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축축한 흙먼지와 비린내 나는 유황 연기가 귓가를 스쳤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굉음을 토해냈다. '절망의 광산' 가장 깊숙한 심부, 그곳을 지배하는 균열의 수호자 '오염된 강철 골렘'이 무지막지한 쇠방망이를 허공에 치켜들고 있었다. 그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바닥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사내, 한강진이 있었다.

"강진아. 미안하게 됐다. 솔직히 너도 알잖아? 우리 길드가 이번 분기 아틀라스 본사에 상납해야 할 골드가 얼마나 빡빡한지."

귀를 찢는 굉음 너머로, 파티장인 '김태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틀라스 코퍼레이션의 하위 길드인 '강철 이빨'의 행동대장. 방금 전까지 형 동생 하며 어깨를 두드리던 사내의 얼굴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탐욕스러운 안광만이 번들거릴 뿐이었다.

"누가 탱커도 아니면서 그렇게 무모하게 어그로를 끌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웅장하게 고기방패 한 번만 더 해줘라. 너 하나 죽으면 우리 나머지 넷은 살아서 나갈 수 있거든."

"태석 형…… 우리 분명히 계약서 썼잖아. 드롭 아이템은 기여도에 따라 2 대 8로 정산하기로……."

한강진이 피를 토하며 간신히 말을 이어갔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가상현실 게임 <아스텔리아>의 고통 동조율은 무려 30%. 웬만한 일반인이라면 비명을 지르며 강제 로그아웃을 했을 통증이었지만, 한강진은 이를 악물고 눈앞의 배신자들을 노려보았다.

"계약서? 푸하하하! 야, 한강진! 너 아직도 현실 파악이 안 되냐? 아틀라스가 지배하는 이 판국에 그깟 시스템 계약서 한 장이 무슨 소용이야? 본사 법무팀이 마음만 먹으면 그딴 문서 쪼가리는 하루아침에 휴지통으로 직행이야. 너희 집안 무너질 때 못 배웠어? 돈 없고 힘없으면 닥치고 밟히는 거야."

김태석의 비열한 비웃음 소리가 동굴 벽을 타고 메아리쳤다. 그의 뒤에 선 다른 길드원들도 킥킥대며 서둘러 전송 주문서를 찢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방금 전 한강진이 목숨을 걸고 보스의 시선을 끄는 사이 훔쳐낸 '광산의 정수'가 들려 있었다.

과거, 한강진의 가문이 경영하던 중견 기업을 집어삼키고 집안을 풍비박산 낸 메가 코퍼레이션 아틀라스. 그들의 말단 쓰레기들에게조차 사기를 당하고 버려지는 현실에, 한강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차가운 불꽃이 치밀어 올랐다.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배신에 대한 지독한 혐오이자, 인간의 선의를 믿었던 자신에 대한 뼈저린 조소였다.

'인간의 선의 따위는 개나 주라지.'

결국 이 세상은 철저한 계산과 이득으로만 움직이는 거대한 시장일 뿐이다. 진심이나 의리 같은 가치 없는 감정은 쓰레기통에 처박는 것이 맞았다. 오직 빼앗기지 않는 힘, 그리고 상대를 완벽하게 옭아맬 수 있는 잔혹한 계약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그 순간, 한강진의 뇌리를 때리는 묵직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시스템 경고: 플레이어의 생명력이 5% 미만입니다.] [특이 사항: 극단적인 인간 불신과 계약에 대한 갈망이 감지되었습니다.] [세계의 인과율이 왜곡됩니다. 시스템의 사각지대에서 잠들어 있던 태초의 권능이 눈을 뜹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번뜩이며, 눈앞에 난생처음 보는 칠흑 같은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유일무이한 히든 클래스 '차원 거래상(Dimension Merchant)'으로 각성하셨습니다!] [클래스 각성에 따라 기존 전사 관련 스킬이 모두 소멸하고, 고유 권능 '차원 거래소'가 개방됩니다.]

| 분류 | 상세 정보 | | :--- | :--- | | **클래스 명** | 차원 거래상 (Hidden) | | **고유 권능** | **차원 거래소 (Dimension Auction)** | | **핵심 규칙** | 1. 상대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영혼 귀속 아이템, 보유 스킬, 영구 스탯을 강제로 압류하여 경매에 부칠 수 있습니다.<br>2. 거래 수수료는 최대 **99%**까지 임의 책정 가능합니다. | | **가혹한 대가** | 경매가 유찰되거나 거래 실패 시, 시스템 역풍으로 영구 스탯이 직접 차감됩니다.<br>수취한 수수료의 90%는 제한 시간이 걸린 '세금 징수 인스턴스 미션'을 돌파하기 전까지 강제 동결됩니다. |

강진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그는 웃었다.

"차원 거래소…… 수수료 99%라니. 이거 진짜 악마 같은 직업이잖아?"

그의 시선이 저 멀리 포탈을 타고 도망치려는 김태석 무리에게 닿았다. 그들의 머리 위에 반짝이는 장비들이 강진의 눈에는 거대한 달러 기호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오염된 강철 골렘의 온몸이 붉게 달아오르며 주변의 중력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쿠웅!

[경고! 오염된 강철 골렘이 즉사급 무적 패턴 '중력 붕괴'를 캐스팅합니다!] [무적 기믹 윈도우(Gimmick Window) 개방! 남은 시간 5.00초!]

이 찰나의 순간, 보스는 모든 대미지를 무시하는 완전 무적 상태가 된다. 동시에 맵 전체에 피할 수 없는 즉사급 대미지가 파동으로 몰아친다. 일반적인 유저라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거나 모든 방어막을 켜고 기도해야 하는 절망의 시간.

그러나 차원 거래상의 시각은 달랐다.

[기믹 윈도우가 개방되었습니다. 이 틈새 속에서만 '차원 거래소'의 강제 경매를 개시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 제한 시간이 작동합니다. 5초 내에 거래를 성사시키십시오!]

"태석 형." 강진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목에 고여 있던 피를 바닥에 뱉어내며,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부러졌던 뼈들이 검붉은 마력의 실타래에 감겨 강제로 맞춰지는 기괴한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어, 어? 저 새끼 왜 저렇게 멀쩡하게 서 있어?" 포탈 구동률 90%를 넘기며 안도하던 김태석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형이 그랬지. 돈 없고 힘없으면 닥치고 밟히는 거라고. 아주 명언이었어. 뼛속 깊이 새겨듣기로 했거든." 강진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형들이 가진 그 비싼 힘을 내가 조금 싸게 사 가려고."

"미친 소리 하지 마! 우리 포탈 이동 3초 남았……."

"차원 거래소 개방."

강진의 손끝에서 쏘아진 황금색 쇠사슬들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김태석과 그의 길드원들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실체가 없는, 오직 시스템의 인과율로만 이루어진 강제의 사슬이었다.

[강제 경매 대상 지정 완료!] [플레이어 '김태석'의 영혼 귀속 무기: '화염 드레이크의 대검 (Uncommon)'을 감지했습니다.] [플레이어 '박민수'의 영혼 귀속 무기: '신성한 수호자의 철퇴 (Uncommon)'를 감지했습니다.] [강제 경매를 개시합니다. 해당 아이템들은 즉시 소유자의 인벤토리 및 장착 슬롯에서 이탈합니다!]

"어? 어어?! 내 대검! 내 대검이 왜 제멋대로 빠져나가?!" 김태석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손에 꽉 쥐여 있던, 아틀라스 길드에서 수개월 동안 할부를 부어가며 겨우 장만한 시가 300만 골드짜리 '화염 드레이크의 대검'이 스스로 밤하늘의 별처럼 떠올랐다. 다른 길드원들의 무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경매장 인터페이스가 강제로 팝업되었다.

| 경매 물품 | 현재 최고 입찰가 | 남은 시간 | 수수료율 | | :--- | :--- | :--- | :--- | | 화염 드레이크의 대검 | 1 코퍼 (입찰자: 독점) | 1.50초 | **99%** | | 신성한 수호자의 철퇴 | 1 코퍼 (입찰자: 독점) | 1.50초 | **99%** |

"1 코퍼?! 장난해?! 야! 입찰 취소해! 취소하라고!" 김태석이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해댔지만, 시스템의 권능은 냉혹했다. 강제 경매는 소유자의 의사를 철저히 묵살한다.

"누가 칼 들고 그 무기 들고 다니라고 협박했어? 경매장에 올렸으면 낙찰을 받아야지." 강진이 비웃음을 흘렸다.

[낙찰 완료!] [플레이어 '독점(한강진)'이 '화염 드레이크의 대검'을 1 코퍼에 낙찰받았습니다.] [플레이어 '독점(한강진)'이 '신성한 수호자의 철퇴'를 1 코퍼에 낙찰받았습니다.]

[수수료 99%가 적용됩니다!] - 판매 대금: 1 코퍼 - 차원 거래소 수수료 (99%): 0.99 코퍼 (독점에게 즉시 적립, 단 90%는 세수 독촉 인스턴스 클리어 전까지 동결) - 전 소유자 '김태석' 수령액: 0.01 코퍼

"미친…… 소수점 이하는 버림 처리라 소원대로 0원이다, 새끼들아." 강진이 차갑게 읊조렸다.

"끄아아아악! 내 무기! 내 전 재산이!!!" 김태석의 손에는 이제 낡은 가죽 장갑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무기를 빼앗긴 그의 전투력 수치가 실시간으로 곤두박질쳤다.

| 캐릭터 | 장착 해제 전 전투력 | 장착 해제 후 전투력 | | :--- | :--- | :--- | | **김태석** | 85 | **12** | | **독점 (한강진)** | 30 | **120** (무기 장착 효과 반영) |

황금빛 사슬을 타고 날아온 화염 드레이크의 대검이 강진의 오른손에 착 감겼다. 붉은 화염의 마력이 전신을 타고 흐르며, 그의 쇠약했던 몸에 강력한 힘을 불어넣었다. 전투력 120. 이 초보자 광산에서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무기를 잃은 것 자체가 아니었다.

[경고! 무적 기믹 윈도우 종료까지 남은 시간 0.50초!] [오염된 강철 골렘의 '중력 붕괴'가 발동됩니다!]

"어……? 어?" 김태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들어갔다. 시스템 규칙상, 보스 몬스터의 어그로는 단순히 '가장 먼저 때린 자'에게만 고정되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가장 위협적인 장비를 가진 대상' 혹은 '가장 방어력이 낮아 취약한 대상'을 계산해 타깃을 변경한다.

그리고 지금, 무기를 모두 빼앗겨 실시간으로 빤스 지기 직전의 상태가 된 김태석 무리는 보스에게 가장 가성비 좋은 '맛있는 먹잇감'이었다.

쿠우우우웅!

골렘의 거대한 안광이 붉게 빛나며 김태석 일행을 향해 조준되었다. 중력의 왜곡장이 그들의 발목을 쇠사슬처럼 무겁게 짓눌렀다.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전송 주문서의 마력이 중력 붕괴의 여파로 맥없이 깨져 나갔다.

"강진아! 야! 살려줘! 제발 무기 돌려줘! 우리가 잘못했어!" 김태석이 울부짖으며 강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강진은 대검을 어깨에 가볍게 걸친 채, 그들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형들, 세상에 공짜는 없어. 살고 싶으면 수수료를 내야지? 물론 내 수수료는 조금 비싼 편이야."

콰아아앙!

골렘의 거대한 바위 주먹이 단번에 지면을 강타했다. 대지가 갈라지고, 비명 소리가 동굴 전체를 가득 메웠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빛무리들을 바라보며, 강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보스의 가슴속에서 빛나는 푸른 핵을 응시했다.

이제, 이 광산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지 가릴 시간이었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