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부 법정.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는 대학병원 수술실의 그것과 닮아 있습니다. 피고인 세진병원 측을 대리하는 국내 최대 로펌 '태산'의 변호사들이 두꺼운 소송 서류 뭉치를 재판부석에 교부합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의사 면허가 박탈당한 채 변호사 배지를 달고 돌아온 당신을 향한 노골적인 경멸이 서려 있습니다.
"원고가 제기한 의료과실 주장은 의학적 사실에 어긋납니다." 태산의 파트너 변호사가 정교하게 조율된 목소리로 변론을 시작합니다. "환자의 저산소성 뇌 손상은 수술 중 발생한 불가항력적인 미주신경성 실신과 마취제에 대한 특이 체질적 부작용이 겹친 불행한 사고일 뿐입니다. 여기 진료기록부와 마취기록지를 보십시오. 수술 중 산소포화도(SpO2)는 시종일관 98% 이상 정상 범위를 유지했으며, 마취과 전문의의 즉각적인 대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방청석 저편, 세진병원 기획조정실장 김태수가 입꼬리를 미미하게 올리며 당신을 내려다봅니다. 그의 눈빛은 묻고 있습니다. '의사 면허도 없는 네가 이 완벽한 기록을 어떻게 뒤집겠다는 건가?'
하지만 당신의 눈은 이미 그들이 제출한 디지털 마취기록지의 이면을 예리하게 메스로 도려내듯 해부하고 있습니다. 심전도 파형, 마취 가스 주입량, 그리고 수술 중 환자 감시 장치의 혈압 기록. 완벽하게 위조된 모자이크화 같은 서류 속에서, 당신의 천재적인 임상 감각은 단 하나의 치명적인 부조화를 잡아냅니다.
14시 42분. 마취기록지에 기재된 흡입 마취제 세보플루란(Sevoflurane)의 기화 농도가 일시적으로 Zero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공호흡기의 분당 환기량(Minute Volume) 데이터가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이는 마취 의사가 자리를 비웠거나, 기관내 삽관 튜브가 이탈(Extubation)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징후입니다. 그 짧은 몇 분의 저산소증이 뇌 파괴를 불렀고, 저들은 이 공백을 다른 정상 수치로 덮어씌워 교묘하게 세탁한 것입니다.
"원고 대리인." 재판장이 엄숙한 어조로 당신을 부릅니다. "피고 측이 제출한 대학병원 감정서에 반박할 구체적인 의학적 소명이 가능합니까?"
법정 안의 모든 시선이 당신의 입술로 쏠립니다. 철옹성 같은 상대의 방어벽을 깨부수고 환자의 호흡이 멈추었던 실시간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당신은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직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