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이 어찔하다. 코를 찌르는 건 눅눅한 지하 사무실 특유의 곰팡이 냄새와 싸구려 믹스커피 향. 당신이 쥐고 있는 것은 제 몸집보다 세 배는 큰 서류 뭉치와, 앞면에 ‘기획팀 사원 한민아’라고 선명히 박힌 플라스틱 사원증이다.
이건 꿈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온 청춘과 통장을 바쳐 사랑했으나 기획사의 무능으로 처참하게 해체했던 비운의 5인조 아이돌 ‘아스트라(ASTRA)’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기 딱 1년 전으로 회귀했다.
머릿속에서 과거—아니, 미래의 팬 커뮤니티 반응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 **[더쿠 - 스퀘어방]** **제목: 오늘자 눈물 나는 듣보돌 '아스트라' 엠카 컴백 무대 의상 꼬라지...jpg** - ㅇㅇ: 아 피디가 안티인가 했더니 코디가 심해 안티였음ㅋ 옷이 왜 다 음방 세트랑 보호색이냐고ㅋㅋㅋㅋㅋ 애들 얼굴 가리지 마라 진짜; - 웅냥: 노래는 진짜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인데... 소속사가 애들 다 죽여놓네 기획력 진짜 개노답 개쌉에바임ㅠ - 댕댕구: 얘네 리더 '신우' 비주얼 미쳤던데 소속사 일 안 하냐? 황금알 낳는 거위를 삼계탕 끓여먹고 앉았네 사장 뚝배기 깨고 싶다 진짜 ---
가슴 깊은 곳에서 덕후의 끓는 피가 요동친다. 리더 신우의 날렵한 턱선과 투명한 무쌍 눈망울은 그 자체로 서사이며, 메인보컬 은우의 고음은 귀에 때려 박는 순간 고막에 극락행 급행열차를 태워주는 국보급 음색이다. 춤출 때 손끝 각도마저 1mm의 오차도 없이 날카롭게 꺾어버리는 메인댄서 제이의 미친 안무 소화력까지. 이 완벽한 ‘천상계 남신’들을 데리고 데뷔 2년 차에 음반 판매량 1,500장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게 한 기획사 ‘오르빗 엔터’의 죄악은 단연코 대역죄다.
그때, 사장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똥배가 불룩한 박 사장이 찌푸린 얼굴로 걸어 나온다.
“야, 한민아. 너 아스트라 담당이지? 이번 지방 특산물 축제 스케줄 대충 돌리고 애들 계약 정리 준비나 해라. 요즘 돌판 다 거품이야. 차라리 트로트 신인을 뽑는 게 남는 장사지.”
그의 손에 들린 서류는 아스트라의 이번 달 정산서. 마이너스 수치가 붉은 피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다. 계약 정리라니? 아직 내 새끼들의 진가를 세상이 1도 모르는 이 타이밍에 해체라니! 은하계 최고 오라(Aura)를 뿜어내는 애들을 두고 무슨 망발인가.
당장 기획사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미치도록 아름답던 그들의 무대는 영영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내 최애의 빛나는 얼굴을 다시 한번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세우겠다는 주접 가득한 야망이 당신의 전신을 감싼다.
--- **[X (구 트위터) 타임라인]** **@astra_is_universe:** 아스트라 해체 찌라시 도는 거 실화냐?? 나 아직 신우 용안 실물로 영접도 못 했는데 소속사 진짜 고소한다ㅠㅠㅠㅠ 내 통장 통째로 바칠 준비 오조오억 번 되어있다고 제발 살려내ㅠㅠㅠㅠㅠㅠ *(RT 8,912 / 마음에 들어요 9,561)* ---
“사장님, 잠깐만요.”
당신은 들고 있던 서류 책상을 쾅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의 눈빛에 서린 광기 어린 집착과 확신에 박 사장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선다.
여기서 먹히는 기획을 제안해야 한다. 대형 기획사를 씹어 먹을 최고의 한 수, 뼈저린 덕질 데이터로 무장한 당신의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존 전략이 팽팽하게 맞부딪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