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차가운 쇠사슬이 살을 파고들 때마다 훅 끼치는 비린 철분 냄새가 코끝을 찔렀사옵니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 처형장은 마치 거대한 괴물의 식도처럼 음산한 기운을 뱉어내고 있었습니다. 사방의 벽면에 낀 푸르스름한 이끼들은 마치 죽은 이들의 눈동자처럼 기괴한 빛을 발했고, 매서운 북부의 칼바람은 갈라진 벽 틈새로 들어와 뼈마디를 시리게 두드렸지요.

“보육사 주제에 가당치도 않게 마수를 숨겨 키우다니. 황명에 따라 즉각 처단해야 마땅할 반역자년이로구나.”

황실 감시단의 가죽 갑옷을 입은 기사가 이죽거리며 쇠사슬을 거칠게 잡아당겼습니다. 그 반동으로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을 꿇은 나, 레티샤의 몸이 가볍게 흔들렸지요.

원작 속에서 아무런 비중도 없이, 그저 폭주한 마수들에게 갈가리 찢겨 죽을 운명이었던 삼류 엑스트라 보육사. 그것이 바로 이 몸의 정체였습니다. 빙의한 지 고작 사흘 만에 마수를 숨겨주었다는 죄목으로 처형대 위에 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사옵니다.

두려움에 본능적으로 손끝이 바르르 떨려왔습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유기 트라우마가 목을 옥죄어 왔지요. 전생에서도, 그리고 이 낯선 세계에서도 결국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에게 쉽게 버려지고 지워질 소모품에 불과한 걸까.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보따리를 싸들고 아무도 찾지 못하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버리고만 싶었지요.

하지만 내 시선은 저 멀리, 굵은 쇠창살 안에 갇힌 채 광폭하게 날뛰고 있는 작은 생명체에게 고정되어 있었사옵니다.

“캬아아아악! 캬악!”

그것은 겨우 아기 고양이만 한 크기의 마수, ‘불꼬리다람쥐’였지요.

녀석은 온몸에서 짙은 라벤더 빛깔의 불꽃 스파크를 튀기며 쇠창살을 이빨로 갉아대고 있었습니다. 분노와 공포로 붉게 충혈된 눈동자, 거칠게 일어선 솜털, 그리고 쇠창살에 긁혀 붉은 피가 배어 나오는 작은 앞발.

사람들은 저것을 두고 악마의 피조물이라 부르며 침을 뱉었지만, 내 눈에는 그저 살려달라고, 너무 아프고 무섭다고 비명을 지르는 가여운 아기로만 보였사옵니다. 마수가 다치고 울부짖는 모습을 보는 순간, 방금 전까지 나를 지배하던 비겁한 도망 본능은 봄눈 녹듯 사라져 버렸지요. 가슴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네년이 아끼던 저 더러운 괴물 놈의 이빨에 찢겨 죽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결말이겠지.”

기사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철창의 빗장을 풀었습니다.

“풀어라! 굶주린 마수가 반역자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광경을 감상하자꾸나!”

끼이익, 무거운 철문이 열리고 붉은 안개를 두른 아기 마수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왔습니다.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녀석의 발톱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고, 꼬리 끝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은 주변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지요.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고, 기사들은 즐겁다는 듯 잔인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바로 그 찰나였사옵니다.

내 시야 전체가 갑자기 아른아른한 파스텔 톤의 분홍빛과 부드러운 민트색 빛무리에 휩싸인 것은.

【 ‘영혼 보육 대장’이 활성화됩니다. 】

머릿속을 울리는 맑고 청아한 방울 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반투명한 홀로그램 장부가 펼쳐졌습니다. 따스한 봄날의 햇살을 머금은 듯한 몽환적인 UI 위로 글자들이 빠르게 새겨지기 시작했지요.

[ 영혼 보육 대장 - 등록 번호 001 ] - 이름: 모카 (불꼬리다람쥐) - 성향: 극도로 예민함, 질투쟁이 애교쟁이 - 신체 상태: 영양실조 3단계, 양 앞발에 마력 구속구로 인한 깊은 마찰상, 위장 소화율 저하 - 정신 상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불안도 98%), 유기 공포 및 적대감 폭발 - 선호 식품: 달콤하게 구운 도토리 (꿀이나 메이플 시럽을 곁들이면 효과 극대화) - 현재 감정: "아파! 저리 가! 다 미워! 나를 아프게 하지 마!" ※ 솔루션: 특제 도토리를 급여하고, 이마의 가마 부분을 시계 방향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정서적 안정을 유도하십시오.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난 아기의 아픔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저 작은 발로 차가운 쇠창살을 디디며 얼마나 아팠을까. 먹지도 못하고 갇혀 있으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내 목덜미를 향해 날아오는 모카를 보면서도, 신기하게도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 가여운 아기를 안아주고 싶다는 간절함만이 온몸을 채웠지요.

나는 포박된 손을 억지로 비틀어 풀었습니다. 거친 밧줄이 손목의 살가죽을 쓸어내려 쓰라렸지만 상관없었지요. 앞치마 깊숙한 비밀 주머니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곳에는 요새로 끌려오기 전, 혹시 몰라 숨겨두었던 나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었사옵니다.

야생 꿀을 듬뿍 발라 화덕에서 천천히 구워낸, 달콤 고소한 향기가 가득한 특제 도토리 한 알.

구운 땅콩나무의 달콤한 후각적 풍미와 은은한 바닐라 향이 지독한 처형장의 피비린내를 단숨에 지워버리며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모카야, 이리 오렴.”

내 목소리는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부드러운 봄바람처럼 나직하고 따뜻했사옵니다.

공중에서 나를 덮치려던 모카의 붉은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습니다. 녀석의 코끝이 움찔거리더니, 꼬리 끝의 사나운 라벤더 빛 불꽃이 파르르 떨리며 잦아들었지요. 달콤한 메이플 향기와 꿀의 냄새가 아기 마수의 후각을 자극하자, 녀석은 허공에서 둔탁하게 착지하며 바닥을 굴렀습니다.

“저, 저게 무슨……?”

기사들이 당황한 듯 웅성거리기 시작했지요.

모카는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털을 바짝 세운 채, 킁킁거리며 내 손바닥으로 다가왔습니다. 꿀에 절여 반질반질한 윤기가 도는 노르스름한 도토리가 내 손 위에 올려져 있었지요.

“그동안 많이 배고팠지? 아프게 해서 미안해. 이제 괜찮단다.”

내가 나긋나긋하게 속삭이며 손을 더 뻗자, 모카의 귀가 쫑긋 섰습니다. 녀석은 잠시 내 얼굴과 도토리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언제 사나웠냐는 듯 뽈뽈뽈 기어와 작은 앞발로 도토리를 덥석 움켜쥐었습니다.

그리고는 볼때기가 터질 것처럼 미어지게 도토리를 입안에 밀어 넣기 시작했지요.

오물오물, 옴뇸뇸.

“갸우우…… 갸릉, 갸아아릉…….”

붉게 타오르던 눈동자는 온데간데없고, 밤하늘의 별빛처럼 초롱초롱하고 맑은 갈색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뺨을 실룩거리며 내 손가락에 제 보드라운 머리를 부비적거렸지요. 온몸을 감싸던 사나운 불꽃은 어느새 은은하고 따스한 살구색 온기로 변해 있었습니다.

포악하기로 소문난 북부의 마수가, 일개 보육사의 손짓 한 번과 도토리 한 알에 완벽하게 무장해제 되어 순한 양처럼 애교를 부리는 극적인 반전이었사옵니다.

“이, 이게 무슨 해괴한 짓거리냐! 저 괴물이 왜 꼬리를 흔드는 거지?”

감시단 기사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처형장에 모여든 모든 이들의 입이 떡 벌어졌지요. 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뇌리를 스치는 극심한 고통에 내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아……!’

보육 대장의 솔루션을 실행한 대가.

지독한 한빙증(寒氷症)이 내 전신을 덮쳐왔습니다. 심장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차가운 얼음 송곳이 돋아나 온몸의 혈관을 찌르는 듯한 살인적인 추위였지요.

내 입술은 순식간에 핏기를 잃고 창백한 보랏빛으로 변해갔고, 내쉬는 숨결마다 하얀 서리가 서려 흩어졌습니다. 손끝이 굳어 마비되어 가며 감각이 사라졌지요. 뼛속까지 얼어붙는 이 지독한 한기는 영혼까지 얼려버릴 것만 같았사옵니다.

“추, 추워…….”

이대로 온몸이 얼어붙어 바스러질 것만 같은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모카가 내 손가락이 차가워진 것을 느꼈는지, 깜짝 놀라 내 품으로 뛰어들어 제 따뜻한 꼬리를 내 목에 감싸주었지만, 아기 마수의 미약한 마력만으로는 이 거대한 한빙증의 심연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지요.

의식이 혼미해지며 시야가 어두워졌습니다. 차가운 돌바닥이 내 얼굴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지요.

그때였습니다.

쾅─────!

지하 처형장의 단단한 철문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부서져 나가며 굉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사방으로 튀는 돌가루와 함께, 온 방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려버릴 듯한 압도적이고 묵직한 마기가 몰아쳤습니다. 그 마기는 어둡고 차가웠지만, 역설적이게도 지독하게 순수하고 정제되어 있었지요.

먼지 안개 너머로 걸어 나오는 사내의 거대한 실루엣이 보였습니다.

검은 모피 코트를 휘날리며 걸어오는 남자는 마치 겨울 그 자체를 의인화한 듯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밤하늘을 통째로 갈아 넣은 듯한 깊은 흑발 아래로, 서리 서린 겨울 호수처럼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가 오만하게 빛나고 있었지요.

북부의 지배자이자, 마기의 저주에 잠겨 파멸해 가는 고독한 군주.

에스카르트 공작, 디트리히 에스카르트였습니다.

“누가 내 영지에서 함부로 칼날을 휘두르는가.”

그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처형장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기사들은 그의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벌벌 떨었지요.

하지만 내게는 그의 등장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사옵니다.

그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순수한 마기가 내 한빙증을 자극하며 기묘한 이끌림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곁으로 가고 싶다, 그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는 본능적인 갈망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요.

“공, 공작 각하……!”

감시단 기사가 더듬거리며 칼을 거두려 했을 때, 내 몸은 이미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스르륵, 중심을 잃은 내 몸이 바닥을 향해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차가운 돌바닥의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사옵니다.

바람을 가르는 바람 소리와 함께, 단단하고 거대한 품이 내 무너지는 몸을 가볍게 받아 안았기 때문이지요. 은은한 침엽수림의 향과 서늘한 눈꽃의 냄새,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지독할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나를 감싸 안았습니다.

“……이봐.”

귓가를 울리는 디트리히의 낮고 굳은 목소리.

그의 넓은 가슴에 뺨을 묻는 순간, 거짓말처럼 뼛속까지 시리던 한빙증의 고통이 사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사옵니다. 오직 그만이 줄 수 있는 완벽한 온기였지요.

나는 그의 옷자락을 필사적으로 거머쥐며,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그의 깊고 차가운 눈동자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이 남자는 나를 살릴 구원자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심연으로 이끌 파멸의 동반자일까요.

내 질문에 답하듯, 디트리히의 미간이 좁혀지며 그의 단단한 팔이 내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겼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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