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위이이이이잉!

흉골 절개용 전기톱(Sternum Saw)이 회색빛 뼈를 가르고 들어가는 순간, 사방으로 비산한 혈액이 백강현의 투명 페이스 쉴드를 붉게 물들였다. 시야가 핏빛으로 번진 찰나, 망막 우측 하단에 떠오른 시스템 경고창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위기: 시스템 내부 잔여 활성 지속 게이지 급감!] [사용자의 뇌 신경 과부하가 임계치를 초과했습니다. 시스템 유지 시간이 단축됩니다.] [9분... 8분 42초... 8분 11초...]

머릿속을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극심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귓가에는 고주파 이명이 삐 소리를 내며 고막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두개 내압(ICP)은 이미 안전 범위를 한참 벗어난 상태였다. 맥박이 요동치고 호흡이 가빠왔지만, 강현은 오른손에 쥔 톱의 진동을 억누르며 단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일직선으로 흉골을 절개했다.

쩍, 하는 불쾌한 파열음과 함께 이진우의 가슴이 양옆으로 벌어졌다.

"리트랙터(Retractor, 견인기) 걸어. 벌려라."

강현의 낮고 건조한 명령에 임민준이 신속하게 기구를 걸어 흉강을 확장했다. 시야가 확보되자마자 드러난 내부의 형상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종격동 전체가 암적색 피바다였다. 심낭 내부에서 뿜어져 나온 고압의 혈류가 수술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석션(Suction, 흡인기) 두 라인 다 이쪽으로 대."

피를 빨아들이는 금속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붉은 액체를 삼켜댔지만, 출혈 속도가 흡인 속도를 압도했다. 심장 우심방 전벽에서 가늘게 뿜어져 나오는 동맥성 출혈. 전대맥과 우심방 사이의 간극이 완전히 찢어져 있었다. 국내 임상 가이드라인에 등재된 통상적인 봉합 방식으로는 기형적으로 얇아진 혈관벽이 실의 장력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찢어질 게 자명했다.

"인공 패치 준비해."

강현의 시선이 한채은을 향했다. 한채은은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멸균 대 위의 특수 인공판을 집어 들었다.

"백 선생, 이 두께의 조직에 일반적인 문합을 시도하면 벽이 버티지 못해요. 조직이 이미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합니다."

"알아. 그래서 가이드라인대로 안 해."

강현의 목소리에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의 좌측 안구는 이미 실핏줄이 터져 붉은 검은색에 가까운 혼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시야의 왼쪽 절반은 짙은 먹지를 대놓은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점 상태였다. 남은 우측 시야 위로 시스템이 가리키는 환자의 실시간 데이터가 주식 호가창처럼 어지럽게 나열되었다.

[환자 이진우 (29세, 남성)] [상태: 전대맥 우심 간극 파열 및 심낭 압전] [실시간 생존율: 0.8%] [해부학적 특이성 검출: 우상대정맥 후벽 관통 기형 부동맥(Anomalous artery) 확인]

그 순간, 강현의 뇌리에 번개 같은 기억이 스쳤다.

3년 전,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유상일의 의료 사고. 하이브리드 12층 특수 수술실 구형 백업 서버 드라이브 깊숙한 곳에서 임민준과 함께 찾아냈던 원본 로그 파일의 데이터가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재구성되었다. 유상일은 당시 환자의 우심방 후벽에 숨겨져 있던 2밀리미터 두께의 기형 부동맥 변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메스를 댔다가 대량 출혈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과실을 감추기 위해 간호사에게 특정 응고 인자 약제를 의도적으로 누락 인도하도록 지시했던 녹취록까지, 모든 증거가 가리키던 그 '기형 변이 혈관'이 지금 눈앞의 환자 이진우의 가슴 안에도 똑같이 존재하고 있었다.

유상일이 실패하고 덮어버렸던 그 죽음의 덫이, 지금 이진우의 심장 뒤편에서 교묘하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동맥 변이가 있어. 유상일이 3년 전에 놓쳤던 바로 그 기형 부동맥(Anomalous artery)이다."

강현의 입에서 흘러나온 조용한 진단에 임민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예? 설마 그때 그...!"

"우상대정맥 후벽을 지나 우심방으로 들어가는 변이 혈관이다. 일반적인 박리식으로는 접근하는 순간 터진다. 외국 학회에서 최근 발표된 실시간 성형 문합 기법(Custom-molded Patch Angioplasty)을 쓴다. 인공판을 이 자리에서 직접 미세 절제해 심장 형태에 맞춰 성형한 뒤 직접 문합한다."

"그건 국내 임상 허가가 아직 나지 않은 방식이잖아요! 만에 하나 잘못되면..."

"안 잘못돼."

강현이 한채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내가 할 거니까."

극도의 오만함 뒤에 숨겨진 철저한 이성. 한채은은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녀는 즉시 특수 가위를 들어 강현의 손끝이 가리키는 형태대로 인공 패치를 미세하게 재단하기 시작했다.

"수혈 가압해."

강현의 지시에 임민준이 마른침을 삼키며 수혈 펌프의 다이얼을 최대로 돌렸다.

"가압 시작합니다! 300mmHg 유지!"

치익,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가온 수혈기에서 붉은 혈액이 빠른 속도로 환자의 체내로 밀려 들어갔다. 환자의 혈압 모니터가 비명처럼 신호음을 뱉어냈다.

[BPM 145, BP 55/35, SpO2 72%]

"백 선생, 혈압이 너무 낮아요! 수혈 속도가 출혈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임민준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멸균 마스크 위를 적셨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강현의 칼끝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강현의 수술 동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정확히 피가 솟구치는 부위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석션 팁을 밀어 넣었다. 3년 전 겁쟁이였던 전공의 임민준은 이제 없었다. 그는 강현의 호흡을 완벽하게 읽어내는 일류 어시스트로 변모해 있었다.

강현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어오는 감각이 느껴졌다. 마비 진행률 95%. 손끝의 미세한 감각이 둔해지는 순간은 의사로서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포인트를 쓴다.'

강현이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잔류 포인트: 1,850 Point] [소모 포인트: 1,850 Point - 오른손 신경 일시 완전 해제 적용] [신경 유지 시간: 5분]

짜릿한 고압 전류가 오른손 손목을 타고 손가락 끝까지 관통했다. 굳어 있던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기적처럼 부드럽게 풀렸다. 감각이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뇌압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듯이 꿈틀거렸다.

"5-0 프롤린(Prolene, 비흡수성 봉합사) 줘."

강현의 손가락이 포셉과 바늘 홀더를 거머쥐었다. 그의 움직임에는 단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었다.

바늘 끝이 이진우의 우심방 전벽, 찢어지기 쉬운 얇은 조직을 파고들었다. 통상적인 써전이라면 감히 바늘을 찌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얇고 흐물거리는 조직이었다. 강현은 인공 패치를 그 위에 대고, 우심방의 박동 주기에 맞춰 바늘을 통과시켰다.

슥. 슥.

수술실 내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오직 가쁜 숨소리와 모니터의 기계음만이 공명할 뿐이었다.

강현의 바늘놀림은 광속에 가까웠다. 실시간 성형 문합 기법은 패치의 장력 분산이 핵심이었다. 한 땀이라도 너무 강하게 당기면 조직이 찢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그 사이로 대량의 출혈이 발생해 환자는 즉사한다.

[생존율: 0.8% -> 1.2%]

망막 위의 붉은 숫자가 소수점 단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셉 고정해."

강현의 짧은 지시에 한채은이 패치의 끝부분을 흔들림 없이 잡아주었다. 강현은 두 번째 땀을 떴다. 바늘이 기형 부동맥의 기부(Origin)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3년 전 유상일이 건드려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 금기의 영역이었다. 강현은 백업 서버에서 확보한 로그 데이터의 수치를 머릿속으로 완벽히 시뮬레이션하며, 그 기형 혈관의 정확한 깊이와 각도를 3차원 입체 그래픽처럼 뇌 속에 그렸다.

바늘 끝이 기형 혈관의 외막만을 아주 미세하게 스치며 지나갔다. 소름 끼칠 정도로 정교한 궤적이었다.

[생존율: 1.2% -> 3.5%]

"어... 올라갑니다! 혈압 잡히기 시작합니다!"

임민준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BPM 120, BP 75/48, SpO2 85%]

죽음의 구렁텅이에 발을 들이밀고 있던 육신에, 강현의 손끝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실선들이 새로운 생명의 길을 짜 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수술이 아니었다. 붕괴해 가는 생명의 시스템을 의학적 통계와 천재적인 감각으로 재조립하는 창조의 과정에 가까웠다.

한 땀. 찢어진 우심방의 벽이 인공 패치와 완벽하게 밀착되었다. 두 땀. 기형 부동맥에서 새어 나오던 미세 출혈이 완벽히 통제되었다.

[생존율: 3.5% -> 8.1%]

모니터의 심전도 그래프가 불규칙한 세동을 멈추고, 느리지만 일정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술실 안의 의료진들 사이에서 억눌린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도저히 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생존율 0%의 환자가 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강현의 내부는 붕괴하고 있었다.

"백 선생... 눈에서 피가...!"

한채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강현은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의 왼쪽 눈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볼을 타고 마스크를 적시고 있었다. 두개 내압(ICP) 수치가 뇌 신경의 한계를 넘어섰음을 경고하듯, 귀가 먹먹해지며 주변의 소음이 물속에 잠긴 것처럼 아득하게 멀어졌다.

[위기: 뇌 신경 부하 임계값 120% 돌파!] [좌측 시각 신경의 영구적 손상 위험 감지!] [잔여 신경 유지 시간: 1분 15초.]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던 시스템의 수치들이 지지직거리며 깨지기 시작했다. 우측 시야마저 흐릿해지며 초점이 흔들렸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손끝의 감각뿐이었다.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우심방과 심실 연결망을 잇는 가장 치명적인 미세 실 연결. 이 부위의 봉합이 완료되어야만 인공 패치가 심장의 거대한 압력을 견뎌내고 완전히 가동할 수 있었다.

강현은 숨을 멈췄다.

바늘 홀더를 쥔 오른손 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보이지 않는다면, 느껴야 했다. 3년 동안 어둠 속에서 수만 번을 반복했던 그 감각이 그의 손바닥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었다.

바늘 끝이 마지막 조직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나아갔다.

조직의 미세한 저항감이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바로 그 순간.

툭.

강현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둔탁한 충격음이 울렸다.

동시에, 그의 좌측 눈동자를 가득 채우고 있던 붉은 핏빛 너머로 완전히 두껍고 검은 어둠의 장막이 무자비하게 내려앉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측 시야마저 암흑 속에 완전히 잠겨버린, 완벽한 암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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