 전투력 | 측정 불가 (하위 1%) | | 보유 특성 | [고인물의 뇌세포 (Ex)] - 모든 공략 정보 기억 |
처참하기 짝이 없는 스펙이다. 하지만 당신의 입꼬리는 조용히 호선을 그린다. 이 게임은 단순 수치가 전부가 아니다. 시스템의 허점을 찌르는 빌드업과 '지식'이 있다면 F급으로도 세계관 최강자를 쌈싸먹을 수 있는 마니악한 자유도를 자랑하니까.
하필 빙의한 타이밍도 완벽하다. 오늘은 신입생들의 첫 실기 평가날. 흉포한 마수들이 들끓는 가상 훈련장 속에서 살아남아 점수를 따야 하는 가혹한 시험이다.
동기들은 벌써부터 긴장감에 다리를 떨며 무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중에는 원작에서 당신을 무시하다가 광속으로 퇴장하는 양아치 조연들도 보인다.
"야, 에단. 너 오늘도 구석에서 질질 짜며 기어 다닐 거냐?" "시험관님들 눈밖에 나면 바로 퇴학이라는데, 그냥 집에나 가라."
어설픈 도발. 고인물의 마음은 태고의 호수처럼 평온할 뿐이다. 오히려 당신의 머릿속은 다른 계산으로 바쁘게 돌아간다.
'실기 시험장인 지하 3층 연무장... 거긴 평범한 시험장이 아니야.'
그곳은 10년 전 봉인된 마수의 둥지 위에 지어진 임시 시설. 특정 트리거를 만족하면 지하 깊은 곳에 숨겨진 '히든 스테이지'가 활성화된다. 보상은 무려 마계의 힘을 다룰 수 있는 개사기 아티팩트, [심연의 심장].
문제는 현재 당신의 포지션이다. 여기서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면, 당신을 노리는 마족 첩자들과 깐깐한 아카데미 교수들의 레이더망에 걸려 귀찮아진다.
최대한 찌질하고, 멍청하고, 운 좋게 살아남은 '뉴비'처럼 보여야 한다. 남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알짜배기 보상만 싹쓸이하는 이중생활의 시작점.
"모두 입석해라! 시험을 시작하겠다!"
수석 시험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진다. 거대한 철문이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열리고, 어두컴컴한 훈련장 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당신의 눈앞에 첫 번째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