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으로 일렁이는 끈적끈적하고 추악한 저주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날아왔답니다.
그것은 닿는 모든 생명체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 놓고 영혼까지 썩혀 버린다는 신성청의 금지된 비기, ‘대형 전염성 기생 고대 오염 핵석’에서 뿜어져 나온 치사율 백 퍼센트의 광선이었어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아멜리아의 가냘픈 심장을 향해 쇄도하는 그 살기 어린 빛줄기 앞에서, 시간마저 차갑게 얼어붙는 것만 같았지요.
“아멜리아-!”
카이든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고막을 때렸답니다. 그의 거대한 대검이 허공을 갈랐지만, 이미 발사된 기습적인 저주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찰나의 순간이 너무도 야속하게 흘러갔어요. 렌 역시 얼굴에서 일체의 핏기를 잃은 채, 동생을 향해 손을 뻗으며 쓰러지듯 몸을 날렸지요.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극렬한 공포와,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살인적인 오염 광선의 표적이 된 아멜리아는 아주 차분하게 눈을 깜빡였어요.
‘어머나, 저렇게 대놓고 흉측한 걸 던지다니. 예의가 너무 없으시네요.’
아멜리아의 앙다문 입술 끝이 아주 미세하게 호선을 그리며 굳어졌답니다. 그녀는 도망치거나 비명을 지르는 대신, 하얗고 보들보들한 손을 가슴께로 조용히 가져갔어요.
그곳에는 아빠 카이든이 세상에서 가장 영롱하고 아름다운 보석이라며 뺨을 부비며 선물해 주었던, 투명한 붉은 핏빛 다이아몬드 펜던트가 걸려 있었지요. 차갑고도 단단한 루비빛 보석이 아멜리아의 온기를 머금고 잔잔하게 박동하고 있었답니다.
저주받은 보랏빛 광선이 아멜리아의 옷깃에 닿기 바로 직전이었어요.
화르륵!
갑자기 아멜리아의 목덜미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붉은 광채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답니다. 가문의 투명한 핏빛 다이아몬드가 아멜리아의 생명의 위협을 감지하고 스스로 깨어난 것이었지요. 붉은 빛은 순식간에 아멜리아의 전신을 감싸 안으며, 마치 전설 속 거대한 붉은 용의 비늘처럼 단단하고 투명한 적색 결정 방벽을 연성해 냈답니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폭음과 함께 보랏빛 독기가 적색 결정 방벽에 정면으로 충돌했어요. 사방으로 시커먼 매연과 불꽃이 튀었지만, 아멜리아가 서 있는 방벽 안쪽은 맑은 봄날의 정원처럼 고요하고 아늑했답니다.
오히려 끈적끈적한 저주의 에너지는 붉은 결정에 닿는 순간, 차가운 얼음판 위에 떨어진 뜨거운 물방울처럼 스르륵 녹아내리기 시작했어요. 펜던트는 그 흉악한 오염을 오롯이 무해하고 투명한 수정 마력으로 완벽하게 정화하여 빨아들이고 있었지요.
동시에 아멜리아의 귓가에 딩동, 하는 맑은 기계음이 울려 퍼졌답니다.
[시스템: 가문의 수호 가보 '핏빛 다이아몬드'의 숨겨진 절대 방어막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시스템: 적대적 마법 ‘대형 전염성 기생 고대 오염 핵석’의 치사성 오염 마력을 100% 흡수 및 정화합니다.] [시스템: 흡수된 오염원이 무해한 순수 마력으로 치환됩니다.] [시스템: 보유 마력이 대폭 충전됩니다! (기존: 16,000 MP -> 현재: 23,500 MP)]
‘우와, 마력이 무려 7,500이나 한 번에 충전되다니! 추기경님, 제 은밀한 요람 건립 자금을 이렇게 든든하게 보태주시다니 정말 눈물겹게 감사하네요.’
아멜리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가냘프고 놀란 요정처럼 어깨를 흭 움츠렸답니다. 눈가에 눈물을 촉촉하게 머금은 채, 부르르 떨리는 하얀 손으로 펜던트를 꼭 쥐었지요.
“흐윽…….”
아멜리아의 작은 신음 한 마디에, 얼어붙어 있던 카이든과 렌이 야수처럼 울부짖으며 달려왔답니다.
“아멜리아! 아가! 다친 곳은 없느냐! 어디가 아픈 게냐!”
카이든은 대검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손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아멜리아의 뺨과 손을 허겁지겁 살폈어요. 그의 붉은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득하게 고여 있었지요. 제국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전신이, 고작 일곱 살배기 딸아이의 터진 옷자락 하나를 보며 심장이 터질 것처럼 꺼흑 소리를 내며 울먹이고 있었답니다.
“멜키오르, 이 더러운 버러지 놈이 감히…….”
렌의 목소리는 지옥 가장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것처럼 차갑고 서늘했답니다. 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마력이 대지를 얼려 버릴 듯 거칠게 소용돌이쳤어요. 렌은 당장이라도 멜키오르의 사지를 찢어발길 기세로 검을 고쳐 잡았지요.
아멜리아는 아빠의 넓은 품에 쏙 안겨, 달콤한 생크림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웅얼거렸답니다.
“아빠, 오빠…… 아멜리아는 괜찮아요. 아빠가 주신 예쁜 목걸이가 아멜리아를 꼭 지켜 주었는걸요.”
그리고 아멜리아는 품속에서 투명하게 빛나는 영수 육성 장부를 살며시 꺼내 들었답니다. 물론 가족들의 눈에는 그저 얇고 낡은 가죽 수첩처럼 보이겠지만, 아멜리아의 눈에는 실시간으로 분석되는 멜키오르의 범죄 증거들이 푸른빛 홀로그램으로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 나쁜 아저씨가 던진 돌멩이는 아주 나쁜 냄새가 나요. 마수들을 아프게 만들고 폭주하게 만드는 사악한 마기가 가득 들어 있는걸요.”
아멜리아가 장부의 정밀 분석 페이지를 가리키며 조곤조곤 말했답니다. 장부의 치유 에너지가 대기를 정화하며, 멜키오르가 사용한 오염 핵석의 성분을 투명한 마법 스크린으로 공중에 띄워 올렸어요. 공작가의 대현자들과 기사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 화면을 주시했지요.
스크린 위에는 신성청이 비밀리에 마수들에게 주입해 온 사악한 인공 주입 마기의 성분과 배합 공식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수치화되어 그려져 있었답니다.
“이, 이것은……!”
공작가의 수석 대현자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뒤로 자빠질 뻔했답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마수가 지닌 힘이 아닙니다! 인위적으로 마기를 정제하여 생명체에게 기생시키는, 그야말로 금기된 사설 사교도의 주술 공식이 틀림없습니다!”
대현자의 외침에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공작가 기사들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나기 시작했어요. 멜키오르가 그동안 ‘마수 정화’라는 명목하에 무고한 마수들을 고의로 타락시키고 폭주하게 만들어 제국의 이권을 독점해 왔다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 드러난 순간이었지요.
아멜리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가방 안에서 소중하게 보관해 두었던 단서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답니다. 그것은 며칠 전 공작저 서고에서 발견했던, 신성청 마크가 찍힌 붉은 밀랍 왁싱 편지 봉투였어요.
“그리고 이것도 봐 주세요. 아멜리아를 나쁜 곳으로 데려가려 했던 가짜 하녀장 언니의 방에서 찾은 거예요. 여기선 아주 머리가 아픈 리일리향이 나요.”
아멜리아가 코를 찡긋하며 편지 봉투를 렌에게 건넸답니다.
렌은 그 편지 봉투를 받아 들자마자 눈을 가늘게 뜨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지요.
“과연…… 신성청의 전용 밀랍이군. 우리 공작가의 비밀 지도를 반출하려다 잡힌 그 하녀장 첩자가 들고 있던 진짜 지령서다. 그들이 우리 아멜리아를 납치하여 이단으로 몰기 위해 교묘하게 덫을 놓았다는 증거가 여기 다 적혀 있군.”
리일리향의 독특한 잔향이 숲의 맑은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갔답니다. 멜키오르가 공작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랫동안 침투시켰던 첩자의 배후가, 아멜리아의 영리한 단서 수집에 의해 낱낱이 파헤쳐지는 순간이었어요.
그때, 아멜리아의 발밑에서 조그맣고 노란 털 뭉치 하나가 삐약! 하고 씩씩하게 울음소리를 냈답니다.
그것은 예전에 숲속 깊은 구렁텅이에서 날개가 꺾인 채 울고 있던 것을 아멜리아가 정성껏 치료해 준 외뿔 달린 어린 새 마수, ‘냥냥이’였어요. 냥냥이는 앙증맞은 부리로 아멜리아의 구두코를 콕콕 쪼아 대더니, 이마에 새겨진 특이한 고대 정령 무늬를 반짝였답니다.
“삐약! 삐야아아아-!”
냥냥이가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향해 목청껏 울부짖었어요.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답니다.
하늘을 뒤덮고 있던 수천 마리의 고대 수호조 영수단이 냥냥이의 인도 아래 일제히 날개를 접고 지상으로 내려앉아, 멜키오르와 그의 패잔병들을 겹겹이 포위한 것이지요.
“저, 저 무늬는…… 고대 숲의 수호조들에게만 전해 내려온다는 고대 정령의 계약 각인!”
기사단 중 한 명이 침을 꿀꺽 삼키며 외쳤어요.
“신성청 놈들은 이 고귀한 수호 영수들을 단순한 마수라 속여 학살하고 정화석을 채취해 왔던 겁니다! 이 무슨 천인공노할 짓이란 말인가!”
신성청이 주장해 온 ‘마수 박해 처분법’의 정당성이 완전히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답니다. 영수들은 사나운 괴물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에 의해 희생당하고 억압받던 상처받은 생명체들이었음이 아멜리아와 냥냥이의 활약으로 천하에 증명된 것이지요.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고작 저런 꼬맹이의 장난질에 내 위대한 계획이……!”
멜키오르는 흙먼지가 잔뜩 묻은 사제복을 입은 채, 바닥을 기며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답니다. 그의 얼굴은 차가운 재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입술은 통제력을 잃고 덜덜 떨렸지요.
자신이 준비한 치사성의 오염 핵석은 무력화되었고, 공작가를 단숨에 파멸로 몰고 갈 이단 조작 음모는 도리어 자신을 죌 교수대의 올가미로 돌아왔으니까요.
카이든이 대검을 천천히 들어 올려 멜키오르의 턱밑에 겨누었답니다. 서슬 퍼런 검날에 비친 카이든의 눈빛은 그 어떤 마수보다도 포악하고 잔혹했어요.
“멜키오르. 감히 신을 참칭하며 제국을 기만하고, 내 딸의 목숨을 위협한 죄. 그 대가가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것인지 똑똑히 보여주마.”
“사, 살려 주시옵소서! 공작 전하! 저, 저는 그저 교단의 명을 따랐을 뿐……!”
멜키오르가 눈물콧물을 흘리며 카이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려 버둥거렸지만, 렌이 얼음처럼 차가운 구두굽으로 그의 손등을 가차 없이 짓밟았답니다. 바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멜키오르의 비명이 요람의 숲속에 처량하게 울려 퍼졌어요.
“내 동생에게 감히 더러운 손을 뻗지 마라, 사교도 놈.”
렌의 냉혹한 명령에 따라 공작가의 정예 기사들이 달려들어 멜키오르의 온몸을 쇠사슬로 꽁꽁 묶어 버렸답니다. 한때 제국을 호령하던 안하무인의 추기경이, 이제는 사지가 결박당한 채 처형대로 끌려갈 처량한 신세가 된 것이었지요.
아멜리아는 아빠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채, 힐끗 멜키오르의 몰락을 바라보았어요.
‘휴, 드디어 큰 산 하나를 넘었네요. 이제 이 숲은 완전히 우리 영수들의 안전한 요람이 될 수 있겠죠?’
가족들의 과보호로 가득 찬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아멜리아는 마음속으로 평화로운 미래를 그리며 몽글몽글한 미소를 지었답니다. 가슴속에 맺혀 있던 전생의 배신상처가, 기꺼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분노해 주는 가족들의 절대적인 사랑 앞에서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지요.
바로 그 평화로운 순간이었답니다.
두구두구두구구-!
저 멀리 검은안개 숲 초입에서 대지를 울리는 웅장한 말발굽 소리가 다시 한번 메아리쳤어요.
포박당한 채 질질 끌려가던 멜키오르가 붉은 입거품을 물며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지요.
“크하하핫! 늦었다, 에스카르디아! 이미 법왕청과 황실의 연합 정벌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공작가가 제무리 제국의 지배자라 한들, 황제의 칙령마저 거역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카이든과 렌의 미간이 좁아지며 검 자루를 꽉 쥐는 순간, 숲의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타난 것은 황금빛 용의 문양이 찬란하게 새겨진 황실의 정예 기사단이었답니다.
그들의 선두에 선 황제의 절대 밀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에서 내려 공작가를 향해 걸어왔어요. 그의 손에는 황제의 친필 서명이 담긴 절대 밀서와 함께, 눈부신 금빛으로 빛나는 제국 특별 자치령 승인 문서가 들려 있었지요.
밀사가 카이든 공작과, 그의 품에 안긴 아멜리아를 향해 정중히 무릎을 꿇으며 외쳤답니다.
“황제 폐하의 칙명을 받드옵니다! 에스카르디아 공작가의 막내 영애, 아멜리아 에스카르디아를 검은안개 숲의 자치령주로 임명하며, 이 숲을 제국 유일의 ‘영수 특별 자치 구역’으로 승인하노라!”
그 순간, 붉은 거품을 물며 광소하던 멜키오르의 웃음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답니다. 그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아멜리아 역시 예상치 못한 황제의 전격적인 자치권 승인 문서 앞에서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며 아빠를 바라보았지요. 과연 이 금빛 문서가 가져올 새로운 폭풍은 무엇일까요?