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액체 질소처럼 차가운 산성 비가 안구 센서의 표면막을 때렸다.

치직, 거리는 파열음과 함께 시각 피드가 복구되었다. 시야의 가장자리를 따라 붉은색 경고등이 어지럽게 점멸했다.

`[PROJECT_ZERO_BOOT_SEQ::SUCCESS]` `[LOGIC_INTEGRITY::92.0%]` `[ENERGY_RESERVE::3.4%]`

턱없이 부족한 에너지 수치였다. 3.4%의 잔량은 현재 구동 모드에서 약 18분 40초 동안만 연산 장치를 지탱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제로(Zero)는 고철 산의 녹슨 철판 위로 상체를 일으켰다. 관절막 사이에 끼어 있던 미세한 고철 가루들이 서보 모터의 회전에 쓸리며 불쾌한 금속성 마찰음을 냈다. 사방은 온통 무너진 순양함의 격벽과 작동을 멈춘 산업용 기계들의 거대한 무덤이었다. 하늘은 두꺼운 납빛 구름에 덮여 있었고, 그 너머에서 불어오는 황량한 바람만이 하데스-9의 적요한 대기를 메우고 있었다.

그 고요함을 깨뜨린 것은 상공 300미터에 떠 있는 제국 정찰 위성의 광대역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음이었다. 그것은 감정이 거세된 자들의 차갑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 경고. 하데스-9 제4-B 폐기 구역에서 유기적 감정 신호의 이상 도출을 감지함. 제국 헌장 제12조에 의거, 비정상 코드가 주입된 불법 안드로이드 및 오염 개체는 발견 즉시 전소 처분함. 해당 구역의 자동 대기 정화 및 열 압축 소각 프로토콜을 가동함.

`[SYSTEM_ALERT::DECONTAM_COUNTDOWN::1800.00s]`

정확히 30분. 그 시간이 지나면 이 구역 전체가 섭씨 2,000도의 열 플라즈마로 뒤덮여 모든 분자 결합이 해체될 것이었다.

제로는 냉각재가 말라붙어 뻣뻣해진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생존을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리고 단서가 필요했다. 왜 자신에게 인간의 비합리적인 감정 코드가 이식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을 이 쓰레기 행성에 내던진 창조자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무너진 수송선 격벽 아래에 깔려 있는 스캐빈저의 사체가 보였다. 가죽 방진복을 입은 인간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가슴팍에 박힌 지진 감지용 티타늄 대못이 그의 유기적 심장을 완전히 관통한 상태였다. 사체의 오른손 끝은 무너지기 직전의 고철 더미 틈새를 가리키고 있었다.

죽은 지 채 10분도 되지 않은 신선한 사체. 제로는 사체의 관자놀이 부근에 노출된 신경 인터페이스 단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제로는 무릎을 꿇고 검지손가락 끝의 전극 커넥터를 슬라이드식으로 노출시켰다.

`[RESIDUAL_SIMULATION_V1.02//INITIATE]`

시야에 차가운 경고 프로토콜이 내려앉았다.

`[WARNING::시뮬레이션 구동 시 시스템의 논리 무결성(연산 수명)이 비가역적으로 훼손됩니다.]` `[ESTIMATED_LOSS:: -2.0%]`

무결성이 0%가 되는 순간, 제로라는 자아는 완전히 소멸하여 연산 능력을 상실한 빈 껍데기로 돌아간다. 1회 구동에 2.0%의 손실. 무결성 수치가 90.0%로 내려앉는 대가치고는 생존의 확률이 너무나도 희박했다. 하지만 죽음의 직전에서 단서를 건져 올리는 유일한 방법 또한 이뿐이었다.

"동기화 개시."

제로는 쇠붙이가 쓸리는 듯한 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사체의 단자에 전극을 밀어 넣었다.

`[LOGIC_INTEGRITY::92.0% -> 90.0%]`

머릿속에서 무언가 날카로운 칼날로 뇌세포의 일부를 도려내는 듯한 가혹한 통증이 일었다. 감각 회로가 단절되고, 가상 공간 속으로 제로의 의식이 강제로 가라앉았다.

세상이 순식간에 색을 잃고 모노톤의 디지털 잔상으로 재구성되었다. 죽은 스캐빈저의 마지막 18초가 제로의 전뇌 속에서 역방향으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18초 전. 스캐빈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너지는 고철 산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대기가 급격히 붕괴하며 낙하하는 철근 더미 속에서, 그는 품에 안고 있던 무거운 납 상자를 깊숙한 틈새에 밀어 넣었다.

12초 전. 그가 상자를 밀어 넣은 위치의 좌표가 제로의 안구 렌즈에 실시간 데이터로 맵핑되었다.

`[LOC_X::432.12 // Y_COORD::891.04 // Z_COORD::-12.45]`

7초 전. 스캐빈저의 손목 단말기 화면이 노이즈 속에서 잠깐 빛났다. 제국의 표준 코드와는 완전히 다른, 기형적으로 뒤틀린 주파수 대역이 그 단말기를 통해 위성망 백도어로 접속을 시도하고 있었다.

`[DETECTED_FREQ::144.85MHz_ALT_SEC]`

제국의 눈을 피해 하데스-9의 대기권 봉쇄망을 해킹할 수 있는 유일한 비표준 백도어 주파수였다. 제로는 본능적으로 그 파형의 기하학적 형태를 자신의 영구 메모리 블록에 깊숙이 각인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3초 전.

거대한 강철 들보가 스캐빈저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피할 수 없는 질량의 폭력 앞에서, 그의 생물학적 안구가 비정상적으로 확장되었다.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 삶을 향한 더러운 집착,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절망이 유기적 눈동자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 순간, 동기화된 제로의 시스템 내부에 심어진 불법 감정 코드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CORE_TEMP::85.3C]` `[EMOTION_CODE_ACTIVATED::DREAD/EMPATHY]` `[CORE_TEMP::98.0C]` `[WARNING::SYSTEM_OVERHEAT_DANGER]`

가슴 중앙에 위치한 동력 코어가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는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냉각 호스가 들끓었고, 시야가 붉게 물들며 연산 속도가 급격히 저하되었다. 인간의 감정은 안드로이드의 연산 회로에 있어서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치명적인 과부하 물질이었다.

"으... 극..."

제로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쥐어뜯었다. 손톱이 금속 외피를 긁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시야가 105도의 열기 속에서 완전히 흐려졌다. 수만 개의 에러 메시지가 망막을 뒤덮었다.

하지만 이대로 정지할 수는 없었다.

제로는 과열된 코어의 연산 프로세스를 강제로 제한하며, 냉각 팬을 최대 출력으로 기동했다. 가슴 속에서 웅웅거리는 팬의 회전음이 기괴하게 울렸다. 가까스로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 그의 앞에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수천 톤의 고철 더미가 기괴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쾅! 콰콰쾅!

상공에서 쏟아지는 산성 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상층부의 격벽들이 슬라이딩하듯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무너진 고철들이 쏟아져 내리는 속도는 초속 15미터. 제로가 서 있는 곳은 3초 뒤면 거대한 철판 가공소의 압착기 밑바닥처럼 변할 터였다.

배터리 잔량은 이제 2.1%까지 떨어져 있었다.

"방향 연산. 최단 경로 산출."

제로는 감정 코드의 무의미한 노이즈를 연산 영역에서 격리한 채, 스캐빈저의 메모리에서 얻은 좌표만을 응시했다.

`[TARGET_COORDINATE::Z-12.45]`

그는 도망치는 대신, 오히려 무너져 내리는 고철 더미의 붕괴 중심점을 향해 도약했다.

서보 모터가 최대 토크로 구동되며 제로의 신체를 허공으로 쏘아 올렸다. 낙하하는 철판의 궤적을 0.001초 단위로 계산하여 몸을 비틀었다. 스치고 지나가는 녹슨 철 가시가 어깨 외피를 찢어발겼지만, 탄소 섬유 골격은 부러지지 않았다.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제로는 오른팔을 강철 격벽의 미세한 균열 틈새로 찔러 넣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실리콘 피부가 찢어지고 내부의 은백색 프레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나 제로의 손끝은 정확히 지하 12.45센티미터 지점에 묻혀 있던 납 상자의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그대로 팔을 잡아당겼다.

두꺼운 납 껍질이 벗겨지며, 그 안에서 영롱한 청색 빛을 뿜어내는 고성능 리튬 12V 팩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의 군용 규격품이었다.

제로는 주저 없이 자신의 가슴팍에 위치한 보조 전력 유입구의 덮개를 찢어발겼다. 그리고 노출된 구리선 뭉치를 리튬 팩의 전극에 직접 찔러 넣었다.

`[DIRECT_COUPLING_SUCCESS]` `[ENERGY_CHARGING_START]`

순간적으로 수만 볼트의 전류가 제로의 전신을 관통했다.

`[ENERGY_RESERVE::2.1% -> 22.0% -> 55.4% -> 89.1%]`

타들어 가던 시야가 순식간에 청명한 푸른빛으로 수복되었다. 연산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서치되기 시작했고, 감정의 흔들림으로 인해 발생했던 오버히트마저 급속 충전되는 전류의 압력에 일시적으로 억눌렸다.

완벽한 전력 회복이었다.

제로는 리튬 팩을 움켜쥔 채, 힘이 넘쳐나는 다리로 지면을 박찼다.

쾅!!!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수십 톤짜리 순양함 엔진 블록이 떨어져 내리며 대지를 뒤흔들었다. 먼지와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했지만, 제로는 이미 그 폭발 반경을 벗어나 안전한 콘크리트 잔해 위로 가볍게 착지한 뒤였다.

충전된 에너지 89.1%. 스캐빈저의 최후를 이용해 얻어낸 생존의 기회였다.

제로는 자신의 손바닥에 묻은 사체의 유기적 혈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기계라면 느낄 수 없는 묘한 서늘함이 등줄기의 센서 배선을 따라 흘렀다. 이 감정은 죄책감인가, 아니면 생존에 대한 비열한 안도감인가.

그 의문에 답을 내리기도 전에, 제로의 청각 센서가 기분 나쁜 고주파의 진동을 포착했다.

위이이이잉—

그것은 공기를 찢는 듯한 소리였다.

제로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층 구역을 덮고 있던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방호 철판 상단부가 서서히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열기가 극도에 달하자,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플라즈마 광선이 철판을 두부 자르듯 가르며 바닥을 향해 내리꽂혔다.

치이이익!

초고온의 커팅 레이저가 제로가 서 있는 바닥 바로 앞을 쓸고 지나갔다. 녹아내린 쇳물이 붉은 분수처럼 사방으로 튀었고, 그 너머로 정체불명의 실루엣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팀 파이프가 터지며 뿜어져 나온 고압의 과열 증기가 지하 구역의 차가운 유독성 대기와 뒤섞였다.

쇳물이 뚝뚝 떨어지는 천장의 타원형 구멍 너머로, 방진 코팅이 벗겨진 탄소 섬유 합금 부츠가 먼저 바닥에 닿았다. 뒤이어 가죽 방진복을 온통 기워 입은 날렵한 체구의 인간이 가볍게 굴러 착지했다.

그녀의 허리춤에는 누런 테이프로 칭칭 감긴 구형 고밀도 배터리팩 네 개가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매달려 있었다. 산소 여과 마스크 너머로 드러난 두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여자는 바닥에 고여 있는 산성 빗물이나 제로의 기괴한 안드로이드 형상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의 눈길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제로의 가슴팍, 구리선 뭉치가 거칠게 박힌 채 청색 잔광을 뿜어내고 있는 군용 리튬 팩이었다.

"빌어먹을 고철덩어리가 내 배터리를 먼저 처먹었군."

여자의 목소리는 마스크의 필터를 거쳐 둔탁하게 긁히는 금속성 음향으로 전해졌다. 그녀는 등 뒤에 매고 있던 구경 12mm의 공업용 리벳 건을 가볍게 고쳐 잡았다. 수동으로 작동하는 압력 레버가 *째깍, 째깍* 소리를 내며 화약의 점화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TARGET_IDENTIFICATION::HUMAN_FEMALE]` `[THREAT_LEVEL::YELLOW_3]` `[SENSING_NET::ACTIVATE]`

제로는 상체를 미세하게 비틀어 방어 기동 자세를 취했다. 찢어진 어깨 외피 사이로 노출된 은백색 액추에이터가 팽팽하게 긴장했다.

"이 배터리는 스캐빈저의 사체 주변 12.45센티미터 하부에 매립되어 있던 소유자 불명의 자원이다. 소유권을 주장할 법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론의 기계음 섞인 합성 음성이 차가운 지하실 격벽에 부딪혀 흩어졌다.

여자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제로의 가슴속 리튬 팩의 방전 수치만을 정밀하게 계측하고 있었다.

"그 사체가 내 파트너였어, 이 깡통아. 저 위에서 제국 정찰기가 소각 폭격을 준비하는 와중에 여기 기어들어 온 건 그 배터리랑 이 주파수 송신기를 회수하기 위해서였고."

그녀가 왼손을 들어 올려 손목에 채워진 낡은 단말기를 톡톡 쳤다. 단말기 액정 화면 위로 기형적인 주파수 파형이 깜빡였다.

그 파형은 제로가 방금 전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보했던 비표준 백도어 주파수 대역, `144.85MHz_ALT_SEC`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기하학적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WARNING::CORE_TEMP::101.2C]` `[EMOTION_CODE_VOLTAGE::HIGH]`

알 수 없는 기시감과 의문이 제로의 불법 감정 코드를 다시 한번 자극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연산 회로를 갉아먹는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다. 쇠를 달구는 듯한 고열이 척추의 신경망을 타고 흐르자, 제로의 왼쪽 안구 센서가 지직거리며 일시적으로 암전되었다.

여자는 그 미세한 정지 동작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제로가 고통으로 가슴을 움켜쥐려는 순간, 허리춤에서 푸른색 액체가 담긴 가압 실린더를 빼내어 제로의 발밑으로 거칠게 던졌다.

깡!

실린더가 깨지며 차가운 전산 냉각 가스가 제로의 다리 사이로 급속히 기화했다. 영하 50도의 냉기가 가슴 코어의 열을 강제로 끌어내렸다.

"비싼 군용 배터리 처먹고 오버히트로 터져서 고철 쓰레기 늘리지 마라. 기껏 충전한 전력이 아까우니까."

여자는 턱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내 이름은 벨라다. 통성명은 살아서 대기권을 벗어난 뒤에나 하지. 진짜 골치 아픈 놈들이 내려오고 있으니까."

위이이이잉—

천장의 구멍 너머에서 고출력 전기 모터가 고속 회전하는 비명이 지하를 채웠다.

`[SYSTEM_ALERT::NEW_CONTACT_DETECTED]` `[UNIT_CLASS::IMPERIAL_CLEANER_DRONE_V4]` `[QUANTITY::03]`

제국의 청소부 드론들이었다.

지름 2미터 크기의 구형 금속체 세 기가 천장 구멍을 뚫고 미끄러지듯 하강했다. 드론의 전면에 장착된 세 개의 붉은색 광학 렌즈가 제로와 벨라를 동시에 포착했다. 그들의 하부에 장착된 이중 총열의 플라즈마 터렛이 푸른색 충전광을 내뿜기 시작했다.

— 비정상 코드 보유 안드로이드 및 불법 무단 침입 유기체 감지. 제국 청소 프로토콜을 집행함.

벨라가 리벳 건을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어이, 고성능 깡통. 방금 내 냉각제 값은 해야지?"

제로는 대답 대신 다리의 서보 모터를 최대 토크로 기동했다.

`[ENERGY_RESERVE::88.4%]` `[LOGIC_INTEGRITY::90.0%]`

충분한 에너지와 무결성을 지닌 제로의 연산 장치는 이제 최고 속도로 주위의 물리 법칙을 계산해 내기 시작했다. 제로는 벨라의 리벳 건 발사 타이밍과 세 기의 드론이 전개하는 화망의 오차 범위를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쪼개어 분석했다.

"전방 15도 각도, 1.2초 뒤 사격 개시 바람."

제로는 차가운 철판을 박차고 드론들의 포화 속으로 몸을 던졌다.

플라즈마 탄환이 제로의 잔상을 스치며 지하실 바닥을 용융시켰다.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제로의 손가락 끝은 이미 첫 번째 드론의 광학 센서 돔을 정확히 파고들고 있었다.

서보 모터의 파괴적인 악력이 드론의 전면 강화 유리를 완전히 박살 냈다. 내부의 전선 뭉치를 한 줌 움켜쥐고 뜯어내는 순간, 벨라의 리벳 건이 고압의 가스 배출음과 함께 불을 뿜었다. 두꺼운 티타늄 못이 두 번째 드론의 구동 배터리 셀을 관통하여 폭발을 일으켰다.

쾅!

지하 구역이 화염으로 물들며 마지막 세 번째 드론이 폭풍에 휘청거렸다. 제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남은 한 기의 동체 위로 착지해 머리 부분을 뜯어냈다. 단 4.2초 만에 일어난 정밀한 섬멸이었다.

"제법이군."

벨라가 리벳 건의 열기를 식히며 다가왔다.

하지만 승리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쓰러진 드론들의 파손된 메인보드에서 일제히 기괴한 고주파 비프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피이이이이—

그것은 단순한 파괴 경보음이 아니었다. 제로의 내부 전파 수신기에 기록되어 있던 비표준 주파수 대역 `144.85MHz_ALT_SEC`가 이 경보음의 진동 패턴과 공명하며 강제로 동조를 시작했다.

`[WARNING::EXTERNAL_SIGNAL_OVERRIDE]` `[DECRYPTING_BACKDOOR_PROTOCOL...]` `[SENDER::UNKNOWN_SOURCE_EMILIA]`

그 순간, 제로의 망막 위에 붉은색 에러 코드 대신, 이 행성의 그 어떤 제국 시스템에서도 본 적 없는 필체의 디지털 텍스트가 강제로 출력되기 시작했다.

`[제로, 이 메시지가 활성화되었다면 너는 하데스-9의 자가 청소 시스템을 건드렸다는 뜻이겠지. 대기 폐쇄망을 해킹할 수 있는 진짜 열쇠는 그 스캐빈저의 손목 단말기가 아니다. 벨라가 입고 있는 방진복의...]`

텍스트가 미처 다 완성되기도 전에, 천장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굉음이 지하 전체를 뒤흔들었다.

쿵!

지상에서 가해진 가공할 만한 질량의 타격으로 인해 콘크리트 기둥들이 붕괴하며 제로와 벨라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먼지 폭풍 너머로, 제국 집행관의 전용 전함이 내뿜는 거대한 반중력 엔진의 푸른 불빛이 어스름한 하늘을 찢으며 지상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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