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려 보니 사방이 온통 번쩍이는 대리석과 가시 돋친 흑철로 가득한 마왕성의 한가운데입니다. 당신이 빙의한 인물은 성질 까칠하기로 악명 높은 레온 도련님의 전속 보모, '유진'. 코를 찌르는 매캐한 탄내와 함께 웅장한 아기 침대 쪽에서 찌르르한 진동이 울려 퍼집니다.
"이거어 시러! 다 저리 가아! 레온, 아모것도 안 머글꼬야아!"
앙증맞은 붉은 비늘로 덮인 꼬리를 붕붕 휘두르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용 레온 도련님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매끈하고 오동통한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씩씩대는 모습은 무섭다기보다는 차라리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곁에 선 메이드들은 언제 아기 용의 입에서 파괴적인 불꽃이 튀어나올지 몰라 사르르 떨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사실 마왕성의 가신들은 무뚝뚝하고 차가울 뿐, 아기 도련님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습니다. 단지 아이를 다루는 서툰 방식 때문에 매번 도련님의 울화통을 터뜨릴 뿐이지요. 레온 도련님이 고집을 부리며 밥을 굶은 지 벌써 이틀째. 눈가에 그늘이 깊게 진 메이드장 역시 안절부절못하며 도련님을 달래려 하지만, 까탈스러운 아기 용의 입맛을 맞추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마왕님의 무시무시한 노여움을 사게 될 터였습니다.
하지만 이 위기 속에서 당신의 심장은 오히려 쿵쾅쿵쾅, 기분 좋은 설렘으로 뛰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뇌리에 번뜩인 것은 전생에 세계를 제패했던 천재 파티시에로서의 기억과 감각이었습니다.
'우는 아기 달래기엔 달콤한 디저트만 한 게 없지.'
당신은 곧바로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구석에 놓인 간이 조리대로 다가갑니다. 선반에 놓인 최고급 재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븐에서 갓 가열되어 고소하고 묵직한 내음을 풍기는 황금빛 버터, 혀끝에 닿는 순간 달콤 쌉싸름하게 녹아내리는 매끄러운 감촉의 초콜릿 칩, 그리고 코끝을 톡 쏘는 상큼하고 싱그러운 야생 라즈베리의 과즙 향까지. 기분 좋은 단내가 주방의 공기를 부드럽게 감싸 안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닿자,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방안의 분위기가 솜사탕처럼 아주 조금씩 몽글몽글하게 풀려갑니다. 은색 거품기를 쥐고 가볍게 손목을 흔들자, 아기 도련님의 시선이 슬그머니 당신이 서 있는 조리대 쪽으로 향합니다. 여전히 심술이 잔뜩 나 있긴 하지만, 호기심만큼은 숨기지 못하는 맑은 눈동자가 반짝입니다.
레온 도련님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이 무시무시한 마왕성에서 완벽하게 살아남기 위해, 당신은 첫 손님을 위한 최고의 비밀 병기를 꺼내 들기로 결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