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석의 강타자가 태오의 연속 8구째 101마일(162.5km) 역회전 포심에 배트를 돌리지도 못한 채 멍하니 루킹 삼진을 당하자 단상 위 전원이 자리를 이탈해 기립했다.
퍼억-!
포수 미트가 찢어질 듯한 파공음이 고척돔의 거대한 돔 천장을 때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101마일. 전광판에 새겨진 붉은 숫자는 비현실적일 만큼 선명했다. 타자는 배트를 어깨에 얹은 그대로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공이 미트에 박히는 그 찰나의 순간, 궤적이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타자의 얼굴을 향해 무섭게 솟구치며 안쪽으로 휘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궤적을 쫓을 수 없는 기적의 무브먼트였다.
"이명... 또 시작이군."
태오는 턱 끝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땀방울을 훔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머릿속을 송곳으로 헤집는 듯한 고주파 음이 귓전을 날카롭게 찔렀다. 이이이이이잉-. 고막을 진동시키는 청각적 노이즈와 함께 시야가 붉은빛으로 깜빡였다. 망막 위에 떠오른 피칭 장부의 붉은 경고창이 어지럽게 명멸했다.
[심각한 오류: 종속(Late Life) 수치와 수평 무브먼트의 강제 비대칭 조절로 인한 과열 위험!] [경고: 신체 인과율 한계 초과. 내구 자산 영구 차감 위험 발생!] [현재 어깨 내구 자산: 83.22% (지속적인 과부하 시 영구 손상 가능)]
162.5km의 속도로 날아가며 40cm 이상 꺾이는 마구를 던지기 위해 장부의 슬라이더 바를 임계점 너머로 비틀어 놓은 대가였다. 오른쪽 어깨 깊은 곳에서 불붙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솟구쳤다.
태오는 어금니를 사정없이 깨물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퍼졌다. 관중석의 엄청난 함성 소리조차 이 거대한 소음 뒤로 멀어졌다. 그는 왼손으로 마운드의 흙을 가볍게 쥐었다 놓으며 호흡을 골랐다. 드러나서는 안 된다. 이깟 통증 따위에 흔들리는 모습을 단 한 줌이라도 보인다면, 저 굶주린 하이에나 같은 스카우터들에게 약점을 잡히게 된다.
태오는 고개를 들어 관중석 최상단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KBO 야구협회 이사장진과 서울 타이탄즈의 송 단장이 기가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 음기 서린 늙은 얼굴 가득 사색이 된 에이전트 윌리엄 해리슨이 보였다. 해리슨의 손에 들린 특수 위성 단말기가 기괴한 붉은빛을 뿜어내며 태오의 투구 데이터를 수집하려 발악하고 있었다.
태오가 그들을 향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조소였다.
"태오 강...!"
해리슨이 단말기 액정을 거칠게 문지르며 비틀거렸다. 그가 준비했던 정밀 바이오 데이터 수집기는 태오의 부상 이력과 근육 피로도를 실시간으로 역추적해 '어깨 시한부 판정'을 내리려던 정밀한 음모였다. 그러나 태오의 피칭 장부는 해리슨의 기계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전송된 데이터는 오직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무결점의 궤적만을 가리킬 뿐이었다.
"말도 안 돼... 저 투구 폼에서 어떻게 어깨 부하 수치가 제로로 나오는 거지? 분명히 한계에 도달했을 텐데!"
해리슨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때, 타이탄즈의 송 단장이 관중석 난간을 붙잡고 소리쳤다. 그의 손에는 KBO 협회의 공식 직인이 찍힌 공문서가 들려 있었다.
"강태오! 네 마음대로 미국 구단들과 접촉하는 건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KBO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은 해외 진출은 2년간 자격 정지야! 미국으로 가더라도 넌 마운드에 서지 못해!"
송 단장의 목소리에 장내의 열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메이저리그 단장들과 스카우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괴물 같은 재능이라 한들, 법적인 분쟁에 휘말려 마운드에 서지 못하는 투수에게 수천만 달러를 베팅할 구단은 없었다.
해리슨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다시금 피어올랐다.
"그렇지. 한국 협회의 승인 없이는 넌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해. 결국 내 손을 잡고 조용히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단 말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마운드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재이가 서류 가방을 열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의 구두 굽 소리가 적막한 돔 구장에 또렷하게 울렸다. 재이의 뒤편으로 메이저리그 전문 로펌의 변호사 세 명이 엄숙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그 하찮은 공문서, 이제 찢어버리시는 게 좋을 겁니다. 송 단장님."
재이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가 서류 한 장을 들어 올려 송 단장과 해리슨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이게 뭐 어쨌다는 건가? 일개 고등학생의 신분증 따위가..."
"도미니카 공화국 국가 영주권, 그리고 스위스 법인 명의의 에스크로(Escrow) 신탁 계좌 개설 확인서입니다."
재이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에 해리슨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도, 도미니카 영주권...? 에스크로 신탁이라고?!"
"그렇습니다."
재이가 서류를 송 단장의 가슴팍에 툭 던지듯 안겨주었다.
"강태오 선수는 72시간 전으로 한국 아마추어 협회 등록을 공식 탈퇴했습니다. 동시에 도미니카 공화국의 특별 체육 영주권을 취득했죠. 법적으로 강태오 선수는 한국 아마추어 선수가 아닌, '제3국 소속의 독립적 국제 자유 계약(FA) 상대자'로 분류됩니다. KBO의 드래프트 규정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국제 유망주 계약금 캡(Cap) 제한 조항도 적용되지 않는 완벽한 법적 자유 신분이라는 뜻입니다."
"말도 안 돼! 그런 편법이 통할 줄 아느냐!"
송 단장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손은 이미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편법이 아니라 합법적 세법 우회입니다."
재이의 변호사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모든 계약금은 스위스에 설립된 강태오 선수의 1인 페이퍼 컴퍼니와 에스크로 계좌를 통해 투명하게 거래됩니다. 미국 국세청(IRS)의 승인까지 완료된 상태입니다. 한국 야구협회가 주장하는 그 어떤 연고권도, 징계 권한도 이 계약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법적으로 말이죠."
해리슨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시아의 가난한 고등학생을 헐값에 후려쳐 자신의 노예 계약 쇠사슬에 묶으려던 계획이 철저하게 박살 났다. 태오는 처음부터 해리슨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복잡한 독소 조항과 국제 계약 패널티의 허점을 역으로 이용해, 자신을 완벽한 '무법의 포식자'로 가공해 낸 것이다.
태오가 마운드 위에서 해리슨을 내려다보았다. 눈부신 조명 불빛이 그의 날카로운 콧날과 단단한 턱선을 비추었다.
"내가 말했지. 당신들이 만든 그 하찮은 울타리, 내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없다고."
그 선언이 떨어지기 무섭게, 관중석의 침묵이 깨졌다. 계약의 걸림돌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직감한 메이저리그의 거물들이 야수처럼 포효했다.
"5년 7천만 달러! 즉시 계약금 1,500만 달러 보장!"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단장이 단상 난간을 붙잡고 소리쳤다.
"우리는 8천만 달러에 전담 트레이닝 팀 지원을 약속하겠소! 지금 즉시 사인합시다!"
뉴욕 양키스의 단장이 달러 수치를 적은 메모지를 허공에 흔들었다. 수천만 달러의 자본을 쥔 메이저리그의 포식자들이, 이제는 강태오라는 압도적인 재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는 하이에나로 돌변해 있었다. 계약 경쟁의 판도가 완전히 강태오의 손아귀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열광적인 도가니 속에서, 포수 송우진이 마운드로 뛰어 올라왔다. 그의 얼굴은 흥분과 감격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태오야! 들었어? 저 사람들이 부르는 금액 들었냐고!"
우진이 태오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손바닥을 통해 태오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우진은 굳이 묻지 않았다. 태오가 이 마구를 던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삼켜왔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만이 태오의 공을 받아낼 수 있는 유일한 포수라는 자부심이 그의 심장을 터질 듯이 뛰게 만들었다.
"우진아."
태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명이 점차 잦아들며 장부의 경고창이 사라지고 있었다.
"공 가져와."
우진이 미트 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공인구를 꺼내 태오에게 건넸다. 101마일의 강속구와 무중력 궤적의 마구를 받아내느라 실밥이 팽팽하게 늘어난 공이었다.
태오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매직을 꺼내 공 표면에 거침없이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펜을 우진에게 넘겼다.
"너도 써."
"어...? 나도?"
"우리 배터리잖아. 메이저리그에 같이 갈 파트너의 서명이 빠지면 쓸모없지."
우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강태오의 이름 바로 옆에 자신의 이름을 꾹꾹 눌러 적었다. '송우진'. 두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야구공이 조명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던져. 우리가 어디로 갈지, 저들에게 똑똑히 보여주는 거야."
태오의 말에 우진이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은 공을 쥔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고척돔을 가득 메운 메이저리그 단장석을 향해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하얀 포물선이 허공을 갈랐다. 그것은 단순한 야구공이 아니었다. 한국 야구의 구시대적인 혹사 카르텔을 부수고, 세계 최고의 무대로 승천하는 젊은 제왕들의 선전포고였다.
"와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서 폭발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스카우터들이 그 공을 잡기 위해 몸을 던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난장판을 뚫고, 관중석의 가장 은밀한 VIP 구역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주변의 소음이 그가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감색 스트라이프 수트를 완벽하게 차려입은 사내. 그의 가슴팍에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고결하고 오만한 엠블럼, 뉴욕 엠파이어스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뉴욕의 실질적인 지배자이자, 메이저리그 최대 부사장이 직접 마운드 앞으로 걸어온 것이다.
그는 패배감에 젖어 흐느끼듯 서 있는 해리슨을 먼지처럼 무시하며 지나쳤다. 그리고 태오의 앞에 멈춰 섰다.
사내의 손에는 최고급 악어가죽으로 제작된 펜 케이스와 두꺼운 양식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만년필을 꺼내 태오에게 내밀었다.
"Mr. 강."
부사장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감은 마운드 전체를 짓눌렀다.
"수많은 구단이 숫자를 외치고 있지만, 우리 뉴욕은 품격을 제안합니다. 여기 이 종이에 당신이 원하는 숫자를 적으십시오. 소수점 아래 첫째 자리까지, 당신이 부르는 그 어떤 금액이든 우리는 즉시 보증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가 내민 수천억 가치의 백지 계약서가 태오의 눈앞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태오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미해결된 계약의 마지막 조각이 마침내 그의 손끝에 닿으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