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터질 듯한 카메라 플래시가 눈앞을 하얗게 난도질한다.

코끝을 찌르는 건 차갑게 식은 마이크의 쇠 냄새와 수십 명의 기자가 뿜어내는 후끈한 열기였다. 서른둘의 강태성은 마이크 대를 꽉 움켜쥐었다. 쇠붙이의 냉기가 손바닥을 타고 올라와 심장까지 얼려버릴 것 같다.

“강태성 선수! 정말 이대로 은퇴하시는 겁니까?” “EPL 데뷔전을 단 하루 앞두고 무릎이 파열됐습니다. 스카우트 비화에 대해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질문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힌다. 태성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바지춤을 꽉 쥔 손가락 끝이 잘게 떨린다.

단 한 번이었다. 그저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부상 없는 온전한 몸으로 저 무서운 잉글랜드의 잔디 위를 질주하고 싶었다.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포효하는 스스로를 매일 밤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지독한 혹사와 사학 재단의 카르텔은 그의 무릎을 진작에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았고, 결국 가장 화려하게 빛나야 할 순간에 십자인대가 완전히 파열되며 모든 꿈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눈물이 툭,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기자의 카메라 플래시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빛의 폭풍이 되어 태성의 시야를 송두리째 삼켜버린다. 귀를 찢는 듯한 이명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삐이이이— 하는 고주파 소음과 함께 공간의 중력이 뒤틀리는 감각이 전신을 덮친다.

숨이 턱 막힌다. 차가웠던 마이크의 감촉이 사라지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텁텁하고 더운 바람이 뺨을 때린다.

“야! 강태성! 너 거기서 뭐 해! 넋 놓고 안 뛰어?”

가래 끓는 듯한 거친 호통 소리가 고막을 때린다.

태성은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매캐한 흙먼지가 허공을 떠돌고 있다. 사방을 둘러싼 건 기자들의 카메라도, 화려한 은퇴식장도 아니었다. 낡은 그물망이 쳐진 청룡고등학교의 흙바닥 연습 경기장이다.

‘뭐지?’

혼란이 뇌리를 스치기도 전에, 익숙하면서도 앳된 얼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녀석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시기하고 괴롭혔던 동료들의 모습이다.

“어버버하지 말고 수비 가담해, 이 새끼야!”

그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극심한 공포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왼쪽 무릎이다. 십자인대가 뚝 끊어지며 뼈와 뼈가 부딪치던 그 지옥 같은 파열음이 환청처럼 뇌를 두드린다.

“아으윽……!”

태성은 비명을 지르며 왼쪽 무릎을 움켜쥐었다. 바닥에 쓰러져 뒹굴고 싶을 정도의 날카로운 통증이 전신을 지배한다. 환상통이다.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부상의 트라우마가 온몸의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힘들다.

바로 그 순간, 태성의 시야 전체가 기묘한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잉크가 물에 퍼지듯 번져나간 빛은 이내 흙먼지 가득한 필드 위로 뻗어나갔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센티미터 단위로 쪼개진 미세한 초록색 격자무늬가 운동장 바닥을 덮는다. 그리고 그 위로, 기하학적이고 정교한 선들이 미끄러지듯 그려지기 시작한다.

‘이건…… 대체 뭐야?’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자신을 향해 굴러오는 축구공의 자전 속도, 공기 저항, 그리고 상대 수비수들의 움직임에 따른 빈틈이 실시간으로 계산되어 선명한 숫자로 표시되고 있었다.

[패스 궤적 상태창 활성화]

머릿속에 기계적인 음성이 울려 퍼진다.

동시에 시야 우측 하단에 붉은색 낙인처럼 찍힌 글자가 번쩍인다.

[무릎 내구도 장부 동기화] - 현재 내구도: 35.2% ※ 경고: 무리한 단독 돌파 및 급제동 시 초당 0.5%의 내구도가 실시간 감쇄합니다. ※ 경고: 내구도가 10% 이하로 떨어질 시 극심한 환상통이 시작되며, 0% 도달 시 즉시 영구적인 은퇴급 부상(십자인대 완파)이 재발합니다. ※ 충전 조건: 오직 이타적인 어시스트 성공 및 팀 승리를 통해서만 내구도를 복구할 수 있습니다.

태성의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35.2퍼센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무릎에 달고 뛰는 꼴이다. 회귀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잔혹한 현실이 목덜미를 낚아챈다. 단독 돌파를 시도하며 혼자서 영웅이 되려 하다가는, 채 두 경기도 뛰지 못하고 다시 무릎이 박살 나 은퇴하게 되리라.

살기 위해서는 패스해야 한다. 내 무릎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 발끝이 아니라, 저 멍청하고 게으른 동료들의 발끝을 이용해 골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태성은 눈을 부릅뜨고 시야에 펼쳐진 기하학적 궤적들을 노려보았다.

저 멀리 하프라인 부근에서 멍하니 서 있는 유진우가 보인다. 재능은 있지만 의지박약에 조금만 압박이 들어와도 경기를 포기해 버리는 나약한 공격수.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녀석이지만, 지금 태성의 눈앞에 있는 상태창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유진우의 발밑 주변으로 흐릿한 수용체 레이더가 깜빡이고 있다.

‘저 녀석에게 찔러넣어야 한다.’

태성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장부의 세부 조항을 훑어내려 가던 그의 눈이 한 군데에서 멈췄다.

[※ 특수 충전 조건: 상대의 강력한 압박이나 물리적 충돌 직전, 예측 불가능한 각도로 꺾어 들어가는 기하학적 컷백(Cutback) 패스로 상대를 완전히 속여 넘기며 어시스트를 기록할 경우, '수명 충전 이자 배율'이 3배로 대폭 증가합니다.]

‘3배 이자라고?’

태성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는다.

단순히 안전한 곳으로 볼을 돌리는 것만으로는 이 갈증 나는 내구도를 빠르게 채울 수 없다. 상대가 숨통을 조여오는 가장 위험한 순간, 그 찰나의 균열을 파고들어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내야만 기적적인 복구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극도의 위험 속에 도사린 거대한 보상.

심장이 요동친다. 무릎의 환상통은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뇌세포 하나하나가 전율하며 깨어나는 기분이다.

“야, 강태성! 멍청하게 서서 뭐 해! 뺏어!”

저 멀리서 최근식 감독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훈련용 조끼를 입은 청룡고 2군 멤버들이 태성을 향해 짓쳐 들어오고 있었다. 태성의 발밑으로 굴러온 볼.

태성은 가볍게 볼을 잡아두었다.

보통의 고교생이라면 압박감에 눈이 뒤집혀 롱볼을 걷어내거나 백패스를 선택했을 타이밍이다. 하지만 태성의 시야에는 이미 세 갈래의 초록색 레이저 선이 그어져 있었다. 수비수 세 명의 무게 중심이 쏠리는 방향, 움직임의 속도,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수비 블록 사이의 미세한 틈새가 백분의 일 초 단위로 쪼개져 뇌리에 입력된다.

그야말로 억 단위의 슈퍼컴퓨터가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것 같은 압도적인 감각이다.

“어설픈 새끼가 까불고 있어!”

태성을 향해 달려드는 수비수들의 얼굴에 비열한 미소가 걸려 있다. 특히 청룡고의 주전 수비수이자 시기심으로 똘똘 뭉친 박만수가 태성을 죽일 듯한 기세로 다가오고 있었다.

박만수의 시선은 공이 아니라 태성의 왼쪽 무릎을 향해 있었다.

거친 몸싸움으로 주전 경쟁자를 짓밟아버리겠다는 노골적인 살기.

태성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두려움에 굴러오는 공을 피해 도망쳤을 것이다. 무릎의 통증과 트라우마에 갇혀 스스로 무너졌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초록색 패스 궤적 선 하나가 박만수의 가랑이 사이를 뚫고, 저 멀리 페널티 박스 안으로 완벽하게 꺾여 들어가는 기하학적 루트를 그려낸다.

태성이 디딤발을 딛는 순간, 시야 우측 하단의 붉은 장부가 사정없이 점멸했다.

[내구도 감쇄 시작!]

수치가 미세하게 깎여 나간다.

35.2%에서 35.1%로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박만수가 거친 슬라이딩 태클을 가해왔다. 흙먼지가 폭풍처럼 일며 쇠로 된 스터드가 태성의 정강이를 향해 무자비하게 날아든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비상 경고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위험! 물리적 충돌 경로 감지!] [내구도 급감 위험!]

태성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달려드는 박만수의 타이밍을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 상체를 들이밀었다. 충돌 직전, 수명 충전 배율 3배를 획득하기 위한 극한의 베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쇠 스터드가 정강이뼈를 부수기 직전의 궤적으로 밀려든다. 박만수의 눈에 서린 독기가 일렁인다.

태성은 물러서는 대신 몸을 더 낮춘다. 왼쪽 디딤발에 체중을 싣는다. 욱신거리는 무릎 관절이 비명을 지르며 짓눌린다.

[내구도 감쇄: 34.9%] [내구도 감쇄: 34.6%]

숫자가 피 흘리듯 깎여 나가는 순간, 태성의 오른발 끝이 번개처럼 움직인다. 공의 윗부분을 밟아 뒤로 강하게 끌어당기는 드래그백. 그리고 디딤발의 축을 180도 회전시키며 몸을 비틀어 꺾는 컷백 동작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각도.

박만수의 태클이 태성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허공의 흙먼지를 거칠게 가른다. 콰당탕! 제어력을 잃은 박만수가 바닥을 구르는 사이, 태성의 발끝을 떠난 공은 기하학적인 초록색 선을 타고 잔디를 찢으며 뻗어나간다.

박만수의 가랑이 사이, 그리고 슬라이딩을 시도하던 또 다른 수비수의 옆구리 틈새를 정밀하게 통과하는 궤적이다.

“뭐, 뭐야?!”

벤치에 서 있던 한정훈 코치의 입에서 거친 탄성이 터진다.

공은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페널티 박스 정면을 향해 굴러간다. 그곳에는 여전히 흐리멍덩한 눈으로 서 있던 유진우가 있다.

“유진우!”

태성이 목청이 터져라 소리친다. 목에 핏대가 솟구치고 눈발이 붉게 충혈된다.

“발만 갖다 대, 이 새끼야!”

차가운 폭언에 가까운 호통이다. 유진우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찔한다. 뇌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녀석의 발밑에서 흐릿하게 점멸하던 ‘A급 수용체 레이더’가 순식간에 선명한 초록빛으로 타오른다.

유진우가 본능적으로 오른발을 질질 끌며 앞으로 뻗는다.

하지만 완벽한 기회 뒤에는 언제나 가혹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무리하게 180도 회전하며 디딤발을 지탱했던 태성의 왼쪽 무릎에서 툭, 하는 기분 나쁜 마찰음이 울린다.

“으욱……!”

태성은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흙바닥 위로 쓰러졌다.

무릎을 칼로 난도질하는 듯한 환상통이 다시금 전신을 지배한다. 눈앞이 하얗게 흐려지는 와중에도 우측 하단의 붉은 창은 사정없이 경고를 띄우고 있었다.

[경고: 무릎 내구도 급감! 현재 내구도 31.2%] [경고: 내구도가 30% 이하로 떨어질 시 2단계 환상통(근육 경련 및 마비)이 발생합니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려 흙먼지와 뒤섞인다.

공은 유진우의 발끝에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

하지만 그 순간, 구르고 일어난 박만수가 이성을 잃은 눈으로 태성이 아닌, 유진우의 디딤발을 향해 다시 한번 살인적인 태클을 감행하려 몸을 날린다. 박만수의 눈에는 질투와 분노가 가득 차 있다.

“안 돼……!”

태성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린다. 저 태클이 성공해 유진우가 넘어지거나 골을 넣지 못한다면, 깎여 나간 내구도는 영영 복구할 수 없다. 31.2%의 수치에서 30% 이하로 떨어지는 순간, 이 필드 위에서 다리를 쓰지 못하는 불구의 상태로 처박히게 된다.

유진우의 슛인가, 박만수의 살인 태클인가.

찰나의 순간, 유진우가 겁을 먹고 주춤하며 발끝이 공을 때리기 직전, 태성의 눈앞에 있는 상태창이 붉게 점멸하며 전혀 예상치 못한 시스템 메시지를 띄우기 시작한다.

[알림: 수용체의 멘탈 붕괴 징후 감지. ‘악마의 지휘법’ 강제 각성 프로토콜을 가동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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