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성강대학병원 소아 중환자실의 산소포화도 경보기가 날카롭게 울린 것은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오늘 밤 안으로 영구적인 심정지 상태로 처리해."

강진엽의 잔인한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병원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침묵이 지배하던 소아 병동 복도는 급작스러운 이송 카트의 바퀴 소리로 찢겼다. 강진엽의 심복들이 혼수 상태에 빠진 ST-9 부작용 환자들을 지하 사후 정리 수술실(Sub-OR)*로 빼돌리려는 찰나였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지상 5층 전산실에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노려보던 민도현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교수님, 움직입니다. 3병동 엘리베이터 가동 중단시키고 비상계단 출입구 차단했습니다. 그리고…… 박태경은 지금 본관 2층 의학 전람실 뒤편으로 몸을 숨기려 합니다."

귓가를 때리는 도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선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좌측 시야 외곽에 자리 잡은 짙은 흑점이 일순간 번지며 시야를 가로막았다. 수술을 거듭할 때마다 시경을 갉아먹는 시신경식(視神經蝕)의 징후였다. 선우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초점을 맞춘 뒤, 사각지대를 가리기 위해 고개를 의도적으로 오른쪽으로 틀었다.

"환자들은 한수아 교수에게 알렸으니 건드리지 못할 거다. 박태경은 내가 직접 잡는다."

선우의 목소리는 메스보다 차가웠다.

*

본관 2층, 성강대학병원의 역사를 자랑하는 의학 전람실의 무거운 목조 문이 거칠게 열렸다.

어둠이 짙게 깔린 전람실 안쪽, 캐비닛 구석에서 서류 가방을 챙기던 박태경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 이선우……?"

"어디 가십니까, 박 교수님. 내일이 청문회인데."

선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소리는 넓은 전람실 내부에 기묘한 에코를 남기며 울려 퍼졌다. 박태경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으나, 이미 뒤는 벽이었다.

선우는 가차 없이 그의 덜덜 떨리는 덜미를 움켜쥐었다. 박태경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선우는 그를 질질 끌고 전람실 바로 옆에 위치한 프레젠테이션용 소형 브리핑 실로 밀어 넣었다.

"쾅!"

두꺼운 방음문이 닫히고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정적을 깨웠다. 철저한 방음 처리가 된 브리핑 실은 외부의 그 어떤 소리도 차단하는 완벽한 밀실이었다.

선우는 방 한가운데 놓인 원목 테이블 위의 조명을 켰다. 단 하나의 핀조명이 박태경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그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선우는 품에서 차가운 생수 한 병을 꺼내 테이블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탁."

박태경은 젖은 침을 삼키며 가죽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감금죄로 고소당하고 싶어? 당장 문 열어!"

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박태경의 맞은편 의자에 깊숙이 기댔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박태경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일 분.

이 분.

시간이 흐를수록 브리핑 실 내부의 공기는 얼어붙듯 무거워졌다. 선우의 시선은 박태경의 눈동자, 떨리는 입술, 그리고 불규칙하게 요동치는 목덜미의 경동맥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런 질문도, 분노의 폭언도 없었다. 오직 숨이 막힐 듯한 침묵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안면 심문법(Facial Interrogation).

상대방이 가진 죄책감과 불안감을 극대화해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침묵의 칼날이었다.

박태경은 선우의 시선을 피하려 눈을 굴렸지만, 사방이 어두운 방 안에서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을 꿰뚫어 보는 선우의 차디찬 눈동자뿐이었다.

"너…… 너 다 알고 온 거지? 어? 강 이사장님이 시킨 거야! 난 그냥 시키는 대로……!"

박태경이 먼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가 꼴사납게 갈라졌다.

"내가 뭘 안다는 겁니까?"

선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나직한 저음이 박태경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 그 소아 중환자실 환자들…… 난 이송만 도우려고 했던 거야. 죽이려던 게 아니라니까!"

"거짓말."

선우는 단호하게 자르고는 품 안에서 두꺼운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서류 봉투가 미끄러져 박태경의 손끝에 닿았다.

"열어봐."

박태경은 덜덜 떠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종이를 확인한 그의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그것은 한수아가 소아 병동 깊숙한 곳에서 목숨을 걸고 빼내어 보관해 두었던, 미발표 신약 'ST-9'의 은밀한 투약 의무 기록* 원본이었다.

"이, 이게 왜 네 손에……."

"거기 적힌 환자들의 투약 데이터와 부작용 발생 시점을 잘 보십시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차트를 보시지."

선우가 두 번째 서류를 제시했다. 그것은 5년 전, 의료 사고로 위장되어 사망한 선우의 동생 이선민의 부검 기록 및 실투약량 일치 대비표였다.

박태경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종이를 쥔 그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소아 환자들에게 투여된 ST-9의 치사량 수치와, 5년 전 내 동생에게 주입된 약물의 화학적 조성이 정확히 일치하더군. 그리고 여기, 투약 최종 승인 서명란에 아주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어."

선우가 서류의 맨 아랫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담당의: 박태경]

선우의 눈빛이 극도로 차가워졌다.

"당신이 죽인 거야. 내 동생을."

"아니야! 난 그냥……!"

박태경은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으나, 선우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쇠악력 같은 힘에 박태경은 다시 의자에 쳐박혔다.

"강진엽이 시켰어! 강진엽 이사장이!"

박태경이 마침내 울부짖으며 자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안면근육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그때 임상시험 데이터가 유출될 뻔했어! 네 동생 이선민이 그걸 눈치채고 외부로 반출하려 했다고! 이사장님이 내게 지시했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라고! 약물 용량을 조절해서 단순 심정지로 처리하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했단 말이야! 난…… 난 그저 병원에서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야!"

방음벽을 타고 박태경의 처절한 자백이 메아리쳤다.

그 순간, 선우의 시야 우측 상단에 푸른색 반투명한 인터페이스가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의장부(醫帳簿)가 활성화됩니다.] [대상: 박태경 (성강대학병원 기득권 핵심 세력)] [상태: 충성도 완전 이탈 및 정신적 무력화 확인] [판정: 부패 세력의 연결고리 붕괴]

[성강대학병원 도덕 신뢰도 포인트가 변동합니다.] [- 강진엽 진영 신뢰도: 42% -> 18% (급락)] [- 이선우 진영 신뢰도: 24% -> 48% (급등)] [보상: 병원 이사회 의결권 영향력 12% 추가 확보 권한 해금]

머릿속을 울리는 시스템의 기계음과 함께, 선우는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서늘한 승리감을 느꼈다. 강진엽의 가장 충직한 개이자 그의 음모를 실행하던 브레인이, 단 한 번의 물리적 타격도 없이 완벽하게 붕괴한 순간이었다.

선우는 미리 준비해 둔 자필 자백서를 박태경의 앞에 밀어 놓았다.

"여기에 서명해. 당신이 강진엽의 지시를 받아 이선민을 살해하고, ST-9의 임상 부작용을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을 전부 적고 서명하란 말이다."

박태경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펜을 쥐었다. 침을 흘리며, 살기 위해 서류에 자신의 이름을 갈겨쓰기 시작했다.

'서명' 두 글자가 완성되려던 바로 그 순간.

"팅-!"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브리핑 실의 조명이 일시에 꺼졌다. 방 안은 순식간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뭐, 뭐야?!"

박태경이 비명을 질렀고, 선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쿵! 쿵! 쿵!

묵직한 군화 소리가 복도를 울리더니, 브리핑 실의 방음문이 외부에서 강제로 개방되었다. 어둠 속에서 붉은색 레이저 포인터 수십 개가 방 안을 어지럽게 휘저었다.

강진엽이 보낸 병원 특별 경비 책임자와 그의 패거리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전자기기를 무력화하는 EMP 장비와 진압용 곤봉이 들려 있었다.

"이선우 교수. 이사장님의 명령이다. 사문서 위조 및 협박 혐의로 임의 동행해 주셔야겠어."

거친 사내들의 손길이 선우의 어깨를 잡아챘다. 어둠 속에서 박태경이 갈겨쓰던 자백서 서류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사각지대인 좌측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감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벽으로 밀쳐졌다.

쇠문이 거칠게 닫히며 밖에서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완벽한 격리.

내일 아침 청문회까지 남은 시간은 단 여섯 시간. 선우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갇히고 말았다.

***

*지하 사후 정리 수술실(Sub-OR): 성강대학병원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비공식 수술실로, 주로 실패한 임상시험 환자들의 사후 처리나 비밀 처치를 위해 사용되는 공간. *ST-9 은밀한 투약 의무 기록: 한수아가 소아 병동에서 은밀히 입수하여 보관 중이던 미발표 신약의 부작용 기록 파일. 박태경의 유죄를 증명할 결정적 증거.

01:15 AM — 암흑의 밀실

선우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등을 기댄 채 거친 숨을 골랐다.

허공을 휘젓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좌측 시야는 완전히 먹지를 칠한 듯 암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시적인 안압 상승과 시경의 과부하로 인한 황반 주변부의 완전한 기능 마비. 7화에서 시작되었던 좌측 외곽의 흑점이 이제는 시야의 절반 가까이를 집어삼킨 상태였다.

"하아…… 하아……."

뜨거운 숨결이 어둠 속에서 흩어졌다. 선우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뻗어 왼쪽 눈을 지그시 눌렀다. 안구 뒤쪽에서 바늘로 쑤시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시신경식(視神經蝕)의 페널티가 뇌간을 직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뇌는 이 상황에서도 얼음처럼 차갑게 요동치고 있었다.

선우는 깃칼라 안쪽에 정교하게 숨겨진 초소형 골전도 마이크를 켰다. 후두부의 뼈를 타고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도현아. 들리나."

- 치직, 치지직……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브리핑실 전원이 차단된 걸 확인했습니다! 경비팀이 그쪽으로 진입하는 걸 CCTV로 봤는데……!

도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선우는 벽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왼쪽 시야가 보이지 않아 거리감이 극도로 둔해졌기에, 오른손으로 벽의 촉감을 짚어가며 중심을 잡았다.

"나는 괜찮다. 박태경은 자백서에 서명하기 직전 놈들에게 확보당했다. 자백서의 원본은 찢겼을 가능성이 커."

- 제길, 역시 강진엽이 손을 썼군요. 어떡합니까? 지금 바로 보안팀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잠금을 풀겠습니다!

"아니, 시간이 없다. 그것보다 지하 Sub-OR 상황은 어떻게 되었지?"

수신기 너머로 자판을 두드리는 도현의 신경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 최악입니다. 강진엽의 경비 책임자가 소아 중환자실에서 환자 4명을 강제로 카트에 싣고 지하 3층 Sub-OR로 이동했습니다. 공식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화물용 리프트를 이용해 감시망을 피했습니다. 한수아 교수가 비상계단으로 그들을 추적 중이지만,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놈들은 환자들에게 '칼륨 제제'를 과다 투여해 영구적인 심정지를 유발할 계획입니다!

칼륨 제제 과다 투여. 급성 고칼륨혈증(Hyperkalemia)*을 유발해 흔적도 없이 심장을 멈추게 하려는 수작이었다. 부검을 하더라도 임상시험 부작용이 아닌 단순 심장마비로 위장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더러운 늙은이 골통 속에서 나올 법한 발상이군."

선우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동생 선민이를 죽였던 그 방식 그대로, 살아있는 증거들을 또다시 도살하려는 강진엽의 추악한 민낯이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그려졌다.

"도현아. 브리핑실 도어락의 모델명을 확인해."

- 예? 아, 잠시만요…… '솔레노이드 락(Solenoid Lock)* HS-900' 모델입니다. 전류가 차단되면 데드볼트가 돌출되어 물리적으로 고정되는 방식입니다. 외부에서 제어권을 복구하지 않으면 안쪽에서는 절대로 열 수 없습니다!

"해부학적으로 접근하면 열 수 있어."

선우는 주머니 속을 더듬었다. 손끝에 닿은 것은 회진용 펜라이트와 주머니 깊숙이 넣어두었던 수술용 큐렛(Curette)*, 그리고 일회용 메스 손잡이였다.

오른쪽 눈만으로 초점을 맞추며, 선우는 도어락의 플라스틱 커버 틈새로 큐렛의 날카로운 끝을 밀어 넣었다.

'인체의 늑간을 절개해 흉막을 박리하듯.'

쩍, 하는 소리와 함께 플라스틱 커버가 뜯겨 나갔다. 어둠 속에서 미세한 전선들이 얽혀 있는 것이 손끝의 촉각으로 전해졌다. 선우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신의 안목'을 활성화했다.

웅-!

뇌리를 울리는 기계음과 함께, 감은 눈꺼풀 너머로 미세한 전류의 흐름이 형광색 빛의 선이 되어 머릿속에 가시화되었다. 비록 가시광선은 보이지 않았지만, 의장부가 제공하는 생체 및 물리적 에너지는 완벽한 투시도로 그의 뇌에 직접 투사되었다.

좌측 시야의 암흑 속에서도, 도어락 내부의 솔레노이드 밸브와 전류가 흐르는 구리선이 선명한 형광색 혈관처럼 요동쳤다.

"여기군."

선우는 메스 날을 이용해 메인 전원선과 접지선을 동시에 베어 물었다. 순간적으로 스파크가 튀며 선우의 손끝을 타고 찌릿한 전류가 흘렀다.

탁-!

데드볼트가 풀리는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문이 1센티미터쯤 열렸다.

"읍……!"

그와 동시에 선우는 왼쪽 눈을 움켜쥐고 바닥으로 쓰러질 뻔했다. 안구 내부의 미세혈관들이 추가로 파열되며 코끝으로 비릿한 피 냄새가 역류했다. 시신경식의 진행도가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경고: 시신경 손상율이 22%를 돌파했습니다.] [경고: 중심 시야의 황반변성이 가속화됩니다. 지속적인 무리한 활성화는 영구적 실명을 초래합니다.]

머릿속에 울리는 적색 경고를 무시한 채, 선우는 문을 밀치고 복도로 나섰다. 복도의 비상 유도등만이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 * *

02:30 AM — 피의 전조

- 교수님! 탈출하셨습니까?

"지하로 내려간다. Sub-OR의 출입 코드를 송신해."

선우는 비틀거리는 걸음을 억지로 다잡으며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무릎의 연골이 비명을 질렀고 시야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 변수가 생겼습니다, 교수님! 방금 응급의료센터로 초응급 환자가 핫라인을 타고 이송 중이라는 무전이 잡혔습니다. 환자는 설창현 의원입니다!

설창현.

강진엽 이사장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뒷배이자, 성강대학병원 지분 15.2%를 보유한 국회의원이었다. 내일 청문회에서 강진엽의 사법 구속을 저지하기 위해 표를 행사하기로 되어 있던 핵심 인물.

"그 늙은이가 왜 이 시간에 실려 오지?"

- 급성 대동맥 박리(Aortic Dissection)*입니다! 하행 대동맥이 완전히 찢어져 흉부 전체에 대량 출혈이 발생했습니다. 지금 하이브리드 수술실로 직행 중입니다. 강진엽은 이 수술을 직접 집도해 설창현을 살려내고, 그 대가로 청문회를 완전히 무산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선우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

강진엽이 직접 메스를 잡는다? 그것은 설창현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인도주의적 선택이 아니었다. 설창현의 목숨줄을 쥐고 흔들어 청문회 자체를 폭파하겠다는 마지막 도박이었다.

"강진엽이 설창현을 살려낸다면, 내일 청문회는 열리지도 못해. 의원직의 권한으로 청문회 소집 자체가 취소될 거다."

- 맞습니다! 게다가 지금 지하 Sub-OR에서는…… 아아악!

갑자기 무전기 너머로 도현의 비명과 함께 날카로운 마찰음이 들려왔다.

- 이, 이선우 교수님! 수아 언니가……!

이어 들려온 목소리는 민도현이 아니었다. 소아과 병동의 간호사였다.

- 한수아 교수님이 지하 Sub-OR 앞에서 경비원들에게 가로막혀 강제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놈들이 한 교수님을 환자들과 함께 가두고 약물을 주입하려 합니다! 살려주세요, 교수님!

"……!"

선우의 심박수가 분당 120회 이상으로 폭발하듯 치솟았다.

좌측 시야의 흑점 속에서 붉은빛의 잔상이 일렁였다.

강진엽은 한수아마저 임상시험 실패의 공범 혹은 사고의 희생양으로 몰아 영원히 입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지하 Sub-OR에서 벌어지는 대학살, 그리고 지상 하이브리드 룸에서 시작되려는 추악한 거래의 수술.

청문회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시간 30분.

선우는 품 안에 쥔 메스의 차가운 감각을 느끼며, 어둠이 짙게 가라앉은 지하 비상계단을 향해 몸을 던졌다. 승부의 판이 완전히 뒤집히려는 찰나, 그의 두 눈은 이미 반쯤 어둠에 잠겨 있었다.

***

*급성 고칼륨혈증(Hyperkalemia): 혈액 속의 칼륨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상태. 심근의 수축력을 급격히 저하시켜 치명적인 부정맥과 심정지를 유발함. *솔레노이드 락(Solenoid Lock): 전자기력을 이용해 데드볼트(잠금쇠)를 제어하는 전기식 잠금장치. *큐렛(Curette): 숟가락 모양의 날을 가진 외과용 도구로, 조직을 긁어내거나 좁은 틈새를 벌릴 때 사용됨. *급성 대동맥 박리(Aortic Dissection): 대동맥의 내막이 찢어지면서 혈액이 대동맥 벽 내부로 흘러 들어가 발생하는 초응급 질환. 사망률이 매우 높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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