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사직야구장의 조명탑이 차가운 백색광을 뿜어낸다. 9회 말 투 아웃 주자 만루, 풀카운트 상황. 유리창 너머로 2만 5천 관중이 지르는 함성이 가늘게 벽을 울리지만, 최고급 이중창으로 차단된 당신의 단장실은 도서관처럼 고요하다.
당신의 책상 위에는 노트북 세 대가 동시에 켜져 있다. 화면에는 트랙맨 데이터와 랩소도가 실시간으로 수집한 투수들의 릴리스 포인트 변화 추이, 회전 효율(Spin Efficiency), 그리고 연봉 대비 WAR(대체 선수 대비 기여 승수) 그래프가 피처럼 붉은 선으로 그려져 있다. 당신은 더 이상 스카우팅 리포트에 선수의 투지나 인성을 적지 않는다. 그들의 피와 땀은 오직 숫자로 환산되어 모니터 위를 부유할 뿐이다.
"한지혁의 포심 패스트볼 수직 무브먼트가 지난달 대비 3cm 감소했습니다. 릴리스 포인트가 1.85m에서 1.78m로 내려앉은 게 원인입니다. 견갑골 고정 밴드를 이용한 고강도 아이소메트릭 트레이닝 루틴을 지시했으나, 무리한 구속 끌어올리기로 인해 회전근개 슬랩(SLAP) 초기 증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과거 당신이 그토록 아꼈던 괴물 신인, 한지혁의 부상 위험 보고서를 분석하는 당신의 손길은 주저함이 없다. 구단주와 대주주들의 전폭적인 신임 속에 아시아 최연소 단장 자리에 오른 당신에게, 선수는 가슴 뜨거운 동료가 아니라 감가상각이 적용되는 소모성 자산에 불과하다. 155km/h의 정교한 하이 패스트볼로 리그를 폭격하던 한지혁을, 당신은 가치가 가장 높은 이번 겨울 스토브리그에서 트레이드 매물로 던지기로 결정한다.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수치가 반등하기 전에 현금과 유망주 드래프트 픽을 받아내기 위한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다.
"단장님, 지혁이가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어깨 통증을 숨기고 던진 건 전적으로 팀을 위해서였다고…… 한 번만 만나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스카우터 시절부터 당신을 보좌해 온 직원의 조심스러운 말에 당신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차갑게 답한다.
"일정 취소하세요. 사적인 감정은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구단의 손실을 야기할 뿐입니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죠."
과거 당신을 전적으로 믿고 따랐던 선수들의 단체 메신저 방은 이미 조용해진 지 오래다. 기적 같은 역전을 일궈내고 더그아웃에서 함께 물세례를 맞으며 웃던 스카우터 시절의 온기는 완벽히 증발했다. 지금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은 선수단 구조조정 명단과 차기 구단 사장 임원진들의 정치적 성향 분석표뿐이다.
창밖, 마침내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폭죽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하지만 이 화려한 승리의 축제 속에서, 당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전우는 단 한 명도 없다. 스스로 선택한 차가운 철탑 위에서, 당신은 오직 이윤과 권력만을 집어삼키는 외로운 폭군이 되었다. 그렇게 당신만의 영광 없는 지배가 적막 속에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