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송된 서류 봉투가 이사회 대회의실 테이블 한가운데에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두꺼운 가죽 바인더 위로 흩어진 종이들에는 붉은색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최근식 감독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한다. 한 시간 전, 그가 일방적으로 이사회를 소집해 당장 강태성의 선수 자격 박탈 및 영구 제명 가결을 확정 표결에 부치겠다며 고함을 지르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 이게 무슨……!"
최근식이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집어 들려 하자, 태성이 그보다 한발 앞서 서류 더미를 거칠게 내리누른다. 쾅! 둔탁한 파열음이 회의실 가득 울려 퍼지며 이사들의 어깨가 동시에 움츠러든다.
"치우지 마시죠, 감독님. 여기 계신 이사님들도 다 같이 보셔야 할 테니까."
태성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최근식의 핏발 선 눈을 정면으로 꿰뚫는다.
"너, 너 이 새끼!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기자를 끌고 들어와! 당장 경비 불러! 경비!"
최근식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대회의실 문을 가로막고 선 이들은 경비가 아니었다. 카메라 플래시를 연신 터뜨려 대는 스포츠지 기자들과 대한축구협회 진상조사단 마크를 가슴에 단 조사관들이 회의실 내부를 샅샅이 지켜보고 있었다.
"경비 부를 필요 없습니다, 최근식 감독님."
진상조사단 소속의 정장 차림 사내가 차갑게 앞으로 걸어나오며 신분증을 제시한다.
"대한축구협회 공정위원회 진상조사과 소속 김민우 팀장입니다. 최근식 씨, 당신을 고교 유망주 대상 불법 뒷돈 수수 및 대기업 구단 입단 강요 혐의로 긴급 조사합니다."
"조, 조사라니요!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건 음해입니다! 이사장님! 저 녀석이 지금 대행업체랑 짜고 사기를 치는 겁니다!"
최근식은 회의실 상석에 앉아 있는 이사장을 향해 애처롭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평소 최근식의 든든한 뒷배를 자처하며 뇌물을 나누어 먹던 이사장은 이미 싸늘하게 고개를 돌린 뒤였다. 아스널 FC의 수석 스카우터 헨리 켄트가 가져온 500만 파운드(한화 약 80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이적료 합의서와, 실시간으로 지상파 스포츠 뉴스에 뜨기 시작한 최근식의 비리 보도 앞에서는 그 어떤 사학 재단도 방패막이가 되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태성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이사회 테이블 위에 꽂아 둔 서류의 첫 페이지를 들춰 올렸다.
그것은 최근식 감독이 대기업 스카우터들과 은밀하게 주고받은 유망주 학대 혹사 계약 및 불법 뒷돈 거래 내역서였다. 감독실 서랍 깊숙한 틈새에 끼어 있던, 그가 평생을 숨기려 했던 가장 추악한 범죄의 증거물.
"이 서류의 표지, 익숙하시죠?"
태성의 손가락 끝이 누렇게 바랜 계약서 표지를 톡톡 두드렸다.
"청룡고등학교 소속 선수들의 대학 진학 및 프로 이적 권한을 사적으로 매치메이킹하고, 그 대가로 선수당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상세 장부입니다. 여기 제 이름도 있더군요. '강태성: 무릎 상태 불문, 전 경기 90분 풀타임 소화 조항 삽입 필수. 이적료의 40%는 감독 개인 계좌로 송금.' 아주 알뜰하게도 계획하셨습니다."
"이, 이건 조작이야! 난 모르는 일이다!"
최근식의 이빨이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한 회의실에 선명하게 울린다.
"모르신다라."
태성이 피식 웃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탭했다. 회의실 대형 스크린에 최근식이 대기업 고위 관계자와 나누었던 통화 녹취록의 파형이 선명하게 그려지며 음성이 흘러나왔다.
[—강태성이 그 새끼 무릎이 날아가든 말든 무슨 상관입니까? 우승컵만 따오면 몸값은 뛰는 거고, 어차피 프로 가면 1~2년 쓰다 버려질 소모품인데. 계약금만 선입금해 주세요. 제가 애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서라도 출전시킬 테니까.]
녹취 속 최근식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명확하고 잔인했다.
회의실에 동석한 학부모 대표들과 한정훈 코치, 그리고 유진우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특히 유진우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최근식을 쏘아보았다. 늘 귀찮아하고 나약하게만 굴던 진우였으나, 태성이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 주기 위해 어떤 지옥을 버텨 왔는지 알게 된 순간 눈빛이 맹수처럼 변해 있었다.
"저런 인간을…… 우리 감독이라고 믿고 뛰었다니."
한정훈 코치가 깊은 한숨을 쉬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의 눈가에 핏발이 선다.
태성은 담담하게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과거의 삶에서 이 차가운 수렁 속에서 무릎이 완파되어 은퇴해야 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머릿속에서 시스템의 메시지가 선명한 푸른빛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시스템 메시지: 과거의 인과율이 변동됩니다.] [기록된 데이터 분석 완료] - '상대의 물리적 충돌 직전 시도하는 극비의 기하학적 컷백 어시스트' 성공: 수명 충전 배율 3배 공식 완벽 적용. - '박만수의 스터드 들기 동작(치명적 파열 궤적)'의 완벽한 물리적 회피 및 퇴장 유도 완료. - '유진우(A급 수용체 레이더)'와의 호흡을 통한 파괴적인 오프더볼 연계 성공. [환상통 수치: 0% (영구 소멸)] [현재 무릎 내구도: 95% (강철의 상태 유지)]
완벽하다. 더 이상 무릎의 통증도, 과거의 악몽도 존재하지 않는다. 태성은 오직 자신의 실력과 철저한 계산만으로 이 학원 축구의 썩어 빠진 카르텔을 무너뜨렸다. 최근식의 음모에 맞서 경기장 안에서는 기하학적 컷백으로 무릎 수명을 3배로 불렸고, 경기장 밖에서는 놈의 숨통을 끊어 놓을 증거들을 차곡차곡 수집해 왔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었다.
"최근식 감독님."
태성이 마지막 쐐기를 박듯 나직하게 속삭였다.
"당신이 제 무릎을 소모품이라 부르며 비웃을 때, 저는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소모시킬지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법정에서 그 대가를 치르시죠."
"이 개새끼가!"
최근식이 이성을 잃고 태성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태성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옆에 서 있던 한정훈 코치가 거구의 몸으로 최근식의 팔을 낚아채 그대로 바닥에 메쳐 버렸다. 쿵! 단단한 대리석 바닥에 최근식의 몸이 사정없이 처박힌다.
"손대지 마라, 최근식."
한정훈 코치의 목소리는 여태껏 들어본 적 없을 정도로 낮고 무거웠다.
"더 이상 우리 청룡고 아이들을 네 더러운 돈벌이 수단으로 쓰게 두지 않는다. 넌 오늘부로 끝이야."
대기하고 있던 경찰관들과 진상조사단원들이 즉시 회의실 안으로 진입했다. 바닥에 쓰러져 바르바르 떨고 있는 최근식의 손목에 차가운 수갑이 채워진다. 수사관들의 손에 붙잡혀 끌려 나가는 최근식의 뒷모습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그와 결탁해 뒷돈을 받아 챙기던 사학재단의 비리 이사들 역시 줄줄이 수사관들의 손에 연행되기 시작했다.
회의실을 가득 채웠던 무거운 공기가 한순간에 걷히는 기분이었다.
이사장이 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정훈 코치에게 다가왔다. 박쥐 같은 노인네의 얼굴에는 비굴한 미소가 가득했다.
"허허, 한 코치. 아니, 한 감독. 그동안 최근식 감독의 기세에 눌려 자네의 고충을 몰라봤네. 오늘부로 청룡고 축구부의 모든 전권은 한정훈 총감독에게 위임하겠네. 학교 재단 차원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걸세."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한정훈 감독이 태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태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청룡고 축구부는 더 이상 소모품들의 무덤이 아니다. 정당한 땀방울이 대접받는 진짜 그라운드가 된 것이다.
그 순간, 태성의 눈앞에 황금빛 시스템 메시지가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띠링!
[메인 퀘스트: 사학 카르텔 제압 성공!] [청룡고 축구부 권력 정상화 달성.] [최종 보상 수령 완료] - 무릎 내구도 한계치 영구 확장 (+5%) - 자원 보상: '명문 구단 협조 스카우팅 통신' 활성화 가능. (EPL 진출 경로가 최적화됩니다.)
"태성아……."
유진우가 조심스럽게 태성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녀석의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감이 남아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이전의 그 게으른 유진우가 아니었다. 태성이 떠먹여 주는 황금 패스의 맛을 알아버린, 그리고 태성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 춤을 출 준비가 된 진짜 공격수의 눈이었다.
"이제 우리 진짜 영국 가는 거야? 아스널에서 진짜 너 데려간대?"
"가야지."
태성이 진우의 어깨를 툭 쳤다.
"가서 보여줘야지. 진짜 축구가 뭔지."
헨리 켄트가 태성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강태성 선수, 당신의 경기는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비 내리는 우림 경기장에서 보여준 그 기하학적인 패스 궤적과 오프더볼 움직임은 이미 고교 수준을 아득히 초월했습니다. 아스널은 당신을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켄트 씨. 조만간 런던에서 뵙죠."
태성이 켄트의 손을 맞잡으며 힘주어 말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과거의 부상 트라우마를 이겨냈고, 무릎의 수명을 완벽하게 보존했으며, 자신을 쾡한 눈으로 바라보던 동료들을 강제로 각성시켜 승리를 쟁취했다. 그리고 자신을 옭아매던 한국 학원 축구의 썩은 사슬마저 완전히 끊어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세계 최고의 무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폭격하는 일뿐이었다.
회의실을 나온 태성은 청룡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오후의 햇살이 잔디 위로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싱그러웠다. 더 이상 비바람도, 무릎을 짓누르는 환상통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그라운드였다.
태성이 훈련장 중앙에 서서 가볍게 제자리 점프를 했다. 무릎에서 느껴지는 탄력과 힘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95%의 내구도. 이 정도면 EPL의 거친 몸싸움과 템포 속에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아니, 살아남는 것을 넘어 그들을 지배할 수 있다.
"어이, 강태성!"
멀리서 유진우가 공을 몰고 달려오며 소리쳤다.
"한 판 더 해야지! 영국 가기 전에 내 발끝 좀 더 다듬어 줘!"
"공 굴러오는 방향이나 똑바로 보고 뛰어라, 인마."
태성이 피식 웃으며 축구화 끈을 단단히 조여 맸다. 그의 눈앞에 다시 한번 푸른빛의 패스 궤적 상태창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필드 위의 모든 균열과 빛나는 기하학적 선들이 태성의 발끝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세계의 중심에서 나를 기다려라. 내가 간다.
바로 그때였다. 훈련장 입구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정훈 감독과 부원들이 일제히 그곳을 바라보았다.
훈련장 밖으로 마침내 수트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신사 한 명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영국의 보라색 사자가 그려진 씰 문장이 선명하게 찍힌 초대형 공문서 가죽 폴더가 들려 있었다. 아스널의 엠블럼과는 또 다른, 영국 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듯한 보라색 사자 문양.
그 사내의 등장에 아스널의 헨리 켄트마저 안색을 굳히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저 자는…… 프리미어리그 사무국 특별 전권대사?"
수트를 입은 신사가 태성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오며 가슴팍의 공문서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