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은 숨이 막힐 정도로 사치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상아색 실크 자카드 드레스의 깃에는 은사로 촘촘히 수놓은 브뤼셀 레이스가 흐드러져 있고, 가녀린 목덜미를 감싼 라벤더색 벨벳 초커 밑으로는 물방울 형태의 아쿠아마린 펜던트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립니다. 백금발의 머리칼은 마치 녹여낸 은빛 같고, 연자줏빛 눈동자는 보석처럼 형형합니다.
하지만 이 우아한 목이 단 2년 뒤면 차디찬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빙의 특전으로 먼치킨 마법 같은 걸 줘도 모자랄 판에, 단두대 프리패스 왕복권이라니! 작가님,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건가요?'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겉으로는 우아하게 한숨을 내쉴 뿐입니다. 당신은 빙의했습니다. 그것도 온갖 악행 끝에 황실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할 예정인 악녀 가문의 막내딸, '레티시아'로 말입니다. 가문의 악업에 손가락 하나 얹기도 전에 단죄의 칼날부터 맞이하게 생긴 처지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문의 거대한 그림자에서 벗어나 당신을 온전히 비호해 줄 절대적인 권력자가 필요합니다.
뇌리를 스치는 단 한 사람의 이름. 카시안 폰 아스터. 북부의 지배자이자, 제국 유일의 대공. 아카데미 백작가의 영애들 백 명이 줄을 서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는 냉혈한. 그 차가운 북부대공과 '가짜 약혼'을 맺는 것만이 당신이 단두대를 피할 유일한 생존 열쇠가 될 것입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립니다. 방금 전까지 하던 엉뚱한 독백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가슴속에는 서늘하고도 팽팽한 긴장감이 들어찹니다. 오만하고 아름다운 대공의 얼어붙은 심장에 균열을 내야 합니다. 그 잔인하고 오연한 눈동자가 오직 당신만을 담게 만들려면, 첫 대면의 순간을 완전히 완벽하게 선점해야만 합니다.
"좋아, 피할 수 없다면 먼저 들이대 주는 수밖에."
당신은 손가락에 낀 장미형 자수정 반지를 가볍게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시종들이 뿌려둔 은은한 네롤리 향수 냄새가 드레스 자락을 따라 퍼집니다. 카시안을 찾아가 기선제압을 할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그가 있을 만한 장소는 두 곳으로 좁혀집니다. 당신은 구두 굽 소리를 울리며 세차게 걸음을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