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의 묵색(墨色) 하늘은 마치 거대한 상주(喪主)처럼 끝없는 눈물을 흘려보냈고, 대지는 그 가차 없는 빗줄기를 받아내며 붉은 피를 삼키고 있었다.
낙양 위씨 가문의 거대한 대리석 정문이 단 한 번의 격돌로 산산조약돌처럼 부서져 사방으로 비산한 찰나, 먼지와 빗줄기가 뒤섞인 장막 너머로 드러난 광경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처참한 아귀도(餓鬼道)의 풍경이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늘어선 수십 대의 나무 수레 위, 싸늘하게 식어버린 청운검파 학도들의 주검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피눈물을 흘린 채 미동도 없이 굳어버린 그들의 얼굴에는 죽음의 순간에 겪었을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었다. 기괴한 음독(陰毒)에 녹아내려 뼈마디가 흉측하게 도출된 살점들, 그리고 갈가리 찢긴 채 피로 물든 푸른 학도복의 잔해들이 폭우 속에서 처량하게 휘날렸다. هنوز 채 피어나지도 못한 어린 소년들과 부녀자들의 무고한 희생이, 명문가의 앞마당을 비극의 제단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어찌 정파의 대의를 부르짖는 자들이 이토록 참혹한 짓을……."
소천우의 손등에 푸른 힘줄이 돋아나며, 그가 평생을 쥐고 살아온 청련검(靑蓮劍)이 빗속에서 부르르 떨렸다.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신음은 뼈가 갈리는 듯한 고통을 품고 있었다.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문파의 미래가, 그들의 순결한 피가 낙양 위가의 탐욕스러운 앞마당에 거름처럼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시신들의 잘려 나간 목구멍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음공(陰功)의 파동이 흘러나오며, 마치 산 자들을 조롱하듯 기괴한 웃음소리를 허공에 흩뿌리고 있었다.
위백은 그 참상을 바라보며 차갑게 식어 내리는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가혹한 인과의 흔적, 즉 약속된 시한 내에 원한을 갚지 못하면 전신을 불태워 버리는 구양지독(極陽之毒)의 검은 양염(陽焰) 무늬가 빗물에 씻기면서도 더욱 검붉게 요동치고 있었다. 피부를 뚫고 나오는 듯한 극양의 화독이 심장을 펄펄 끓는 용광로처럼 달구어 왔으나, 위백의 입꼬리는 기괴할 정도로 뒤틀리며 조소의 선을 그렸다.
"소천우, 똑똑히 보아라. 이것이 네가 목숨을 바쳐 지키려 했던 무림맹의 실체요, 네가 우러러보던 정파 군자들의 참모습이다. 가식의 탈을 쓴 야수들이 대의를 참칭할 때, 약자들의 뼈는 이토록 차갑게 부서지는 법이지."
"닥치시오……!"
소천우의 울부짖음이 빗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의 분노는 위백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이미 가문 깊숙한 곳, 사당 뒤편에서 흘러나오는 음산한 기운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 장막 같은 폭우를 뚫고 위가의 사서당 뒤편에서 기괴하도록 장엄한 의복을 입은 대여섯 명의 노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낙양 위가의 최고 원로들이자, 무림맹의 규율을 집행한다는 명목하에 온갖 더러운 뒤처리를 도맡아 온 위가의 음충(陰蟲)들이었다. 그들의 우두머리 격인 백발의 원로가 가소롭다는 듯 천천히 걸어 나오며, 소천우를 향해 가차 없는 훈계를 던졌다.
"소 가주, 어찌 이리 무례하게 날뛰는가. 청운검파의 희생은 무림의 대의와 낙양의 안녕을 위해 바쳐진 숭고한 거름이니라. 무림맹의 대업을 위해 소수가 스러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거늘, 감히 가문의 은혜를 잊고 무례하게 칼끝을 들이대다니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구나!"
"숭고한 거름이라 하셨습니까……?"
소천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의 안구는 이미 붉은 핏발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평생을 갈고닦아 온 예의와 법도, 문파를 구하기 위해 감내했던 온갖 수치의 쇠사슬이 그의 영혼을 옥죄어 오던 순간이었다.
그때, 위백이 냉소를 흘리며 품속에서 피에 젖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묵직한 서찰 한 장을 꺼내 소천우의 발밑에 던졌다. 사서당의 청풍오결을 참살하고 얻어냈던, 그리고 무림맹과 흑월맹의 추악한 거래가 고스란히 담긴 비극의 증거물이었다.
"소천우, 네놈의 어리석은 충의에 바치는 마지막 헌사다. 읽어 보아라. 네놈들이 평생을 갚아도 끝나지 않던 그 피의 채무가, 애초에 어떤 위선적인 손길 위에서 설계되었는지를."
소천우가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서찰을 집어 들었다. 빗물에 번져가는 글씨들 사이로, 무림맹과 사파의 거두인 흑월맹이 청운검파를 파멸로 몰아넣고 그 영맥을 갈취하기 위해 맺었던 '피의 부채 채무 계약서'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가문을 살리기 위해 무림맹의 사냥개가 되어 온갖 더러운 짓을 감내했던 모든 세월이, 애초에 저들이 파놓은 거대한 함정 속의 유희에 불과했다는 진실이 그의 뇌리를 강타했다.
"아아아아아-!"
소천우의 입에서 짐승의 것과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평생을 지탱해 온 가치관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순간,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련의 검기가 푸른 서리처럼 사방을 뒤덮었다.
"예의(禮儀)란 군자가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이거늘, 어찌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에게 바칠 법도가 존재하겠는가! 내 오늘, 눈물로 이 부정한 사슬을 끊고, 피로써 청운의 원한을 씻어내리라!"
소천우의 신형이 폭풍처럼 움직였다. 그의 평생의 속박이었던 비겁한 규율을 깨부수는 세찬 비검(飛劍)이 허공을 갈랐다.
스스슥-! 콰아아앙!
원로들이 미처 대적할 틈도 없이, 가식을 버리고 각성한 소천우의 청련검기가 그들의 목을 사정없이 궤뚫었다. 빗줄기 속에서 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원로들의 잘려 나간 머리칼과 신형이 처참하게 흙바닥을 굴렀. 죽어간 제자들의 주검을 안고 오열하던 청년의 검은, 더 이상 무림맹의 방패가 아닌, 위선의 심장을 꿰뚫는 잔혹한 복수의 비수가 되어 있었다.
"가자, 위백. 위헌의 목을 베어 이 피의 제단을 무너뜨려야 한다."
소천우가 피가 흐르는 검을 쥔 채, 사당 뒤편의 거대한 음기가 뿜어져 나오는 지하 구덩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위백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기괴한 조소를 감추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냉소로 가득 찬 그의 마음에, 소천우가 보여준 자멸적인 아집은 기이한 공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침내 사당 뒤편, 거대한 수장지혈(水葬地穴) 구덩이에 도달했다.
그곳은 낙양 위씨 가문의 가장 어두운 비밀이 묻힌 곳이자,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무인들의 영맥이 고여 있는 거대한 무덤이었다. 구덩이 한가운데에는 기괴한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청동 가마솥이 펄펄 끓고 있었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음(極陰)의 연기가 사방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마솥 앞, 낙양 위가의 가주 위헌이 가부좌를 튼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도달했구나, 내 버린 자식아."
위헌이 천천히 눈을 뜨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하고 장중하여, 마치 길 잃은 자식을 맞이하는 자애로운 아비의 풍모를 풍겼다. 그러나 그 미소 뒤에 숨겨진 안광은 뱀의 독보다도 치명적이었다.
"백아, 그리고 천우야. 너희는 어찌 이리 시야가 좁단 말이냐. 나를 원망하고 가문을 증오하는 너희의 마음을 내 어찌 모르겠느냐. 하지만 이 위헌이 행한 모든 악행은 오직 더 높은 무림맹의 신성한 지위를 연대하고, 그리하여 천하의 질서를 영원히 공고히 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자 대의였다. 소수의 희생으로 천하 만민이 발을 뻗고 잘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된 천도(天道)가 아니더냐?"
"대의라, 천도라……."
위백이 한 발짝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가슴팍에서 뿜어져 나오는 극양의 열기가 주변의 빗물을 순식간에 기화시키며 하얀 수증기를 만들어냈다.
"네놈이 짖어대는 천도는 오직 네놈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위선의 방패막이일 뿐이다. 내 기경의 영맥을 끊고 시체 구덩이에 던진 것도 대의더냐? 청운검파의 어린 학도들을 도살하여 네놈의 음공을 채우는 제물로 삼은 것도 천도란 말이냐!"
"그렇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할 뿐이며, 질서가 없는 강호는 아귀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 위헌이 낙양의 지존이 되어 무림맹을 움켜쥐는 날, 비로소 참된 평화가 도래할 것이니라. 너희의 그 보잘것없는 사사로운 은원은 대의의 도도한 흐름 앞에 한 줄기 거품에 불과하다."
위헌의 장광설이 지하 구덩이의 천장을 울렸다. 가식과 위선으로 점철된 그의 목소리는 무림맹이 지켜온 추악한 질서의 본질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더는 들을 가치도 없구나. 오늘 네놈의 그 위선적인 목구멍을 찢어 발겨 주마."
위백의 손끝에서 푸른 불꽃을 머금은 무형기검(無形氣劍)이 뿜어져 나왔다. 철검우의 검리와 구양진기가 융합되어 정양화(正陽化)된 무형의 검 날이 허공을 잘게 쪼개며 진동했다.
위헌이 차갑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의 전신에서 거대한 극음의 장막이 펼쳐지며 주변의 기온을 급격히 떨어뜨렸다. 그가 펼치는 무공은 과거 위백에게서 빼앗아 간 원래의 영맥을 바탕으로 대성하려던 불멸의 음공이었다.
"어리석은 놈. 네가 아무리 기연을 얻었다 한들, 이 아비가 네 영맥을 취해 완성한 극음의 극의를 깰 수 있을 것 같더냐!"
그러나 위헌이 음공을 폭발시키려는 순간, 그의 가슴팍에 희미하게 새겨진 붉은 기스 자취가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2화에서 위씨 가문 무인과의 격돌을 통해 증명되었던, 빼앗은 영맥이 본래 주인의 속성과 맞지 않아 발생하는 치명적인 불완전함의 징후였다. 위헌은 이를 억누르기 위해 청운검파의 무인들을 제물로 삼으려 했으나, 끝내 그 취약성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던 것이다.
위백은 그 징후를 놓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 광포한 빛이 감돌았다.
"돌려받으리라. 내 피와 살을 찢어 만든 기맥이, 어찌 위선의 아귀를 따르겠는가!"
위백이 자신의 손끝을 찢어 붉은 선혈을 허공에 뿌렸다. 그리고 구양진기 제3경의 벽을 공고히 한 정양의 진기를 그 피에 실어 보냈다.
웅웅웅-!
지하 구덩이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위백이 흘린 피와 그의 외침이 공간을 타고 흐르자, 위헌의 단전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빼앗긴 영맥이 격렬한 공명을 일으키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진짜 주인의 찬란한 구양 열기 파동 한 구절이 허공을 때리자, 위헌이 그토록 자랑하던 극음의 장막이 스스로 뒤집어져 그의 오장육부를 침식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크아아악-!"
위헌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
동시에 위백의 체내에서도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낙양 위가라는 계약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누적된 인과의 한계와 지연된 대속의 화독이 그의 심장을 태워버리려 폭주하고 있었다. 가슴팍의 검은 양염 무늬가 살아 움직이는 괴수처럼 요동치며 위백의 전신을 태워버리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위백의 손목에 감겨 있던 흑월맹의 비보, 조여경이 장난처럼 넘겨주었던 '한옥 마정고리(寒玉 魔晶環)'가 찬란한 흑청색 빛을 발했다.
징-!
극음의 힘을 품은 한옥 마정고리가 위백의 체내에서 광폭하게 폭주하던 구양지독의 화독을 매섭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뜨겁게 끓어오르던 파멸의 열기가 마정고리의 차가운 완충 장치를 거치며 고도로 정제된 정양(正陽)의 폭발력으로 치환되었다. 화독과 극음의 기운이 공명하여 정제된 정양의 장막과 무형기검이 한층 더 예리하고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위헌! 네놈이 훔쳐 간 가짜 천도의 종말을 보아라!"
위백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정양화된 무형기검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위헌의 극음 장막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콰콰콰쾅-!
"이, 이럴 수가…… 내 음공이…… 내 영맥이 역류하다니……!"
위헌의 전신 살점이 벌게져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진짜 주인의 혈맥 공명과 한옥 마정고리를 통해 정제된 정양의 열기가 그의 체내로 침투하자,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껴입었던 그의 오장육부가 스스로 폭발하듯 찢어지는 주화입마를 일으킨 것이다. 사방으로 튀는 피안개 속에서 위헌의 살점이 터져 나갔고, 그의 단전은 형편없이 망가져 내렸다. 천하를 오만하게 굽어보던 위가의 가주가, 자신이 빼앗은 힘의 부작용으로 인해 처참하게 자멸해 가는 광경에 전율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푹-!
위헌의 신형이 바닥으로 꺾이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전신 혈관이 터져 붉은 피가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하하…… 하하하하!"
그러나 벼랑 끝에 몰려 파멸해 가던 위헌의 입에서, 갑자기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피를 토하면서도 그의 안광은 기괴할 정도로 번뜩였다.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으냐? 낙양 위씨 천 년의 대업이, 너희 같은 어린놈들의 손에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는다!"
위헌이 품속에서 칠흑처럼 어두운 금속 원판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낙양 지하를 흐르는 거대한 대동맥 수로 전체의 영기를 강제로 유도해 내는 지하 마공의 비기였다.
"내 단전을 바쳐 이 낙양의 지하 대동맥 수로 전체를 단전에 엮어 터뜨리리라! 나와 함께 이 낙양 전체를 피의 무덤으로 만들자꾸나!"
쿠르릉, 쾅-!
위헌의 단전이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며, 낙양 대지 아래를 흐르는 거대한 물줄기와 영기의 파동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지가 갈라지고 지하에서부터 가공할 만한 폭발의 전조가 울려 퍼지는 찰나, 위백과 소천우의 눈동자에 새로운 절망의 빛이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