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의 축구화 밑창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정강이뼈를 그대로 으스러뜨릴 기세로 날아드는 무모하고 파괴적인 양발 크러시 태클. 공과는 무관한, 오직 디딤발의 무릎 관절을 파괴하겠다는 명백한 악의가 실린 궤적이었다.
찰나의 순간, 강태오의 망막 위로 붉은색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폭발하듯 명멸했다.
[경고: 왼쪽 무릎 관절 부하 급증 예측] [안상태 충격 수치: 87% (반월판 완파 및 전방십자인대 파열 위험)] [장부 한도 내 긴급 대환을 권장합니다.]
피할 시간은 없었다. 0.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에 뇌를 잠식하는 것은 공포가 아닌 극도의 냉정함이었다. 전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던 그 지독한 부상의 악몽이 눈앞에서 되살아나려 하고 있었다. 태오는 송곳니가 짓눌릴 정도로 어금니를 악물며 머릿속의 장부를 강제로 열어젖혔다.
‘대환해.’
[‘근골 순간 경사 대환(瞬間傾斜代換)’을 구동합니다.] [좌측 무릎의 수직 충격 하중을 전신 슬라이딩 회전 에너지로 강제 변환합니다.] [부하율 85% 차입 발생. 신경 내구도 소모 급증.]
그와 동시에 태오는 이미 장부 안에 잠들어 있던 또 다른 자산을 일깨웠다. 지난 경기에서 팀 동료 한준우의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에 누적되어 있던 적색 피로 신호를 전량 흡수해 보관해 두었던 고순도 에너지 자산이었다.
[보관된 자산: ‘한준우의 십자인대 부하’] [대환 적용: 임시 킥력 버프 ‘강골의 격발(鋼骨擊發)’ 활성화!] [오른쪽 발목 및 대퇴사두근 순간 수축력 150% 증가.]
쿵!
지면에 박혀 있던 태오의 왼쪽 디딤발이 박성민의 단단한 축구화 스터드와 부딪치는 순간, 뼈와 뼈가 부딪쳐 으스러지는 둔탁한 파열음 대신 기묘한 마찰음이 그라운드를 가르며 울렸다.
태오는 무릎 관절의 긴장을 완전히 제로(0)로 풀었다. 뼈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가해지는 충격의 벡터를 그대로 받아들여 몸을 회전시키는 축으로 삼았다. 충격 에너지는 순식간에 회전력으로 대환되어 태오의 몸을 공중으로 붕 떠올렸다.
박성민의 양발은 허공을 갈랐다. 가속도를 제어하지 못한 박성민의 몸이 잔디 위를 사정없이 미끄러져 나갔다.
하지만 태오는 바닥에 쓰러지지 않았다. 공중에서 팽이처럼 한 바퀴 반을 회전한 그의 시야에, 한준우가 성도고의 측면을 허물고 올려준 크로스가 굴절되어 페널티 박스 중앙으로 느리게 낙하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착각 속에서 낙하지점이 선명한 황금빛 궤적으로 뇌리에 박혔다.
‘지금이다.’
오른쪽 다리가 채찍처럼 뒤로 꺾였다. [강골의 격발] 버프가 대퇴사두근을 한계까지 팽창시켰다. 근육이 터질 듯한 압박감 속에서, 태오는 공중에서 몸을 가로누우며 붕 떠올랐다. 완벽한 아크로바틱 오버헤드킥의 자세였다.
허공을 가르는 오른발 끝에 낙하하던 공이 얹혔다.
콰앙-!
경기장 전체를 뒤흔드는 파열음이 일었다. 태오의 발등에 제대로 얹힌 공은 물리적인 법칙을 무시한 듯한 무시무시한 속도로 뻗어 나갔다. 성도고 골키퍼가 손을 뻗는 시늉조차 하지 못한 궤적이었다.
펄럭!
공은 성도고의 골망 구석을 찢어발길 듯이 박힌 뒤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스코어 2 대 2. 동점골이었다.
태오는 부드럽게 잔디 위로 굴러 내리며 충격을 분산시켰다. 장부가 계산해 낸 완벽한 역학적 낙법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태오의 무릎은 멀쩡했다. 오히려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투지가 그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골!!! 강태오! 기적 같은 동점골입니다! 이 무슨 아크로바틱한 슈팅입니까!”
중계석의 캐스터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다. 관중석은 순식간에 폭발적인 함성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그라운드 위의 열기는 감동이 아닌 험악한 대치로 바래고 있었다.
“야! 너 미쳤어?! 이 살인마 새끼야!”
한준우가 성도고의 박성민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갔다. 평소의 순하고 우직한 모습은 간데없었다. 준우는 쓰러져 있는 박성민의 덜미를 움켜쥐며 거칠게 밀쳐냈다.
“공이랑 상관도 없는 위치에서 다리를 담가? 네가 그러고도 축구 선수야? 어!”
“이거 놔! 놔 보라고!”
박성민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준우의 팔을 뿌리치려 발버둥 쳤다. 양 팀 선수들이 순식간에 엉켜들며 거친 몸싸움이 벌어졌다. 벤치에 있던 교체 선수들과 스태프들까지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오기 일보 직전이었다.
준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박성민을 쏘아붙인 뒤, 즉시 몸을 돌려 태오에게 달려왔다. 그의 눈에 깊은 우려와 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
“태오야! 괜찮아? 무릎은? 디딤발 완전히 꺾인 거 같았는데…….”
준우의 손이 태오의 왼쪽 무릎을 더듬었다. 태오는 가볍게 제자리에서 뛰어 보이며 준우의 어깨를 툭 쳤다.
“멀쩡해. 네 걱정이나 해.”
“어……? 진짜 괜찮은 거야? 방금 박성민 그 새끼 태클 깊이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준우는 제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태오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준우는 자신의 다리에 기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매 경기 후반전만 되면 시큰거리고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했던 오른쪽 무릎의 십자인대 부근이, 지금 이 순간에는 거짓말처럼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깃털처럼 가볍고 단단한 감각뿐이었다.
그것은 불과 몇 경기 전, 태오가 장부의 기능을 이용해 준우의 무릎에 누적되어 있던 파열 리스크를 전량 자신의 킥 버프로 대환해 흡수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준우는 알 리 없었지만, 그의 무릎은 태오의 보이지 않는 ‘장부 경영’ 덕분에 완벽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 무릎 걱정할 시간에 다음 플레이나 준비해. 아직 경기 안 끝났으니까.”
태오의 덤덤한 목소리에 준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를 향한 경외감이 그의 가슴 속에서 묵직하게 피어올랐다. 이 친구는 자신과 차원이 다른 세계를 보고 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주심이 거친 호각 소리를 내며 대치 중인 선수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주심의 얼굴은 단호하게 굳어 있었다.
삐이이익-!
주심은 뒷주머니로 손을 뻗었다. 박성민은 잔디 위에 주저앉아 억울하다는 듯 양손을 가로저으며 시뮬레이션 액션을 취하려 했다.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라는 듯한 비열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주심의 손끝에서 쏘아 올려진 것은 노란색 카드가 아니었다.
선명하고 강렬한 붉은색 카드. 다이렉트 퇴장이었다.
“레드카드! 주심, 지체 없이 성도고 박성민에게 퇴장을 명령합니다! 완벽한 비신사적 행위이자 고의적인 위해 태클로 판단한 것입니다!”
“이게 왜 퇴장이에요! 공 보고 들어갔다고요!”
박성민이 자리에서 펄쩍 뛰며 주심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그의 삼촌이자 축구협회 핵심 인사인 박 전무의 배경을 믿고 늘 그라운드 위에서 안하무인으로 군림해 왔던 그였다. 하지만 대낮의 전국대회 결승전, 수많은 카메라와 관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주심의 판정은 단호했다.
“물러서! 비신사적인 태클이었어. 당장 나가!”
주심의 단호한 손짓에 박성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머리를 감싸 쥔 채 터덜터덜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박성민의 뒷모습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이 이 쇼케이스의 주인공이 되어 유럽 스카우트들의 눈도장을 찍겠다던 야망은, 강태오라는 압도적인 벽 앞에서 완벽하게 분쇄되어 흩어졌다.
그 광경을 본부석 VIP석에서 지켜보던 축구협회 김 전무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김 전무의 손에는 본래 강태오를 옭아매고 강제로 국가대표팀 유스 혹사 일정에 밀어 넣기 위해 작성해 두었던 ‘강제 소집 불응 시 징계 초안 문서’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문서가 있는 서류 봉투는 태오의 에이전트인 데이비드 스타인의 손에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스타인은 본부석 한구석에서 김 전무를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서류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 ‘법적 방어권’과 ‘국제 축구 연맹(FIFA) 제소’라는 무기를 쥔 스타인의 무언의 압박에, 김 전무는 이빨을 갈면서도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기득권 카르텔의 브로커이자 최길환 감독과 내통하며 고교 유망주들의 이권을 주무르던 송민우 역시 사색이 되어 김 전무의 눈치만 살폈다.
송민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비공식 쇼케이스에서 태오가 박성민과의 억지 연계 플레이를 단칼에 거부하고, 홀로 경기장 전체를 평정해 버렸던 그 순간부터 강태오라는 존재는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벗어났다는 것을.
이제 남은 것은 경기장 안에서의 완벽한 침몰뿐이었다.
“성도고, 박성민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처합니다! 이제 흐름은 완전히 청명고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전광판의 시계는 후반 43분을 지나고 있었다.
성도고는 박성민의 퇴장 이후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남은 시간 동안 추가 실점을 막기 위해 페널티 박스 안에 모든 선수를 집어넣는 극단적인 수비 전술, 이른바 ‘텐백’으로 돌아섰다. 승부차기까지만 끌고 가겠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하지만 태오에게는 승부차기까지 갈 여유가 없었다.
시야 우측 하단에서 번쩍이는 장부의 상태창이 그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
[장부 차입 상태: 경고 단계] [현재 무릎 피로도: 78%] [연장전 진입 시, 다발성 무릎 미세 골절 리스크 90% 돌파 예측.]
‘여기서 끝낸다.’
태오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연장전이나 승부차기라는 불확실성에 자신의 무릎을 맡길 수는 없었다. 철저하게 계산된 비즈니스처럼, 가장 확실하고 가장 이른 시간에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아야 했다.
“준우야, 라인 올려! 2선 침투 준비해.”
태오가 중원에서 짧게 지시했다. 준우는 군말 없이 상대의 빽빽한 수비 라인 사이로 몸을 들이밀었다.
후반 추가 시간은 단 3분이 주어졌다.
체력이 바닥난 청명고 선수들의 움직임도 둔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태오의 두뇌는 오버클럭된 프로세서처럼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전했다. 상대 수비수들의 미세한 위치 선정 오류, 무게 중심의 쏠림, 잔디의 마찰력까지 모든 데이터가 그의 시야에 수치화되어 입력되었다.
추가 시간 1분 30초 경과.
성도고의 미드필더가 걷어낸 공이 하프라인 부근으로 흘러나왔다. 태오가 벼락같이 달려들어 가슴으로 공을 트래핑했다. 공이 잔디에 닿기도 전에, 그의 왼발 끝이 공의 하단을 부드럽게 깎아 차며 전방으로 로빙 패스를 찔러 넣었다.
하프 스페이스를 뚫고 들어가는 한준우의 질주 경로를 완벽하게 예측한 패스였다.
“준우!”
공을 잡은 준우가 성도고의 페널티 아크 정면으로 거침없이 치고 들어갔다. 성도고의 센터백 두 명이 급하게 준우를 에워쌌다. 준우가 슈팅 모션을 취하는 찰나, 다급해진 성도고 수비수의 발이 준우의 디딤발을 향해 거칠게 들어왔다.
탁!
준우가 걸려 넘어지며 잔디 위를 굴렀다.
삐이이익-!
주심의 휘슬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주심이 단호한 손짓으로 페널티 아크 바로 뒤쪽을 가리켰다.
“반칙! 페널티 아크 정면, 골문으로부터 약 22미터 지점입니다! 청명고에게 극적인 프리킥 찬스가 찾아옵니다!”
경기장 전체에 터질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관중석의 함성이 일순간 멎었고, 벤치의 최길환 감독은 마른침을 삼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성도고의 수비수들은 골키퍼의 지시에 따라 필사적으로 수비벽을 쌓기 시작했다.
후반 추가 시간은 이제 단 1분도 채 남지 않았다.
사실상 경기의 마지막 플레이가 될 프리킥이었다.
태오가 천천히 공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축구화 스파이크가 잔디를 꽉 움켜쥐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때리는 심장 박동 소리와 겹쳤다. 공을 들어 올려 가볍게 잔디 위에 올려놓는 그의 손끝에는 미세한 떨림조차 없었다.
태오는 허리를 숙여 공의 밸브 위치를 확인하고 정교하게 스폿을 맞추어 고정했다. 그리고 뒤로 다섯 걸음, 왼쪽으로 두 걸음을 물러섰다.
수비벽이 서는 위치, 골키퍼의 미세한 치우침, 그리고 골대 구석의 좁은 틈새가 그의 시야에 3차원 홀로그램처럼 그려졌다.
[시스템 메시지: 최종 격발 준비] [장부 잔여 자산 대환률: 100% 가동 가능] [성공 확률: 92% (단, 킥 이후 우측 발목 및 인대 일시적 과부하 발생)]
‘상관없다. 이 한 발로 끝낸다.’
태오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골문을 응시했다. 수비벽 너머에서 성도고 골키퍼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심판이 휘슬을 불기 위해 호각을 입에 물었다.
그라운드 위의 모든 공기가 멈춘 듯한 고요 속에서, 태오의 발끝이 마지막 지배를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