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빨간 딱지를 쥔 사내의 거친 손끝이 무인 계산대의 모니터를 향해 뻗어 나갔다.

하지만 시기와 욕심으로 완전히 돌아버린 강태윤은 사설 집행관들을 돈으로 매수해 특허 무단 표절을 역으로 선고한 허위 청구서 위조 판결문을 무인 매장 정문에 기습적으로 붙인 채 문틀에 불법 압류 딱지를 부착하려 훼방을 놓고 있었다. 주황빛 알전구가 매달린 온기의 천장이 사내들의 거친 발소리에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거 놔두면 안 돼. 당장 붙여!"

사내의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좁은 홀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조리실 안쪽,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서현의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목구멍이 턱 막히며 숨이 쉬어지지 않는 익숙한 공포가 다시금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과거 태윤 F&B의 사무실에서, 강태윤이 서류 봉투를 책상에 내던지며 지르던 고함이 환청처럼 귀를 파고들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고, 눈앞이 흐려졌다.

'안 돼. 여기서 무너지면 안 돼.'

서현은 조리대 모서리를 손가락이 하얗게 질리도록 움켜쥐었다. 홀에서 들리는 둔탁한 구두 소리는 당장이라도 이 작은 안식처를 부수고 들어올 기세였다. 저 무인 계산대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었다. 상처받은 이들이 밤새 남기고 간 눈물겨운 사연들과, 그들을 위해 밤을 지새우며 끓여낸 온기 서린 레시피가 담긴 심장이었다. 저곳에 저 더러운 붉은 딱지가 붙는 순간, 장부는 영원히 빛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옆에 서 있던 민지가 분노로 얼굴을 붉히며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저 미친 인간들이 진짜! 서현아, 내가 나가서 경찰에 신고할게!"

"안 돼, 민지야."

서현이 민지의 소매를 다급히 붙잡았다. 갈라진 목소리가 힘겹게 흘러나왔다.

"저 사람들…… 법원 집행관 완장을 차고 있어. 진짜든 가짜든, 지금 우리가 나가서 몸으로 부딪치면 공무집행방해니 뭐니 하면서 꼬투리를 잡을 거야. 강태윤은 그걸 바라는 거야."

"그럼 그냥 보고만 있어? 저 아까운 기계들을 다 뺏기게?"

서현은 떨리는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 내리기 시작했다. 대인기피증이라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매번 도망치기만 했던 과거의 자신이 아니었다. 온기를 찾아와 준 손님들의 미소와 그들이 남긴 온기가 서현의 마음에 단단한 뼈대를 세워주고 있었다.

서현의 시선이 조리실 벽면에 설치된 소방 정비용 수동 제어반으로 향했다. 매장 리모델링을 할 때 노후 건물이라 소방 배관을 새로 정비하며 설치해 둔 살수 테스트 밸브가 있었다.

"민지야, 귀 좀 막아."

서현은 망설임 없이 제어반의 유리 커버를 열고 빨간색 수동 레버를 힘껏 아래로 잡아당겼다.

위이이이이잉!

귀를 찢는 듯한 경보음과 함께, 매장 천장에 촘촘히 박힌 헤드에서 거센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안개처럼 흩뿌려지는 미세한 살수가 아니라, 화재 진압용 강한 수압의 물벼락이었다.

"악! 뭐야, 이거!"

"갑자기 물이 왜 나와! 야, 대피해!"

순식간에 쏟아진 물줄기에 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법원 집행관 완장을 찬 사내와 양복쟁이들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어버렸다. 그들이 들고 있던 조잡하게 위조된 압류 서류는 물에 젖어 흐물흐물해진 채 바닥으로 떨어졌고, 빨간 딱지들은 접착력을 잃고 둥둥 떠내려갔다.

"빌어먹을! 기계 고장 난 거 아냐? 야, 일단 나가! 나가서 상황 봐!"

사내들은 머리를 감싸 쥔 채 허둥지둥 온기 식당 밖으로 달아났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매장은 고요해졌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만이 똑, 똑, 둔탁한 리듬을 그리며 바닥을 두드렸다.

서현은 밸브를 다시 잠그고 조리실 문을 열었다. 바닥에 고인 물을 밟으며 홀로 나서는 그녀의 걸음은 이전처럼 유약하지 않았다.

"언니! 괜찮아요?"

식당 문이 열리며 우산을 든 진아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진아는 물바다가 된 매장 내부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오는 길에 웬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도망치는 걸 봤는데……."

"진아야."

서현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극도의 긴장감 뒤에 찾아온 탈진으로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진아의 얼굴을 보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괜찮아. 다 끝났어. 그냥…… 나쁜 손님들이 와서 물청소를 좀 세게 한 거야."

"참나, 어이없네. 물청소를 이렇게 무식하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진아는 도끼눈을 뜨고 투덜거리면서도, 자연스럽게 구석에 있던 대걸레와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매일 밤 온기의 구석구석을 제 집처럼 쓸고 닦던 청소 요정다운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진아가 무인 계산대 주변의 물기를 닦아내기 위해 허리를 숙였을 때였다. 계산대 하단 틈새를 닦던 대걸레 끝에 무언가 툭 걸리는 소리가 났다.

"어? 이게 뭐지?"

진아가 손가락을 밀어 넣어 깊숙한 틈새에서 작은 검은색 기기를 끄집어냈다. 손톱만 한 크기에 미세한 초록색 LED 불빛이 깜빡이는 정교한 기계였다.

"이거 보이스레코더 같은 건가? 마이크도 달렸는데……."

서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거…… 이리 줘봐."

기계를 건네받은 서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뒷면에 아주 작은 글씨로 'TH F&B 자산'이라는 가혹한 낙인이 찍혀 있었다. 강태윤의 짓이었다. 3화에서 그의 하수인이 매장을 다녀간 이후로, 온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화와 독창적인 레시피 기획 단계의 말들을 이 도청기를 통해 훔쳐 가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 그거 도청기 맞죠? 요즘 세상에 진짜 미친 거 아냐?"

진아가 분통을 터뜨리며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마침 식당 안으로 무거운 발걸음이 걸어 들어왔다. 우산을 접으며 들어선 사내는 다름 아닌 푸드 칼럼니스트 한강우였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물바다가 된 매장과 서현의 손에 들린 도청기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무슨 개판입니까? 맛있는 냄새 대신 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군요."

한강우는 특유의 냉소적인 어조로 말했지만, 그의 시선은 걱정스럽게 매장 구석구석을 훑고 있었다.

"한 선생님……."

서현은 말없이 도청기를 한강우에게 내밀었다. 한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기기를 받아 들고는, 자신이 가져온 노트북에 기기를 연결했다. 몇 번의 마우스 클릭 소리가 적막한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노트북 스피커를 통해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너무나도 익숙하고 비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까짓 무인 식당 하나 밟아버리는 게 뭐가 어렵다고 질질 끌어? 임서현 그년, 조금만 압박하면 숨도 못 쉬고 기어 들어올 년이야. 레시피 카피한 매장 바로 맞은편에 열고, 가처분 신청서 대충 위조해서 집행관들 매수해다 들이쳐. 기계 다 묶어버리면 끝장이야. 알았어?]

강태윤의 목소리였다. 6화에서 그가 부하 직원들에게 온기를 파멸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불법 영업 방해와 매수 공모를 지시하던 악랄한 원본 녹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파렴치한 놈들이."

한강우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평소 말과 글로 사람의 뼈를 때리던 독설가였지만, 대기업의 이 추악한 민낯 앞에서는 이성적인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한강우의 시선이 진아가 바닥을 닦으며 모아둔 쓰레기통 옆의 서류 더미에 머물렀다. 그것은 물에 젖어 잉크가 번진 온기의 식재료 발주 영수증들이었다.

"이건 뭡니까?"

한강우가 영수증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의 눈이 커졌다.

"울릉도 독도 자생 산마늘 발주액 45만 원? 히말라야 빙하 암염 30만 원……? 아니, 임 대리. 미쳤습니까? 한 그릇에 만 원짜리 순두부찌개를 팔면서 이런 미친 가격의 특수 식재료를 발주한단 말입니까?"

서현은 고개를 숙였다.

"치유 레시피에 필요한 재료들이에요……. 몸이 아픈 사람에겐 약이 되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에겐 그에 맞는 영혼의 온도가 필요하거든요. 마진이 적자로 돌아서서 가게가 문을 닫을 뻔한 위기가 와도…… 저는 타협할 수 없었어요."

그 영수증에는 손님 한 명 한 명을 구원하기 위해 적자 리스크를 온몸으로 감내한 서현의 눈물겨운 정성이 고스란히 박혀 있었다. 한강우는 영수증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냉소로 무장했던 그의 마음의 벽이 완벽하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당신을 오해했군요. 비대면이라는 껍데기 뒤에 숨은 위선자인 줄 알았는데. 당신은 진짜였어."

한강우는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묵직한 부채감을 느끼며 노트북을 쾅 닫았다.

"이 포스트잇도 좀 봐주세요."

진아가 한쪽 벽면에서 떼어낸 낡은 포스트잇 한 장을 한강우에게 내밀었다.

[버터향이 강한, 약간 탄 듯한 감자 요리를 찾습니다. 그 맛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죽기 전에 여한이 없겠소.]

"이 글씨……."

한강우의 눈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이건 태윤 F&B의 초대 메뉴개발 수석이었던 오진만 선생의 필체입니다. 강태윤에게 기술을 빼앗기고 토사구팽당해 업계에서 매장당한 뒤 실종되다시피 한 분이죠. 임 대리, 이 요리를 만들어 준 겁니까?"

"네."

서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의 상처받은 기억을 복원해 드리고 싶었어요. 그 탄 감자 요리는 그분이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의 초심이었거든요. 드시고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는 쪽지를 남기셨어요."

"완벽하군."

한강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맹렬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강태윤은 자신이 판 함정에 스스로 목이 감기게 될 겁니다. 이 불법 도청 녹취, 위조된 가처분 신청서, 그리고 오진만 수석의 증언까지 확보한다면…… 게임은 끝입니다."

한강우는 자신의 모든 미디어 인맥과 언론계 황금 인맥을 총동원해 기사를 송고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악랄한 기술 탈취, 무인 식당을 향한 불법 도청과 사설 집행관 매수, 그리고 가스라이팅으로 영혼을 파괴당했던 한 청년 자영업자의 눈물겨운 투쟁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세상은 온기 식당 이야기로 발칵 뒤집혔다.

[단독] 대기업 '태윤 F&B', 골목길 무인 식당에 불법 도청기 설치 충격! [사회] "내 레시피라 속였다"… 태윤 F&B 전 수석개발자의 피맺힌 폭로. [경제] 태윤 F&B 주가 개장 동시에 하한가 직행, 시가총액 수천억 증발!

국민적인 공분이 들끓었다. SNS는 강태윤과 태윤 F&B를 향한 불매운동 선언으로 도배되었고, 검찰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태윤 F&B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과 강태윤 대표에 대한 내사 착수를 발표했다.

"서현아! 이것 좀 봐! 태윤 F&B 주가가 완전히 폭락해서 휴지 조각이 되고 있어!"

민지가 매장으로 뛰어 들어오며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화면 속 강태윤의 이름 옆에는 '피의자 신분 소환 예정'이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자신들이 심어둔 악의의 도청기가, 밤낮으로 매장을 지켰던 어린 소녀의 손에 의해 자신들의 목을 베는 핵폭탄으로 돌아간 완벽한 인과응보였다.

민지는 가방에서 빳빳한 종이 한 장을 더 꺼내 서현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이것 봐. 내가 전에 준 '전국 청년식품창업 대전' 신청서야. 제출 기한이 다음 주까지거든? 이번 사건으로 온기의 독창성은 온 세상이 다 알게 됐어. 이 대회에 나가서 정식으로 특허 유통권까지 따내자. 강태윤 같은 놈들이 다신 발붙이지 못하게!"

"응…… 고마워, 민지야."

서현은 팸플릿을 꼭 쥐었다. 아직 가슴속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딛을 용기가 생기고 있었다.

그러나 밤이 찾아오고, 온기 식당에 정적이 내려앉았을 때.

딸랑—.

바람 한 점 없는 한밤중, 온기 식당의 문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서현은 조리실 모니터를 바라보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화면 속에는 초점 없는 눈동자에 머리가 헝클어진, 완전히 이성이 나간 모습의 강태윤이 서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폭삭 늙어버린 듯한 그는 양손에 묵직한 대형 등유 깡통 두 개를 질질 끌며 식당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쇠지창 같은 깡통 바닥이 타일 바닥을 긁으며 찌이익, 찌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임서현……."

강태윤이 쩍 갈라진 목소리로 서현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한 손에는 붉은 불꽃을 뿜어낼 준비가 된 가스 토치가 들려 있었다.

"네가 감히 내 인생을 망쳐? 이까짓 개뼈다귀 같은 가게랑 같이 지옥으로 가자."

강태윤이 등유 뚜껑을 열고 바닥에 사정없이 기름을 뿌리기 시작했다. 코를 찌르는 매캐한 석유 냄새가 온기 식당의 공기를 잠식해 들어갔다. 가스 토치의 스파크가 틱, 틱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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