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폭풍우가 지나간 숲의 아침은 눈이 시릴 정도로 맑은 살구빛으로 물들어갑니다. 나뭇잎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들이 따스한 아침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고, 당신의 발치에는 밤새 추위에 떨던 새끼 여우들이 새근새근 숨을 쉬며 단잠에 빠져 있습니다. 날개가 꺾였던 파랑새는 어느새 기운을 차렸는지, 당신이 만들어 준 임시 둥지 위에서 조심스레 깃털을 고르고 있습니다.

간이 대피소의 틈새로 불어오는 이른 아침의 공기는 제법 서늘하지만, 당신의 손끝에 닿는 작은 나무 조각들은 여전히 다정한 온기를 품고 있습니다. 어젯밤, 폭풍우 속에서 떨고 있던 생명들을 품어 안으며 당신은 문득 깨닫습니다. 도시의 아늑한 아틀리에에도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많았지만, 이 거칠고 드넓은 야생 구석구석에는 도움의 손길조차 닿지 못한 채 소멸해가는 영혼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말입니다.

—내가 머물러야 할 곳은 단지 사방이 막힌 나무 공방만이 아닐지도 몰라.—

당신은 품안에 소중히 간직해 온 오래된 가방을 열어봅니다.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반드럽게 닳은 짙은 갈색의 조각 연장들이 저마다의 미세한 온기를 뿜고 있습니다. 나무를 만지고 다듬어 영혼들의 상처를 메워주던 기적. 그것은 아틀리에라는 공간이 주는 힘이 아니라, 상처받은 외로움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당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짐은 가볍습니다. 부드러운 양모 담요 한 장과 온기 가득한 보온병, 그리고 날 선 조각칼들이 담긴 가죽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발치에서 잠을 깨어 올려다보는 여우들의 눈망울이 아침 이슬처럼 투명하게 빛납니다. 당신은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아, 그들의 작은 머리를 조심스레 쓸어내려 줍니다. 손바닥을 통해 영혼의 온기가 아련하게 전해져 옵니다.

"이젠 걱정하지 마렴. 너희들의 숲은 다시 따뜻해질 테니까."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대피소를 나서는 당신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안개 낀 숲길 저편, 황금빛 햇살이 길게 뻗어나가며 당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따스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곳에 숨어 우는 상처 입은 영물들을 위해, 당신은 기꺼이 길 위의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등 뒤에 메인 가방이 든든한 무게감으로 주인의 어깨를 지탱해 줍니다.

이제 또 다른 기적을 만들기 위한, 아주 다정하고도 따뜻한 여정이 비로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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