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메이드 클로이의 앙칼진 비명과 함께 시퍼런 검 날이 목 끝까지 밀려들던 일촉즉발의 순간. 다행히도 밤의 정취를 깨운 소란에 공작가의 엄정한 성격의 기사들이 중재에 나섰고, 당신은 혐의가 완전히 풀리기 전까지 별채 정원에 머무르라는 명을 받습니다.
사실 클로이가 그렇게 표독하게 군 것도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마왕 가문의 잔혹한 세간의 평판 속에서, 폭주할지 모르는 어린 레온 도련님을 지키기 위해 대대로 가문을 모셔온 그녀 나름의 절박한 방어기제였겠지요. 하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쫓기듯 정원으로 밀려난 당신의 마음은 차가운 밤바람만큼이나 쓸쓸하게 식어 갑니다.
낮에 레온 도련님이 눈을 빛내며 했던 사랑스러운 옹알이가 귓가에 맴돕니다. “유진 이모, 마시메로라구 해써? 뭉게뭉게 구룸 가타서 한 입 머그면 슝 나라갈 거 가타아! 레오니 이거 맨날맨날 조아할 꺼야아……”
지친 마음을 달래려 당신은 정원 구석의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작은 모닥불을 피웁니다. 타닥타닥, 주황색 불꽃이 피어오르자 꽁꽁 얼어붙었던 공기가 이내 몽글몽글하고 따스하게 풀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앞치마 주머니 깊숙이 소중하게 넣어두었던 수제 마시멜로 봉지를 꺼냅니다.
기계로 찍어낸 딱딱한 마시멜로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천연 바닐라 빈을 아낌없이 넣어 뽀얗고 폭신폭신한 아기 볼살을 닮은 수제 마시멜로입니다. 긴 나뭇가지 끝에 마시멜로를 조심스레 꿴 뒤, 은은하게 일렁이는 불꽃 위에 올립니다.
시간이 지나며 마시멜로가 통통하게 부풀어 오릅니다. 바닐라 빈의 깊고 우아한 향이 따스한 열기를 타고 달콤하게 코끝을 간지럽히고(후각), 불길에 그을려 캐러멜처럼 노릇노릇한 황금빛 달걀 껍질을 두른 듯한 겉면(시각)이 군침을 돌게 합니다. 한 입 베어 물면 파삭 하고 부서지는 얇은 껍질 너머로, 이빨 사이에 치즈처럼 쫀득하게 늘어나며 혀끝에서 크림처럼 감미롭고 부드럽게 녹아내릴(미각/촉각) 극상의 달콤함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달콤하고 우아한 설탕 탄 향취가 고요한 별채 정원의 어둠 속으로 몽환적인 안개처럼 널리 퍼져나갈 때였습니다.
스스스, 낮게 풀을 밟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인형이 걸어 나옵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통째로 오려내 만든 듯한 흑발,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늑대의 눈처럼 형형하게 빛나는 적안. 마왕 가문의 수장이자 이 차가운 성의 주인, 정복왕 데르온 공작이 밀려드는 달콤한 향에 홀린 듯 모닥불의 빛무리 안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그는 타오르는 장작불 너머로 당신을 빤히 봅니다. 낮게 깔린 그의 시선이 불빛을 받아 묘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폭군이라 불리는 사내의 눈동자에, 난생처음 맡아보는 평화롭고 따스한 단내가 짙게 일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