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수화기 너머에서 웅웅거리는 보안팀 가드들의 기계음이 사무실의 무거운 공기를 찢고 흘러나왔다. 임예은의 손가락은 송수신 버튼 위에서 굳어 있었다. 그녀의 손톱 끝이 하얗게 변하며 부르르 떨렸다.

태윤은 손가락 하나하나에 단단히 힘을 주어 수화기를 완전히 내려놓았다. 딸깍, 하고 플라스틱이 맞물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임예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는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지도 못한 채, 태윤을 쏘아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야, 강태윤? 네가 지금 무슨 권리로 내 전화를 끊어? 이거 놔!"

임예은이 비명을 지르며 다시 수화기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이 수화기 가장자리에 닿기 직전, 태윤은 그녀의 팔목을 가볍게 쳐냈다. 철저히 계산된 궤적이었다. 물리적인 충격은 적었지만, 임예은의 몸은 균형을 잃고 책상 모퉁이로 밀려났다.

"권리가 아니라 규칙을 말하는 거다."

태윤은 은테 안경의 브리지를 검지로 소리 없이 밀어 올렸다. 안경알 너머의 눈동자에는 감정의 일렁임이 없었다. 마치 죽은 생선의 표면처럼 건조하고 평평했다.

"사내 안전 근무 수칙 제22조 1항. 허위 또는 증거 없는 내부 고발은 즉각적인 직무 정지 및 보안팀의 물리적 격리 조치로 이어진다. 자네가 지금 보안팀을 이 자리로 불러들이는 순간, 자네 손에 들린 그 옐로 인덱스 서류가 가장 먼저 압수될 텐데. 감당할 수 있겠나?"

"이건... 이건 단순한 개인 메모야! 네가 상관할 바 아니라고!"

임예은이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동조자를 찾았지만, 사무실 안의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오민혁 팀장은 자신의 자리에서 모니터 뒤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땀을 닦고 있었고, 송진우는 저만치 떨어진 복도 기둥에 기대어 입꼬리만 비틀어 올리고 있었다.

태윤의 시선이 송진우의 오른손으로 향했다.

송진우는 습관적으로 오른쪽 소매 끝의 은색 커프스링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이 커프스링크의 매끄러운 금속 표면에 닿았다가 부서졌다. 그 표면에는 아주 미세한 세 줄의 사선 스크래치가 나 있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미미한 흔적이었지만, 태윤의 머릿속에 각인된 '사후 분석 데이터베이스'의 로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로그 파일 ID: 03-A / 수정 드래프트 사건] - 송진우는 3회차 루프 당시, 기획실 내부의 기밀 수정 드래프트 파일을 파쇄하기 위해 강제로 뚜껑을 열었다. - 파쇄기 투입구의 강철 칼날 가장자리에 송진우의 오른쪽 커프스링크가 마찰됨. - 발생한 물리적 긁힘 흔적: 세 줄의 불규칙한 사선. 현재 타임라인과 완벽히 일치함.

그는 동반 루프자다. 저 은색 금속의 상처가 바로 그가 나와 함께 이 지옥 같은 루프의 선로를 달리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송진우는 태윤의 시선이 자신의 손목에 머무는 것을 느끼자, 미세하게 눈 주위를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강 대리, 아주 대단한 분석가 납셨네."

송진우가 낮게 읊조렸다. 목소리에는 가학적인 흥분이 묻어났다.

"하지만 임 대리가 저지른 짓을 네가 덮어준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 어차피 10분 뒤면 이 층 전체가 셧다운될 텐데. 비상구는 잠겼고, 엘리베이터는 멈췄어. 여기서 나갈 방법은 없어."

"나갈 방법이 없는 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송 대리."

태윤이 건조하게 대꾸했다. 그는 더 이상 송진우와의 무의미한 설전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돌려 임예은의 책상 바로 옆에 서 있는 대형 복사기로 걸어갔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복사기는 아무런 작업도 수행하고 있지 않았지만, 내부의 쿨러와 드럼은 미세한 진동을 내며 계속해서 회전하고 있었다. 태윤은 복사기 우측 하단의 토너 교체용 덮개로 손을 뻗었다.

"뭐 하는 거야? 기계를 왜 만져?"

임예은이 다급하게 제지하려 했지만, 태윤의 뒤에서 소리 없이 나타난 한설아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평소의 소심한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한설아의 눈빛은 얼어붙은 호수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임 대리님,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거예요. 지금 움직이시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규정 위반이 되니까요."

한설아의 목소리는 평온했으나, 그 안에는 묘한 압박감이 실려 있었다.

태윤은 복사기 토너 투입구 안쪽, 깊숙한 틈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손끝에 딱딱하고 이질적인 플라스틱 수지가 걸렸다. 손가락을 구부려 그것을 끄집어내자, 얇은 배선에 연결된 초소형 녹음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왜 거기에..."

임예은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7회차 루프에서부터 이미 설치되어 있던 거다."

태윤은 녹음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설아 씨가 매주 목요일 오후 3시, 토너를 교체하는 척하면서 이 장치의 배터리와 메모리를 주기적으로 수거하고 교체해 왔지. 복사기 내부의 고주파 소음 필터를 우회하는 주파수로 세팅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보안 스캔에는 절대 걸리지 않아. 임 대리, 자네가 오민혁 팀장과 이 구석에서 나눈 사적인 음모들이 아주 고스란히 담겨 있더군."

태윤은 녹음기 측면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치익— 하는 가벼운 화이트노이즈 끝에, 기계음이 섞인 두 사람의 목소리가 사무실의 침묵을 깨뜨렸다.

- "팀장님, 본사 기획실에서 내려온 비자금 장부 원본 말입니다. 이걸 정말 기밀 프로젝트 드래프트 파일로 위장해서 서버실에 박아둬야 합니까? 나중에 감사라도 나오면..." - "임 대리, 자네 머리가 그것밖에 안 돌아가? 감사 나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터뜨리는 거야. 강태윤 그 자식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우리는 본사로 영전하는 거지. 강태윤의 사내 계정으로 서버실 접속 로그를 조작해 놨으니까 걱정 마. 자네는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서류만 캐비닛에 넣어두면 돼." - "하지만... 강 대리가 눈치채면 어떻게 합니까?" - "눈치채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면 그만이야. 어차피 17층 보안 수칙을 어긴 건 그 녀석이 될 테니까."

목소리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오민혁 팀장의 그 비열하고 신경질적인 억양과 임예은의 떨리는 대답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오민혁은 자리에서 발끈 일어났다. 그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솟아올랐다.

"이, 이게 뭐야! 이거 다 조작이야! 음해라고! 내 목소리를 흉내 낸 가짜 파일이야!"

"가짜인지 진짜인지 법과학연구소에 보내보면 알겠지, 팀장님."

한설아가 기계적인 어조로 말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품 안에서 얇은 지퍼백에 밀봉된 원본 SD 카드를 꺼내 태윤에게 건넸다.

"강 대리님. 말씀하신 원본 데이터 디스크예요. 임 대리님이 오늘 아침 일찍 캐비닛 깊숙한 곳, 이중 잠금장치 뒤에 숨겨두었던 진짜 비자금 명세서 원본과 대조를 마쳤습니다. 해시값(Hash Value)까지 완벽하게 일치해요. 오민혁 팀장님이 본사의 비자금을 유용하고 이를 덮기 위해 강 대리님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명백한 물리적 증거입니다."

태윤은 디스크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임예은은 이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자신의 책상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더 이상 반박할 단어도, 뻗을 손가락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의 자격지심과 승부욕이 만들어낸 덫은 결국 그녀 자신의 목을 완벽하게 죄어버렸다.

"완벽한 인과응보군."

태윤이 차갑게 읊조렸다. 그의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단서가 정렬되며 로그 파일의 상태가 '해결(Resolved)'로 변경되었다.

[로그 파일 ID: 07-B / 복사기 녹음기 수색] -> [해결 완료] - 임예은의 방조 행위 및 무단 고발 기도 무력화 성공. - 오민혁의 비자금 조작 혐의 물리적 증거 확보.

"9시 52분."

태윤은 자신의 은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붉은 점멸등을 바라보았다. 비상 셧다운 경보음의 주기가 빨라지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경고: 17층 격리 구역 폐쇄 8분 전. 모든 인원은 비상구로 대피하십시오. 셧다운 이후 외부 출입은 불가능합니다.]

"시간이 정말 얼마 없네."

송진우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눈동자는 기이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임예은과 오민혁이 파멸하든 말든,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의 유일한 목적은 이 루프 안에서 태윤을 찔러 죽이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통해 태윤의 자아를 영원히 붕괴시키는 것뿐이었다.

"강태윤, 네가 아무리 잔대가리를 굴려봤자 결국 이 17층은 밀실이야. 네가 가진 그 알량한 증거들을 들고 나가지 못하면 다 소용없는 짓이지. 안 그래?"

태윤은 송진우의 도발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뇌리에서는 이미 다음 단계의 연산이 무서운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서버실 비상구 시스템.'

그곳에는 10화에서 확인했던 숨겨진 규칙이 존재한다.

[사내 안전 근무 수칙 제14조 예외 조항] - 화재 경보 시스템이 수동으로 가동될 경우, 17층 서버실 내부의 비상구 개방은 일시적으로 지연되며, 메인 공조 시스템은 즉각 셧다운된다. - 이 경우, 북동쪽 구역은 기압 차로 인해 고농도 소화 가스가 쏠리는 즉사 구역으로 변모하지만, 남서쪽 모퉁이의 수동 해제 레버를 작동시키면 180초 동안의 탈출 윈도우가 열린다.

태윤의 머릿속 사적 기억 아카이브는 이미 84%가 소멸한 상태였다. 이제 더 이상 어머니의 따뜻했던 손길도, 학창 시절의 푸르던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기계적인 분석력과 살기 위한 논리적 규칙들만이 뇌 세포에 빽빽하게 박혀 있을 뿐이었다.

"한설아 씨."

태윤이 부르자, 설아가 그의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준비는 되었겠지."

"네. 남서쪽 수동 해제 레버의 위치는 이미 머릿속에 다 입력해 뒀어요. 강 대리님이 신호를 주시면, 저는 바로 소화가스 밸브 차단 라인으로 갈게요."

설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눈빛만큼은 단단했다. 그녀 역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괴물 같은 태윤과의 동맹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좋아."

태윤은 송진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은테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는 그의 행동은 지극히 절제되어 있었다.

"송진우. 자네가 설계한 그 서버실의 가스 트랩, 이번 회차에서는 자네의 무덤이 될 거다."

그 선언과 동시에, 태윤은 몸을 날려 서버실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한설아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어디 가려고!"

송진우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의 눈 주위가 경련하듯 떨렸다. 송진우 역시 17층의 구조와 규칙을 완벽히 알고 있었다. 태윤이 서버실의 비상구 예외 조항을 건드리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순간, 그의 몸이 짐승처럼 탄력 있게 움직였다.

어두운 복도를 달리는 세 사람의 발소리가 날카롭게 겹쳤다.

오민혁과 임예은은 텅 빈 사무실에 망연자실하게 남겨진 채, 붉은 사이렌 불빛 아래에서 서로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서버실의 두꺼운 철문 앞에 도달한 태윤이 메인 제어반의 덮개를 거칠게 열어젖혔다. 수십 개의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배전반이었다.

그 순간, 뒤쫓아온 송진우가 소매 끝에서 날카롭고 차가운 메스를 꺼내 들었다. 은색 메스의 날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송진우는 태윤의 목덜미를 겨누는 대신, 비상구 제어 배선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입가에 다시 한번 광기 어린 미소가 걸렸다.

"늦었어, 강태윤. 이 배선을 끊어버리면 비상구는 영원히 열리지 않아. 우리 둘 다 여기서 갇혀 죽는 거야! 다음 루프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송진우가 메스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비상 전선을 향해 그것을 내리찍으려는 찰나였다.

사각, 사각.

기이하고 건조한 가위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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