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이 의식을 난폭하게 흔들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것은 비릿한 피 냄새가 아니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인공적이고 사치스러운 향장(香粧) 냄새였다. 침향과 사향을 기괴할 정도로 뒤섞은 불쾌하고 무거운 향기가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킬 듯이 밀려들었다.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정교하게 조각된 기둥들이 버티고 선 캐노피 침대의 천장이었다. 천사들이 금빛 나팔을 불며 내려오는 모습을 돋을새김으로 정교하게 깎아낸 상아색 나무 기둥, 그리고 살결을 비단처럼 감싸 쥐는 최고급 실크 시트의 촉감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손을 들어 올려 눈앞을 가로막았다. 가늘고 길쭉한, 평생 단 한 번도 물 한 방울 묻혀보지 않은 듯한 백옥 같은 손가락이 보였다. 손톱 끝에는 갓 피어난 장미의 즙을 짜내 바른 것처럼 붉고 오만한 색채가 반짝이고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전신 거울 속을 응시했다.

불타는 듯한 적발과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녹색 눈동자. 사교계의 가장 표독스러운 가시꽃이자, 황실의 날카로운 음모에 휘말려 내일 당장 단두대 위에서 목이 잘려 나갈 운명을 지닌 악녀.

‘에일라 드 발루아.’

그녀가 바로 나였다.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빙의의 혼란을 수습하기도 전에, 방 안의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방 한구석, 흑요석을 깎아 만든 둥근 탁자 위에 놓인 은색 쟁반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세 개의 유리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잔의 표면에는 발루아 공작가의 상징인 만개한 장미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하지만 기이한 것은 잔 자체가 아니었다. 그 잔들 주변으로 아지랑이처럼 은밀하게 일렁이는 보라색의 불길한 마력 인광이 보였다.

황실 소속의 정적 숙청 기구인 ‘검은 추적자’들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정적을 몰살할 때 사용하는 특유의 마력 독약이었다. 방금 전까지 방을 지키고 서 있던 가문 기사 복장의 사내가 두고 간 잔이었다. 가문의 기사로 완벽히 기만하고 침투한 황실의 사냥개.

에일라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탁자로 다가갔다. 맨발에 닿는 차가운 대리석의 감각이 현실을 일깨웠다.

특히 세 번째 잔의 은색 마개 부분이 유달리 시선을 끌었다. 마개의 가장자리에 아주 미세하고 정교한 균열이 기하학적인 문양처럼 새겨져 있었다. 나뭇가지 모양으로 갈라진 그 0.1밀리미터 남짓한 미세한 틈새는, 황실 연금술사들이 독약의 휘발을 막기 위해 고안해 낸 특유의 압력 각인 구조였다. 에일라는 그 정교한 균열의 형태를 머릿속에 사진을 찍듯 깊이 각인시켰다.

그 순간이었다.

심장이 벼락을 맞은 듯 멈춰 섰다.

단순한 심정지가 아니었다.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오는, 영혼 전체가 급속도로 결빙되는 듯한 살인적인 통증이 전신을 지배했다. 피부 위로 미세한 눈꽃 서리가 돋아나기 시작했고, 입술을 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비명처럼 흩어졌다.

"아…… 윽……!"

턱뼈가 덜덜 떨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절대적인 마비 상태 속에서, 시야가 깨진 유리 파편처럼 사정없이 조각났다. 그 어두운 유리 파편의 틈새를 비집고, 서늘한 푸른빛의 활자들이 허공에 강제로 떠올랐다.

[‘진혼의 예시안’이 각성합니다.]

[생존율 0.03%의 파멸 경로를 감지했습니다.]

[선택 규칙을 강제 출력합니다.]

[조건: 세 번째 독잔을 바닥의 귀빈용 페르시아 카펫에 쏟고, 성기사단장 라인할트 대공의 침소 위치를 특정하십시오.]

[대가: 즉각적인 영혼 빙결 및 사망.]

머릿속을 지배하는 극심한 오한 속에서 선택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능이 내려준 왜곡되고 파편적인 예시 정보였지만, 살기 위해서는 이 불완전한 규칙을 완벽하게 수행해야만 했다.

벌컥.

방의 묵직한 오크나무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한 남자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단정한 감청색 제복 위에 은색 견장을 얹은 사내, 오빠이자 가문의 후계자인 루드비히 드 발루아였다. 그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자애롭고 헌신적인 오빠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 깊은 곳에는 차가운 계산기와 탐욕이 도사리고 있었다.

"에일라, 몸은 좀 어떠니? 황실에서 특별히 네 건강을 염려해 보낸 비약이란다."

루드비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탁자 위의 세 번째 잔을 가리켰다. 그의 목소리에는 듣는 사람의 자존감을 서서히 갉아먹는 교묘한 가스라이팅의 독이 묻어 있었다.

"가문을 위해, 그리고 너를 위해 이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길이라는 걸 너도 잘 알고 있겠지. 황실과의 마찰을 피하려면 이 방법뿐이야. 네가 조금만 희생해 준다면, 발루아는 너를 영원히 기억할 거란다."

친동생을 황실의 독살 덫에 방패막이로 던져 넣으려는 추악한 속내를, 그는 가문이라는 신성한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과거의 에일라였다면 그 다정한 위선에 속아 눈물을 흘리며 독배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몸에 깃든 영혼은 달랐다.

에일라는 입술 근육을 팽팽하게 당기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루드비히의 입꼬리가 기대감으로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에일라는 세 번째 독잔을 부드럽게 쥐어 올렸다. 은색 마개의 균열 사이로 새어 나오는 장미 향이 코를 찔렀다.

"그래요, 오라버니."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루드비히의 안색에 안도감이 스치는 찰나, 에일라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손목을 꺾었다.

촤아악!

보라색 액체가 바닥의 화려한 실크 페르시아 카펫 위로 사정없이 쏟아졌다.

치이이익!

독액이 닿자마자 카펫의 촘촘한 자수 올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검붉은 거품과 불쾌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바닥의 흰 대리석마저 부식되어 투박하게 패어 들어가는 광경이 두 사람의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졌다.

루드비히의 얼굴에서 자애로운 가면이 단숨에 뜯겨 나갔다. 그의 눈동자가 경악과 분노로 세차게 흔들렸다.

"에일라!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가문을 위한 명예로운 희생이라니, 참으로 감동적인 연극이네요."

에일라는 비웃음을 담아 속삭였다. 녹색 눈동자에는 일말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진짜 독잔을 들고 와서 동생에게 마시라고 권하는 오라버니의 그 가식적인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세요. 더 이상 당신들의 그 비열하고 조잡한 꼭두각시 놀음에 놀아나 줄 생각 없으니까."

"너, 미쳤구나……!"

"미친 건 내가 아니라, 황실의 칼날이 무서워 피붙이를 제물로 바치려던 당신들이지. 내 목숨의 가치는 내가 정해. 그리고 그 값은 당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쌀 거야."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에일라는 경직된 루드비히를 그대로 지나쳐 방을 걸어 나왔다. 루드비히가 뒤에서 뭐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그녀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방을 빠져나와 어두운 복도로 들어서자마자, 예시안의 혹독한 페널티가 다시 한번 전신을 덮쳤다.

"하윽……!"

허파가 통째로 얼어붙는 듯한 고통에 에일라는 복도 벽을 짚고 겨우 버텼다. 손끝이 이미 푸르스름하게 변하며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심장 부근에서 시작된 서리가 혈관을 타고 목덜미까지 기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두면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영혼까지 결빙되어 죽을 것이다.

살아야 했다. 살아남아 이 지옥 같은 가문과 황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북쪽 국경 너머, 혹한의 무법지대 '헤이븐'으로 탈출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독제'가 필요했다.

제국에서 유일하게 신성한 불의 가호를 지녀, 자신의 이 살인적인 한기를 녹여줄 수 있는 유일한 사내.

성휘 기사단장이자 발루아 가문의 정적인 라인할트 폰 크로이츠 대공.

그는 연인이 아닌, 철저히 정량화된 거래를 통해 이용할 영양가 높은 도구이자 생명 유지 장치에 불과했다.

에일라는 품 안에서 차가운 감촉의 종이를 움켜쥐었다. 이동하는 짧은 순간 동안 머릿속으로 조항을 정리해 둔 '맹약의 은장' 계약서였다.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정보와 그의 신성 마력을 교환하는 철저한 비즈니스 서약서.

시야 한구석에서 예시안이 가리키는 대공의 임시 침소 위치가 붉은 궤적으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에일라는 비틀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밤의 어둠이 깔린 공작가 별채로 향했다. 차가운 밤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이미 그녀의 몸 내부 온도에 비하면 밤바람은 미지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매 걸음마다 서리 맺힌 한숨이 허공에 흩어졌다.

마침내, 육중한 침엽수 목재로 만들어진 대공의 침소 문 앞에 도달했다.

에일라는 망설임 없이 문을 밀치고 안으로 난입했다.

쾅!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방 안, 은은한 벽난로의 불빛만이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그곳에는 제복 상의를 반쯤 풀어헤친 채, 붉게 타오르는 신성 마력의 온기를 전신에서 뿜어내고 있는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라인할트 폰 크로이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열기가 에일라의 얼어붙은 피부에 닿는 순간, 본능적인 갈망이 그녀의 뇌리를 지배했다. 살고 싶다. 저 열기를 탐하고 싶다.

"대공……."

에일라는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품 안의 계약서를 거칠게 치켜들며 그를 향해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나와…… 계약을……!"

그 찰나였다.

쉬이익!

파랗게 타오르는 성검의 날카로운 칼끝이 허공을 가르며 그녀의 목덜미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서늘하고도 정교한 검기가 그녀의 여린 살결을 스쳐 가느다란 핏방울을 피워 올렸다.

어둠 속에서 라인할트의 서슬 퍼런 청색 눈동자가 맹수처럼 빛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목을 베어버릴 듯한 차가운 살기가 방 안의 공기를 얼려버릴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목덜미를 가르는 푸른 검기는 시릴 정도로 예리했으나, 그 검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지독하리만큼 뜨거웠다.

성휘 기사단장만이 다룰 수 있는 신성한 불꽃. 칼날이 살결에 닿기 직전의 미세한 거리였음에도, 그 열기가 에일라의 쇄골 위로 돋아난 성에를 순식간에 녹여 내렸다. 사막의 한가운데에 선 것처럼 뜨거운 열감이 얼어붙어가던 그녀의 생존 본능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에일라 드 발루아."

라인할트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제복 상의 사이로 드러난 단단한 가슴팍이 그의 거친 호흡을 따라 크게 들썩였다. 금빛 머리칼 사이로 비치는 청색 눈동자에는 불청객을 향한 강한 불신과 경멸이 서려 있었다.

"공작가의 뱀이 밤눈이 어두워 길을 잘못 든 모양이군. 내 침소는 네년이 감히 발을 들일 곳이 아니다."

"뱀도…… 살기 위해서는 가장 따뜻한 구멍을 찾는 법이죠."

에일라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턱뼈가 마비되어 발음이 자꾸만 문드러지려 했으나, 특유의 오만한 기품만은 잃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었다. 그녀는 오히려 목을 조금 더 검끝 쪽으로 밀어붙였다.

스윽.

날카로운 검날이 가느다란 목덜미의 살결을 파고들었다. 붉은 피 한 방울이 배어 나오기가 무섭게, 성검의 뜨거운 열기에 증발하며 하얀 김으로 화했다.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영애의 기행에 라인할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미쳤군. 기어이 내 손에 목이 잘리고 싶어 환장한 건가?"

"죽이고 싶었다면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이미 베었겠지요. 대공께서는 지금 내 목숨보다…… 내가 들고 온 이 종이에 더 흥미가 있으실 텐데요."

에일라는 손가락 끝이 얼어붙어 감각이 사라져 가는 와중에도, 품에서 꺼낸 '맹약의 은장' 계약서를 그의 시야 앞으로 당당히 치켜들었다. 불꽃에 그을린 듯한 은색 인장이 벽난로 불빛을 받아 기괴하게 반짝였다.

"이건 단순한 제안서가 아닙니다. 당신과 나, 양측의 파멸을 막아줄 유일한 등가교환의 법칙이죠."

"발루아의 사냥개가 내민 계약서라니, 장난질이 지나치군."

라인할트가 코방귀를 끼며 검을 거두려 했다. 그가 검을 멀리하려 하자, 에일라의 몸을 간신히 지탱해주던 열기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그와 동시에 심장 깊은 곳에서 얼음 가시가 돋아나 폐를 찌르는 듯한 극통이 다시 찾아왔다.

"아…… 윽!"

비명이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오며 에일라의 무릎이 꺾였다. 바닥으로 쓰러지기 직전, 그녀는 이성을 잃고 오직 살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손을 뻗었다.

덥석.

그녀의 서리 낀 차가운 손이 라인할트의 단단한 맨 손목자락을 움켜쥐었다.

치이이이익!

비정상적으로 뜨거운 대공의 체온과 영혼까지 얼어붙은 에일라의 한기가 충돌하며, 두 사람의 살결이 맞닿은 곳에서 하얀 수증기가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극단적인 온도 차가 만들어낸 기이한 통증에 라인할트가 짧은 신음을 흘렸다.

"이, 이게 무슨……!"

그가 본능적으로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에일라는 손톱이 그의 살을 파고들 정도로 악착같이 매달렸다.

신기하게도 그의 손목을 잡은 순간, 온몸을 옥죄던 살인적인 오한이 눈 녹듯 사라지며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던 얼음 장벽이 부드럽게 균열을 일으켰다. 죽어가던 영혼에 따스한 등불이 켜지는 듯한 황홀한 구원의 감각.

하지만 에일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 감각은 구원도, 운명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철저한 '해독 작용'이자 비즈니스의 첫 단계일 뿐이었다.

에일라는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속삭였다.

"황실의 검은 추적자가…… 오늘 밤 나를 독살하려 했습니다. 내일 아침, 내 시체가 발견되면 그 배후로 지목될 사람은 바로 당신, 성휘 기사단장이지요."

라인할트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가 뻗치는 살기가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 독잔의 마개에는 황실 연금술사들만이 새겨 넣는 미세한 균열 각인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증거로 보존해 두었죠. 대공, 당신이 이 덫에서 벗어날 방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에일라는 그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제 입술을 그의 귓가로 가져갔다. 서리 가득한 숨결이 그의 붉게 달아오른 귓가를 스쳤다.

"나와 위장 연애를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그 대가로, 당신의 신성한 불꽃을 내게 바치세요."

라인할트의 청색 눈동자가 겉잡을 수 없는 혼란과 분노로 타올랐다. 그는 그녀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며 제 얼굴을 가까이 밀착시켰다. 숨결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의 목소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나를 이용해 가문에서 벗어나겠다는 속셈인가? 감히 내 신성을 갈취하려 들다니."

"갈취가 아니라 거래입니다, 대공."

에일라는 턱이 으스러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대공 침소의 응접실 문 너머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복도 가득 울려 퍼졌다.

"대공 전하! 발루아 공작가의 기사들이 황실의 긴급 수색 영장을 들고 별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에일라 영애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긴박한 목소리에 라인할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황실의 덫은 이미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인할트는 제 손목을 꽉 쥔 채 숨을 몰아쉬는 에일라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는 죽음 앞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오만하게 빛나며 그를 시험하고 있었다.

과연 이 오만한 악녀는 황실의 사냥개인가, 아니면 자신을 구원할 유일한 열쇠인가.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의 체온이 얽히며 기이한 마력 파동이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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