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정이현은 연기 속에서 서하진의 손목을 낚아채 정밀한 제압 기술로 그에게 수갑을 채웠고, 그의 귓가에 차디찬 숨결로 속삭였다.

"게임은 이제부터야, 설계자."

서하진의 얇은 입술이 보기 좋게 비틀리며 경련했다. 주위는 온통 매캐한 화학 연기와 타들어 가는 플라스틱 냄새로 가득했다. 연기는 기도를 긁어내렸고, 이현의 관자놀이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내려 턱끝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뇌세포가 실시간으로 타들어 가는 통증이 대뇌피질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이…… 미친 새끼가……!"

서하진이 쇠사슬이 부딪치는 거친 쇳소리를 내며 발버둥 쳤다. 수갑의 차가운 금속이 그의 마른 손목뼈를 파고들었지만, 이현은 백행동의 정밀한 신체 제압 공식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서하진의 상체를 바닥에 완전히 고정했다. 무릎으로 그의 척추 아래를 무겁게 누르자 서하진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현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고 있었다. 적색 경고등처럼 깜빡이는 시신경 너머로, 민도혁 형사가 심문실에서 반복해서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그 기묘한 박자가 뇌리에서 울렸다.

'탁, 타닥, 탁.'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민도혁이 이현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심어 놓았던 모스 부호식 비트 패턴이었다. 그 리듬은 하이퍼 네스트가 이현의 뇌를 지배하기 위해 쏘아 보내던 고유 동기화 주파수를 내부에서부터 산산조각 내는 강력한 교란 신호였다. 뇌파의 교란은 이현에게 극심한 발작을 유발하는 동시에, 시스템의 강제 통제 장치에 치명적인 공백을 만들어 냈다.

"네가 내 뇌에 장난을 쳤지?"

이현의 목소리는 고요하다 못해 서늘했다. 그는 한 손으로 서하진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뒤로 꺾었다. 서하진의 옷자락 안쪽, 가슴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두꺼운 지퍼가 보였다. 이현의 손가락이 주저 없이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손끝에 닿은 것은 하이퍼 네스트의 수석 연구원들만이 소지하는 특수 동기제, 즉 최면 전자기 패치였다.

두 개의 얇은 은색 원반 모양의 패치가 이현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그것은 현실의 물리적 뇌파를 가상 정신 공간과 100% 동기화해 주는 강제 연결 단말기였다.

"이걸로 뭘 하려는지 알고 있겠지."

"정이현, 멈춰! 네 주격 자아는 이미 소멸 프로세스에 진입했어! 여기서 뇌파를 강제로 동기화하면, 네 뇌는 과부하로 완전히 타버릴 거다!"

서하진이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의 오만한 얼굴에 처음으로 짙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입가에 기괴할 정도로 건조한 미소를 띠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첫 번째 은색 패치를 서하진의 정수리에 강하게 밀착시켰다. 미세한 전류가 흐르며 패치가 두피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이어서 두 번째 패치를 자신의 정수리에 붙였다.

찌릿한 고주파의 통증이 척수를 타고 흐르며 온몸의 근육이 일시에 경직되었다.

"이제 내 무대에서 한판 붙자."

이현은 자신을 기꺼이 심연으로 던지는 극단의 미소를 지었다.

그의 왼팔이 떨렸다. 소매를 걷어 올린 손목에는 정체불명의 수술 흉터와 함께 희미하게 빛나는 일련번호 'HN-09'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하이퍼 네스트 하부 비밀 실험 구역에서 강제로 뇌개조를 당했던 실험체의 낙인. 그러나 이 낙인은 동시에 이 시스템의 모든 보안을 우회하고 주파수를 강제로 조율할 수 있는 유일한 마스터 단말기이기도 했다.

낙인의 붉은 빛이 최면 패치와 공명하며 강한 진동을 일으켰다. 이현은 무겁게 가라앉는 의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스스로를 뇌 속의 가장 깊은 심연인 '거울의 방'으로 침잠시켰다.

* * *

어둠이 걷히며 눈앞에 나타난 공간은 이전의 거울의 방이 아니었다.

사방을 채우고 있던 투명한 유리 거울들은 모조리 산산조각 나 있었고, 깨진 틈새마다 검붉은 피가 눈물처럼 흘러내려 바닥에 고여 있었다. 사방이 피로 물든 거울의 방. 그 기하학적인 콘크리트 벽면과 깨진 유리 파편들이 기괴한 각도로 서로를 반사하며 무한한 공간의 왜곡을 만들어 냈다.

타닥, 타닥.

바닥을 적신 피 위로 구두 굽 소리가 울렸다.

서하진이 자신의 가상 육체를 내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을 뱉었다. 그의 영혼이 이현의 정신적 멀티버스, 즉 뇌내 탐정 회의소의 한복판으로 완벽하게 끌려 들어온 것이다.

"여기가…… 네 뇌 속인가?"

서하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깨진 거울 조각마다 서하진의 일그러진 얼굴과 이현의 차가운 눈빛이 수천 개로 복제되어 반사되고 있었다. 공간의 기압이 급격히 내려앉으며 사방에서 콘크리트 벽이 옥죄어 오는 듯한 이질적인 압박감이 숨통을 막아왔다.

이현은 거울의 방 한가운데에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그의 발밑에 흩어진 거울 파편 중 하나가 유독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현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 깨진 파편을 주워 올렸다.

파편의 뒷면, 거울의 은박이 벗겨진 거친 이면에 날카로운 필적으로 적힌 문장이 드러났다.

['가장 완벽한 동조는 적조차 나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이현의 손가락이 그 필적을 부드럽게 쓸었다. 의심할 여지 없는 과거 정이현 본인의 서명이었다.

그 순간, 뇌 속의 봉인이 완전히 풀리며 거대한 정보의 파도가 그의 대뇌피질을 강타했다. 한로직이 그토록 주장했던 '3분의 오차'의 진짜 진실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한로직은 내 뇌세포를 파괴하기 위해 가짜 단서를 주입한 게 아니었어."

이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 3분의 오차는…… 과거의 내가 직접 만든 것이었지."

서하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가상 살인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피해자의 사망 추정 시각과 실제 사망 시각 사이의 미세한 3분 오차. 그것은 현장의 온도를 인위적으로 1.2도 급감시켜 시체의 강직 속도를 늦추었던 고도의 조작이었다. 정이현은 과거에 서하진의 알리바이를 완성해 주기 위해 공범자로서 그 트릭을 설계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하진이 자신을 완벽한 공범으로 믿게 만들기 위한 '영구 기소 장치'이자, 언젠가 서하진을 이 정신적 밀실로 완벽하게 끌어들이기 위해 스스로 던진 치명적인 미끼였다.

"가장 완벽한 동조는 적조차 나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서하진이 이현의 손에 들린 거울 파편의 필적을 응시하며 이가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너는…… 처음부터 나를 이 방에 가두기 위해 네 기억을 지우고, 네 뇌를 실험대로 던진 거였나?"

"그래."

이현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바닥에 고인 피가 파동을 일으키며 붉은 동심원을 그렸다.

"네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이, 내 설계가 완성되는 순간이었지. 서하진. 내 손목의 HN-09 낙인은 네가 나에게 새긴 징벌이 아니라, 내가 이 시스템의 제어권을 빼앗기 위해 스스로 허용한 백도어였다."

이현은 왼쪽 손목을 들어 올렸다. 붉게 타오르는 HN-09 일련번호가 거울의 방 전체의 주파수와 공명하며, 사방의 콘크리트 벽면을 더욱 좁게 좁혀오기 시작했다.

서하진은 가슴을 쥐어짜며 뒤로 물러섰다. 기하학적으로 꺾인 천장과 벽면이 그의 머리 위를 무겁게 짓눌렀다. 호흡이 가빠지고, 조여드는 공간의 압박감에 산소가 부족한 듯 헉헉거리는 소리가 거울의 방을 채웠다.

사냥꾼이었던 자가 가장 완벽한 사냥감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서하진은 사방을 메운 피 묻은 거울 속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수천 명의 정이현을 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공포도, 분노도 없었다. 오직 실험실의 메스를 든 관찰자처럼 차갑고 무감각한 이성만이 번득이고 있었다.

"이건……!"

서하진이 짓눌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이건 네가 만든 수용소가 아니잖아!"

"이건 네가 만든 수용소가 아니잖아!"

서하진의 비명이 사방으로 갈라진 유리 파편들 사이로 어지럽게 부딪쳤다.

그의 음성은 평소의 우아하고 가학적인 미성이 아니었다. 거친 쇳소리와 함께 쏟아진 숨결 속에서 짙은 산소 결핍의 갈증이 묻어났다. 수축하는 콘크리트 벽면은 그저 시각적인 환영이 아니었다. 이현의 뇌 속에서 동기화된 가상 밀실의 중력과 기압은 실시간으로 서하진의 대뇌피질을 압박하며, 현실의 그가 실제로 호흡 곤란을 느끼도록 신경계를 교란하고 있었다.

"맞아."

이현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눈동자는 깨진 거울 조각에 반사되어 서늘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이곳은 내가 만든 수용소가 아니다. 네가 설계하고, 하이퍼 네스트가 구축한 뇌내 감옥이지. 나는 그저…… 그 방의 열쇠를 돌렸을 뿐이다."

이현은 자신의 왼팔을 들어 올렸다. 붉게 박동하는 'HN-09' 낙인은 이제 단순한 실험체의 흉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이퍼 네스트의 중앙 서버로 통하는 가장 깊고 은밀한 통로이자,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우회로였다.

이현의 뇌 속에서 세 명의 탐정 인격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제압되고 합병된 줄 알았던 그들의 잔재가, 이 거대한 싱크로율 속에서 이현의 의식과 완전히 하나로 융합되어 거대한 분석 장치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한로직의 정밀한 공간 연산이 서하진의 뇌파 주파수를 소수점 아래 여섯 자리까지 쪼개어 실시간으로 분석했다. 윤직관의 동물적인 직감이 서하진의 무의식 깊은 곳에 도사린 근원적인 죽음의 공포를 정확히 조준했다. 백행동의 신체 반응 데이터가 서하진의 가상 육체가 보여주는 미세한 근육 수축을 읽어내며 그의 다음 탈출 경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300%의 분석 속도.

뇌세포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이현의 사고 회로는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게 번뜩였다. 그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묵직한 물건을 만졌다. 쓰러지는 민도혁 형사가 그의 손에 쥐여주었던 금속 실린더. 그것은 단순한 고유 주파수 교란기가 아니었다.

"이게 뭔지 궁금하겠지, 서하진."

이현이 주머니에서 금속 실린더를 꺼내어 들어 올렸다. 실린더의 표면에 새겨진 미세한 led 등이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빠르게 깜빡이고 있었다.

"민도혁 형사가 하이퍼 네스트 내부의 프락치를 통해 빼돌린 하드웨어 오버라이드 디바이스다. 이 장치는 내 손목의 HN-09 낙인과 동기화되어, 이 지하 3층 연구실 전체의 메인 전력을 강제로 차단하고 모든 데이터를 외부로 송출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미친 소리……! 그걸 작동시키는 순간, 이 방의 모든 산소 공급과 신경 동기화 장치의 안전 제어 장치도 꺼져! 너와 나, 둘 다 뇌사 상태로 물리적인 죽음을 맞이할 거란 말이다!"

서하진이 핏발 선 눈으로 이현을 쏘아보았다. 그의 손가락 끝이 허공을 긁으며 보이지 않는 시스템 콘트롤러를 찾으려 발버둥 쳤지만, 이미 이현이 장악한 거울의 방 안에서는 어떤 외부 명령어도 작동하지 않았다.

"죽음이라."

이현의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갔다.

"나는 이미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죽어 있었다. 너희가 내 대뇌를 헤집고, 나를 연쇄살인마의 공범으로 낙인찍어 이 어둠 속에 처박아 두었을 때부터 말이지. 하지만 너는 다르겠지. 네가 그토록 찬미하던 완벽한 범죄의 미학이, 결국 이 초라하고 차가운 뇌 속 밀실에서 종말을 고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겠지."

이현은 주저 없이 금속 실린더의 상단 캡을 강하게 눌렀다.

*딸깍.*

지극히 가볍고 건조한 기계음이 거울의 방 전체를 관통했다.

그와 동시에, 현실 세계의 하이퍼 네스트 지하 3층 전체의 조명이 일시에 암전되었다. 백업 전력마저 차단되는 웅장한 기계음이 현실의 이현과 서하진의 고막을 때렸고, 가상의 거울의 방 역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벽면들이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렸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며 소용돌이를 쳤다. 붉은 피로 물들었던 바닥이 갈라지며 그 너머의 검고 무한한 심연이 아가리를 벌렸다.

"아아악!"

서하진이 균열 사이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무너지는 벽면을 붙잡고 처절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의 가상 육체 군데군데가 데이터 노이즈처럼 거칠게 깨어지며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반면 이현은 그 붕괴의 한가운데에서 지극히 평온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뇌 속에서 작동하던 '브레인 필터 제3수칙'의 경고음이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과거 연쇄살인마 설계자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조작해 준 공범자라는 사실을 외부인에게 들키지 말 것.'

이 수칙은 조작된 족쇄였다. 서하진이 이현을 통제하기 위해 심어 두었던 가장 치명적인 인지 왜곡의 덫. 하지만 이현이 스스로 그 알리바이의 원 설계자였음을 인정하고, 그 3분의 오차가 서하진을 파멸시키기 위해 자신이 직접 파 놓았던 함정이었음을 깨달은 순간, 제3수칙의 구속력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공범자가 아니기에, 수칙 위반으로 인한 주격 자아 소멸 프로세스 역시 작동할 근거를 잃은 것이다.

"이제 끝이다, 서하진."

이현이 거울 조각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거울의 방 천장 너머, 무한한 어둠 속에서 차가운 기계음이 아닌, 낯설고 이질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에코를 그리며 공간 전체에 울려 퍼졌다.

[경고. 외부 시스템으로부터 허가되지 않은 강제 포맷 명령이 수신되었습니다.] [대상 구역: HN-09 세션 및 동기화된 모든 주격 자아.] [포맷 집행자: 하이퍼 네스트 최고 이사회.]

이현의 움직임이 굳어졌다.

서하진 역시 비명을 멈추고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포맷 완료까지 남은 시간: 180초. 본 세션의 모든 정신 데이터는 영구 삭제되며, 물리적 대상자는 식물인간 상태로 전환됩니다.]

서하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가셨다.

"이사회……?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내가 수석 설계자인데! 나를 버릴 리가 없어!"

그의 목소리가 공포로 가득 찬 울음소리로 변했다.

하이퍼 네스트는 서하진마저도 통제 불가능한 변수로 판단하고, 이 방에 갇힌 두 사람 모두를 지워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무너져 내리는 거울의 파편들 사이로, 붉은색의 거대한 카운트다운 숫자가 허공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179. 178. 177.

이현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손목의 낙인을 꽉 움켜쥐었다. 180초 안에 이 무너지는 가상 밀실의 시스템 통제권을 완전히 장악해 탈출 경로를 뚫지 못한다면, 그의 자아는 영원히 지워질 터였다.

그의 등 뒤로, 흡수되었던 세 개의 인격이 다시 한번 검은 그림자가 되어 꿈틀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은 주인의 파멸을 반기는 기괴한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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