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공기는 수술 치료 중 환자의 체온을 강제로 떨어뜨리는 저체온 유도 장치처럼 차갑고 건조하다.
당신이 내밀었던 결정적인 증거, 세진병원의 오리지널 데이터베이스 백업본은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위조되지 않은 진실이 담겨 있던 그 저장 장치는, 상대 진영이 설계한 정교한 법리적 옭아매기 속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는 낙인이 찍혀 휴지조각으로 전락한다. 증언대에서 눈물을 흘리며 진실을 말하려 했던 전공의의 고백은, 학연과 지연으로 단단히 결속된 거대 의학회의 조직적인 압박과 회유 속에 흔적도 없이 번복된다.
상대의 반격은 외과 수술보다 정교하고, 종양의 전이보다 빨랐다. 그들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철저히 법전의 자구와 판례의 빈틈을 파고들며 당신의 호흡기를 하나씩 끊어 간다. 당신에게 적용된 혐의는 무면허 의료 행위 방조 및 공무집행 방해. 법률 카르텔과 의료 권력이 합쳐진 거대한 이익 집단은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당신이라는 외부 인자를 완벽하게 '절제(Resection)'해내기로 합의한 것이다.
"피고인 백강현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며..."
판사의 무미건조한 낭독이 법정에 울려 퍼진다. 의사 면허가 취소되었던 당신에게 마지막 보루였던 변호사 자격마저 무효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당신의 팔목에 채워지는 수갑의 차가운 금속 감촉은, 수술실에서 피에 젖은 메스를 내려놓을 때의 그 서늘함과 꼭 닮아 있다. 방청석에 앉아 있는 세진병원 수뇌부들의 얼굴에는 승리의 미소조차 없다. 그저 성가신 가시 하나를 완벽하게 제거했다는 안도와 무표정만이 감돌 뿐이다.
캄캄한 독방의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는다. 벽 너머로 들려오는 정적은 마치 심정지 환자의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플랫라인(Flatline)의 무음처럼 길고 무겁다.
기회는 영원히 박탈당했고, 진실은 거대 조직의 두터운 침묵 속에 차갑게 매장된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무릎을 꿇은 당신의 손끝은 아직도 메스의 그립을 기억하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완전히 꺼지지 않은 복수의 불꽃을 심장 가장 깊은 곳, 좌심실 아래에 숨겨둔 채, 당신은 패배의 쓰디쓴 잔을 들이키며 차가운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